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 등촌4복지관을 퇴사하고 인천 숭의복지관 입사하던 날,
'만약 내가 숭의복지관을 그만 두게 된다면 그땐 지역으로 내려가겠다. 그곳이 농촌이길 바란다.'
마음 깊이 다짐했습니다.
2013년 2월, 좋은 동료들과 즐겁게 일했던 숭의복지관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아내, 아이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
농촌에서 뜻있게 일해보고 싶은 마음에 사직했습니다.
2013년 3월, 김제사회복지관으로 이직했고
농촌 사회사업 꿈을 이루고자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농촌 사회사업 마음은 있었으나 여건이 쉽지 않았습니다.
김제는 인구 88,000이 안 되는 농촌 지역입니다.
19개 읍면동이 있는데 복지관이 관할하는 지역은 5개 읍면동(만경읍, 청하 공덕 백산면, 검산동)입니다.
복지관에 입사한 이후로 줄곧 현지 마을에서 사회사업 실천하는 것을 기관에 제안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될 것이 많았습니다.
첫째, 복지관이 임대단지 안에 있습니다.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임대 단지 안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임대 단지 중심으로 사업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15, 2016년부터 임대단지를 벗어나 지역사회를 조금씩 넓혀 갔습니다.
농촌 복지관은 농촌 마을로 나가는 것이 복지관이 존재하는 이유인데,
대부분 기관들이 시내권에 머물고 있어 면지역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과
'현실적인 제약'이란 이유로 자주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족한 인력
복지관 전체 직원 수가 10명입니다.
3명은 특수 업무를 전담하고 있고,
7명 중 관장님과 회계 직원(부장님)을 제외하면 실제 사업을 할 수 있는 인력은 5명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모든 인원이 현지에서 활동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입니다.
내부적으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 또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복지관 재위탁 PT 자료를 저에게 만들라는 지시가 있어
관장님께 의중을 여쭙고, 농촌 사회사업 추진 계획을 중장기 발전 계획에 포함하였습니다.
때마침 몇 몇 복지관에서 동중심으로 개편하면서
사회복지관의 패러다임이 현지 완결형 사업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김제 내려온지 5년,
드디어 농촌 사회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론 강하게 주장했고,
때론 토론했습니다.
때론 양보하고 타협하거나 한 발 물러섰습니다.
이상을 말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를 만들어 실현 가능한 범위를 좁혀 나갔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만족합니다.
실천으로 증명해 보이면 기관에서도 더욱 신뢰하고 확장 시켜나갈 거라 믿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글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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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풍경
농촌 현지로 출근하는 길. 묘한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두려운 마음보다는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큽니다. 잘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첫 날이라 백산면사무소로 바로 출근했습니다.
아직 마을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계장님이 함께 다니자고 제안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다며 최현숙 계장님이 따뜻한 커피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제시 마을 곳곳이 나와 있는 지도를 어렵게 구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전에 만든 지도 책자인데 현재는 발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계장님이 부면장님도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앞으로 매주 백산면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사회복지관에 근무하는 과장님이라며 소개시켜주셨고,
부면장님도 웃으시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습니다.
농촌 사회사업 첫날, 오늘은 계장님도 아직 못 가본 석교리를 중심으로 다녀 왔습니다.
석교리에는 옹기마을이 있고 옹기장이 유형문화재(안시성 선생님)가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 가정방문
오전에는 저소득 가정 중심으로 마을을 다녔고, 이동 중에 마을 소개와 경로당 방문, 이장님을 찾아 뵙고 인사드렸습니다. 사례관리 가정을 방문한 기록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따로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제일 먼저 방문한 부창 마을은 주민 약 30가구가 채 안 되는 마을입니다.
마을에 남자 어르신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 중, 4~5명이 경로당에서 그룹홈 형태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께 인사드렸고 첫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계장님과 함께 하니 다정하게 맞아주셨습니다.
밥 먹고 가라며 챙겨주셨습니다.
