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실수와 신의 한 수
매미 우는 소리를 들은 지도 열흘쯤 되었다. 어느새 한여름이다.
그래도 밤에는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 더위보다 무서운 것이 전기요금 고지서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 두고 선풍기를
머리맡에 틀어 놓은 채 잠을 청한다.
그날 밤도 더위와 선풍기 바람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잠이 들려는데, 귓가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왱―.'
그 작은 날갯짓 소리는 사람을 단숨에 잠에서 끌어낸다. 벌떡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방 안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파리채를 들고 침대와 벽을 훑어보니 벽 한쪽에 까만 점 하나가 붙어 있었다.
모기였다.
숨을 죽인 채 한 걸음씩 다가갔다.
'딱!'
파리채가 벽에 닿는 순간 선홍빛 핏방울이 번졌다. 그 핏빛이 내 피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다. 모기
에게 당한 복수를 마친 기분이었다.
그런데 모기를 잡고 나니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모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사람을 귀신같이 찾아다닌다. 그런데 불을 켜는 순간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은 듯 벽이나
천장에 내려앉는다. 어둠에서는 곡예비행을 하던 녀석이 밝은 곳에서는 허둥대는 것이다.
'혹시 이것이 신의 실수는 아닐까.'
물론 창조주가 정말 실수를 했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에서는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린다. 동이 트고, 여명이 번지고, 햇살이 세상을 채우기까지는 완만한 과정
이 있다. 모기의 감각도 그런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스위치 하나로 세상을 바꿔 버린다. 밀리초도 안 되는 시간에 밤을 낮으로 만들어 놓는다. 자연에는 없던
변화가 문명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모기가 순간적인 광량 변화를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창조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 문명이 자연의 시간을 뛰어넘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생각은 문득 바둑으로 옮아갔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바둑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경우의 수가 10의 170제곱에
이른다는 말을 들으며,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만은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겼다.
그러나 알파고는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다섯 번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단 한 판만 승리했다. 그 승부를 바꾼 78수는 훗날 '신의 한 수'라 불리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신의 한 수'라는 말 자체도 그리 오래된 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만화 히카루의 바둑에서 후지와라노
사이가 평생 추구하던 궁극의 착수를 가리키던 말이 우리 사회로 건너와, 이제는 기막힌 선택이나 절묘한 해결책을 뜻하는
일상어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십 년.
인공지능은 단순히 계산을 잘하는 기계를 넘어 스스로 학습하고 창조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바둑에서도 카타고는 인간이
감히 겨루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 최근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두 점을 먼저 놓고 두는 접바둑에서 가까스로 승부를
이어 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과 AI의 간격이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의 실수'와 '신의 한 수'는 서로 반대말이 아니다.
모기는 인간이 만든 전등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AI 앞에서 조금씩 겸손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모기의 허점을 보며 '신의 실수'를 이야기하지만,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면서는 과연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인간이 둔 최고의 한 수일까, 아니면 언젠가 인간 자신을 시험하게 될 또 하나의 숙제일까.
세상은 실수와 묘수 사이에서 발전해 왔다.
완벽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빈틈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뜻밖의 한 수가 새로운 시대를 연다. 어쩌면 창조
의 역사란 완벽함의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허점을 메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오늘 밤도 나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켜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귓가에서 '왱―' 하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전등을 켤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혼자 웃게 된다.
모기 한 마리를 잡으면서는 '신의 실수'를 생각하고, 방 한구석에 놓인 컴퓨터를 바라보면서는 '신의 한 수'를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신은 실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이 자연을 넘어서는 문명을 만들었고, 그 문명은 다시 인간을 넘어서는 지능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결국 신의 실수
와 신의 한 수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써 내려가는 하나의 긴 이야기의 두 장면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전등을 켜고 모기를 잡는다.
그때마다 모기의 허둥거림에서는 신의 실수를, AI의 눈부신 진화에서는 신의 한 수를 떠올린다.
어쩌면 둘 다 신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풍경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름밤 모기 한 마리의 날갯짓도
예전처럼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