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52편
그날 오후 시천은 군졸과 함께 다시 암자를 찾아갔다. 시천이 노승에게 말했다.
“주장께서 아주 감사해 하시며, 작은 예물을 보내셨습니다.”
시천은 은자 20냥과 쌀을 노승에게 내놓았다. 시천은 군졸을 영채로 돌려보내고, 노승에게 부탁했다.
“번거롭지만 행자를 저와 함께 보내서 길을 인도하게 해주십시오.”
노승이 말했다.
“장군은 잠시 기다리셨다가, 밤이 깊어지면 가십시오. 낮에는 관 위에서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저녁이 되자, 노승은 밥을 지어 시천을 대접했다. 밤이 되자, 노승은 행자를 불러 분부했다.
“장군께 길을 인도해 드리고, 너는 아무도 모르게 즉시 돌아오너라.”
어린 행자는 시천을 인도하여 암자를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숲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칡덩굴을 잡고 올라가, 몇 리를 가자 희미한 달빛 아래 험준한 고개가 하나 보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데, 한 줄기 샛길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샛길 위쪽에 큰 돌을 쌓아 가로막고 높은 성벽을 쌓아 놓았다. 행자가 말했다.
“장군님! 저기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관입니다. 저 석벽을 지나면 큰길이 나옵니다.”
시천이 말했다.
“행자는 이제 돌아가시게. 내가 이제 길을 알았네.”
행자가 돌아간 후, 시천은 처마 밑과 벽을 타는 재주를 발휘하여 석벽을 기어 올라갔다. 멀리 동쪽을 바라보니, 숲속에서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노선봉이 주무 등과 함께 영채를 뽑고 군사를 일으켜 불을 지르면서 관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노준의는 먼저 3~4백 군사를 보내 지난번에 전사한 여섯 장수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산을 올라가면서 불을 질러 길을 열게 하였다. 매복한 적병들이 숨을 곳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욱령관 위의 소양유기 방만춘은 송군이 불을 질러 길을 열고 있다는 것을 듣고 혼자 말했다.
“저렇게 진격해 오면 내가 감춰둔 복병이 소용없겠군. 하지만 우리가 이 관을 지키고 있는데, 네놈들이 어떻게 넘어갈 수 있겠는가?”
송군이 점점 관 아래로 다가오자, 방만춘은 뇌형과 계직을 거느리고 관 앞으로 나아가 지키고 있었다.
한편, 시천은 한 걸음씩 관 위로 올라가 큰 나무 꼭대기에 올라갔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곳에 숨어서 보니, 방만춘·뇌형·계직이 활과 쇠뇌에 화살을 메겨 두고 송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송군 쪽을 보니, 한 무리가 불을 지르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임충과 호연작이 관 아래에 말을 세우고 소리쳤다.
“적장은 어찌 감히 천병에 항거하느냐?”
방만춘 등은 송군을 향해 화살을 쏘는데 정신이 팔려, 시천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시천이 가만히 나무를 내려와서 관 뒤로 돌아갔더니, 마른 풀 더미 두 개가 있었다. 시천은 풀 더미 위에 화포를 올려놓고 유황과 염초 등으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관문대들보 위로 기어 올라가 거기에도 불을 붙였다.
두 개의 풀 더미에서 불이 치솟으면서 화포가 터지며 천지가 진동하였다. 관 위에 있던 적장들은 혼란에 빠져 고함만 질렀고, 군사들은 모두 달아나기 바빴다. 방만춘은 두 부장과 함께 급히 관 뒤로 가서 불을 끄려고 했는데, 그때 시천이 지붕 위에서 또 화포를 터뜨렸다. 화포가 관문을 흔들자 깜짝 놀란 적병들은 모두 무기를 내던지고 갑옷을 벗고서 관 뒤편으로 달아났다. 시천이 지붕 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미 송군 1만이 관을 넘어갔다! 너희들은 빨리 투항하라! 그러면 죽음을 면할 것이다!”
방만춘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혼이 달아난 듯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뇌형과 계직도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때 임충과 호연작이 앞장서서 관 위로 올라왔다. 뒤이어 여러 장수들이 앞 다투어 올라와 도망치는 적군을 추격하였다. 손립은 뇌형을 사로잡았고, 위정국은 계직을 사로잡았다. 방만춘만 홀로 달아나고, 수하의 군병들도 태반이 사로잡혔다. 송군은 모두 관 위로 올라와 주둔하였다.
노선봉은 욱령관을 얻고 시천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뇌형과 계직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사진과 석수 등 여섯 장수에게 제사를 지냈다. 여섯 장수의 시신을 수습하여 관 위에서 장례를 지내고, 나머지 시신들은 모두 불태웠다.