따뜻하게 맞아주신 부창마을 어르신들
푸세식 화장실에 외벽을 가림천 하나로 해 놓은 열악한 화장실
#. 점심식사
계장님이 혹시 오늘 점심 때 약속이 있는데 저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어차피 하루종일 다녀야 하니 제가 알아서 하겠으니 앞으로도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때마침 관장님께서 전화하셨습니다.
홀로 나간 첫 날, 식사는 어떻게 할 건지 걱정해 주셨습니다.
잠시 후 관장님과 신아름 선생님이 스타렉스를 타고 백산반점으로 찾아 왔습니다.
일부러 찾아와주시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관장님께서 맛있는 자장면과 탕수육 사주시곤 복지관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손을 흔드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관장님이 사주신 자장면과 탕수육. 배터지게 먹었습니다.
7월부터 함께 나갈 신아름 선생님, 복지관으로 돌아가면서 손 흔드는 모습
#. 오후 풍경
백산면에 소속 된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선생님과 인사 나누었습니다.
지역마다 독거노인 생활관리사가 있는데, 이 분들이 지역 정보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백산면에는 독거노인 300명이 있는데 연초에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장기요양서비스 받는 사람 제외) 꼭 필요한 대상자를 발굴하고 있습니다.(독거노인생활관리사 1인당 27명을 관리한다고 함)
주 5일 오후 시간에 활동하시는데 매주 월요일은 시청에서 정기 회의를 하고 나머지 4일은 집집마다 방문하며 어르신들의 안부 확인을 하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하고 있습니다.
최선희 선생님: 하서리, 부거리, 석교리 15개 마을을 담당
박오선 선생님: 상리, 상정리 10개 마을 담당
임희정 선생님: 조종리, 수록리, 하서리 14개 마을 담당
생활관리사 선생님들과 인사를 마치고 계장님과 다시 부창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창문을 내리니 시원한 봄 바람이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전에 못 가본 옹기가마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사례관리 가정방문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겠습니다.
가정 방문을 마치고 옹기마을 옹기장이 유형문화재 선생님(안시성 옹기장이) 내외분을 찾아 뵈었습니다. 옹기마을 가마는 무려 107년 된 가마이며, 안 선생님은 이곳에서 옹기를 한지 27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옹기가마 분야의 최고 기술자이십니다.
아이들 체험 활동(단순 체험 2시간 반)도 할 수 있다고 했고,
놀이 활동(흙 밟기, 두껍아 두껍아, 흙 가지고 놀기)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안 선생님께서 황차를 내어 주셔서 30분 정도 이야기 나누고 다음에 또 뵙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 양청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양청 마을은 두 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 마을에 모여 있는게 아니라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양청 마을은 주민등록상 거주 인구가 25가구인데, 실제 살고 있는 가구는 15가정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에 경로당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함께 모이거나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옹기마을 옹기장이 유형문화재 안시성 선생님 내외 분이 내어주신 황차
#. 정리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현지 활동, 5시부터 6시까지 하루 일정을 기록합니다.
백산면 계장님과 선생님들께서 많이 배려해 주셨습니다.
차 대접 받고, 회의실 공간 내어주시고,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알려주셨습니다.
편하게 기록하라고 와이파이 쓰게 해주셨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과 환경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산면 거점(면사무소 회의실)
오늘 하루동안 만난 분들이 30여명은 족히 넘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가정방문, 경로당 인사, 이장님 인사 다녔습니다. 첫 날이긴 하지만 확실히 사무실을 들리지 않고 현지로 출근하여 현지에서 업무를 하니, 쉴 여유도 없고 발바닥 닳도록 돌아다니기만 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현지로 출근해서 현지에서 완결 시키는 업무 방식.
현장 실천가로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마을 곳곳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주민들 만나느라 문자 답장 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농촌 사회사업 하는 즐거움,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몇 가지 농촌 마을의 문제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21세기에 아직도 화장실이 푸세식이다 못해 외벽을 햇빛 가림 천으로 둘러져 있었습니다.
천정은 뚫려있었습니다. 임대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른 열악함도 보았습니다.
양청 마을 이장님을 만나 들은 이야기는 귀촌 귀농의 어려움을 몸소 느꼈습니다.
