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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산지천
1950년대 산지천(조천).
1890년대 산지천(조천포)
우리나라에서는 하(河)를 쓰지 않는다.
강이나 하(河)의 지류를 수(水)라 하며,
수(水)의 지류를 천(川)이라고 표현한다.
물이 급히 흐르는 여울목을.,탄(灘),
물이 돌아흐르는 물굽이를., 회(回).
1861년 김정호 제작 <대동여지도>에는 강과 천만 표시.
강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로 두 개의 선으로 나타냈고,
천(내 川)은 개울 정도로만 보아 한 개의 선으로 나타냈다.
강의 지류인 수(水)는 배는 다닐 수 없지만
긴 물줄기로 분류하여 한 개의 선으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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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수(湧泉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다가
암석 지층 틈새 지표로 솟아나는 물.
제주도에는 많은 용천수가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해안마을들은 용천수 중심으로 형성.
용천수가 마을을 이루는 구심점 역할을 한 것.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용천수의 수나 솟아나는 물의 양은
마을 규모를 결정한 근간이 된 점이다.
즉, 용천수가 여러 군데 솟아나고,
또 솟는 물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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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용천수 분포도
1999년에 처음으로 조사한 용천수는 911개로 파악되었다.
제주도 전체 용천수를 최초로 조사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911개 용천수 중 제주시 540, 제주 동지역 142, 구 북제주 398.
서귀포시 371(동지역 168, 구 남제주 203)가 분포
서귀포시 용천수가 제주시 보다는 적게 나타난다.
제주시 용천수도 마찬가지지만, 서귀포시 용천수도
최근 중산간 지역개발과 도로 개설 등으로 수량 감소.
동시에 용천수 자체가 파괴되어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
제주도 용천수는 마을마다 희로애락의
역사가 담겨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이자
후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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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하천 분포도와 용천수는 연관이 깊다.
하천이 밀집된 '제주 & 서귀포'에 인구밀도 높고
하천이 드문 지역은 용천수도 귀하고 마을도 드물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도 중산간마을은
가뭄에 식수 및 생활용수가 딸리는 편.
하여, 물을 물팡과 물허벅으로 길어 나른다.
문두물 빨래터
문두물 좌우에 사각 물팡 2개소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용천수.,문두물
물통에서 넘쳐흐르는 물은 11자형으로 되어 있어
음용수(식수)와 생활용수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문두물은 지붕이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고 빨래터로 활용되며
용천수 용출량은 1일 2,300㎥ 평균수온 15.9℃
문두물은 예전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바위틈에서 솟구치는 용천수로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주민들의식수원이었는데 사각 물통이 만들어져
물을 길어나르는 물허벅을 쓸 수 있도록 물팡 2개소가 있다.
한라산이 빚은 살아있는 물.,용천수 문수물.
이호태우해변.,원담 & 문수물.
제주 공항근처.,이호테우 해수욕장.,문수물
한라산이 빚은 살아있는 물.,용천수
이색 피서지.,제주 용천수
제주 상귀리 용천수.,'구시물'
제주민들의 향수(鄕愁).,'엉덩' 용천수.
제주시 청풍청년회.,용천수 환경정화 활동.
제주민들의 오아시스.,용천수
법환동 용천수
제주도 하천 분포도
제주도는 해양성기후라서
육지보다 비가 많이 내린다.
관광 때 비가 많이 오면 낭패.
장마철 제주 관광이
망설여지는 이유다
한라산 하천은
백록담을 정점으로
방사상 수계를 이룬다.
제주도 지형은 백록담을 기준으로
동서 사면은 넓은 용암대지가 발달해
물길이 빈약하고 남북 사면은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하천도 발달해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2,000m에 육박하는 한라산에서
모든 개울이 시작되기에 제주 하천은
골짜기가 깊을 뿐만 아니라 절벽들도 많다.
하천 범람할 때
이런 지형에서는
폭포를 볼 수 있다.
