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 / 박혜숙
식목일, 어린이집에서 꽃을 심었다. 남매는 자기 화분이라고 하루에 몇 번씩 물을 주며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썩을 것 같아서 물주는 날을 적어놓은 팻말을 보이며, 5일이 들어있는 날만 물을 주자고 달랬다. 칼란디바 꽃은 10일 만에 주니 시들어, 잎이 쳐지면 그냥 물을 주었다.
이 기회에 생물학자가 되겠다는 동욱에게 여러 종류의 식물을 키우게 했다. 모기가 싫어한다는 구문초도 사오고, 친구가 준 분꽃과 슈퍼 나팔꽃 씨를 뿌렸다. 베란다가 닥치는 대로 감아 올라가는 넝쿨로 그득해졌다. 밥할 때 쌀 씻은 물을 받아 남매에게 주면 목말랐지? 물 마셔라. 정성껏 물을 주는 모습이 예뻤다.
오늘 새싹이 나왔다. 나팔꽃이 빨랫대를 타고 올라간다. 눈뜨자마자 나팔꽃 몇 송이가 피었나 보고하는 아이들의 환호작약하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식구들이 좋아했다. 요즈음 모기는 안 물리냐고 물으면 저기서 냄새가 나 못 온다면서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찡그렸다. 구문초도 분홍 꽃이 계속 피어났다.
영풍 치킨을 지나다보니 야외테이블 옆 커다란 화분에 나무처럼 꽃도 보고 해충도 막는 일석이조의 구문초가 줄을 지어 있다. 늘 지나다니면서 몰랐던 것이 직접 키우면서 눈에 띤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천문허브농장에도 꽃이 별처럼 덮여 있었고 서양에서 로즈제라늄이라 부르는 것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제라늄과 향이 비슷하다.
어느 날 남매는 주먹을 내밀며 이만한 나팔꽃이 많이 피었다고 흥분하며 나를 끌고 갔다. 꽃씨를 뿌린데서 떡잎부터 크게 올라와 남빛 나팔꽃의 두 배는 되게 잎이 나더니 흰 테두리를 두른 꽃이 나팔을 분다. 그것도 진분홍으로 아홉 송이나 피었고, 내일 아침에 필 꽃봉오리도 매달려 있다.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칼란디바도 노랑 연분홍 꽃이 피다 화무십일홍은 피할 수 없는지 남매의 한숨 속에 하나씩 말라갔다. 이젠 새잎이 새끼손가락만큼씩 올라오고 있다. 식목일 가져간 화분들은 각각의 집에서 얼마나 살아 있을까? 생명의 경이를 아이들은 배우고 있을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자라야만 제대로 살 수 있음은 꽃이나 사람이나 마찬 가지라는 것을 요즈음 네안데르탈인에서 배운다.
어느 날 독서광인 사위에게 집에 있는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물었더니 ‘미술이야기 4권’을 가리켰다. 난 그 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가 읽기 시작했다. 1권은 원시시대 동굴 벽화이야기로 인류의 역사를 유추한다. 화보 때문인지 전체를 칼라로 찍은 두껍지만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재미있는 책이다.
인류는 400~500만 년 전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베이징원인,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으로 진화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엔 네안데르탈인이 인류가 아니라고 한다. 마침 ‘아스달 연대기’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며 네안탈을 멸종시킨 전쟁이 나오고, 주인공은 사람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이그트라는 잡종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호모사피엔스와 약 10만 년 전부터 마지막 빙하기를 오랜 시간 함께했던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글과 화보까지 많이 나와 있다. 특징은 윗니의 전반적인 발달로 아래턱은 들어간 형태이며 눈썹 뼈가 발달하여 튀어나오고 뛰어난 신체능력에 튼튼하고 굵은 긴뼈와 현생인류보다 큰 뇌를 가졌다.
