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했수? 좀 늦남?(11:3에)" "공책을 안 가지고 왔다! ㅋ ㅋ ㅋ 주변에 있어?(1:11에)" "대표님! 저는 진접이에요(2:00 나)"
12시 픽업 해서 pm1시 한예종 도착으로 알고 있었는데 11시 픽업인 줄 알았나 봅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스케줄을 문서화 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어제 피곤해서 예주랑 치킨 하나 먹고 뻗어버렸다고 했는데 얼굴은 어제보다 생생해 보여서 아비도 출발이 괜찮습니다. 오늘 아침은 고추장 소고기 볶음(튜브)과 참치 캔입니다.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잘 먹어줘서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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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복귀 하는데 2시간이 걸린 이유를 설명하다가 알랭 바디우의 '주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어요. 결론은 알랭 바디우의 주체는 두 단계라는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주체(존재)'개념과 차이가 있습니다. 바디우는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을 이어받아,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 안에,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며, 이 변화하는 과정, 활동을 '진리' 라고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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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존재'는 무질서, 우연적, 비정합적 다수 상태인 사건이며, 만약 사건이 구조화 되어 '일자'가 된다면 더 이상 사건이 아니며 따라서 '존재'도 아니게 됩니다. 이것을 사회적으로 적용하여, 사건이 구조화 된것을 '지식(이념화, 법제화 된것)' 이라고 하더구먼요. 국가는 고착화된 이 지식의 틀 안에서 사건을 규정짓게 돼요. 이 규정에 따라 다수를 통제하는 것이 국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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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회는 시시각각 변하므로 이 고착화된 지식은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 맞지 않아요. 따라서 사건의 발발로써 이 규정을 엎어야 합니다. 여기서 기존 질서를 엎기 위해서는 타당한 이론 및 이념이 정립되어야 하므로, 사건으로써 지식을 엎기 위해서는 '사건 또한 규정화'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란 무한한 혁명과 개혁을 통해, 비록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올바른 것일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부합하는 것을 찾아 끊임없이 혁명과 개혁이 이루어 져야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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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는 둘로 나누어집니다. '현재 있음의 존재'와 '도래할 존재'가 그것인데요, 현재 있음의 '나'라는 존재의 나는 과거에 반복적으로 있어 왔고 현재 눈에 보이는 자체로서의 '나'입니다. 물론 '도래할 있음의 '존재는 오지 않은 도래할 존재이지요. 이 두 존재 간의 차이는 같은 한 사람이지만 차이가 있어요. 현재 있음의 존재가 현재의 상태로 미래를 맞으면 그 현재의 존재는 미래에도 현재의 존재와 똑 같은 '있음의 존재'로 존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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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재 있음의 존재가 도래할 있음의 존재로 도약하는 데는 뭔가 개입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건'의 개입'이 필요해요. 그리고 '사건'은 어느 날 불쑥 터져 등장합니다. 아주 사소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에서 출발하지요. 그 사건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피하거나 참여를 거부해요. 물론 드물게 누군가는 참여하기도 합니다. 현재 있음의 존재가 도래할 있음의 존재로 변화하는 계기가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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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사건'에 특정 존재가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사건'을 변화시키는 '촉성'(forcing)으로 작용합니다. 촉성은 촉진하는 힘이자 에너지죠. 이 촉성이 있음의 존재를 도래할 존재로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이때 '사건'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주체성을 가진 '주체'(나)입니다. 단 한 명의 주체적 존재가 사건의 부름을 받고 사회와 역사 앞에 등장했을 때, 역사는 거친 변화와 혁명의 물살을 만들어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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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프로이트-이순신-광주 항쟁에서 죽음으로 참여했던 '주체'가 그러했습니다. 나는 상황을 만날 때마다 '주체'로서 사건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리고 바로 어제 '사건'을 만났습니다. 에스더를 학원으로 픽업해 주고 진접으로 귀가하는 길입니다. 6시 30분 숙대-시청-충무로-청계천-종암-북부간선도로 경유 코스입니다. 청계 5가에서 8가로 빠져나가려면 직진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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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선 도로에서 우측 길로 500m 쯤 진행하다가 길림 길 고무 통이 발견 되었고 급하게 끼어들기를 했는데 뒤차가 어림없다는 듯 틈을 주지 않았어요. 염병할 하필 그때 신호가 멈출게 뭡니까? 9620은 갈림길 코너에 끼어 엿 같은 상황이 돼버렸어요. 악어들이 잡아먹을 듯이 긴 크랙 손을 울려대는데 1분이 왜 이리도 긴 것이여? 훈련소 깨스실 인가 지옥인가 했어요. 지랄, 니들은 끼어들기 안 하냐 C-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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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지사 모양은 빠져버렸고 기어이 나는 지옥 구간을 통과해 차를 멈춰 세운 후 동대문 사우나 앞 가로수 수풀 숲으로 들어갔어요. 만땅 이빠이 찬 보일러 물을 빼면서 나는 지금 나의 나와바리에서 영역 표시를 한 것 뿐이라며 혼자 웃었어요. 물론 내가 절대 잘했다거나, 나를 본받으라고 한 말은 아니니 너무 미워하지 마시라. 여기서 주체는 9620 그랜저(김효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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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주체)가 복귀 중에 '우연의 사건'을 만납니다. 운전 경력 35년인데 1차 선에 끼어들기 가드레일이 있을 줄 몰랐어요. 코너로 쳐 박힌 상황에서 신호체계-관습-타자의 자존심-윤리 따위를 모두 패스 오버 하고 북부 간선도로를 탔다는 것이 오늘 '존재와 사건' 관련 '주체'의 핵심 개념입니다. 물론 내 의지가 '진리'이어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문제가 있는 건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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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주체'는 1. 우연한 사건을 만나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2. 힘겹게 진리(자기 뜻)를 쟁취하는 것까지의 '주체'라는 겁니다. '사건의 흔적'을 이어받은 '주체', '사건과 진리를 연결'하는 '주체' 말입니다. 대상은 없고(다수) 사건의 산물 속에 '주체'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에예공! '주체'가 없으면 진리도 없어요. 불량 '주체' 말고 진리의 '주체'가 되시라.
2024.9.26.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