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10)/ 여성 경제 신문
별도 삶과 죽음 존재하듯
인간의 삶과 죽음도 숙명
꿈꾸고 배우며 여행하라
그리스 신화에서 세상을 창조한 신이 이리저리 어질러진 혼돈(Caos)의 상태에 조화와 질서를 주기 위해 처음으로 만든 꽃이 코스모스(Cosmos)라고 하지요. 이름처럼 여름을 정제하고 선선한 우주(Cosmos)의 시작을 상징하는 꽃이니 가을 제주의 오름길에서 만난 코스모스에게 경배합니다. /언스플래쉬
가을 코스모스 보러 가실래요?
달력만 보아도 가슴 시린 추억의 노래들이 생각나는 계절 10월의 초하루입니다. 석양이 쌉싸름한 해풍에 수채화로 물든 남쪽 가파도를 바라보며 제주 올레길을 걷습니다. 사계절 해양풍에 다져진 오름을 올라 환하게 만난 코스모스 군락 벌판에서 당신에게 가을 인사 보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상을 창조한 신이 이리저리 어질러진 혼돈(Caos)의 상태에 조화와 질서를 주기 위해 처음으로 만든 꽃이 코스모스(Cosmos)라고 하지요.
믿거나 말거나 코스모스는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꽃이라 하고, 코스모스의 가녀리고 소박한 모습을 보완하기 위해 신께서 장미, 다알리아, 튤립, 백합, 상사화, 국화 등등 아름다운 꽃들을 창조했으니, 가을 '코스모스' 이름처럼 여름을 정제하고 선선한 우주 (Cosmos)의 시작을 상징하는 꽃이니 가을 제주의 오름길에서 만난 코스모스에게 경배합니다.
시간이 가면 생명들이 우주 속으로 사라질 것을 예언하듯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 하늘은 아득히 깊고 푸른 우주 속으로 멀어져 갑니다. /언스플래쉬
오름길을 내려와 책장을 바라보다 다시 꺼내 든 자연과학 철학자 겸 작가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의 두터운 저서 『코스모스』 글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Chapter 9(제9장) - [별들의 삶과 죽음]을 읽습니다.
별들의 탄생과 죽음을 우주의 '창백한 한 푸른 점(Pale Blue Dot)'의 별 지구 한 귀퉁이에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의 생애로 비유한 이야기를 읽고, 이런저런 생각에 책장을 덮지 못하고 서성이다 슬픈 귀뚜라미 소리를 배경으로 푸른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시간이 가면 생명들이 우주 속으로 사라질 것을 예언하듯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 하늘은 아득히 깊고 푸른 우주 속으로 멀어져 갑니다.
아~ 석양이 지나 밤으로 가는 세상은 신비롭지만 짙푸른 슬픔을 제공합니다.
칼 에드워드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9장-[별들의 삶과 죽음]입니다. 이 제목 한 줄만으로도 내 가슴속 별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내 희로애락의 삶이 저 밤하늘 먼 우주 속 별의 궤도와 다르지 않음을 시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진=최익준
[별들의 삶과 죽음] - 제9장 이 제목 한 줄만으로도 내 가슴속 별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내 희로애락의 삶이 저 밤하늘 먼 우주 속 별의 궤도와 다르지 않음을 시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4000억 년의 생명을 유지한 은하계 별들은 각자 수명이 다하면 제각기 다른 질량에 따라 신성(Nova), 초신성(Ultra-Nova), 블랙홀(Black hole)로 명명이 되어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더 멀리 사라져 간다는 우주의 비밀을 칼 세이건이 밝혀 주었지요.
별과 인간의 생애를 대비해 보면, 100년을 못 사는 인간은 유소년, 청년, 중장년, 노년의 주기를 거치며 하나의 생명으로 살다 우주에서 사라지지요.
4000억 년 우주의 생애를 장수하는 인간 수명 100년으로 나누어 보자면 인간에게 1년의 시간은 별의 40억 년과 같으며, 인간의 하루 24시간은 별의 1100만 시간에 버금가며, 인간의 한 시간은 별의 45만 시간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에게 주어진 생애의 한 시간을 우주의 4000억 년 시간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노자가 말한 깊고 신비로운 평정심의 힘으로 차근차근 추구하는 무엇인가를 위하여 각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면 되겠지요.
