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나루세 미키오

[쵸이스]

나루세 미키오 3- 만국/흐르다 1905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5. 만국 晩菊 (1954) : 꽃은 시들어가고 남겨진 날들은 냉정하네. 한 명의 여배우를 기억하는 것이 어쩌면 본편에 대한 유일하고 정직한 답문이 될 것이다. 저 장면 속의 여배우는 스기무라 하루코(1909 ~ 1997) 이다. 부실한 포털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평생 두 편의 주연 작품을 남겼고, 그 중 하나가 본편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일독한 이들이라면 그녀의 면면에 익숙할 것이고,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이라면 <밥>을 통해서도 이미 낯익은 얼굴일 것이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속 캐릭터는 거의 하나로 고정되어 있어서 다른 성격을 부여받은 것이 있는가 찾고싶을 정도다. <부초>의 그녀가 예외라면 <안녕하세요>의 그녀는 정직하면서도 코믹하게 치정되었다. 그녀는 언제나 타인에게 불평을 하며 삐뚤어진 얼굴로 세상과 타인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성격적 악역을 도맡았다. 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그는 오즈 야스지로를 비롯한 당대의 일본 거장들과 지속적으로 작업해왔는데, 이는 그녀의 얼굴이 풍기는 차라리 시니컬한 강인함이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본편 안에서 그녀가 맡은 은퇴한 게이샤이자 사채업자의 모습은 이같은 그녀의 당대 이미지의 전형이었다. 나루세 미키오는 자신이 사랑한 동시대의 작가인 하야시 후미코의 작품을 각색한 본편에서 스기무라 하루코만한 배우 외에 다른 얼굴을 생각해낼 수 없을만치 본편은 거의 그녀의 전형화된 이미지에 종속된다. 여기서 그녀의 얼굴이란 기존의 스기무라 하루코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기도 한데,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으로 익숙해진 그녀가 왜 그렇게 밉살스럽게 삶을 지속했는지에 대한 장문의 서신으로서 젊은 날의 환희와 사랑을 잃어버리고 자식조차 없이 오직 돈에 의존해서 생을 이어가는 은퇴한 게이샤의 지독한 구두쇠이자 사채업자, 한마디로 돈에만 집착한 채 우정이나 사랑 등의 감정은 닫아버린 40대 중년 여성의 삶을 스기무라 하루코의 찌푸려졌지만 익히 본듯한 얼굴 이미지로 착상시킨 것이다. 전작 <긴자 화장품>의 연결선상에서 여전히 남성들은 그녀에게 돈을 구걸하러 오는 무기력한 자세를 유지하지만, 본편의 그녀들은 어떤 계기 안에서 <밥>과 <긴자화장품> 속의 체념으로서의 순간을 다시 반복하지는 않는다. <만국>에 등장하는 주요 배역인 3명의 은퇴한 게이샤들은 각기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거나 젊은 게시야 시절 만났던 일본군 장교와의 재회에서의 실망이라는 경험을 통해 극의 서사를 구성하고 자신의 혈연들을 보내는 순간의 쓸쓸함이 없지는 않지만, 결코 체념의 자리로 넘어서지는 않는다. 스기무라 하루코가 맡은 사채업자가 된 은퇴한 게이샤는 갑자기 찾아온 젊은 시절의 연인의 초라한 모습에 잠시 들떴던 자신을 곧바로 추스리고 늠른한 연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불태워버리고 창문을 연다. 그 곳에는 비가 찾아들지만, 결코 그것을 쓸쓸하거나 비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안에서 이것을 일종의 진전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무수한 그녀들의 삶의 방식 중 하나로 담담하게 지정하는 편이 아늑할 수 있다. 체념과 순응의 시간(<밥>,<긴자 화장품>)과 이탈의 결단 (<번개>, <산의 소리>)가 지나간 이후 또다시 돌아온 여성의 삶 안에서 그녀들은 다시 살아가야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으며 설사 그것이 타인의 조롱과 시기를 받는 비인간적인 자세라 할지라도 용인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속에서 단 한번도 관객이 주인공 사채업자 게이샤의 삶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비록 그것이 우리가 이 매정한 세상에 대해 기껏해야 시니컬하게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는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본편 안의 3명의 은퇴한 게이샤 중년 여인의 남루한 삶조차 감싸안기를 요청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본편의 주인공으로 여배우 스기무라 하루코가 기용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사채업자의 집에 하녀는 맹아이며 두 게이샤의 딸과 아들이 각각 결혼과 훗카이도 노동의 길로 떠나는 것은 그녀들이 젊은 시절 게이샤로서 만주에서 군인들과 동거했던 행복했던 시간에 대한 개별적 회한으로 보인다. 즉, 이것은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결코 시대적 응보과는 관련이 없다. 다만,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아름답지 못한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안에서 50년대 중반을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삶에 고찰로서 본편은 기록될 듯 하다. 이는 감독의 공간, 집 내부와 좁은 골목길의 갇혀진 분위기와 이미지와 더불어 반복되어 유지된다. 어떻게든 도쿄 등의 대도시를 지키면서 가능한 길을 떠나기를 거부했던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의 정신은 제각기 늙은 남성과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의 삶으로 고정되어있다. 엔딩의 기차역이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이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만국>은 뒤늦게 핀 국화가 아니라 점점 더 우아함을 잃어가는 국화에 대한 만가이며 흔한 '게이샤의 추억'이 아니라, 독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어느 여배우를 기억할 비릿한 존재 통속극이다. 6. 흐르다 流れる (1956) : 여배우들의 집, 그 곳에서 누군가는 떠난다. 배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확실히 기차보다는 배를 나루세 미키오가 선호하고 본편의 제목이 '흐르다 流'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관습적이고 무의미할지라도 본편을 하나의 유비로 혹은 위로로 읽고싶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배우들의 집. 