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이 한국의 ‘통일법’에 주목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게 아니라 ‘만 나이 통일법’이다. “모든 한국인이 최소 한 살 더 젊어진다.”(타임) “한국에선 만 14세인 학급 친구들이 만 13세인 친구에게 형이라 부르라고 했다.”(월스트리트저널) “가수 싸이는 만 나이로 45세, 연 나이로 46세, 한국 나이로는 47세다.”(BBC) 조롱까진 아니어도 그들의 눈에 신기한 건 확실한 모양이다.
차제에 한국가요사도 수정작업에 들어가야 할까. ‘보기만 하여도 울렁 생각만 하여도 울렁’ 이 노래는 이미자(1941년생)의 첫 번째 발표곡(1959년)으로 지금까지는 열아홉 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걸로 기록됐다. 이제라도 열여덟 살 데뷔로 바로잡아야 하나. 하지만 그런 수고는 필요 없을 듯하다. 노래 속의 열아홉도 만 나이로는 열여덟 살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에 노래 가사 속 나이까지 손을 본다면 나훈아의 ‘18세 순이’도 ‘17세 순이’가 될 판이다.
연예계는 유난히 나이에 민감하다. 고두심과 이계인은 MBC 5기(1972년) 공채 탤런트다. 두 사람이 예능에 출연하면 나이를 소재로 자잘한 웃음을 선사한다. 최근 ‘회장님네 사람들’(tvN 스토리)에 나와서도 옥신각신했다. 급기야 점잖은 고두심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야 민증 까.” 한 살 위인 고 씨를 죽어도 누나라고 못 부르겠다 버티는 이 씨가 일부 시청자의 눈엔 마냥 ‘철없는 노인’으로 보였으리라. 배경음악으로 노래 한 소절을 긴급 공수한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노래마을에서도 나이는 부동의 관심사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아모르 파티’)라고 외치던 김연자가 요즘은 세월과 당당히 경쟁한다. ‘세월아 샘을 내지 마 (중략) 그전엔 몰랐지만 앞으로 사는 동안 너를 의식하지 않을래’(‘블링블링’) 나이를 의식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젊으나 늙으나 큰 차이가 없다. ‘나 이제 16 너 20살이야 아이 야 야야 쇼킹 쇼킹’(주주클럽 ‘열여섯 스물’) 그러나 그 정도 나이에 충격받긴 조금 이른 것 같다. 차라리 이런 다짐이 대견해 보인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김수철 ‘나도야 간다’)
울면서 보내든 웃으며 보내든 시간은 가고 나이는 든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김광석 ‘서른 즈음에’) 그래서 시인은 예단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최승자 시 ‘30세’)
인생의 숲에서 가장 슬픈 새는 ‘어느새’다. ‘어느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 (중략) 무뎌진 그런 사람이 나는 되어만 가네’(장필순 ‘어느새’) 나는 잘 늙어가고 있는가. 자가 진단법이 하나 있다. 가슴속에 억울한 게 많으면 잘못 나이 들어가는 것이고 고마운 게 많으면 잘 늙어가는 것이다. ‘이 나이 되어서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조항조 ‘고맙소’)
나이가 벼슬이냐는 질책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나이는 자산이다. 자산과 재산은 다르다. 자산은 부채와 자본을 합한 용어다. 살면서 빚진 것도 모두 나의 자산이 된다. 이제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마음먹어야 하나. 다음 노래 속에 요약본이 있다. ‘나이 든다는 건 또 다른 나에게 대답하라는 것 숨 고르고 다 내려놓고 더 크게 웃으며 더 많이 더 나를 사랑하는 것’(조항조 ‘나이가 든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