4000억 년 우주의 생애를 장수하는 인간 수명 100년으로 나누어 보자면 인간에게 1년의 시간은 별의 40억 년과 같으며, 인간의 하루 24시간은 별의 1100만 시간에 버금가며, 인간의 한 시간은 별의 45만 시간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은하계 성운 /픽사베이
아무리 바쁘게 살아간다 해도 주말의 한 시간만큼은, 저녁과 밤의 한 시간만큼은, 영겁 속에서 꿀맛 같은 내 소중한 시간을 내 좋은 것에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니···. 일주일에 두세 시간만큼은 약속과 관계의 시계를 풀어 버리고 백만 년 천만 년 저 별처럼 생을 누려 봄이 어떨까요?
당장 한두 시간 갈 곳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그럼 소소하게 뒷짐 지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남겨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의 좋아하는 음악 골라 들으며 동네 한 바퀴 슬슬 걸어 4000억 년의 하늘을 음미하며 살아 있음의 위대한 기쁨을 만끽함이 어떨까요? 경이로운 우주와 밤하늘을 보며 걷기 위해 한 푼의 입장료도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무한하다고 믿어지던 은하계의 창백한 푸른 별 지구도 시간이 지나면 태양의 초신성 죽음에 따라 이승의 생애를 마감할 것이고, 인간의 운명도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음이라는 칼 세이건의 추론을 읽으며 언젠가 사라질 저의 운명을 알아낸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제주 오름길에서 만난 무심한 묘지들처럼, 우린 언젠가 미래에 아득히 잊힌 이름이 되고 산소와 탄소 등의 기본 원소로 분해되어 우주를 떠돌며 더 이상 생명으로 존재하지 않겠지요. 그러니 지금의 살아 있음에 경배해야겠지요. /픽사베이
제주 오름길에서 만난 무심한 묘지들처럼, 우린 언젠가 미래에 아득히 잊힌 이름이 되고 산소와 탄소 등의 기본 원소로 분해되어 우주를 떠돌며 더 이상 생명으로 존재하지 않겠지요. 그러니 지금의 살아 있음에 경배해야겠지요.
우주의 본질은 정신도 영혼도 아닌 물질이며 그 물질의 기원을 쪼개고 또 쪼개고 수천번 쪼개 나가면 수소로 시작하여 우리늄까지 92가지 원자로 구성되었고, 인간의 몸도 실상은 똑같은 원자와 분자들의 물리 화학적 조합일 뿐이라는 팩트를 읽어 내렸습니다. 원자와 분자의 조성물로 이루어진, 생물에 불과한 인간이 왜 신앙과 인문학적 삶이 필요한가?라는 불가지론적인 질문을 가져 봅니다.
75억 개 별들이 밀고 당기는 수억 년의 시간 동안 가끔 엄청난 충돌과 폭발의 사건이 일어난다 하여도 은하계의 생명과 신비는 유지되어 온 것처럼···. 우리의 삶을 흔드는 고통과 역경에 우리 생을 포기할 수 없다는 비유를 제공하지 않을까요?
[별들의 삶과 죽음]에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입해 보니··· 미국의 작가 Mark Twain의 글이 불쑥 생각납니다~
“짧은 생애 다 지나서··· 후회 없도록··· 안전한 항구를 떠나 무역풍을 타고 탐험하고 꿈꾸며 발견하라.”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이든 시니어든 살아 있는 우리에게 이만한 답은 없지 않을까요? 그러니 청년이든 은퇴자든 죽음의 순간까지 '새로운 경험의 여정'을 멈추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AI와 언택트의 시대적 새 바람이 불어오고 있으니 나에게 맞는 새로운 학습과 도전의 출항을 다시 준비합니다.
세상 떠날 때 후회 없도록··· 그리고 '꼰대'가 되어 있지 않도록!
"나는 죽는 순간 다시 부활하여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이 강렬한 만큼 헛된 바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크고 깊은 사랑과 선으로 가득한 곳이므로 굳이 사후 세계의 이야기로 나를 속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의 편에서 죽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여정에 매일 감사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사진=최익준
작가 칼 세이건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죽는 순간 다시 부활하여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이 강렬한 만큼 헛된 바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크고 깊은 사랑과 선으로 가득한 곳이므로 굳이 사후 세계의 이야기로 나를 속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의 편에서 죽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여정에 매일 감사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코스모스 여정길 어디에 계신지요?
시월의 아름다운 날, 은하계의 푸르고 창백한 지구, 한 모퉁이 서재에서 칼 세이건 형님과 나의 청춘에 경배하며 이 글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