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는 시 / 최규환
혼자 울면 시가 찾아오는가
내장이 쏟아진 길고양이 주검 앞에서
눈물 쏟아낸다고 시가 찾아오는가
옷깃 여미는 날
갈대밭에 선 바람맞은 여인의 우수를 본다고
시가 찾아오는가
우는 것은 죄다 비극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이 많은 거여서
내게 찾아오는 시는 어쩌면
오지 않을 것을 향한 속정에서였던 것
헤어진 사람의 두태를 닮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울컥이는 심장
그런 순간을 들켜버린 오후에
불현듯 새가 날고
초목이 시퍼런 낯짝으로 나를 볼 때
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골목에 들어 반짝이는 돌이 내 눈에만 보여
슬몃 섬광처럼 눈빛 하나 던져주는 것
눈 감고 귀를 닫아야 찾아오는
희소병 같은 것이라고
- 시집 『동백사설』 (상상인, 2022.07)
* 최규환 시인
1969년 서울 출생
1993년 『시세계』 등단
시집 『설명할 수 없는 문장들』, 『동백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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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고.
물론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시가 다리나 바퀴가 있어서 자신의 의지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에게 '턱' 안기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도 왜 ‘시가 찾아온다’고 하는 것일까요.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갑자기 시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어떤 사물, 사람, 환경을 보거나 또는 어떤 생각에 집중할 때
‘시의 실마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생각이 지나가 버리고 나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습니다.
마치 잠시 시가 나에게 찾아왔다가 반겨주지 않자 되돌아가듯이.
며칠 전인가요 병원에 가기 위해서 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눈을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눈이 세상을 묻고(덮고) 있구나’라고요.
이때 ‘묻다’라는 단어는 중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질문하다’와 ‘덮다’ 두 가지 의미로. 이렇게 메모를 했습니다.
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메모를 했습니다.
‘눈이 묻는다 하루를 묻는다 하루를 다 묻는다 / 괜찮을까 괜찮을까 / 걱정을 묻는다 다 묻는다’
이 문장은 내리는 눈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실마리일 뿐이죠.
이 실마리로 시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실마리로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바램은 좋은 시가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화자는 말합니다.
‘혼자 울면 시가 찾아오는가’라고요. ‘눈물을 쏟아낸다고 시가 찾아오는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혼자 울 때 시가 찾아올까요. 눈물을 쏟아낸다고 시가 찾아올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화자가 말하는 시를 만나는 실마리는 이것입니다.
‘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 골목에 들어 반짝이는 돌이 내 눈에만 보여 /
슬몃 섬광처럼 눈빛 하나 던져주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저 섬광은 어떻게 시작하는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시선’입니다.
주변의 사물을 대충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주하려는 시선'.
어떤 사물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으려는 시선입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진심으로 사물을 만나려고 할때, 문득문득 슬몃 섬광처럼 풍경이 사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시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시인은 '관찰자'이자 '통역사'
그러기에 시인은 훌륭한 '관찰자'여야만 합니다.
동시에 그 관찰한 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통역사'이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 쓰기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소통도 어려운데 사물과도 소통해야 하니까요.
아! 이런 얘기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시인은 어쩌면,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젬병이지만, 사물과의 대화에만 익숙한… 종족.
저는 둘 다, 잘하고 싶습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