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상징 읽기] 성화 속 사슴에 담긴 상징성
- 강가에서 생명의 물을 마시는 사슴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42,1)
구약시대의 위대한 왕 다윗이 노래한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사슴이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영혼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사슴이 세례와 미사 성제를 통해 깨끗해지고 거룩해지고자 하는 영혼의 갈망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예전의 세례대나 성수통, 영성체 난간(전에는 성당을 제대가 있는 구역과 신자들이 자리하는 구역을 난간으로 막아 구분했고, 미사 때 신자들은 제대 앞 난간까지 나아가 무릎을 꿇고 성체를 영했다)이며 성작 등에는 흔히 사슴이 새겨졌다. 예컨대 3세기의 작품인 로마의 성 클레멘스 대성당 제대 위 모자이크화에는 흐르는 강에서 생명의 물을 마시는 사슴이 묘사되어 있다.
중세기의 상징주의
이제까지 살펴보아서 익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갖가지 동물들이 하느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저마다 의미 있는 상징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슴은 악마를 제압하고 응징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그 시절에 나온 동물우화집을 보면, 일찍부터 사슴이 뱀을 짓밟고 응징하는 천적으로 묘사되었다. 사슴은 뱀이 눈에 띄면 구멍이나 바위틈까지 쫓아가서 그 안으로 숨을 불어넣거나 침을 넘치도록 흘려 넣고는 이를 견디지 못해 밖으로 나오는 뱀을 잡아먹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서 뱀은 악마를 뜻했다. 그리하여 뱀에 맞서 싸우고 끝내 뱀을 제압하는 사슴은 악마에 맞서 싸우시는 그리스도를, 그리고 교회를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다.
나아가, 사슴이 뱀을 제압하고 응징하는 데 사용된, 곧 뱀이 굴이나 바위 틈서리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침(물)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지혜, 정결, 복음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을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다.
한편, 그 시절의 사람들은 병에 걸렸거나 나이 든 사슴이 숨어 있는 뱀을 끄집어내어 먹는다고 생각했다. 이때 사슴은 뱀의 독을 견뎌내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는데, 그렇게 뱀을 잡아먹고 물을 마심으로써 기력을 되찾거나 도로 젊어진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물을 마시는 사슴은 구원된 그리스도인을 나타낸다고도 보았다. 이를테면 사슴이 물을 마심으로써 기운을 되찾고 도로 젊어지는 것처럼, 생명의 물에 잠기거나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소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슴이 간혹 먹이를 찾거나 이동하기 위해 깊고 넓은 강을 건널 때가 있는데, 이때 사슴들은 뒤에 가는 사슴이 앞에서 가는 사슴의 엉덩이에 머리를 얹는 방식으로 한 줄로 늘어서서 헤엄을 친다고 한다. 그러다가 앞에서 헤엄치던 사슴이 지치면 줄의 후미로 이동하고, 그 뒤에 있던 사슴이 역할을 바꿔 앞에서 헤엄친다고 한다. 그러면 지친 사슴은 뒤에서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강을 건너게 된다. 이렇듯 사슴들이 서로 도와 가며 강을 건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삶의 여정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려움이 닥치면 약해지고 지친 이들과 서로 도우며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윌튼 두 폭 제단화’ 이야기
‘윌튼 두 폭 제단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14세기 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화가 있다. 그중 한 폭에는 성모 마리아와 그분의 품에 안겨 계신 아기 예수님, 그리고 이 두 분을 에워싼 천사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천사들의 가슴에는 사슴 모양의 브로치가 달려 있다. 이 사슴 브로치에는 위에서 살펴본 상징성과는 뭔가 다른 사연이 담겨 있을까.
이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 영국에 있던 여러 왕국 중 하나인 잉글랜드의 왕은 리처드 2세였다. 두 폭의 그림 중 다른 한 폭에는 리처드 왕이 무엇인가를 봉헌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나이 어린 왕은 무릎을 꿇고 있고, 그 뒤에는 성 요한 세례자, 증거자 성 에두아르도, 순교자 성 에드문도가 서 있다. 성 요한 세례자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안고 있고, 성 에두아르도는 자신이 어느 가난한 순례자에게, 그런데 실제로는 성 요한 복음사가에게 주었다는 반지를, 성 에드문도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화살을 들고 있다. 잉글랜드의 어린 왕이 왕과 왕국의 수호성인들과 함께 성모자께 무엇인가를 봉헌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어린 왕이 입은 주홍색 화려한 겉옷을 자세히 보면 옷감에 사슴들이 황금색으로 수놓아져 있다. 그리고 그 앞섶에는 흰색 사슴 브로치가 달려 있다. 이 흰 사슴은 리처드 2세를 나타내는 표장이다.
여기에서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둘러싼 천사들의 사슴 브로치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려나간다. 천사들은 11명인데, 모두 리처드 왕의 표장인 흰 사슴 배지를 달고 있다. 그러니까 천사들이 리처드 2세가 다스리는 나라 잉글랜드에 대한 하느님의 가호를 기원한다는 뜻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흰 사슴이 리처드 2세 왕의 표장이라는 것은 그렇다 치고, 천사가 11명이라는 점이 의아하다. 중세기의 종교화나 그림을 그리는 관행에서 보자면, 11은 부정적인 뜻을 함축하는 숫자, 그래서 어느 면에서는 이례적인 숫자인 셈이다. 하필이면 왜 천사가 11명일까? 이는 성화를 그리던 당시에 리처드 2세의 나이가 11살이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그러니까 리처드 2세는 11살 나이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성모자께 잉글랜드를 봉헌하면서 그의 통치를 시작한 것이다. 리처드 2세는 자신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나라를 성모자께 맡겼다는, 이를테면 잉글랜드는 이전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지참금’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었고 특별한 방식으로 성모님의 보호를 받아온 오래고도 아주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데 이 전통을 이어갔다는 점을 11명의 천사들이 말해 주는 것이다. 왕은 실제로 “잉글랜드는 어머니께 드리는 지참금입니다, 그러하오니, 거룩하신 동정녀시여, 마리아 님이시여, 당신께서 이 나라를 다스려 주소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징성은 한 천사가 들고 있는 흰색 바탕의 깃발에 새겨진 붉은색 십자가 – 이 깃발은 주님 부활의 상징이다 – 로 완성된다. 그런데 이 성화에서는 이 십자가가 또한 잉글랜드의 대표 수호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 제오르지오의 십자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십자가를 매단 깃대의 꼭대기에 있는 지구 모양의 구체(球體)가 곧 잉글랜드를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잉글랜드와 관련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에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겨 계신 아기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어린 왕이 무릎을 꿇어 경건하게 바치는 잉글랜드의 깃발을 받으려 하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0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