다음 날, 노준의는 장초토에게 문서를 보내 욱령관을 얻었음을 알리고, 군사를 이끌고 진군하여 관을 넘어 흡주성 아래에 영채를 세웠다.
흡주성은 방랍의 숙부인 황숙대왕(皇叔大王) 방후가 두 장수와 함께 지키고 있었다. 하나는 상서(尚書) 왕인이고 하나는 시랑(侍郎) 고옥으로, 10여 명의 아장들과 2만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원래 왕인은 흡주 산속의 석공 출신으로 강철로 만든 쟁을 잘 썼고, 전산비(轉山飛)라고 불리는 말을 탔는데, 그 말은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기를 마치 평지를 가듯 하였다. 또 고옥도 흡주의 토박이로서 오래된 가문 출신이었는데, 한 자루의 편쟁(鞭鎗)을 잘 썼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문에도 제법 통하여 방랍이 문관으로 봉함과 동시에 병권을 쥐게 하였다.
소양유기 방만춘이 패전하여 흡주의 행궁으로 가서 황숙에게 아뢰었다.
“원주민이 송군을 샛길로 인도하여 몰래 관을 넘어오는 바람에 군사들이 달아나 적군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황숙 방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방만춘을 꾸짖었다.
“저 욱령관은 흡주의 제일 요긴한 장벽인데, 이제 송군이 그 관을 넘었으니 조만간 흡주에 당도할 것이다. 저들을 어떻게 대적한단 말이냐?”
왕인이 아뢰었다.
“주상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예로부터 이르기를, ‘승부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니 패전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방장군의 죄를 잠시 용서하시고, 반드시 승전하겠다는 군령장을 쓰고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앞장서서 송군을 물리치게 하십시오. 만약 또 패전한다면, 그때 두 죄를 한꺼번에 물으십시오.”
방후는 그 말에 따라, 방만춘에게 5천 군사를 주어 성을 나가 송군을 대적하게 하였다.
한편, 노준의는 장수들을 거느리고 흡주성을 공격하러 갔는데, 성문이 열리면서 방만춘이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양군은 각기 진세를 펼쳤다. 방만춘이 출전하자, 구붕이 쟁을 들고 달려 나가 방만춘과 교전하였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5합이 되지 않아, 방만춘이 패주하자 구붕이 공을 세우기 위해 추격하였다. 방만춘이 몸을 돌리며 활을 쏘았는데, 구붕은 수단이 고강하여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았다. 구붕은 방만춘이 연이어 활을 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화살 하나를 잡았으므로 방심하고 추격하였다. 그때 방만춘이 쏜 두 번째 화살을 맞고 구붕은 말에서 떨어졌다.
구붕이 말에서 떨어지고 방만춘이 승전하는 것을 성 위에서 본 왕인과 고옥이 성중의 군마를 이끌고 달려 나왔다. 송군은 대패하여 30리를 퇴각하여 하채하였다. 장병을 점검해 보니, 난군 속에서 채원자 장청이 또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손이랑은 남편의 시신을 찾아 화장하면서 한 바탕 통곡하였다.
노선봉은 슬퍼하면서, 무작정 공격하는 것이 좋은 계책이 아님을 생각하고 주무와 의논하였다.
“오늘 성을 공격하다가 또 두 장수를 잃었네.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
주무가 말했다.
“승부는 병가지상사입니다. 오늘 적병은 우리가 퇴각하는 것을 보고 자만하여 기세를 타고 밤중에 우리 영채를 기습할 것입니다. 우리는 군마를 사방에 매복해 놓고, 중군에는 양을 몇 마리 묶어 놓고 여차여차 하는 겁니다. 호연작은 좌측에 매복하고, 임충은 우측에 매복하고, 단정규와 위정국은 뒤편에 매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편장들은 사방의 소로에 매복하게 합니다. 밤중에 적병이 다가오면 중군에서 불로 신호하여, 사방에서 일어나 적을 사로잡으면 됩니다.”
노선봉은 계책대로 장병들을 배치하고 적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왕상서와 고시랑은 제법 전략을 아는 자들이라, 방만춘과 상의하여 황숙 방후에게 아뢰었다.
“오늘 송군이 패전하여 30리를 퇴각해 하채했습니다. 아마 군마들은 피로하고 영채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기세를 타고 기습하면 반드시 전승할 수 있습니다.”
방후가 말했다.
“당신들이 의논한 것이니, 그대로 시행하시오.”
고시랑이 말했다.
“제가 방장군과 함께 적의 영채를 기습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