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p 상승
주식시장에는 밤이 있어도 마음에는 밤이 없다.
오후 3시 30분, 정규장이 문을 닫으면 숫자들의 소란도 함께 끝나는 듯하다. 그러나 3시 40분부터 열리는 애프터마켓은
마치 무대 뒤편처럼 조용히 또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거래량은 많지 않고, 대개는 잔잔한 호수처럼 주가도 큰 물결
없이 저녁 8시를 향해 흘러간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반도체 종목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미국 다우지수도, 나스닥도, S&P500
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선물시장인 E-mini S&P와 E-mini 나스닥, E-mini 다우 역시 고요했다. 시장 전체는 평온한데
반도체만 꿈틀거리는 모습이 이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HTS 뉴스 창을 열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올라온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적으로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향후 약 300조 원 규모의 투자가 예상되고, 알파벳도 AI 인프라 확충에 180조 원에 이르는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한 줄의 뉴스는 곧 반도체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AI가 커질수록 반도체는
더 많이 필요해지고, 시장은 그 미래를 누구보다 먼저 가격에 담아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정규장이 끝나기 전까지 반도체 주식을 팔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애프터마켓에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이라도 팔자." 결국 서둘러 매도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팔고 나니 이번에는 또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이 정도 뉴스라면 내일 아침에는 틀림없이 갭 상승이 나오겠지.'
'Gap 상승.'
어제의 종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서 오늘의 장이 시작되는 현상. 투자자에게는 가장 달콤하면서도 가장 아쉬운 순간이다.
이미 팔아버린 사람에게는 후회이고,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축복이다.
나는 결국 다시 매수 버튼을 눌렀다. 조금 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다. 머리는 미래를 계산하고 있었지만, 손가락은 조급함
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자 언제나 그렇듯 내 안의 청개구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래? 네가 비싸게 샀단 말이지?'
주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산 가격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희망으로 가득했던 차트가 금세 실망
의 그림을 그려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주식시장에서 가장 강한 세력은 외국인도, 기관도 아니다. 내 마음속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팔면 오르고,
내가 사면 내린다. 그 녀석은 언제나 내 기대의 반대편에서 개골개골 웃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쉽게 죽지 않는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시장은 내일 아침을 향해 달리고 있다. AI 시대는 이제 막 문을 열었고, 반도체는 그 문을 여는 열쇠
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일 아침 시초가는 정말 하늘 높이 뛰어오를 것이다. 오늘의 불안은 하룻밤 사이에 기쁨으로 바뀔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주식은 숫자를 사고파는 일이 아니라, 희망과 두려움을 사고파는 일인지도 모른다. 차트에는 가격만 그려지지만, 투자자
의 마음속에는 탐욕과 후회, 기대와 불안이 쉼 없이 오르내린다.
나는 내일 아침도 어김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시초가가 열리는 그 짧은 순간을 숨죽여 바라보며 또 하나의 'Gap 상승'
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 안의 청개구리가 또다시 개골개골 웃음을 터뜨린다 해도 괜찮다. 그 녀석과 함께 울고 웃는 것까지가 투자라는
긴 여행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Gap 상승'이란 단지 주가가 뛰어오르는 현상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불안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 생기는
마음의 간격, 그 간격을 건너려는 인간의 기대가 만들어 낸 이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