위 <만국>에 이은 게이샤 연작이 아니라.   50년대까지 이어온 여배우들의 합창으로 본편을 맞이하고싶어진다.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영화에서 한 집에 6명의 여인을,   제각각의 극 내부의 목소리를 지닌 여성-여배우를 초대하고 공동체를 품은 것은 이례적이다.  극의 얼개, 극 중 오직 1명만을 제외하고 누구도 도덕적으로 정결하다 할 수 없는 공동체 안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자리는 그녀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정중한 안내일 것이다.   이는 감독의 여성 영화 안에서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극 내부의 사건들이 어떠했듯간에 본편은 남자 배역이 거의 무시된다고 할 정도로 부재한다.  몇몇 사내들, 특히 조카녀의 돈을 받으러온 남성 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편은 오직 그녀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과 추락 안에서만 존재한다.  즉, 이는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영화 안에서도 오직 여성만을 위한 배려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들 6명의 여배우들에게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들이 모두 본편에서 게이샤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점점 몰락해가는 게이샤 공동체 안에서 생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비, 게이샤=여배우를 연상하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들은 대부분 50년대 이후 일본 누벨바그의 시기에는 서서히 물러서게 된다.  그녀들의 황금기는 30년 ~ 50년의 무성영화 말과 유성영화 초기부터 칼라영화 도입 이전까지라고 제한할 수 있다.  물론, 그녀들은 60년대 이후에도 활동했지만, 이미 후배들에게 밀려 조연으로 밀려있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본편에서 은퇴한 게이샤에 가까운 스기무라 하루코가 오랫만에 연회에 가서  한바탕 게이샤로서의 본분을 찾고 활약한 여운을 씻지 못해 자신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후반부 시퀀스는 울컥하게만든다.  서서히 잊혀져간다는 것은 여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회한의 여지를 남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본편은 이재용의 <여배우들>처럼 6명의 여배우가 등장하지만,   여배우의 구성이나 주제적인 측면(황혼과 현역이라는 반대되는 배경 하에서)에서 완연히 차별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지만 본편을 붙들고 싶은 것은  본편의 여배우들이 그토록 게이샤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유지하고싶은 의지,  ( 여관이나 주점으로의 전환 거부, 다른 집에서의 가정부 요청 거절)  그것이 점점 더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이 예정됨을 알고있으면서도 그 곳을 지키려는 노력에  ( 심지어는 오래된 남성 연인에게서 돈을 빌린다든가 등의 구차하고 비참함)  일본 영화의 50년대를 지켜온 그녀-여배우들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을 체념이라는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영화에서의 자세라고 단정지을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순종이라기보다 운명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라는 태도로 받아들이라고 본편은 역설한다. 나루세 미키오가 의도했든 아니든간에 관계없이 예외는 있다.  가장 젊은 게이샤이자 여배우인 나나코 역의 오카다 마리코는   극 중 출연한 여배우 중 유일한 30년대생으로 마지막에 게이샤의 집을 떠난다.  우연하게도 그녀는 일본 누벨바그 기수 중 1인인 요시다 기주의 부인으로서 그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이미 소개해드린 바 있는 요시다 기주의 <아끼즈 온천>이나 <연옥, 에로이카> 등의 작품에서 그녀는 자리를 지킨다. 결국 본편의 제목처럼 '흐르다'는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가에 주목해야한다면 여기서 상류와 하류에 인생을 실은 이들은 여배우로서 자신의 여정이 60년대에 이르면 저물 것을 예감하면서 지금 나루세 미키오의 초대가 어떤 의미인지 자각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본편 안에서 가정부를 제외한 5명의 여인들이 제각각 성격적 결함이나 부조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점점 더 스크린 위에서 사라져야할 이유로 제기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관객으로서 그녀들의 흘러왔음과 흘러감을 동감하는 것이 아마도 본편에 대한 마땅한 자세가 될 듯 하다.  본편에서 조용히 뒷자리를 지키며 게이샤들의 가정부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실질적으로는  가장 선배격이라 할 다나카 기누요(1909 ~ 1977)라는 설정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하다.  오즈 야스지로의 무성 영화들에서 시작하여 미조구치 겐지의 연인이자 페르소나로서  그녀의 영화 속 이름이 오하루라는 것은 그녀가 주연한 영화 1952년작 <서학일대녀>를 연상하게 한다. 배우이자 후일 여성감독이 된 다나카 기누요는 영화 속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여 게이샤의 집으로  관객을 안내하는데, 그녀보다 먼저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은 물 위의 배였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그는 이 영화가 흐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 역시 흐름을 관객에게 언급하는 중개자임을 밝힌다.  더불어, 그녀는 게이샤 외부에서 유일하게 성격적 결함 없이 그녀들을 지키는 자리를 고수한다.  전술한 나루세 미키오의 <긴자 화장품>에서 그녀는 노회한 술집 여종업원으로 주연을 맡은 바 있다.  본편에 출연할 당시 그녀는 47세였다. 