농촌에 빈집은 넘쳐나는데 자녀들은 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팔아봤자 돈도 안 되고, 노후에 내려올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시골집을 처분하는 것은 어린 시절 추억마저 팔아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습니다.
언젠든 돌아갈 수 있는 마음 속 고향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빈 집이라 할지라도 땅 주인이 여러명이거나 집 명의가 4대 전 어르신으로 되어 있어,
명의 변경 조차 되어 있지 않아 가족 간에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농촌에 빈집은 많으나 귀촌 귀농할 집을 구하기 어렵고,
귀촌 귀농 하더라도 농촌 마을의 괸당 문화로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상, 농촌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 만난 양청리 이장님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만나 더 깊이 나누어 볼 계획입니다.
고민하고 방법을 찾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요.
희망을 찾을 수 있겠지요.
이제 시작이니까요.
* 다음 활동을 위한 메모
현지 이동 시 물품 몇 가지만 가볍게 들고다닐 수 있는 가방 필요.
1) 휴대용 배터리: 스마트 폰으로 실시간 기록하므로 배터리가 빨리 닳음.
2) 치약 칫솔: 현지에서 점심 먹고 양치
3) 물병: 날씨가 점점 더워지므로 물은 필수
4) 블루투스 키보드: 가정방문 시 그 자리에서 기록하지 못한 내용을 나와서 기록
5) 비상금: 언제 무슨일이 발생할지 모름
차는 면사무소에 주차,
노트북은 면에 두고 활동이 끝나면 에버노트에 기록한 자료를 노트북으로 옮겨 기록 보완 및 업로드
면에서 마을까지,
이동 수단을 자전거로 할 수 있는 방법 모색.
(자전거 구입 또는 대여, 보관, 관리 방법도 필요.)
여름방학 단기사회사업팀은 '자전거 단기사회사업팀'으로 진행
면에서 가까운 마을은 5km 내외로 이동해야 됨.
자전거 6~10대 필요.
김제 지역 동료, 자전거 대리점, 수소문하여 마련하기.
첫댓글 마을로 나가기까지, 신뢰를 쌓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신 과정이 있었군요.
기관에서 '농촌 사회사업 추진 중장기 발전 계획'을 들어주시고 지지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현지로 출근해서 현지에서 완결 시키는 업무 방식.
현장 실천가로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마을 곳곳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농촌 사회사업 하는 즐거움,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정수현 선생님 글에서 설렘과 기쁨이 느껴집니다.
제가 철암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이 살아납니다.
그때 주민센터에서 맞아주신 사회복지 담당 선생님 성함이 최현숙 선생님입니다.
지금도 큰힘이 됩니다.
정수현 선생님 오늘 발걸음이,
'농촌 마을을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일,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는 일,
마을을 떠나 도시로 나간 자녀들, 청년회(학교 총동창회 등)를 찾아보고 함께 할만한 일'
의 모퉁이돌이 되길 바랍니다
김동찬 선생님, 수시로 보내주시는 응원의 댓글과 문자에 힘이 납니다. 지혜롭게, 겸손하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겠습니다.
'농촌에 빈집은 넘쳐나는데 자녀들은 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팔아봤자 돈도 안 되고, 노후에 내려올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시골집을 처분하는 것은 어린 시절 추억마저 팔아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습니다.
언젠든 돌아갈 수 있는 마음 속 고향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빈 집이라 할지라도 땅 주인이 여러명이거나 집 명의가 4대 전 어르신으로 되어 있어,
명의 변경 조차 되어 있지 않아 가족 간에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
그렇군요.
추동에 처음 왔을 때 '마음 기댈 이웃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 차 조수석에 앉아 동네 구석구석 인사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역을 잘 알고 소개해 주시는 분이 있으셔서 든든했습니다. 하루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고, 지역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에서 설렘과 즐거움, 희망이 느껴집니다.
농촌사회사업 실천을 위해 오래 고민하고 조금씩 준비하여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군요.
비슷한 환경에 있는 전국의 복지관에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