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나는 사람들 덕으로 산다. 이번 호주행도 시드니에서 박봉숙 식당을 경영하는 김동호 사장의 배려로 숙식을 해결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유가 있다면 내가 시드니 동포사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하기를 기대해서 일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권위처럼 '도덕적 권위'도 나름대로 힘이 있는 법이다. 그 힘은 세상에 어떤 힘 보다 깨어지기 쉽고 지키기도 어렵지만 때로는 의외로 강할 수도 있는 힘이다. 그런데 이 힘은 상대방이 부도덕할수록 즉 도둑적 권위가 높은 세력일수록 더욱 들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뻥을 쳐놓았지만 실제로는 155 마일 휴전선 아래에서만 작동을 하듯이 양심은 모든 인간에게 있지만 이런 도덕적 권위는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세상을 살다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는 일처럼 귀한 일은 없다.
시드니에 지난 해 왔을 때 코로나로 오래 동안 폐업해서 문을 닫은 식당을 인수 해서 2호점을 개업한다고 해서 걱정을 했더니 김 사장은 염려 말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항상 영업에 대해서 물을 때 마다 언제나 희망적으로 이야기 해서 단순히 성격이 낙천적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식당 2층의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식당 돌아가는 것을 보고서 비로소 이해가 될 듯했다. 그것은 치밀한 성실성의 결과라는 것을. 한인 식당이 몰려 있는 거리에서 유일하게 항상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결과 를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원인이 궁금해서 날카롭게 살펴 보기로 했다.
식당에는 다국적 남녀 청년 20명이 10 시간 이상 톱니바퀴 돌아가듯 일을 해서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 보려해도 말을 붙여 보기가 쉽지가 않았다. 실제로 한국에서 내가 추천해서 보낸 2명과도 인사나 겨우 할 정도였다. 신기하게 생각되는 또 한 가지는 직원들이 항상 활기차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하는 인도네시아 청년은 주 5일 근무에 80 시간도 일을 할 때가 있다고 해서 기가 막혔다.
그렇게 빡 쎈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명랑한 분위기를 유지 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국적으로 모여서 일을 하기 때문에 보통 서열이 분명한 한국 식당 주방 보다 평등한 이유는 언어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디 양반 상놈이 없는 영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 하는 것도 이유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된다.
수 십명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 김 사장이 상담을 좀 하자고 하더니 고충을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다른 곳과 비교해서 대체로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작업 분위기도 좋지만 그래도 인간이 모인 곳이라 사건들이 많았다.
인간 관계에 정답은 없다. 특히 돈이 매개가 되는 고용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례를 하나씩 들어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분명하게 처리하는 방법과 애매하게 처리 할 방법 중에 결정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때로는 단호한 것이 좋을 때도 애매모호한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전략도 필요한 것이다. 고용주라고 해서 반드시 갑일 수도 없고 어떤 때는 양보를 해야 하는 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세상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고운” 세상도 있고 “죄는 미워 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미워하되 죄는 미워하지 말자”는 세상이 있고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아니라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마침 내가 있는 동안에 “내 돈은 내 돈, 네 돈도 내 돈”이라는 한 없이 넒은 마음을 가진 직원이 현금에 손을 댄 사건이 터졌다. CCTV로 촬영이 되었지만 다른 컴퓨터에서 재생에 안되어 급히 차를 타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후배 목사님에게 가서 도움을 받아서 파일을 재생해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CCTV 자료를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서 김 사장의 부인이 옆에 있음데도 태연하게 연기하듯 반복되는 그의 도둑적 예술 행위를 보면서 경악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되었다. 영상을 보면서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상대에 대하여 가차 없이 공격과 비아냥 거리는 한동훈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도 같았지만 끝내 그럴 수는 없었다.
문제는 해결인데 도저히 용서할 가치가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마땅히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할 일이지만 피해자인 김 사장의 정신적 충격과 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법체계에 ‘범죄피해대상보상’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는 해당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철저히 배신당한 감정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일상적으로 속임을 당해서 바보가 되었던 것 같은 느낌은 더욱 참담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범인은 무사히(?)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심리적 물질적 피해를 적절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김 사장이 2층 홀을 동포사회를 위히여 유익한 일에 사용하여 달라고 주문을 해서 동포사회의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신년 하례식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모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유는 지난 몇 년 동안 분열이 되었기 때문이라지만 그런 일은 30 여년의 풍찬노숙(?)의 재야생활에서 익숙한 일이다.
흔히 ‘보수는 이익 때문에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틀렸다. 왜냐하면 진보는 이익 때문이 아니라 생각 때문에 행동하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지면 길을 달리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구나 개인의 삶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투자할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태 때처럼 생각해 볼 여지가 없을 때는 하나로 단결이 된다. 지금은 아무래도 도무지 생각이 없이 행동하는 것 같이 보여지는 윤 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하나로 모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