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왕산 힐링 트레킹
(2020년 7월 4일)
瓦也 정유순
간밤에 빗물이 뿌려졌는지 촉촉이 젖은 땅을 밟고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진부면에 걸쳐 있는 발왕산을 찾기 위해 새벽길을 나섰다. 의자에 몸을 기대어 한숨 눈을 붙이고 났더니 버스는 벌써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고산준령(高山峻嶺)이 겹겹이 쌓인 산마루 위로 하얀 구름은 파란 하늘과 앙상블을 이룬다. 나들목을 빠져나와 교행하기도 힘든 좁은 도로를 미끄러져 당도한 곳은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한옥호텔 고려궁 앞이다.
<산 하늘 구름의 앙상블>
발왕산 기슭에 있는 한국전통호텔 고려궁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개최에 맞춰 6년여의 단장을 마치고 2016년 7월 개관하였다. 고려왕조의 혼을 담으려 노력한 고려궁에 사용된 주 목재는 금강송과 춘양목 등 국내산 소나무를 사용했고, 전통문화체험관 2관은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을 이축해 지었으며, 전통문화체험관 3관은 전북 익산의 김찬봉 고택을 이축해 건립했다고 한다.
<고려궁 입구>
욕심 같아서는 우리의 전통을 한번 확인해 보고자 고려궁을 둘러 보고 싶었으나 일정상 위치만 확인하고 ‘발왕산 정상’안내 팻말을 따라 숲속으로 숨어든다. 초목이 울창한 숲길은 처음부터 좀 가파르다. 강원도에 위치하는 산 중 그런대로 경사가 완만하다는 발왕산이지만 약간의 인내가 요구되는 산이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들으며 줄이 이어지지만 조금만 해찰해도 앞 사람은 밀림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발왕산 정상 이정표>
<발왕산 정상으로 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높은 발왕산(1458m)은 옛날 도승이 이 산에 팔왕(八王)의 묘자리가 있다 하여 팔왕산(八王山)으로 불리다가 발음이 변하여 발왕산(發旺山)으로 하던 것을 2007년에 변경하여 발왕산(發王山)이 되었다. 이는 일제가 우리나라 행정구역과 지명을 개편할 때 임금 왕(王)자가 들어간 지명을 일(日)왕(王)의 합자(合字)인 왕성할 왕(旺)자로 바꿔 놓은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발왕산>
발왕산의 숲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문화에 찌든 회색지대(灰色地帶) 사람들에게는 분명 신선하고 상큼한 청량감을 한없이 안겨준다. 땅에서 막 싹이 올라와 겨우 뿌리를 내린 어린 식물부터 수백 년을 버텨온 터줏대감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녹색지대(綠色地帶)로 만들어 간다. 수명을 다한 고목은 스스로 버팀목이 되어 살아 있는 다른 나무를 위해 버텨준다. 나무 끝 가지에 물을 공급해야 하는 어떤 나무는 자기의 속살을 녹여 공급했는지 속을 텅 비워준다.
<발왕산의 숲>
발왕산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숲속에 숨어 있는 동물들은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조용히 숨을 죽인다. 새로운 생명들의 희열을 바라보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물은 흘러야 제구실을 하듯 살아 있는 생물들도 세월 따라 변할 줄 알아야 생기 있고 활력 넘치는 아름다움이 넘쳐나지 않을까? 봄에 연한 잎들이 돋아나와 세월의 무게를 더할수록 짙게 푸르러 가는 그 모습이 바로 삶의 현장이고 생동(生動)이다.
<발왕산의 숲>
<큰꿩의비름>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약 2시간 남짓 기어 올라가니 정상이다. 정상에는 돌무더기 하나에 십자가 같은 정상 표지목만 있어 겉보기에는 매우 썰렁하다. 돌무더기 앞에는 우리나라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은 전국에 일정한 간격으로 16,000여 점을 설치하여 지도제작, 지적측량, 각종 시설물의 설치 및 유지관리 등을 위한 기준점으로 이용하는 국가중요시설물이다.
<발왕산 정상>
<발왕산 삼각점>
정상에서 오솔길을 따라 헬기장으로 이동한다. 길옆에는 박새풀꽃이 활작 피었다. 박새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곧게 서고 속이 비었다. 잎은 촘촘히 어긋나고 평행맥(平行脈)이 있으며 끝이 뾰족하게 넓은 타원형이고 아랫부분은 줄기를 감싸고 있다. 7~8월에 연한 황백색의 꽃이 줄기 끝에 원뿔 모양으로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를 맺는다. 뿌리줄기에는 독이 있어 농업용 살충제 또는 한약재로 쓰며, 꽃말은 진실 명랑이다. 산속의 그늘진 습지에서 자라는데 한국, 동부 시베리아,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고 한다.
<박새풀꽃>
정상에서 평화봉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실 나온 것처럼 가벼운 복장을 한 사람들을 만난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궁금증은 금방 풀린다. 우리나라 최고의 스키장이 있는 용평스키장과 발왕산 정상까지 국내 최대 길이의 관광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다. 대략 20여 분이 걸리는 시간 동안 하늘을 날아 오르는듯한 유유한 멋과 싱그러운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든 표정들이다. 정상의 편의시설인 스카이워크는 공사 중이다.