스기무라 하루코(1909 ~ 1997) 가 본편에서 맡은 역할은 젊은 애인을 두고 거의 은퇴한 게이샤로서 일하는 그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의 일관된 이미지인 불평과 이간질 등을 반복하는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게이샤로서의 연회 참석의 흥과 젊은 애인에게서 버림받는 슬픔 사이를 오가면서 전작 <만국>에서와는 달리 빚을 안고 산다. 후반부로 가면 북받치는 게이샤의 설움을,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의 시간을 마치 자신의 영화 배우의 이력에 대한 한탄을 풀어놓듯 내던지는 자기 고백의 열변을 토로한다. 그 시퀀스는 어쩌면 전작 <만국>에서의 주인공만큼이나 배우로서의 그녀의 삶이 투영된 지점이라고 하겠다. 본편에 출연할 당시 그녀는 47세였다. 본편에서 게이샤집의 안주인이자 문하생을 지도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게이샤집을 유지하려고  오랜 연인에게 돈을 받거나 언니들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제대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냉혈함도 겸비한다.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게이샤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몰두하여  타인의 추락을 방관하거나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 것에는 애잔함과 더불어 무력함이 동반된다.  그것은 어쩌면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들이 순종과 체념 그리고 이탈을 오갔음을 기억할 때 당연한 귀결이 된다.  야마다 이스즈(1917 ~ 2012)를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서 기억하지 못한다면  가장 선명한 이미지는 아마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7년작 <거미집의 성>에서의 장군의 부인 역할일 것이다.  그 작품에서 그녀는 남편인 장군이 반란의 욕망을 꾀하도록 부추기는 새하얀 분장의 얼굴로 등장했다.  좀 더 젊은 시절이라면 역시 미조구치 겐지의 1936년작 <기온의 자매들>에서의 게이샤 역할일 것이다.  본편에 출연할 당시 그녀는 39세였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는 <번개>, <산의 소리>, <부운> 등에서 남성의 첩이나 무력한 부인 역할로 등장했던 나카키타 치에코(1926 ~ 2005)는 본편에서 게이샤도 되지 못했고, 미혼모로서 남성의 버림을 받은 여성으로 자신의 어린 딸을 게이샤 문하생으로 키우는 가련한 여성을 맡아 전작의 이미지를 반복한다. 본편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조명받는 지점은 자신을 버린 남성이 딸의 병문안을 위해 돈만 던져주고 갈 때이다. 그녀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1947년작 <어느 멋진 일요일>에서 가난한 연인으로 출연할 당시만해도 복스러운 볼이 터져나갈듯한 젊은 여성의 면모가 돋보였지만, 불과 몇년 뒤 출연한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는 갸날프다못해 병약한 이미지로 일관했다. 어쩌면 그녀야말로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영화에서 순종, 체념이 아닌 포기의 모습으로 일관한다. 본편에 출연할 당시 그녀는 30세였다. 타카미네 히데코(1924 ~ 2010)를 새삼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배우 여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찬란한 시간을 나루세 미키오 감독과 같이 보냈다. 여성 영화에서 여성 페르소나라는 위치는 그만큼 고닮픈 연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번개>, <부운>을 비롯한 60년대 전반기까지 나루세 미키오와 영화를 같이 했다. 본편에서 그녀는 게이샤 어머니를 직접적으로 원망하지는 않지만, 이제 게이샤 영업을 접고 다른 직종으로 전환하기를 권유하면서도 자신 스스로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는 면모를 보인다. 더불어 젊은 게이샤들에게 혐오에 가까운 기묘한 감정을 보임으로서 공동체 형성에 장애를 보인다. 본편에 출연할 당시 그녀는 32세였다.   오카다 마리코(1933 ~ )에 대해서는 이미 요시다 기주 감독의 영화들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녀는 나루세 미키오의 전작인 <부운>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바 있다. 본편에서 그녀는 젊은 게이샤로서 삶을 만끽하면서도 결국 허물어져가는 게이샤의 집을 떠나 후반부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6명의 여인 중 유일한 자리를 맡았다. 전술했다시피, 운연진 중 유일한 30년대 생인 그녀는 우연하게도 후일 일본 누벨바그의 기수 중 한명인 요시다 기주의 부인이 되어 그의 작품에 주연으로 수회 등장했다. 2005년작 아오야마 신지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에서 최근 모습을 보였다. 본편에 출연할 당시 그녀는 23세였다. <흐르다>는 6명의 여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허물어져가는 게이샤의 삶을 지탱하는 추락극이며 2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일본 영화의 황홀한 시기를 담당했던 여배우들의 황혼에 대한 애정 고백이다.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보내기 인쇄

나루세 미키오 2 - 번개//산의 소리  나루세 미키오 18 / 冥福  2014. 2. 5. 13:17 http://blog.naver.com/cutsong/130185002776 전용뷰어 보기 나는 이제까지 그를 9번 만날 수 있었다.  나루세 미키오는 1905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3. 번개 稲妻 (1952) : 새끼고양이와 맥주병뚜껑을 주웠다. 본편은  2010년 1월 28일 시네마떼크 KOFA에서 song, 벤더님과 같이 관람했다. 불과 4년만의 재회이지만, 이제 그 감상문을 거의 철회하고 싶을 정도로 본편에 대한 인상은 변경되었다. 그것은 단편적으로 영화를 접하는가 아니면 감독과의 여정 안에서 본편을 좌표화하는가의 차이일 것이다. 만일 근 20년 이내의 시간 안에서 만났다면 아마도 주저없이 일본 가족 해체극의 얌전한 지류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를 정반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오즈 야스지로의 50년대 이후의 영화를 안티 가족극의 원류로 상정해야한다는 뜻일까? 