하천 절벽은
용암 시기가 다르거나
수직절리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천마다 수많은 절벽들이 있어
폭포수를 이루는 곳도 그만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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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한라산
영실 절벽에서도
세 갈래 폭포.
그외에도 곳곳에
무명 폭포들이 짧은 시간
만들어졌다가 물이 빠지면
금세 사라지기를 반복하고있다.
상당수가 숨겨진 비경들이고,
비 오는 날만 볼 수 있는 경관.
관광자원 개발도 가능 하겠지만
사람들이 몰려들면 훼손도 불가피.
세계적인 관광자원을
무궁무진 보유한 제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한편
알려지길 원치 않는 이유다.
천미천 계곡.,(마른)폭포
제주에는 강이 없다.
'내' 혹은 ‘내창’이라
불리는 하천이 있을 뿐.
거의 모든 하천이 건천(乾川)으로
평상시 물이 없다가 폭우에 넘친다.
제주에서는 이를 ‘내 터진다’라고 표현.
제주도 곳곳에 '용천수'와 '소(沼)'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는 기준.
마을과 마을 사이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제주도에 60개 지방 2급 하천이 있다.
이 중 22개가 백록담을 기준 남쪽으로,
26개 2급하천은 북쪽으로 흐르고 있다.
대표적 하천으로
북쪽.,한천.외도천,
남쪽.,효돈천. 강정천 등.
동쪽 하천으로는
제주도 최장.,천미천,
서쪽에는 창고천이 있다.
백록담을 기준
북벽 발원 하천이
탐라계곡 한천이고,
서북벽 하천이 Y자계곡
혹은 광령계곡 외도천이다.
백록담 서쪽 외곽도 하천 발원지인데
이곳에서 남쪽으로 돌아흐르는 하천이
'산벌른내'라고도 부르는 효돈천이다.
'강정천'은 '영실계곡'에서 시작된다.
제주도에서 가장 긴.,천미천
천미천 하구.,신천리 포구
제주도 - 4대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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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내코 원앙폭포
돈내코 하류.,쇠소깍
돈내코
제주 백중날에는 닭을 잡아먹고
계곡에서 물맞이를 즐기는 풍습.
이날 물을 맞으면 모든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온다.
백중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돈내코.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얼음같이 차고 맑은 물이
항상 흐르고, 주위경관 또한 빼어나 유명한 피서지.
계곡 양편은 난대상록수림으로 덮혀있고
한란과 겨울딸기가 자생하고 있는데다가
폭포가 있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
한라산이 가장 웅장하게 보이기도 하는 돈내코에는
주차장,야영장,체력단련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강정천
옛부터 물이 많아 물강(江) 물정(汀).,강정마을.
서귀포시 최남단 마을로 깨끗함과 아름다운 곳.
이 마을 동쪽에 "강정천"은 한라산의 천연 암반수.
강정마을 구럼비
강정천 사계리해안
강정천 & 범섬
사시사철 흘러 수려한 자연환경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명소로 한여름 더위를 피해
찾아오는 피서객들로 만원을 이루는.,피서지.
제주도에서는 보기 힘든 은어 서식지,
천연기념물 제327호 원앙새가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는 강정천.
2002년부터 매년 5월 초
강정천., "올림은어 축제".
강정천은 평소 건천인
제주 일반 하천과 달리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곳.
서귀포 식수 70%를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이기도 한.,강정천.
무수천
인간사 근심을 없애준다 하여 무수천
줄줄이 놓여있는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시야에 꽉차오는 무수천을 만나게 되는데,
한라산 어승생악 물줄기가 무수내를 이룬다.
무수내는 외대천으로 흘러가면서
기암절벽과 폭포 호수를 이루는데.
해골을 닮은 해골 바위 등 기묘한
갖가지 형상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안덕계곡
제주도 계곡 중에서 가장 비경지대.
병풍 기암절벽과 평평한 암반 바닥.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멋스러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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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계곡은 먼 옛날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고
구름과 안개가 낀지 7일 만에., 큰 산들이 일어서고
암벽 사이로 굽이굽이 물이 흘러.,'치안치덕(治安治德).