<케이블카 계류장>
평화봉에는 다래 덩굴로 만든 하트모양 조형물을 비롯한 다양한 부엉이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평창 평화봉은 2018년 평창올림픽이 끝난 후, 발왕산 정상에 평화올림픽을 기념하고 평창의 발원지라는 상징을 담아 <평창평화봉>이라 명명했으며, 세계 최초로 산봉우리에 평화를 상징하는 지명을 제정하였다. 강원도 평창이 대한민국의 평화를 이끌어 가는데 노둣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발왕산 평창평화봉>
또한 발왕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9년에 새롭게 선정한 웰니스 관광협력지구다. 웰니스(Wellness)는 well-being과 fitness의 합성어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운동뿐 아니라 정신·심리·영양 측면에서의 종합 건강을 지향’하는 관광업계의 새로운 분야로 떠오른다. 웰빙이 전반적인 의식주의 소비 전반을 범주로 한 트랜드라면, 웰니스는 ‘체력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볼 수 있다.
<부엉이 조형물>
<부엉이 조형물>
발왕산 정상부근에 서식하는 마유목은 발왕산 탐방의 핵심 코스다. 마가목 씨가 야광나무 안에 발아해 야광나무 몸통 속으로 뿌리를 내린 국내 유일의 이종(異種) 복합 일체형 나무다. 상생과 공존, 남녀의 사랑, 부모의 희생, 자녀의 효심을 느끼게 하는 오직 발왕산에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마가목이라는 뜻으로, 마유목이라고 이름 붙였다.
<발왕산 마유목>
마가목이 자라며 야광나무가 뒤틀렸는데, 그 수피(樹皮)가 경이롭다. 야광나무는 수명을 다한 수령(樹齡)이 지났음에도 마가목이 파고들어 자란 덕에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 있다. 야광나무는 ‘밤(夜)에도 꽃이 빛(光)’난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사과나무 접붙이기 밑나무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야광나무>
마유목을 보러 가는 길에는 소 멍에 같은 나무가 숲길을 가로질러 자라고 있어 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인사를 하듯 고개를 숙이고 통과해야 한다. 이 나무가 바로 겸손나무다. 시중에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나 골프 칠 때 고개를 쳐드는 순간 망한다.’는 소리가 있다. 이는 고개를 숙일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출 때 몸을 낮춰야 하는 겸손(謙遜)을 알려주는 우스게소리다.
<발왕산 겸손나무>
데크 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발왕수(發王水)라는 약수터가 나온다. 발왕수는 해발 1,458m의 대한민국 최고 높은 곳에서 솟아 나는 암반수로 바나듐, 규소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나트륨 성분이 거의 없는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물로 순백의 맑고 깨끗한 청정수라고 한다. 약수터 상단에는 ‘어머니의 물’이라는 뜻의 ‘mother`s water 1458’의 표시가 있다. 물 맛 또한 오장육부를 시원하게 씻어 주는 청량제다.
<발왕수 약수터>
약수터 바로 아래에는 ‘서울대나무’가 반긴다. 이 나무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대학교 정문의 구조물은 서울대의 랜드마크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모양을 따라 <샤>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구조물의 의미는 <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서울대학교 정문 구조물은 <국립 서울대학교>의 약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즉 국립의 <ㄱ>, 서울의 <ㅅ>, 대학교의 <ㄷ>을 이어 붙여 하나의 조형물로 만들었다.
<발왕산 서울대나무>
<서울대 정문-네이버 캡쳐>
독일 가문비나무 치유의 길을 따라 엄흥길 쉼터로 이동한다. 독일 가문비나무 지역은 오래전부터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어 살아가던 곳으로 산림이 황폐된 지역이었으나, 1968년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이들이 떠난 3.4㏊의 면적에 1,800그루의 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어 50여 년 만에 우리나라 최대의 독일 가문비나무 군락을 만들었다. 이 나무는 높이 40m까지 자랄 수 있는 침엽상록수로 일본의 대표적인 수종인 편백나무 보다 피톤치드 발산 양이 월등히 우수하다.
<독일 가문비나무 숲>
화합의 기운을 품고 있는 길인 <엄흥길>은 만물의 시작과 끝(성공)을 품은 발왕산의 기(氣)를 잇는 길로 산악인 엄흥길 대장이 직접 명명한 길이다. 엄흥길 대장은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6좌를 등정한 산악인으로 자연사랑, 인간사랑, 꿈과 희망을 품은 불굴의 도전 정신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내려오는 길도 올라올 때보다 더 경사가 급하다.
<엄흥길 이정표>
<양치류인 관중>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파괴된 자연은 내 피부에 칼집으로 흠을 낸 흉터처럼 흉물스럽다. 그 안에 살았던 생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수백 년을 함께 해온 마을이 도로 하나로 갈라지어 먼 이웃이 된 것처럼, 자연의 친구들도 인간 욕심으로 서로 생이별을 할 때 그 심정은 어떡했을까? 한 철 사람들의 유희(遊戲)를 위해 자연에 심한 상처를 내도 되는 것일까? 세상을 나 혼자만 살 수 없듯이 모든 생물과 공존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스키장으로 훼손된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