좀 더 차분하게 말하자면 전후 일본 사회의 붕괴, 즉 지난 시기의 군국주의가 가부장제를 떠받치고 있었다면 일본 패전에 대한 천황의 인정 방송이 라디오로 울려퍼진 이후에 대한 아버지들의 근심이라고 치부해도 좋을까라는 억측. 다르게 말하자. 겨우 3편만을 만난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영화을 무리하게 도식화할 필요를 느낀다. 일종의 편의를 위한 설계인데, 반복되는 극의 뼈대에 따른 동일한 진술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오즈 야스지로나 나루세 미키오와 같은 일상 소시민극의 세계에 대한 점검이야말로 감상의 뼈대가 된다. 하나. 미혼녀 - 아내 - 미망인 등의 여성이 자신의 지루한 일상에서 염증을 보인다. 둘. 그녀들은 우연히 찾아온 탈출구를 통해 작은 희망을 가진다. 셋. 희망은 소각되거나 그 자체가 비상구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극이 종결된다. 넷. 이로 인해 가족-일상은 현상 유지되지만, 이탈 이전과 이후가 동일하다고 진술될 수는 없다. 순종과 굴종의 차이. 이같은 기본 도면 하에서 본편을 전작들과의 차이점을 상술하는 것으로 감상을 갈음하게된다. 우선, 본편의 여주인공(타카미네 히데코 역) 기요코는 23살의 미혼녀이며 관광버스 안내원이라는 직업을 가졌다. 이는 전작에서 아내, 미망인 등의 결혼을 가정한 신분과도 구별되며 주부, 술집 종업원 등과도 직업적으로 다르다. 이는 어떤 무모한 선입견을 유발하자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그의 세계 안에서 여성을 비차별화했다는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편이 전작들과 다른 지점은 가족 구성원에 있어서의 현란한 분리와 가족 해체극적인 양상이다. 전작들이 남편 - 아내 혹은 아들이라는 단적인 구성원으로 극을 이끌어간다면 본편은 3녀 1남과 홀어머니를 통해 가족 내부의 상흔이 각자 아버지가 다른 형제자매라는 설정으로 인해 이미 예고된 수순이자 노골적인 구조라고 하겠다. 맏언니의 탐욕과 둘째 언니의 순진함은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도 맹목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즉, 그들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면모 하에서 올바른 가치관과 전망을 상실한 채 부유한다. 여기에 형부나 남동생 등의 무기력함은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안에서는 동일한 좌석의 재기용이다.     본편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주인공 기요코가 가족을 복원하는가에 달려있는데, 이 지점에서 영화가 전작들과 확연히 다른 지점으로 급격하게 이동한다. 그녀는 두 언니와 거의 결별하고, 그나마 엔딩에서 어머니와 밤의 산책을 보여준다. 그나마 그것은 이제 세를 얻어 독립한 주인공 기요코의 집 창턱 너머 밤하늘에 번개가 보인 이후에나 가능하다. 즉, 본편의 제목인 번개는 이제 더 이상 가족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이자 심리적 표상과도 같은 것이다.   번개 이전 이후의 징후로서 고양이와 병뚜껑을 추가로 예시할 수 있다. 새끼 고양이의 경우에는 둘째 언니의 가게로 슬쩍 들어오는 양상으로 주인공의 외톨이 심경을 대변하지만, 은화인 줄 알고 길에서 주운 병뚜껑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의 허망함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 고양이와 병뚜껑은 노상에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는 물상을 관습적으로 차용된 것이다.    전작 <긴자 화장품>에 이은 탐욕스런 자본가의 자리의 중첩에서 전후 일본 남성들의 단면을 추출할 것인지는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반복되었다는 측면은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내 면모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잉되게 그들의 자본가적 면모야말로 전후 일본의 고정점이라는 진술로 받아들일 이유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다.   가족의 측면에서 보이는 또다른 정경은 모밀 국수 식사로 일별될 수 있다. 가족들과 같이 국수를 먹을 때 주인공은 윗층의 셋방 학생에게도 한 몫을 나누어주는 정을 보이는 반면, 정작 자신이 세를 얻어 나와서 대접받는 모밀 국수의 면발은 쉽게 끊어지지 않음으로 가정이라는 혈연을 반증하게 한다.   이에 덧붙여, 주인공 기요코가 얻은 셋방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남매의 집에서 관객은 피아노 연주라는 예술성과 부모 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필연적으로 나루세 미키오의 이후 세계의 좌석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예술과 전쟁 전 세대와의 절연에서 본편이 어떤 가능성-희망을 보려는 시선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전작들에서 여주인공들이 다른 남성의 존재를 통해 미혹했던 자리를 본편에서는 거의 삭제하고 그 자리에 남매의 단란한 모습과 천둥소리가 아닌 피아노 연주를 삽입한 것은 미량의 진전이자 변화다.   마지막으로 이쯤에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익히 짐작하다시피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3편 안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다. 근래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영화에서 종종 아버지-어른이 실종된 것이 흔히 말하는 전전 세대와의 단절의 의도였다면, 본편을 비롯한 3편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동일한 맥락일까.   이는 나루세 미키오의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의 상을 통해서 조금 더 차분하게 점검해야할 항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편의 어머니가 4명의 남편을 떠나보냈다는(이혼했다는) 설정은 웃으며 흘려보내기에는 제법 의미심장하다. 아버지가 많거나 혹은 보이지 않거나라는 선택은 적어도 오즈 야스지로의 반대편에 있다. 두 방향의 서로 다른 방법의 전후를 맞이하는 시대의 정공법일까.     <번개>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 지점을 반복하면서 탐욕어린 가족 해체를 증오하며 새로운 독립의 가능성을 번개와 피아노로 환영하는 처녀의 선택이다. 4. 