그동안 유럽에는 기원전 인류 조상들이 그린 동굴벽화가 도처에서 발견되어 왔다. 특히 프랑스 남부로부터 스페인 북부에 걸쳐 많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64800~66700년 전에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동굴벽화가 발견되기도 한다.
원시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교배로 76억 인구 중 1~4%는 네안데르탈인과 인류가 혼혈이라고, 2010년 ‘사이언스’에도 발표되었다.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도 호모 사피엔스의 일종이라 생각하는 학자도 있어,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라 부른다. 그런데 어째서 네안데르탈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그들보다 신체적으로 약하고 뇌도 작은 호모사피엔스는 살아남았을까?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현생인류와 전쟁이나 기후변화 같은 외적 요인, 출산율 감소나 영아사망률 증가 등으로 설명하는데, 손주를 키우는 입장이어서인지 가장 긴 유소년기를 갖는 인류에게서 해답을 찾는 설에 나는 마음이 간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미숙한 상태로, 비효율적으로 기나긴 유소년기를 보낸다. 그 시기가 길어질수록 종의 생존은 불리하다.
대략 30세 안팎의 수명을 가졌던 네안데르탈인은 신속히 자라 성년기에 도달하기 위해 몸집을 불려 사냥을 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다 멸종되거나 호모사피엔스에 흡수되었다. 반면에 호모사피엔스는 끝끝내 살아남아 현재의 인류로 진화했다. 긴 유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내면의 성장과 사회성을 습득하여 지금도 지구상의 주인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철호 교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강의한다. 제4 빙하기 이후를 사는 지금, 제5 빙하기가 올 텐데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궤도가 일정하지 않은 커다란 혜성이 충돌하여 지구는 먼지에 뒤덮이고 햇빛이 차단되어 제5빙하기가 올까? 그 때도 인류는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볼수록 의문만 자란다. 자연 속 전쟁터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로 옮겨왔다. 현대의 부모들은 남보다 앞서가는 아이로 키워 대단한 어른이 되라고 교육이 집중되고 적게 낳았으니 제대로 키우려고 혼신을 다한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영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실패한 네안데르탈인 식 사고와 다를 바 없다. 크고 강하고 당장의 이익과 생존에 매달리는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 수십만 년의 혹독한 시간 속에서 더 잘 싸우는 자가 되기보다는 생각을 통해 진화하며 행복을 꿈꾸고, 이것을 위해 공동체를 이뤄 지혜롭게 살던 인류에게서 천천히 충분히 느끼며 성장해야 한다.
정원이 어린이 집 차에서 내려 돌아오다 정원에서 시들어가는 연산홍을 보더니 물을 주자고 한다. 패트 병에 물을 받아다 듬뿍 주니 쳐졌던 잎이 올라온다. 이틀간 시든 잎들 때문에 애를 태웠는데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니 생기를 되찾은 숲에선 나무 냄새가 물씬 나고 아이들도 생기를 되찾는다.
동욱은 비가 온 후에 아스팔트로 나왔던 지렁이가 말라 죽은 것이, 땅속으로 돌아가지 못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론 지렁이만 보면 손으로 집어 흙 있는데 놓아준다. 나는 만지지도 못하는데 7살짜리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에, 한발자국씩 터득해가며 생물학자가 되는 꿈을 꾼다. 온 몸으로 느끼며 마음 따뜻한 학자가 되길 빈다.
나는 평일 오후 3시 반부터 끈에 매달려 있다. 손주 남매 육아로 묶여있는 내 불편이 싫어 어서 빨리 자라서 나를 해방시켜 달라는 하소연을 쑥 들어가게 하는 네안데르탈인이다.
[참조] 『미술 이야기』 『사이언스』 과학 잡지 서울신문 기사
다음 네안데르탈인은 왜 멸종했나? 변왕중 글
『달님 안녕』하야시 아키코 『나무 위키』사전
『과학 향기』인류최초 예술가는 네안데르탈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