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인 동일명조는 예나 지금이나 출생 년월일시(즉 四柱)를 기반으로 한 술수학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그러므로 풍수나 육임이나 단역 상법 등도 각자의 효율성을 가지고 발달하였다. 거꾸로 말해서 출생년월일시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기타 술수는 발달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추가한 부분*********
글쓴이의 글 내용이 상당부분 동일명조 동일운명에 대한 비판과 비난조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그가 얼마나 사주학에 이해가 부족한 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체 四柱가 뭔가?
[四柱]라는 말자체가 이미 年月日時의 干支기둥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이 자체로 시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국내 아니 세계 각국에 동일시간대 동일사주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공간적 차이를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 뿐이다. 사주라고 할 때에는 이미 동일시간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묵시적 약속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 왜? 동일명조 동일운명을 들어 사주명리학을 비난하는 등 뒷다리를 긁고 있는가?
즉 현재의 사주학은 시간만을 반영하는 술수이다. 원래 공간까지 반영했던 七政四餘術에서 半分내지 극히 일부분만이 편취하여 만들어진 간편한 술수이다. 시간 공간을 모두 반영한다면 지금보다야 상당히 동일명조 동일운명에 대한 비난 비판을 피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등술수학인 칠정사여술은 당송대에 융성하였다가(진정한 星平合參) 원명대에 서서히 내지 극히 쇠락하였고 청대에는 거의 실전하다시피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선현들이 만들어놓은 훌륭한 학문(술수)을 전승하기를 게을리했던 후학의 잘못이다.
현재 명리학인이 해야 할 일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이라면 시간*공간이라는 두개의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시공간 두개의 값을 인간에 반영하는 사주명리학이 창안/발굴된다면 동일운명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범위는 상당히 좁아지게 된다. 여기에 이르러 [天地人 三元에 의한 命理哲學과 命理術數]로서 진정한 완전한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금의 명리학자라면 지금이라도 시공간을 모두 반영하는 사주명리학을 발굴하거나 창안할 의무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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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는 사주명리학자는 오직! 출생년월일시!라는 데이타만을 근거로 한 사람의 운명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고집은 버렸으면 한다. 이 부분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사주명리학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2. 易學과 命(理)學은 전혀 별개이다.
과거 저명한 고서를 봐도 命術家, 星命家, 五行家, 子平家라 칭하고 命術, 星命術, 子平術이라 하였지 易學이라 한 적이 없다. 이 점은 후대로 오면서 誤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命(理)學의 아픔의 과거가 있는 것이다.
지금 이글을 보는 술객들부터 易을 중심으로 卦象으로 점을 치거나 推命하지 않는 한 역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
[이제부터라도 당당히 命(理)學이라고 말하자.]
3. 陰陽五行家, 星命家는 儒家와 더불어 당당한 학파였다.
위글(게시글12208)을 쓴 사람은 다시 史書를 살펴보기 바란다. 漢代에도 儒家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陰陽家와 五行家 選擇家 등 상당수의 술수류파가 존재했었다.
또한 글쓴 이의 내용전개는 동양학중 [사주학 vs 비사주학분야]로 설정하여 비판하고 있다. 학술적인 담론 등 어느 경우에도 이런 불합리한 설정은 없다.
4. 국내에서 命理學이 언제 제대로 연구된 적이 있는가?
조선 500년 내내 성리학이 득세하였다. 잘 알다시피 사문난적이니 하여 조금만 이론주장에 특이점만 보여도 조선 지식사회에서 얼굴을 내밀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나마 불교나 도교와 관련하여 명리학이 숨쉴 곳이 있었다 하나 조선내내 억불이 주된 정책이었고 궁내에 있었던 제천행사나 각종 기원을 하였던 소격서조차 혁파 운운하며 내내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조선시대 그런 사회분위기에도 과거시험중 잡과 과목에 음양과가 있었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명과학교수가 있어서 관인교육기관에서 명술을 강의하였다는 점이다.
현재상황은 어떤가.
국내에 명리학 관련한 제도권 교육기관은 미미한 실정이다. 그런데 조선500년과 일제강점기와 이후 먹고 살기위해 바빳던 50여년간에 걸쳐 철저히 외면당하고 폄하당하였던 명리학(술수학포함)에 대하여 새로이 조명받고 있다. 이미 원광대 경기대 공주대에 명리학(술수학포함)에 대한 석사나 박사논문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이제 서서히 제도권에서 명리학(술수학포함)이 연구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본인은 원광대 위 관련대학원을 졸업하였음)
그런데 이제 막 태어나고 있는 제도권 햇병아리학술수준을 놓고 조선500년주류철학, 해방이후 50여년의 주류기득권을 가진 동양철학계와 비교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글쓴 이가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명리학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사주학은 그저 기술학(공학적 측면)에만 치우쳤지 철학적 검토가 제대로 된 적이 없었다. 또한 연원이나 역사에 대한 고찰(인문학적 고찰)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인문학(내지 철학)과 공학의 특성이 차이가 있는 것을 도외시하고. 단지 21세기적 과학적 통계적 현상적인 면만을 가지고 명리학을 비판하는 태도라는 것은 [命理學]이라는 의미심장한 학술명칭에 대하여 너무 가벼운 태도가 아닌가.
사주학 관련 책 한두권 읽고, 근거불문 인터넷 떠돌이 자료 살피고, 선생없이 공부하고, 전화상담 카페상담 등으로 쉽게 간명자료를 구하고, 진검승부랍시고 상하구별없이 게시판에서 맞짱뜨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무슨 제대로 된 명리학의 역사와 정신을 공부할 수 있겠는가.
[李虛中이 누군지 모른다는 (萬民英도 누군지 모를 것임) 글쓴 이의 말이 그 증거이다.]
5. 萬歲歷에 있을지 모를 오류나 잘못이 왜 명리학의 몫인가.
술수와 관련된 모든 분야가 술객의 책임인가?
의사를 예로 들자 수술을 하는데 수술용 칼이 녹슬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비록 녹이 스는 재질로 된 칼을 선택한 의사도 잘못이겠지만 당시의 금속기술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다면 금속기술을 탓할 일이다. 그렇다고 금속기술 때문에 의사가 의업을 접어야 하나?
만세력의 잘잘못은 天門家가 해결할 일이다. 천문가가 작성한 만세력을 가져다 사주를 작성하는 명리학자의 잘못이 아니란 얘기이다.
그러므로 만세력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비판과 항의는 글쓴이가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성균관대학이나 최고학부인 서울대의 천문학과 홈페이지에 올리기 바란다.
만약 글쓴이가 착각한대로 상황을 설정하여 명리학자가 이러한 책임을 떠안는다손 치자. 엄청난 천문관측기술과 천문수리학을 알아야 작성가능한 만세력을 명리학자가 손수 작성까지하면서... 나아가 한 사람의 [부귀빈천과 수요장단]을 상담해줄 정도의 지식과 지혜의 체계라면 어찌 공맹에 뒤진다고 하겠는가?
6. 글쓴이에게 부탁
글쓴 이는 그렇게 찬양해 마지 않는 각대학 철학과나 동양철학과 성균관대의 유학과 정교수들에게 아래의 내용을 묻기를 바란다.
첫댓글 천을님 글을 다시 정독했습니다. 꼬리말 잇기를 하다보니 님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를 못했군요. 제가 좀 발끈했네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