산의 소리 山の音 (1954) : <동경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두 가지 추정이 모두 가능하다. 첫째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이나 루이 말의 <데미지>를 통해서 친숙한 것이지만, 이는 후배들의 작품에서 선배의 원류를 가늠하는 역추적이 된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성적인 긴장감이 본편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설정 아래서 본편을 조리하는 것은 하나의 질문을 은연 중에 회피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에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이제까지의 세계에서 욕망은 과연 존재했는가? 만약 그것이 존재했다면 왜 본편의 욕망은 가족 내부의 부부 정상성이 아닌 시아버지-며느리라는 관계 안에서 발견되는가? 여기까지 질문이 도달한다면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볼 이유가 생성되지만, 현재 그것은 불가능하다. 감독이 하나의 목소리만 울리지 않았다는 가정이 가능하다면, 감독의 무수한 관심사 중 하나로서 욕망의 존재가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중 하나였는지는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제까지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속 여성들은 남성들을 통해서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인정받고싶어했다는 의도로 다시읽기가 불가한 것은 아니다. <밥>, <긴자 화장품>, <번개>의 일련의 여성 영화 안에서 그녀들은 무료해진 부부관계, 진실한 성적 관계의 출구폐쇄, 결혼이라는 강제된 직업적 선택이 아닌 신뢰와 평화로서의 남성을 원했다고 복기해야하는것일까? 즉,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영화는 결국 여성의 성적 욕망이 은폐되고 정상성으로의 관계를 복원 혹은 발굴하기 위해서 가족의 일상 안에서 갇혀있었다는 표현이 가능할까라는 맥락이다. 이쯤에서, 두번째이자 친숙한 추정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가족 드라마 안에 여성이라는 친근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본편의 부부 배역이 <밥>에서 부부로 나왔던 배우들이 재기용되었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간에 일종의 후일담이자 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밥>의 무료했던 부부관계에서 위기를 넘어 종결된 것으로 처리된 부부가 실은 순종의 시간을 결국 견디지 못하고, 남편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대화와 욕망이라는 정신적-육체적(?) 외도로 탈출하고 아내는 뜻밖의 유산이라는 고통을 감내한 이후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들이 각기 다른 양상 안에서 체념, 이탈이라는 정착지로 여행했던 것처럼, 본편의 주인공 아내는 순종으로서의 현상유지적인 자리가 아니라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이탈을 감행했다고 진단할 수도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추정은 각기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가족 내 시아버지라는 특이한 위치를 고려한 것이 첫 번째 추정의 특이성이라면 두 번째는 단지 여성 영화의 여정이 조금 더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둘은 서로 길항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일까. 여기서 본편에 접근할 때 가장 당혹스럽게 다가오는 인물로서 전전 세대로서의 시아버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전작 3편에서 아버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고, 오직 어머니의 순종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마저도, 감독의 세계 안에서 어머니의 자리는 주체적이라는 흔한 캐릭터성을 부여받지도 못하고 생존이라는 순종성 안에서만 가라앉아있다. 그러므로, 전전 세대 즉 전쟁 책임 세대에 대해서 나루세 미키오는 거의 회피한다. 물론, 50년대 초중반의 영화라는 시간을 감안하자면, 20대에서 30대까지의 인물들 역시 완전히 전쟁 책임에 대해 면죄부가 발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나루세 미키오는 동료였던 오즈 야스지로가 그러했듯이 전쟁 채무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항변이나 후배들 오시마 나기사, 이마무라 쇼헤이의 직간접적인 대응과 비교할 때 무성 영화 세대의 함구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본편 안에서 시아버지의 자리는 이같은 전쟁 채무 등의 사회적인 시각을 거부한 채 오직 며느리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다. 여기서 질문은 왜 시아버지는 며느리에 집착하는가에 있다. 난감하게도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단서도 남겨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부인, 딸, 아들이라는 친족 혈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며느리의 매 순간의 기분과 상처에 대해서 가족 내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된다. 본편이 수미쌍관으로 시아버지-며느리의 산책과 대화로 구성된 것은 차라리 노골적인 기법이자 과시라고 볼 수 있겠다. 농담같은 외부적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늙은 아내는 잠자리에서 코를 심하게 골아서 성적 관계는 물론이고 독서도 방해가 될 정도이며, 딸은 수시로 친정인 자신의 집으로 남편과의 불화를 이유로 시끄럽고 귀찮은 손자들을 데리고 들어오며, 아들은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회사 동료를 통해 다른 여성들을(실질적으로 3명) 만나는 것으로 설정됨으로서 시아버지는 그들 중 누구와도 성적인 것은 물론, 진실한 토로의 대상을 만날 수 없다. 이쯤되면 본편은 여성-며느리의 영화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아버지-남성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추정에 도달하게 된다. 아버지-며느리, 두 사람 사이의 동질감을 통해서 여성 영화에서 인생 영화로의 변경선을 본편의 뼈대로 발견할 수도 있겠다. 