안덕계곡은 군산(軍山) 북사면에서부터
월라봉(月羅峰) 서사면을 절단하여 이뤄진
깊은 계곡으로 해안하구까지 하천이 늘 흐른다.
계곡의 하천
양쪽 단애면의
구성 암석층은
서로 다르다.
동쪽 단애면
지역 지질은 단단하고
판상절리가 잘 발달한 조면암
서쪽 단애면
지질은 주상절리가 발달한
장석반정이 많은 현무암이 분포.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감탕나무, 담팔수 등 난대수림
피톤치드 수액 싱그러움이 상큼함을 더해준다.
3백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난대림은 천연기념물 제377호
지정, 보호되고 있다.
안덕계곡
상록수림지대
천연기념물 제377호
제주도 지역은 하천변일대 난대림 지대를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
식물 채취, 야생동물 포획 등 자연손상 행위 금지.
계곡 양쪽의 상록수림과 하천의 맑은 물,
군데군데 동굴 등은 선사시대., 삶의 터전.
추사 김정희 등 많은 학자들이 찾았던 곳이다.
특히, 계곡에는 희귀식물인 솔잎란, 소사나무,
지네발란, 녹나무, 육박나무, 호랑가시나무 등
희귀식물과 담팔수와 개상사화 등이 자생하며
난대림 원식생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이곳에는 3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며
양치식물이 많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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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근천(岳近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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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강정동과 법환동 일대 하천(12.14㎞).
"아끈내","소가내천(小加內川)"이라고도 부른다.
악근천은 한라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강정동과 법환동
일대를 흘러 강정천 동쪽 해안으로 유입(유역 면적 22.96㎢)
악근천
악근천 봉등이소
악근천 봉등이소 소망탑
'너 또한 바다가 되어~
제주 올레길 7 코스.
악근천 몽돌해안
악근천은 큰 내인 강정천에 비해 작지만,
큰 내에 버금간다 하여 ‘버금가는’ 또는 ‘다음’을
뜻하는 ‘아끈’을 붙여 "아끈내"가 '악근천' 한자로 표기.
악근천은 인근의 강정천만큼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흘러 1급수 어종인 은어와 천연기념물인
'원앙새 서식처' 하천으로 경관적·생태적·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바다와 만나는 하류에는 화산암 바위들이 많이 형성.
악근천은 상류에서 하류까지 맑고 차가운 물이 흘러
옛날에는 여름철 백중이나 처서에 피서를 즐겼던 장소.
현재도 여름에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
상류에 비가 오면 장관을 이루는 엉또폭포.
이곳 엉또폭포는 최근 명승지로 각광받고 있다.
..........,강정동.,엉또폭포.....................
악근천 중류 해발 200m에 위치한 엉또폭포.
악근천이 건천이므로 산간 지방에 70㎜ 이상
강수를 보일 때, 높이 50m 폭포수가 형성된다.
조면암 수직 절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폭포.
엉또폭포는 행정구역 상 해안마을 강정동에 속해 있으나
용흥동[월산동] 마을 주민의 생활권 내에 위치하고 있다.
'엉또'에서 '엉'은 바위그늘보다 작은 굴,
'또'는 입구를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따라서
'엉또'는 “작은 굴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칭하며,
마치, 굴처럼 숨어 있는 곳이란., 뜻 지명.,엉또폭포.
서귀포시 강정동[용흥동] 월산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도로 따라 900m 떨어진 악근천.
악근천이 평상시 물이 말라 있는 건천이므로
산간 지방에 70mm 이상 큰 비가 오거나 장마철이
되어야 웅장하게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폭포 밑에는 직경 20m 이상 폭호(웅덩이) 형성.
엉또 폭포 주변에는 천연 난대림이 밀생하고 있고,
정방 폭포·천지연 폭포·문섬·범섬·외돌개 등 관광 명소.
2011년 7월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 소개.
