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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 경전의 결집, 아함경과 니까야
2021-01-09조회수 446
초기 경전
경전의 결집
보통 초기경전이라고 하면 『아함경』과 『니까야』를 들 수 있다. 『아함경(阿含經)』과 『니까야(nikāya)』라는 초기 경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해지기까지 어떤 과정으로 2,500여 년을 거치면서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결집(結集)의 의미를 먼저 알고 넘어가자. 결집이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제자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모으기 위해 경전의 내용을 함께 합송(合誦)하고 공인하기 위해 소집된 모임을 말한다. 초기에는 언어로 표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님들이 모여 합송함으로써 함께 외웠다고 하여 결집을 ‘합송’이라고도 한다.
먼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경전을 결집하기 위한 크게는 총 3번에 걸친 결집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1차 결집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상수제자였던 가섭 존자가 주관하고 아난존자가 경전(經典)을 암송했으며 우파리 존자가 율(律)을 암송하여 이루어진 결집이다. 1차 결집은 마가다국 왕사성(王舍城)의 칠엽굴에서 이루어졌으며 500명의 아라한(阿羅漢)들이 모여 결집했다고 하여 500결집이라고도 한다. 이때는 아직 문자로 경전이 결집된 것은 아니고 아난다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면 500명의 아라한들이 부처님의 직설이 맞는지를 검증하였고, 그 가르침이 부처님의 직설임이 확인되면 500명의 아라한들이 함께 합송함으로써 부처님 가르침임을 확정 짓고, 모두 함께 외움으로써 결집을 이루게 된 것이다.
2차 결집은 1차 결집이 있은 이후 100년이 흐른 뒤에 이루어졌다. 2차 결집은 바이샬리에서 700명의 비구들이 모여서 결집이 이루어졌다. 야사 비구는 바이샬리의 비구들이 계율에 위배되는 10가지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700명의 비구들을 바이샬리에 모이게 하여 10가지 계율이 올바른 것인지를 심의했다. 심의 결과 10가지 계율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과 진보적인 입장의 두 그룹이 생기게 되어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라는 최초의 근본분열이 시작되게 되었다. 이것이 부파불교(部派佛敎)의 시작이다.
3차 결집은 2차 결집이 있은 후 또 다시 100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으며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아쇼카왕(BC269~232)의 후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쇼카왕은 목갈라풋다 티사의 권유로 이 결집을 실시하였으며, 당시 마가다국의 수도인 화씨성에서 1,000명의 스님들이 모여 결집을 시행하였다.
이 결집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첫째는 재가자요 왕이었던 아쇼카왕의 후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처음으로 경전을 논리적으로 해석한 논장(論藏)이 만들어짐으로써 경율논(經律論) 삼장이 결집되었다. 셋째는 이 때 만들어진 경전을 스리랑카, 태국, 그리스, 이집트 등의 주변국으로 전법하였는데, 사실 이 결집의 목적 자체가 불법을 원형대로 보존하자는 차원이 아닌 불법을 주변국들로 전법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행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넷째는 그동안 스승과 제자 사이에 외우면서 구전되던 경전을 문자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경전의 언어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 일반 평민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쁘라크리트(Prakrit)라고 하는 토속어인 마가다어(Māgadhī)를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도 이 3차 결집 당시에 쓰여진 언어 또한 마가다어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부처님께서도 팔리어(Pāli)를 사용하셨고 3차 결집 때도 팔리어로 결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으며, 마가다어와 팔리어가 거의 흡사한 동일 언어일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언어 외에 산스크리트어(saṃskṛtā) 즉 범어(梵語)가 있는데, 이 언어는 고대 인도 아리안족의 언어이자 바라문 사제계급의 상류층 고급언어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산스크리트어를 쓰기보다는 평민들이나 각 지역의 토속어인 쁘라크리트 중에도 마가다어나 팔리어를 쓰셨다고 보고 있다.
