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배불 사상 배경
철학과 16학번 부수성
조선이 건립된 이후 불교가 배척되고 유교가 수용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는 고려 말 불교의 부패와 조선의 국교인 유교의 가르침이 불교의 가르침과 서로 상반된다는 점이다.
먼저 려말 불교는 통일신라 때부터 이어져온 국가불교의 특성이 고려 시대에 전반에 걸쳐 강화되었고 이는 불교의 폐단을 드러냈다.
이러한 폐단은 대표적으로 사찰의 횡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수행의 중심이 되야할 사찰이 백성들을 착취하고 세금을 포탈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불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백성들에게 죄를 미끼로 사찰에게 공양을 바치게 하였으며 국가를 배경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사찰은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군역과 부역에 제외되는데 이를 통해 사찰은 백성들을 빼돌려 국가의 재정과 국력 약화시키도 하였다.
또한 사찰이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이를 통해 소작민을 부려 부를 축적했고 승려들이 권력을 부리거나 고리대금업을 일삼는 일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고려 말 사찰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 전국에 절이 약 1만 3천여 정도가 있었고, 승려만 15만여 명이 속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려말 불교가 사회윤리의 규범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치와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각종 폐단을 초래하고 선종과 교종의 갈등이 심해져 고려가 썩어 문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교를 비판하는 성리학이 발호하게 된다.
두번째 이유로는 유학(주자학)에서 배불 사상의 가장 큰 개념은 ‘도통(道統)’이다. 도통이란 ‘유학의 참 정신이 전해 내려온 큰 흐름’을 뜻한다.
이러한 ‘도통(道統’은 유학의 근본정신을 얼마나 잘 계승하고 유지하고 있는 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중국 한유의 ‘배불론’을 의거해 불교를 배척하지 않는다면 ‘도통(道統’이 제대로 잡히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학에서 말하는 ‘친친(親親)사상’과 반대로 불교는 모든 인간은 같다라는 사상을 내세움과 더불어 현실을 살아가고,
현실에서의 사상를 기반으로 하는 유학과 다르게 불교는 현실이 공허함을, 무망함을 깨달아야함을 가르치기에 두 사상은 정 반대의 가르침이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두가지 이유로 조선 건립 이후 불교는 조선으로부터 배척되는 계기가 된다. 다만 려말의 성행했던 불교의 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조선이 유교만을 채택하는 것이 아닌 불교 또한 국교로 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첫댓글 사원경제의 폐단이 고려말 사회 경제 문제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불교, 또는 종교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권력층의 비호를 받았다고 하지만, 백성의 입장에서는 지배계급과, 그들의 비호를 받는 종교사찰의 지배가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격은 성리학, 곧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에서 제기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찰과 승려의 숫자가 부풀려진 감도 있고, 당시로서는 국가정책에서부터 기와 굽는 데까지 전문 직업인으로서 승려가 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