제주 올레길 7-1코스에 포함되어 탐방객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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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또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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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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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2013.09.28 거상 '김만덕'을 기리는., 산지천 축제
2012.09.01 산지천축제
19세기 말.,산지천
19세기 말.,조선시대 산지항
제주도 산지항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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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조선시대 산지항
19세기 말.,조선시대 산지항
1885년 제주 산지항
산지항 개발 전 산지포 부근
(사진으로 보는 제주 100년)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건입포(建入浦).
산지천이 바다로 유입되는 산지천 하류로 추정.
BC100 ~ 500년 제주와 육지를 잇는 포구(浦口).
1735년 제주에서 처음 항구를 건설한 김정 목사.
산지항 방파제 80간(間)와 내제(內堤)를 쌓은 것.
이후 일제강점기 산지항 항만개발 본격적으로 착수.
1926.4.28. 동아일보 -제주도 산지항(山池港)은
암초(暗礁)가 만코 수심(水深)이 천(淺)할뿐 아니라
방파(防派)할만 곳이 업슴으로 풍랑(風浪)만 심(甚)하면
선박(船舶)의 출입(出入)이 도저(到底)히 불가능(不可能)하야
지방발전(地方發展)에 막대(莫大)한 지장(支障)이 됨으로
일반(一般)은 차(此)를 유감(遺憾)으로 사(思)하던바
당국자(當局者)의 진력(盡力)으로
래칠월초순(來七月初旬)부터
삼개월(三個月)의 기간(期間)과
삼천만원(三千萬圓)의 예산(豫算)으로
일만칠천여평(一萬七千餘坪)이나 매립(埋立)하고
일백육십간(一百六十間)이나 되는 방파제(防波堤)를
축(築)하리라는데 공사(工事)는 제주면(濟州面)에서 직영(直營).
1920년 조선총독부령 제41호
서귀포항 및 성산포항 등과 함께
2등급에 해당하는 지정항으로 지정.
1926년 방파제 축조공사 시작
3년간 공사로 삼천만원 예산.
일만칠천여평을 매립하고
일백육십간 규모 방파제 축조.
또한 성산포항에 이천오만원,
서귀포항 십구만팔천원을 들여
삼개년 예정으로 축조공사 착수.
1929년 산지항 서방파제 준공.
이때부터 건입포는 산지항으로
불러지며 제주도 최대규모의 항만.
전남 제주도(全南 濟州島)는
전선(全鮮)에 무이(無二)한 대도(大島)로셔
인다물부(人多物富)하야 고래(古來)로부터
상업(商業)을 본위(本位)로 하는 일도회지(一都會地)
동도(同島)의 명문(命門)이 되는., 산지포 성산포 서귀포.
차삼항만(此三港灣)으로 말하면 원래(元來) 지리(地理)가
위험(危險)함으로 선박출입(船舶出入)이 심(甚)히 곤란(困難)
지방발전상(地方發展上) 막대(莫大)한 영향(影響)이
유(有)하던 터인대 연래(年來)로 동도인민(同島人民)은
우삼항(右三港) 수축(修築)하기를 절망(切望)하던바
영위래년도(永爲來年度)에 대(對)하야는 국고보조신청을
할터인바 차(此)를 실지조사(實地調査)하기 위(爲)하야
금번(今番)에 김토목과장(金土木課長)은 동지(同地)에
출장(出場)하엿는대 삼항(三港)의 예정계산(豫定計算)을
말하건대 산지포(山池浦) 삼천구만원(三千九萬圓)
성산포(城山浦) 이천오만원(二千五萬圓)
서귀포(西歸浦) 십구만팔천원(十九萬八千圓)
합계(合計) 팔천삼만팔천원인대
삼년간(三年間)계획(計劃)으로
공사(工事)에 착수(着手)하리라더라
(1924.06.14. 조선일보).