팔리삼장, 니까야
이 3차 결집 이후 아쇼카왕은 자신의 아들이었다가 출가하여 스님이 된 마힌다 장로에게 스리랑카로 불법을 전법하기 위한 전도사로 보내면서 팔리삼장과 주석서 등을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쁘라크리트어 중에도 서북 인도 웃제니 지역의 언어를 보통 팔리어라고 하는데, 아쇼카왕이 왕자일 때 웃제니 지역의 총독으로 있었고 그 지역의 호족 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바로 마힌다 장로다. 아쇼카가 즉위한 후에도 마힌다는 어머니와 함께 웃제니 지역에 살았고, 따라서 그의 국어는 팔리어였으며, 바로 그 웃제니 지역을 중심으로 번창한 불교의 부파가 바로 상좌부 불교였다. 즉 상좌부 불교의 경전이 바로 팔리삼장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결국, 스리랑카에 마힌다 장로가 팔리어 삼장을 전해주게 되었으며, 바로 그 불교가 상좌부라는 부파불교인 것이다. 전체 부파불교 중 삼장을 완전하게 보존하는 것은 팔리어 삼장 뿐이다.
그 후 스리랑카에서는 기원전 80~94년경에 전체 팔리삼장을 보다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팔리삼장이다. 팔리 삼장은 경장(經藏, Sutta Piñaka), 율장(律藏, Vinaya Piñaka), 논장(論藏, Abhidhamma Piñaka)의 삼장(三藏)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장은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며, 율장은 스님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을 기록한 것이고, 논장은 스님들이 만든 경전에 대한 해설서다. 이 중에 핵심이 바로 경장이며, 이 경장은 다시 다섯 개의 모음집, 즉 5부 『니까야』(nikàya)로 나뉜다.
첫째가 『디가니까야』(Dãgha Nikàya, 長部)로 길이가 긴 경을 모은 것으로 3품 33경이 있다. 『디가니까야』에는 『범망경(梵網經)』(1경), 『사문과경(沙門果經)』(2경), 『대인연경(大因緣經)』(15경), 그리고 부처님의 열반 시 행적과 가르침을 모아 놓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16경), 요즘 위빠사나라고 잘 알려진 신수심법의 사념처 수행을 설해 놓은 『대념처경(大念處經)』(22경), 우주의 시작과 끝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세기경(世紀經)』(27경), 육방에 예배하는 방법이 담긴 『육방예경(六方禮經)』(31경) 등이 담겨 있다.
둘째가 『맛지마니까야』(Majjhima Nikàya, 中部)로 길이가 중간 정도인 경들을 모은 것으로 15품 152경이 있다. 『디가니까야』가 주로 문제의 제시가 많다면, 『맛지마니까야』는 그 문제에 대한 답변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비교적 자세한 설명이 동반되는 형식의 가르침이 많다.
셋째가 『상윳따니까야』(Sa§yutta Nikàya, 相應部)로 5권 56편(상윳따) 203품 2889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은 주제가 분명한 가르침들을 주제별로 모아 놓은 것이다.
넷째가 『앙굿따라니까야』(Aïguttara Nikàya, 增支部)로 170품 2,198경이 있고, 이것은 주제의 개수, 법의 수적 특성에 따라 경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다섯째는 『쿳다까니까야』(Khuddaka Nikàya, 小部)인데 이것은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 경들을 모은 것으로써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법구경』(法句經: 담마파다, 2경), 『숫타니파타』(經集, 5경)’, 『자타카』(전생담, 10경), 『비유경』(13경) 등 15개의 경전이 속해 있다.
이처럼 집대성된 팔리 삼장은 이후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에 이 팔리 삼장이 전해졌으며, 이를 남전장경(南傳藏經)이라고 하고, 이를 중심으로 남방불교가 형성되게 된 것이다.
아함경
상좌부가 이처럼 팔리삼장을 스리랑카로 전해준 것처럼 부파부교 시대에는 각 부파마다 독자적인 자파 전승(傳承)의 경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수많은 부파 마다 전승되어져 내려온 경장들이 초기에 팔리어로 문자화 되었다가 다시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되었다.