이제까지 여성 1인으로 한정되어있었던 감독의 세계가 2인의 자리, 남성과 여성으로 인적 확대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증한다는 것은 시아버지-며느리 양자 모두에게 극의 무게가 거의 동일하게 실려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 정말 시아버지는 버려졌는가? 아니 왜 버려져야만 하는가? 단순한 응답, 즉 가정과 사회 내의 위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시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겠지만, 며느리는 결별 이후 이혼녀의 삶을 살게된다. 이같은 겉표면 외에 두 사람은 어쩌면 남은 삶에서 더 이상 진실한 이해와 배려의 상대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앙상하게 마른 나무숲길 이후에 뒷모습으로 처리된 엔딩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버려졌다기보다 어쩌면 일종의 위험한 동거에의 정리를 행했다고 믿고싶어진다. 재론할 필요도 없겠지만, 여성 영화로서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안에서 영화는 줄곧 주인공 여성에만 주목하게되고, 나머지 그녀를 둘러싼 탐욕스런 혹은 무기력한 남성들은 분리시켰다. 이같은 이분법에서 갑자기 남편이나 여타의 남성이 아닌 전전 세대의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감싸안을 때 유사하면서 정반대의 구조인 오즈 야스지로의 1953년작 <동경 이야기>의 얼개와 비견하게 된다. 동일한 여배우 하라 세츠코가 두 명의 며느리를 연기하면서 전자 <동경 이야기>에서는 재혼을 거부하고, 후자인 본편에서는 이혼을 결정한다. 두 작품 사이에서 친자식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극히 소홀하거나 박대하는데, 둘 다 여기에 전쟁 책임 세대론이라는 사회적인 시선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다만, 당신은 지금 제대로 살고있습니까?라는 인생론의 주체들이 항변하는 목소리만 남겨져있다. 같은 맥락에서 왜 남편이나 다른 남성이 아닌 시아버지이어야만 하는지 영화는 어떤 단서도 남겨놓지 않았다. 이것은 다만 설정이고, 성적 긴장감이든 진정한 삶의 동반자이든간에 본편은 두 사람 사이의 배려와 이해야말로 50년대를 살아갈 수 있는 무기이며, 실상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얼굴을 닮은 가면을 쓰는 그 순간 둘이 하나의 사람임을 반증하기도 한다. 추가하자면, 한송이 해바리기와 두 마리의 바다 가재가 한 편에 놓여있다면 엔딩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제각각, 연인과 가족으로 양분되는 것 역시 같은 항목에 놓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엔딩이 그렇게까지 믿음직스럽거나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 두 사람의 산팩에서 시아버지가 젊은 연인을 보면서 자신의 아들-며느리를 상상했을 수도 있고, 며느리가 3명의 단란한 가족의 모습에서 자신과 시아버지와 그와의 아들을 떠올렸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것이 억측이라고 타당하게 받아들인 이후에 남겨진 것은 결국 이 글의 첫 머리에 진술했던 두 추정이 길항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갈 길을 가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영화의 의지가 보인다. 만일 그것이 50년대를 살아간 전전 세대 남성과 여성 영화의 첫번째 만남이라면 나는 이 이후의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들의 선택을 좀 더 지켜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거의 <동경 이야기>의 정반대의 자리에서 동일한 언어를 진술하는 것을 채택한 나루세 미키오가 본편에서 체념의 순간에 누군가를 동반시켰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동반이 체념을 넘어서는 순간이 올 지에 대해서는 아직 남겨진 영화들이 있다.  아버지-산 山이 며느리-소리를 흡수하는지, 아니면 내뱉는지에 대해서도 또한 마찬가지다. <산의 소리>는 시아버지-며느리 사이의 기이한 긴장과 관계로부터 출발하여 여성의 체념을 지켜보는 동반자로서 전전 세대의 노년 남성을 배치함으로서 완성된 가련한 가면극이다.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보내기 인쇄

나루세 미키오 1 - 밥//긴자 화장품  나루세 미키오 18 / 冥福  2014. 2. 2. 18:28 http://blog.naver.com/cutsong/130184819485 전용뷰어 보기 나는 이제까지 그를 9번 만날 수 있었다.  나루세 미키오는 1905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89 편의 과작을 영화사에 상재했지만, 이번 여정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것은 겨우 9편 뿐이다.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오시마 나기사를 지나서 여기에 도착했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넷상에서 잠시 인연을 맺었던 분께서 언젠가 "아직 나루세 미키오를 모르시다니"라고 건넸던 말이 정확하다. 확실히 나는 그 때(아마도 감독의 작품 중 한 편이 상영되었을 무렵) 나루세 미키오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아직 미조구치 겐지를 후일로 미루면서 만나지 않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아마도 어떤 선입견이 나루세 미키오를 오즈 야스지로의 환영 안에서 나를 머물게 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오즈 야스지로의 유성 영화 전편과 몇몇의 무성영화를 포함 34편을 만나고서도 나는 그 중 한편에 대해서도 공부가 부족하여 정필의 감상문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에 대해서 언급은 할 수 있을지라도 그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에 반해 구로사와 아키라의 전작 30편과 이마무라 쇼헤이 17편, 오시마 나기사 20편은 감상 단평을 기록했다. 이들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라는 예술 장르와 기법에 대해 무지한 이로서 아직 오즈 야스지로를 두려워하고 이로 인해서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막연한 지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중 현재까지 만난 유일한 작품은 <번개> 뿐이다. 2010년에 작고한 여배우이자 나루세 미키오의 얼굴 중 하나인 타카미네 히데코의 주연작 중 한편인데, 나루세 미키오에 전후 일본에서 응시하는 가족, 여성에 대한 냉혹한 관념이 직업 등을 통해 드러난다. 