당시 산지항 축조공사는
단순히 내륙 연결을 용이케 한다는
의미를 넘어 그때까지 철저히 단절된
고도(孤島)에서 열린 세계로의 진출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산지항 축항공사
착수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제주도 산지포(濟州島 山池浦)에
공비 삼천만원(工費 三千萬圓)의
거액(巨額)을 들여 축항(築港)에
착수(着手)하엿다는데 지난
이십이일 상오십시(二十二日 上午十時)에
산지부두(山池埠頭)에서 성대(盛大)한
축항기공식(築港起工式)을 전남 석지사
임석하(全南 石知事 臨席下)에 거행(擧行)하엿는데
식(式)을 맛친 후(後) 연이일(連二日) 시민일동(市民一同)은
축하행렬(祝賀行列)과 소인극(素人劇)을 행(行)하야
동도 미증유(同島 未曾有)의 성황(盛況)을 일우엇는데
방파제(防波堤)의 연장(延長)이
일백육십간(一百六拾間)이라하며
공사(工事)는 본년말(本年末)까지
완성(完成)할 예정(豫定)이라더라
(1927.04.28. 동아일보).
그러나 초기 산지항
축조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산지항 기반시설 본격화 문제는 당시
제주사회의 큰 고민거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년전부터 총독부(總督府)의 보조(補助)와
낙천면비(洛川面費)로 축항(築港)공사(工事)를
시작(始作)하야 지금(只今) 완료(完了)가 되엇스나
축항(築港)으로서는 넘우도 빈약(貧弱)하야
전(前)보다 조금도 다름이 업습니다.
총독부(總督府)에서도
좀 더 보조(補助)하고
도민(島民)이 더 분발(奮發)하야
지금(只今) 축항(築港)을 아주
완전(完全)한 것으로 하는 것이
조흘 듯합니다(1931.1.28. 동아일보).
한편 제주도민들은 당시 제주도민의
최대숙원사업이었던 산지항 축항공사에 있어
전적으로 조선총독부 지원예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정부분 도민들이 부담하겠다는 자존감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식민지경제하에서 나타난
독특한 지역사회개발의 주민참여 유형으로
경제사적 측면에서 되새겨 볼만한 역사적 사실이다.
토목공사(土木工事)에는 비용(費用)이 만히 드는 것이니
총독부(總督府)의 보조(補助)도 넉넉하여야 할 것이지만
도민(島民)의 부담(負擔)을 만히 요(要)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萬一) 공사비(工事費)가 삼십륙만원(三十六萬圓)이라면
그 반액(半額)은 총독부(總督府)에서 부담(負擔)하고
나머지 반(半)의 반액(半額)은 제주면(濟州面) 부담(負擔)
또 반(半)의 반액(半額)은 도민(島民) 전체(全體)의
부담(負擔)이라야 할 것입니다.
다른 토목공사(土木工事)도
만히 잇지마는 위선급(爲先急)한 것이
이 축항(築港)공사(工事)입니다
(1931.1.28. 동아일보).
2010.07.02
2016.09.18 '산지항~ 완도' 여객선
김만덕 객주터 호쏠장
조선시대.,산지항 객주., 김만덕
산지항
제주 동문시장
2015.06.26
2017.04.18
2017.05.11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산지항에서 출토된 중국 고대화폐.
이 유물은 1928년 제주시 건입동 산지항
부두 공사 중 해안 절벽에서 우연히 발견.
청동기시대 유물에 포함되어 있던 화폐다.
출토상황과 유구 구조에
대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수전(五銖錢) 4매,
화천(貨泉) 11매,
대천오십(大泉五十) 2매,
화포(貨布) 1매 등
총 18매 화폐.
오수전은 표면에 공곽이 없고
뒷면에 무늬 없는 직경 2.5㎝ 내외.
화천은 직경 2.35㎝ 내외 네모 구멍
테두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화천' 두글자가 찍힌 것도 있다.
대천오십은 직경 2.7㎝ 내외이고,
화포는 길이 5.8㎝, 폭 2.3㎝이다.
오수전은 기원전 118년에서 주조가
시작되어 수대(隋代)까지 제작되었다.
이 화폐는
한국· 일본· 인도·
투르키스탄.,국제적 화폐.
