상위 1%의 노년
며칠 전 아침이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김형석 교수의 유튜브 강연을 들었다. 제목이 제법 눈길을 끌었다. "75~85세인
당신이 다음 여섯 가지에 해당된다면 상위 1%가 된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내년이면 여든인데, 살아오면서 내가 무슨 상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학교 다닐 때도,
직장생활을 할 때도, 재산을 모을 때도 늘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얼마 전에는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는 유가보조금인지 민생지원금인지 하는 것을 받아 보려고 동사무소를 찾았다. 신분증을
내밀었더니 담당자가 컴퓨터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순간 속으로 '내가 그렇게 부자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언론에서는 상위 10%만 제외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설마 내가
그 상위 10%에 들어가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알아보니 연금을 조금 받고 있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빠진 모양이었다.
괜히 아쉬웠다. 십만 원만 받아도 고기 한 근 사다가 숯불에 구워 소주 한잔하며 아내와 웃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
다. 기대했다가 허탈해진 마음이 한동안 남았다.
그런데 김 교수의 강연을 끝까지 듣고 나니, 그 아쉬움이 조금은 엷어졌다.
교수가 말하는 노년의 상위 1%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건강하게 걷는 사람,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읽는 사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자주 웃는 사람,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주말마다 함께 산을 오르는 동기생들이 하나같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산길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힘들다면서도 정상에 오르면 환하게 웃는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의 연결을 이어 가는 일이다. 노년에 걷기를 멈춘다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것이라는 교수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며 책장을 넘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생각을 넓히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배운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웃음인 것 같다.
산에서 내려와 막걸리 한 사발 앞에 두고 서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배를 잡고 웃게 된다. 그 웃음 속에는 경쟁도 없고
욕심도 없다. 그저 "오늘도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다."는 마음뿐이다. 의학에서는 웃음이 엔도르핀을 만들어 준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있다. 웃고 난 뒤의 가벼운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도 그렇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의 햇살을 볼 수 있는 것, 무릎이 조금 아파도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것, 전화 한 통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
손주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이런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나쯤 가지고 사는 삶.
거창할 필요는 없다. 하루 한두 줄이라도 일기를 쓰는 일, 화분에 물을 주며 새잎이 돋는 모습을 기다리는 일, 산을 오르고 사진을
찍는 일, 좋은 글을 읽고 마음에 남는 구절을 적어 보는 일.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취미일지 몰라도,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생각해 보면 노년의 상위 1%는 통장 잔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지금 가진 것을 얼마
나 기쁘게 누리며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했다.
정부 지원금 십만 원은 받지 못했지만, 함께 산을 오를 친구들이 있고, 읽을 책이 있고, 배우려는 마음이 있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부자인 셈이다.
내년이면 여든이다.
예전에는 여든이라는 숫자가 두렵게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도 걸을 수 있고, 책을 펼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친구들과 크게 웃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정한 상위 1%는 남보다 앞선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삶이라면 나도, 그리고 매주 함께 산을 오르는 우리 동기생들도 이미 그 상위 1%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받지 못한 지원금에 대한 아쉬움도 어느새 웃음거리로 바뀐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행복이 아직 내 곁에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