시대적으로 보면 마우리아 왕조가 무너지고 뿌샤미트라(BC 187~151)가 슝가왕조를 세운 뒤에 산스크리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였고 이때부터 산스크리트어로 불교 경전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각 부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경전들을 모두 산스크리트어로 문자화 했는데, 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함경』이 성립되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아함경』의 원본인 산스크리트 본은 소실되었다.
팔리어 경전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한 것이 ‘아가마(Agama)’이고, 아함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아가마의 음사이고 그 뜻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 온 가르침’,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상좌부 계통의 팔리어 경전이 남방의 스리랑카로 전수되어 집대성된 경전이 팔리경전인 『니까야』라면, 다양한 부파의 팔리어 경전이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된 이후 중국으로 전해져 한역된 것이 4아함이라는 『아함경』인 것이다.
『아함경』을 조금 더 살펴보면, 첫째 『장아함경(長阿含經)』은 길이가 긴 경전을 모아 놓은 경전으로 22권 30경이 속해 있으며, 주로 부파 중 법장부(法藏部)에 속해 있던 경전이라고 한다. 둘째 『중아함경(中阿含經)』은 중간 정도 길이의 경전으로 60권 222경이 속해 있고, 이 경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경장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는 『잡아함경(雜阿含經)』으로 짧은 길이의 경전이며 50권 1,362경이 속해 있고 이 또한 설일체유부 계열의 부파에 속한 경장으로 분류된다. 넷째는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으로 이것은 법수(法數)에 따라 1부터 11까지 모아 놓은 내용으로 51권 471경이 속해 있고 이 경은 대중부 소속의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이 4아함에는 『쿳다까니까야』에 있는 『숫타니파타』나 『법구경』, 『우다나』, 『자타카』(본생담) 같은 경전은 없다.
『아함경』과 『니까야』는 내용면에서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장아함경』은 『디가니까야』와, 『중아함경』은 『맛지마니까야』와, 『증일아함경』은 『앙굿따라니까야』와, 『잡아함경』은 『샹윳따니까야』와 상응한다.
오늘날의 초기 경전
이 두 가지 『아함경』과 『니까야』라는 초기 경전이 바로 우리가 현재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펴 볼 수 있는 원음과 가장 가까운 텍스트인 것이다. 이 두 가지 초기 경전 중에 우리는 그동안 주로 『아함경』에 의지해 초기불교를 공부해야 했었다.
앞에서 먼저 언급했던 『니까야』 즉 팔리삼장은 스리랑카에서 BC80~94년 집대성 된 이후에 2,000년 간 숨겨져 있었다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면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800년경부터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 『니까야』는 연구되기 시작했고, 이후 1,881년 영국에서는 빠알리성전협회를 창설하여 본격적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후 1,941년에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남전대장경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99년에 『상윳따니까야』(전재성)가 한국말로 최초 번역된 이후 『맛지마니까야』(전재성), 『디가니까야』(각묵스님), 『앙굿따라니까야』(대림스님)가 완역된 것은 최근에 들어서이다. 그러다보니 『니까야』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인 단계라고 보아도 될 정도이며,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초기경전에 대한 붐이 일고 있다.
오래도록 한국불교는 선불교와 간화선(看話禪) 중심이었고, 경전 또한 대승불교 경전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 『니까야』 완역과 함께 초기불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는 뜨겁게 한국 불교를 다시 뜨겁게 하고 있다. 초기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지견을 갖추어야만 그 위에 성립되는 대승불교와 선(禪)불교 또한 바르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임은 당연하다.
여기에서는 『아함경』과 『니까야』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다 살펴볼 수는 없기에 가장 중요한 초기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법(緣起法)을 비롯하여,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중도(中道),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삼법인(三法印) 등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기본적인 입장 등에 대해 중요한 경구들만 뽑아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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