그의 영화들 중, 아내의 영화 3부작, 여성의 영화라고 칭해지는 세간의 평가에서 주의할 점은 단순히 아내, 여성이라는 글자를 독자의 고정된 단어 사전에서 주관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전후 일본 사회 안에서 왜 나루세 미키오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어떤 측면을 주목했는가에 있다. 즉, 여성의 주체성, 사회적 발언권, 여전사 등등의 관습화되고 선정적인 지류에서가 아니라 지금부터 만난 50년대 이후의 나루세 미키오의 초기 작품에서 여성은 체념의 복귀 안에 머물러있다. 그것조차 여성에 대한 하나의 애정이며,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조명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전쟁 전후의 구로사와 아키라의 두 작품 <가장 아름답게>와 <우리청춘 후회없다>의 시대적 여성들와 더불어 후배인 이마무라 쇼헤이의 강인한 여성들과 비견하자면 그의 여성은 남루함으로 어떤 증언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1951년에서 1967년까지 이어지는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여정에서 이같은 선입관은 얼마나 흩어질 수 있을까. 1. 밥 めし (1951) : 복귀에는 쓰라린 웃음이 필요하다. 집 나간 노라의 신화나 급진 페미니즘을 기대할 시기로서 1951년의 일본은 적합하지 않다. 본편의 뼈대인 무료함에 가출해버린 부인의 귀가 여정에서 과잉의 해석을 자제하라는 뜻이다. 그 반대편에서 가출한 부인이 왜 집으로 돌아와야하는지에 대해 전후 사회적 동향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것은 바다 건너 60년 후 관객은 당대 일본의 서민층 부부의 삶을 문화적으로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독해의 한계선 이후에 본편에 남는 여진은 무엇인가? 그것 역시도 한 부인의 귀향기이지만, 그것은 초반부터 세밀하게 게획되어있다. 한편으로는 소소한 웃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무방비의 세태 앞에서 주인공 유부녀 미치요는 제한된다. 주인공 미치요를 연기하는 하라 세츠코의 디제시스 밖 나레이션으로 주 무대인 오사카의 주거지 풍경을 낭송할 때 그녀의 음성에서 어떤 정서를 감응할 것인지는 이후 그녀의 삶의 목소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흔한 슬랙스틱 코미디로서 이웃집의 어린 소년이 등교길에 넘어지는 장면이 오프닝과 후반부에 2회 등장하는 것도 역시 동일한 맥락, 즉 지금부터 주인공 미치요의 일상은 잠깐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복선에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전술했듯이 미치요의 재기와 귀가는 마치 얼굴도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 단역 소년이 무조건 학교를 가야하는 것처럼 그저 지금의 일상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최상의 일상이라는 라이프니츠적인 세계관에 잇닿아있다. 문제는 미치요를 돌아오게하는 계기들의 사회적 여건과 문화상의 초라한 생략에 있다기보다 그녀가 발견하는 단발적인 사건들이 그녀를 심경적으로 피로와 체념속으로 밀어넣는 과정에 있다. 부부 사이에 아기가 없다는 것, 도쿄를 떠나 오사카에서 거주하게 된 직장 문제로의 이주, 갑자기 방문하여 미치요의 권태로운 부부 관계의 균열에 도화선이 된 남편 조카녀의 방문, 주인공 미치요의 친정 방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안정된 생활에의 침해나 유혹 등의 작은 사건들이 서사의 뼈대를 이루면서도 극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윤리에서 발견된다. 위에서 나는 본편이 사회적 여건을 깊게 점검하지 않다고 썼지만, 긴 구직 행렬이나 가난한 미망인의 삶, 주식 투자에의 거절과 초대형 카바레의 쇼 등의 시퀀스는 극의 다른 요소들이 그러하듯이 눈에 뜨지 읺게 조용히 부부 두 사람이 모두 소위 '착한 사람'임을 인증한다. 즉, 주인공 미치요는 물론이고 그녀의 남편 하쓰노스케가 모두 조용히 재결합 아닌 재결합을 할 수 있는 근본 이유는 그들이 각기 주변인의 성적 혹은 투기적 유혹을 뿌리치고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기본 품성에 있다. 관객이 그들 부부의 너무도 건실한 기본 품성을 문제삼을 수 있으려면 그들 주위의 타인들, 조카녀인 사토코를 비롯한 술집 여주인, 사촌 가즈오 등에게 반감을 가지도록 조정해야하는데, 영화는 이 지점에서 상당히 일방적으로 인물들을 구린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방성을 주입함으로서 수습해버린다. 사토코는 주인공 미치요의 남편의 친조카녀도 아니었고, (그녀가 아버지의 일장 훈계가 시작될 무렵 하품을 하는 숏은 영화 내에서 작은 경악으로 작용한다.) 의지할만한 신사처럼 보이던 미치요의 사촌 가즈오는 미치요가 아니라 젊은 사토코와 염문을 은폐하였으며 건너편 술집 여주인이나 미치요의 친구 등은 미치요가 없어 남편 혼자 지키는 집을 무작정 방문한다. 즉, 이것은 일종의 소거된 귀납법으로서의 인물 내몰기에 다름 아니다. 가출 아닌 가출을 했지만, 미치요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제시되지 않았고 주변 상황은 남편을 여전히 선인으로 그려놓음으로서 그녀의 작은 선택이 무모한 모험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마치 보상이라도 되는듯이, 남편은 조금 더 좋은 직장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누군가는 엔딩의 미치요의 나레이션에서 몹시도 답답한 훈계를 들었을 수도 있다. 위 장면에서 후반부의 미치요는 이미 거의 항복 상태에 가깝다. 그녀의 머리 윗부분과 철로의 위치가 겹치면서 기차가 통과하는 장면은 이에 대한 장면화 기법이다. 결말부에 부부가 재회하는 길에 '영차영차' 하며 꼬마들이 힘내어 행진을 하는 장면 역시 동일한 의미의 응원이 된다. 결국 집 나간 노라는 파랑새는 집에 있다라는 진리를 깨우치고 돌아오는 것처럼 내몰리지만, 파랑새=남편이라고 끈질기게 설득하는 남편의 시퀀스들에 그다지 신뢰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실상 주인공 미치요의 선택지가 너무나도 초라하고 볼품없이 하강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경제적 자립이나 이혼 후 재혼 등의 가능성 자체가 부여되지 않았다.  