화천·대천오십·화포는
중국 신(新 : AD8~AD25)대
제작된 동전이며 제작 연대가
대천오십은 기원 7년, 화천과 화포는
기원 14년에 생산되어 기원 40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폐지되었으며 한반도와 일본의
해안이나 그곳에서 가까운 유적에서도 주로 발견된다.
이 화폐들은 발행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유적연대 추정에서 중요한 자료다.
이 화폐가 출토된 유적연대는 기원 1세기대.
이 화폐들은 당시 중국시장 경제수단으로
유통된 화폐로서 이들이 중국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중국 문물의 파급을 의미한다.
제주도에서 출토된 이러한 유물들은
제주도와 한반도와의 교류에 더하여,
중국기점의 동방 교역로를 통해 새로운
문물이 제주도에 유입되었음을 보여 준다.
탐라국이 고대중국과 가졌던 교역의
양상을 '삼양동 유적'에서 알 수 있다.
그 교역의 중심에는
대단위 거점 마을의 형성과
발전에 따른 집단의 분화, 그 통합을
위한 위신재(威信財) 요구, 성장된 집단의
내재된 역량이 적극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동문시장 일대 구제주시 동쪽 건입동은
산지천 산지포구 사라봉을 끼고도는 마을.
일제시대 산지축항 공사를 할때 동굴 속에서
오수전을 비롯한 전한시대 화폐등이 발굴되었다.
산지포구에 교역선이 오갔던 흔적인 유물.
조선시대 산지천 '김만덕 객주집도 관문지역.
조선시대 건입동은 전통산업 경제자원이 풍성.
대패 통쇠 어분 사료공장터를 비롯하여
'단추공장 소라통졸임공장 궤장석 공장'터
흑산호 가공소,공덕동산. 구적딥. 우석목거리.
심방터, 거울공장터, 몰방애터. 포제터. 불미터,
두부공장터. 감옥터 등이 그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영주십경 2경
사봉낙조 산포조어
또한 건입동의 유산.
이러한 터전에
국립제주 박물관이
들어선 사실도 뜻깊다.
건입동은 그야말로 발 딛는 곳마다
역사 문화가 살아 숨쉬는 야외박물관.
.............산지항 출토., 동경..........................
건입동 산지항에서 출토된 탐라 형성기.,청동거울
구리에 주석, 아연 등을 섞어 만든 청동기시대 동경.
얼굴을 비추는 면은 반질반질하게 만들었고, 뒷면은
꼭지를 달거나 여러 가지 무늬 및 길상어 등을 새겨 장식.
중국에서는 4,000년전 제가 문화시기부터 거울이 등장.
한국의 선사시대 동경은 조문경과 세문경 계통의 두 가지.
조문경 계통은 부여 연화리·대전 괴정동·아산 남성리·평양·성천
세문경 계통은 영암·화순 등에서 출토되었고 조문경 뒤에 나온 것.
철기시대 이후 한나라 계통의 거울이 출토되며,
한나라 거울은 전한경·왕망경·후한경 등이 있다.
특히, 거울뒷면 기년은 유적연대 결정에 좋은 자료.
제주도 산지항에서 출토된 동경 1점은
평연경(平緣鏡) 형식의 중국 한경 파편이며,
다른 1점은 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을 모방한 방제경.
전자는 중국 제품이지만 후자는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듯 하다.
동경이 출토된 산지항 유적의 성격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국제 화폐와 거울, 일본계 동경, 한국제 동검 부속구가
한 지점에서 출토된 사실은 당시 원거리 무역의 실상을 보여 준다.
이 유물은 『삼국지』위서 동이전에
제주의 주호가 중한(中漢)과 교역하였다
고 하는 기록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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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 비석거리
화북포구.,'풍어기원' 해신제
옛 제주 해상교통의 관문.,화북포
제주도는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며,
8개 유인도와 55개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러시아, 중국, 일본, 동남아 등을 잇는 요충지.
제주도는 세계적인 휴양관광지이며
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예로부터
해양민속, 해양기술 등이 발달했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