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9일 추수감사주일 골로새서3:17
본문: 골로새서3:17
제목: 감사를 습관화 하자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골로새서3:17절의 말씀을 가지고
“감사를 습관화 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감사를 습관화 하자”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성격이 좋아서
방긋방긋 웃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짜증이 많고
날카로운 아가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믿음과 상관없이
평생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늘 불평만 하고 살아갑니다.
마치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습관이 잘 되어서
좋은 성품을 만들어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부자 연구로 유명한 스텐리 박사는
20년 이상 부자들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재벌 중 80%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입니다.
부모로 물려받은 사람은 20%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재산 대신
좋은 습관을 물려받았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근면, 성실, 정직,
용기, 신앙 등의 무형 유산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습관이 되어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비행기가 이스라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단 하나 외국에서 전쟁에 참여하려는
유대인들을 실은 비행기는 예외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모가 돈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을
습관으로 물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신앙생활도 습관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습관에 따라 생활하셨습니다.
눅4:16“예수께서 그 자라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며”
‘늘 하시던 대로’ 습관에 따라서
안식일 날에 회당에 가셨습니다.
‘늘 하시던 대로’ 습관에 따라 성경을 읽었습니다.
모든 것이 늘 하시는 대로 습관으로 하셨습니다.
막10:1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전례대로’라는 말도 표준 새번역에는
‘늘 하시던 대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나
전도를 하는 것이나 습관적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에 쫓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습관에 쫓아 같은 장소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성경읽는 것도 습관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습관입니다.
전도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습관이 되어 행할 때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화 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타고난 것보다 후천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신앙이란 거룩한 습관을 들여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공감되는 말입니다.
신앙은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습관이 되지 못하면
주일 예배조차 나올 수 없습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 현장에
못 나오시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지만
어떤 교회는 1/4 정도가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코로나 이후 교회 현장을
나오시는 분들의 습관이 깨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졌다가 보다
영상을 보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습관이 계속되면
정말 무서운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감사를 습관화 하자’입니다.
습관적인 감사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습관 감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심각해집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감사가 습관화 되지 않으면
세상에서 욕을 먹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달라져야 하는 부분은 감사 습관입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보다는
감사를 많이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루터는 신자가 회개할 때
주머니가 거듭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진짜 구원받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하나를 더 붙여야 합니다.
그것은 감사도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하지 않으면
그냥 불평과 불만을 하는 존재입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불평하던지 감사든지 합니다.
주변에 교회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다 불평입니다.
직장, 나라, 가정 다 불평입니다.
불평을 찾아내는 데 천재성을 보입니다. ㅎㅎ
자주 불평을 하니 불평이 습관이 되어
자기 인생이 되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 마땅히 버려야 할 습관 중에
불평하는 습관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걸핏하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애굽이 좋았다고 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구원해 주셔서
광야길을 가는 길에서 불평합니다.
지금을 사는 사람 중에도 대놓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었을 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이런 불평은 하나님도 감당이 안됩니다.
구원하시려고 택하여 불렀는데
불평을 하니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평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십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상황을 보았던
여호수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공감이 됩니다.
마귀는 누군가가 불평과 불만을 하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좋아라 하며
불평과 원망을 듣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저는 단순하다고 봅니다.
천국은 감사만 있을 것입니다.
어느 환경이 와도
그냥 감사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감사가 없고 불평만 있는 곳입니다.
모든 일에 불평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탈무드에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감사가 힘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일단 생각만 바꾸어도 저절로 감사가 됩니다.
감사하는 습관이 있다면 쉽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실 것입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상속세를 10억을 내야 한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세금을 낼 수 있는
상속을 받았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이 노력한 것도 아니고
부모에게 그렇게 받았는데 감사해야 맞습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청소할 부담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 몸을 의탁 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 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고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한 정치인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찬송 음정이 엉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자명종 소리가 힘들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감사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만약 우리가 변하는 것을 감사한다면
감사의 습관화가 될 수 없습니다.
건강을 감사하면
얼마 가지 못합니다.
나이를 이길 수 없습니다.
건강은 언젠가 나빠지고 죽게 됩니다.
물질 감사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오거나 재난이 오면 끝이 납니다.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자녀 감사
자녀는 떠나가 되어 있습니다.
결혼하면 따로 남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까요?
변하지 않는 진리로만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면 최고입니다.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가 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만해지고 감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면
쉽게 습관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님이 가정의 평화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건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물질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도 감사할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럴 때 바로 “구나 겠지 감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돈이 없구나”
“나에게 돈이 없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에게 건강이 있으니 감사하지”
아멘이 아닙니까?
불평할 상황에
감사를 찾아서 감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없는 것을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도리어 그 원망과 불평 때문에
내가 더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게 됩니다.
지금 내 상황이 주님이 주신 상황으로 보고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자체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감사가 어느 정도 중요할까요?
시50:23절“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주일로 예배 드립니다.
감사로 드려야 진정한 예배가 됩니다.
이것은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로새서4:2 “기도를 계속하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감사하는 기도가 최고의 기도입니다.
감사 없는 기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감사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감사는 습관입니다.
따라서 습관 감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므로 가족이나 친구들이나
감사 나누기를 하기 바랍니다.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하지 말고
감사를 찾아서 감사를 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열매가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