즉, 그녀는 세상에 여전히 혼자 뿐이고, 남편은 결국 기차 안에서도 졸음에 빠진다. 1950년대 초반의 일본 사회라는 배경을 버리고 그녀의 인생만으로 한정한다면, 부부관계를 넘어서서 지금 자신의 긍정하는 삶에 대한 조용한 침묵과 단기적인 방황이 본편을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교리문답이지만, 나는 그것이 여전히 부정교합된 치아처럼 부담스럽다. 모든 영화는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지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돌아옴'의 과정이 너무도 순박한 것은 아닌지, 그것에 전쟁 전후의 남성의 부진함이 겹쳐져있지 않은지 의문이다. 밥은 여전히 만들어져야 하지만, 남편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영화는 정확히 기재하기를 거부한다.  <밥>은 집 안밖 어디서도 진정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도록 한정된 여성의 가출극이며 여전히 건실한 남성과 도덕적인 가정 안에서 현상을 유지하도록 압박하는 긍정의 가정 드라마다.   2. 긴자 화장품 銀座化粧 (1951) :  그녀에게는 시간이 없다. 만일 심심했다는 표현이 허락된다면 본편이 주인공 유키코를 대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굳이 침착함, 현명함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심심하다라는 성격 규정보다 정적인 분위기로 호명한 이유는 전후 클럽 바에서 일하는 그녀의 삶이 작은 들뜸과 불복의 순간이 담배연기처럼 흩어지는 허무함에서 찾을 수 있다. 본편에서도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는 큰 사건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흔적으로 덮여있고, 다시 한번 체념이라는 단어를 무의미하게 반복적으로 사용해야할 정도로 모질게 그녀를 내버려둔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가혹한 자연주의 하에서 희생된 유럽 근대 문단의 여성들과는 달리 감독의 여성들은 적어도 그들의 생계가 어느 정도 보장되거나(주부), 직업여성으로 일을 한다는 지점에서 갈라진다. 이같은 맥락에서 그녀들의 안정 혹은 회복의 염원들은 단순하게도 잊어버렸던 사랑의 시간에 대한 갈구일 수도 있겠지만, 꺼꾸로 보자면 당대가 어떻게 그녀들을 조용히 순종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보고서일 수도 있다. 전작 <밥>에 비견하여 본편이 오프닝 이후 줄곧 사회적 피폐함을 노정함에 있어 더 큰 함량을 추가함으로서 그녀들 뿐 아니라 주변 누구도 시대적 공기 안에서 자유스럽지 못했다는 시효적인 면죄부를 발부하고 있다. 물론, 어느 시대나 이같은 하류의 흐름에서 벗어나 별과 시를 말하거나 착취를 일삼는 부류는 있기 마련이고, 그들이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들에게 잠시의 환희와 강탈을 부여하거나 시도하는 것들이 결국 상처로 귀결된다. 본편의 겉면을 담당하는 주인공 여성 유키코 위에 다수 서민의 삶을 동질화시킬 것인지는 판단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말부에서 크레인에 걸린 철강 구조물에 위험하게 몸을 내맡긴 건설 공장의 자료 화면은 이에 대한 반증이 된다.   이에 덧붙여 오프닝과 엔딩에 덧붙여진 주인공 유키코의 아들인 소년 하루오가 어른에게 묻는 "지금 몇 시에요?"라는 질문은 그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로 처리됨으로서 아무도 당대의 현실을 진단하거나 책임질 수 없다는 사회적 회피를 의도한다. 이는 차이밍량의 2001년작 <지금 거기는 몇 시인가?>에서 노점 시계상을 하는 이강생이 파리로 여행을 간 여인을 생각하며 보이는 시계마다 7시간의 시간차를 조정해버림으로서 하나의 시간 안에 두 사람을 묶어놓으려했던 기법과는 정반대편에서 그들 중 누구도 시간을 말할 수 없는 시대의 진공을 지시하는 수미쌍관의 관습형이기도 하다.   전작 <밥>의 남성들보다 더욱 더 아랫길로 치달아버린 본편의 남자들에 대해서 구술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았던 빈약한 남성들(?)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튼 주인공 유키코에게 신세를 지닌 유부남을 비롯하여, 그녀를 성적으로 매수하려했던 공장 사장, 무전음주한 이후 다시 한번 사기술로 유키코를 속이는 중년 남자의 면면들은 무기력과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광주리에 담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유키코의 주변을 불모화시키는 생의 질곡으로 치환함이 적절하다.   정작 좀 더 심한 상흔을 남기는 의미심장한 장치, 즉 일종의 희망고문이 별도로 후반부에 덧붙여져있음은 당황스럽다. 마치 전작 <밥>의 주인공이 의지하고픈 남성이 주인공보다 더 젊은 여성과 연분을 맺는 것처럼 대사로 얼버무려진 것처럼 이번에도 거의 동일한 우연으로 주인공 유키코는 자신이 일하는 클럽 바의 동생이라 칭하는 젊은 여성에게 잠시나마 연정을 품었던 극 중 거의 유일하게 진정성이 보이는 믿을만한 남성을 사실상 빼앗긴다.   두 편의 차이라면 전작 <밥>의 젊은 여성이 천방지축의 오만불손이 돋보임으로서 더욱 난감했다면 본편의 동생인 교코는 이같은 흠이 전혀 없이 우연하게 남성과 하루를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일종의 쟁취를 하고야만다. 하지만, 실상은 유키코의 아들 하루오의 실종 사건으로 인해 위와 같은 틈새가 벌어졌다는 것을 상기하자면, 처음부터 영화는 전작 <밥>의 미치요가 허탈한 웃음을 보였듯이 본편의 미치요 역시 담배로 그것을 대신한 것이라 하겠다. 다소 악랄하게도 두 편은 거의 동일한 프레임 안에 두 여인을 전경과 후경으로 놓음으로서 이탈불가의 고통을 이미지화한다.   마치 영화는 그녀들(미치요와 유키코)을 여기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으니, 그것을 긍정함으로서 순종하라고 강요하는데, 전편 <밥>이 미치요의 나레이션으로 종결되듯이, 본편은 "봄이 왔다..."등의 모순적인 문장으로 끝맺는다. 물론, 여기서 '봄'이란 다시 계절이 시작되었을 뿐이고, 그녀들은 그저 그 속에서 순환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변화된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고, 시간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고 듣지도 못하는 것처럼, 삶은 가혹하게 지속된다.     <긴자 화장품>은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 속에 던져진 여인의 생을 지목하면서 자신의 이탈의 욕망이 결코 실현될 수 없음을 들을 수 없는 시간 안에 포개버린 여인의 회전문 사연극이다

[쵸이스]

네이버 블로그-우울한 컷 cut과 유쾌한 송 song 에서 펌 http://blog.naver.com/cutsong

[쵸이스]

시거 장면 고두심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