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 뜻
carpe diem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 1.11에서 나온 말.
Tu ne quaesieris, scire nefas, quem mihi, quem tibi
finem di dederint, Leuconoe, nec Babylonios
temptaris numeros. ut melius, quidquid erit, pati.
seu pluris hiemes seu tribuit Iuppiter ultimam,
quae nunc oppositis debilitat pumicibus mare
Tyrrhenum: sapias, vina liques et spatio brevi
spem longam reseces. dum loquimur, fugerit invida
aeta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묻지 마라, 아는 것이 불경이라, 나나 그대에게
레우코노에여, 생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바뷜론의
점성술에 묻지 마라. 뭐든 견디는 게 얼마나 좋으냐.
유피테르가 겨울을 몇 번 더 내주든, 바위에 부서지는
튀레눔 바다를 막아선 이번 겨울이 끝이든, 그러려니.
현명한 생각을.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새운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김남우 (역), 카르페 디엠, 33면
라틴어 Carpe diem은 영어권에서 Seize the day[1]로 번역하는데, 둘 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이다. carpe가 seize, diem이 the day라는 뜻이다. 가끔 의역해서 "오늘 최선을 다하자"라는 식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enjoy 쪽에 더 가깝다. 그러니까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의미가 담긴 '노력'보다는 흔히 말하는 "상황을 즐겨라"에 가깝다. 일해야 하는 상황이면 일하고, 쉬어야 하는 상황이면 쉬라는 뜻.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서 의미가 변한다.
한국에서는 약간 왜곡을 더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로 통하고 있다. 호라티우스의 작품 세계를 보자면 이런 시 외에는 대부분이 자신의 후원자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가 준 사비네 언덕의 빌라 예찬이라든지, 아니면 어용시인으로서의 국가찬양시가 대부분이다. 인생 경험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결정짓는다는 매우 당연한 명제를 이렇게 자세하게 보여주는 사람도 없다.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희생하는 것도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를 희생한다고 해서 꼭 미래가 귀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미래의 나'도 '나'이지만, '현재의 나'도 '나'이다. 너무 미래만 좇다가 현재의 나를 잃어버리는 것 아닌지, 자신을 환기시키는 단어이다.
또한, '카르페 디엠'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로 해석하는 것을 꼭 왜곡된 해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최소한 '오늘 최선을 다하자' 식의 해석보다는 본래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비꼬는 말로 '덮어놓고 카르페 디엠하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다만 애초에 호라티우스의 의미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되도록 줄이라'는 것이다. 즉, '오늘 놀다가 내일 거지가 되면 어쩌지?'라고 걱정하지 말라(걱정해 봤자 소용없다), 오늘을 충실히 즐기라는 의미이며, 이를 두고 '젊을 때 젊음을 즐기자(열심히 놀자)'로 해석하는 것이 특별히 잘못된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어지간한 일화나 경구들은 전부 다 깔때기 대고 '노력-성공론'이나 '자기계발론'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워낙 많고[2] 이 때문에 카르페 디엠이라는 유명한 경구를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오늘을 즐기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 때문에 굳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라'는 교훈적인 의미로 해석하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정도. 하지만, 원문만 꼼곰히 읽어봐도 이것이 '젊어서 자신의 삶을 즐겨라'(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또는 지금의 희생으로 축적한 것이 꼭 미래에 더 큰 가치로 돌아오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뜻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이 경구를 실천하는 인물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알렉시스 조르바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에 내포되어 있는 미래를 위해 행복을 유예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경구로서 사용할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것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는지. 고도성장 시대에는 행복을 유예시키는 '투자'를 할 경우 삶의 질을 높인다는 보상을 받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시멜로 이야기에 비유한다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15분간 참으면 대부분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을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현재는 그때에 비해 15분 뒤 마시멜로 하나를 더 받기가 몹시 어려워졌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넌 마시멜로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개한테는 없잖니? 그러니까 네 마시멜로를 아무개와 반씩 나눠먹으렴"이라는 눈물나는 결과를 얻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 이런 시대를 살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고, 일단 받으면 맛있게 먹고 그 맛을 즐기는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배경을 살펴보면 유년기 때 1차 삼두정과 내전을 겪고 갓 청년이 됐을 때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2차 삼두정을 겪으며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의 정치적 격변기 시절에 살았다. 호라티우스 자신도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 진영에 가담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아 후에 옥타비아누스에게 사면을 받은 것이다. 로마의 오랜 전통인 공화정의 종결이라는 불안감이 동반된 격정적인 시대에 태어난 만큼 시의 소재도 파르티아나 스키타이 따위 외부 적을 경계하고 정복하길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3권 8번을 보면 자신의 후원자이자 아우구스투스의 부재 중 수도행정대행을 맡은 마이케나스에게 다키아, 메디아, 칸타브리아, 스키티아의 적에 대한 안심을 권고하고 술을 권하면서 '지금 이 시간이 주는 선물을 즐기며 심각한 일들을 덜어내십시오.'라는 말이 카르페 디엠의 메세지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노세 노세' 이런 한량 마인드가 아니라 근심에 대한 해방과 안정감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호라티우스를 향락주의자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게 송시들을 관통하는 주요 메세지가 근검함에 대한 찬양이란 것이다. 1권 8번처럼 자기 친구가 여색에 빠져 군사훈련을 소홀히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시도 있고 2권 3번 시에서 '힘겨운 일에도 평상심을 굳게 지키고, 감당치 못할 즐거움은 좋다만 하지 말고 마음을 다스려 절제하라.'라는 경구에서 그를 한낱 한량 같은 향락주의자라고 볼 수 없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음주를 권하는 것은 로마의 주종교인 로마 신화의 바쿠스와 연관도 있는데 3권 25를 보면 바쿠스를 경배하는 것이 시의 생명력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1. 대중 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