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재 개인전
연필로 그려진 이미지에 대한 주석
일정한 높이를 갖고 있는 화면은 마치 돌출된 벽처럼 다가온다. 따라서 화면은 정면성에
호소하는 표면에 그려진 이미지뿐만 아니라 패널/캔버스의 사방 귀퉁이 모두가 화면으로서 시각적인 장치가 되었다.
글 : 박영택(미술평론)
[2011. 6. 8 - 6. 14 현갤러리(인사동)]
[현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6번지 T.02-723-5554
고형재는 사각형의 패널에 핸디코트를 일정하게 발라 올렸다. 그 위에 물과 본드, 안료를 섞어 칠해 단색의 색 면을 만들고 사포로 갈아서 독특한 질감을 연출한다. 핸디코트가 발라진 방향, 그러니까 붓, 혹은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덮어나가고 칠한 흔적이 깔린 바탕 면은 표면에 칠해진 모노크롬 한 화면과 상반된 차이를 만들어 보인다. 단일한 색채의 층 아래는 다양한 방향성과 질감의 층 차를 지닌 물질의 다채로운 표정을 지니고 물처럼 흐른다. 그것은 회화적인 화면이면서도 동시에 색채를 지닌 물질, 인공의 오브제로 다가온다. 그림이면서도 독립된 사물이고 하나의 사물이면서도 이미지와 색채를 머금은 회화, 그 둘 사이를 넘나든다. 특히 일정한 높이를 갖고 있는 화면은 마치 돌출된 벽처럼 다가온다. 따라서 화면은 정면성에 호소하는 표면에 그려진 이미지뿐만 아니라 패널/캔버스의 사방 귀퉁이 모두가 화면으로서 시각적인 장치가 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모두 5면 회화가 되었다. 표면에 그려진 이미지를 보다가 문득 시선을 이동시켜 주변 공간을 더듬어나가면서 화면이 확장되어가는 체험을 할 수 도 있다. 정면에 그려진 이미지와 측면의 물질적 장치를 동시에 떠올려보기도 하고 이미지가 지워지고 망각되면 물질의 궤적이 감촉되는 그런 화면이다. 시각적이면서도 동시에 무척 촉각성이 강조되는 그런 화면이다.
작가는 그 바탕 위에 연필로 특정 이미지를 재현했다. 그것은 실제 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미지다. 사진과 영상, 혹은 인쇄된 이미지로 접하는 세계상이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이미지들을 채집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전과 달리 직접적으로 접하는 세계 대신 이미지로 접하는 세계를 실세계로 대하며 산다. 이미지가 실제를 대신하고 이미지가 현실이 되어버리고 이미지 자체가 결정적인 것이 되어 버린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오늘날 회화, 미술은 그 이미지를 다루고 있고 이미지에 말을 건네며 우리들에게 그 이미지가 과연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이미지 자체가 현실이 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 시뮬라크르, 모상의 세계에서 이미지가 무엇이냐를 질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고형재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이를 연필을 이용하여 그렸다. 이미지는 다양한 의미, 주제를 거느린다. 그것은 루이뷔똥 핸드백에서부터 로마의 콜로세움 건축물, 비행기, 사과, 의자와 동물과 장수하늘소 등의 이미지다. 소비사회의 기호, 생태와 환경문제, 교회의 수난사, 소통의 문제 등등을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기호들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일상이 되어버린 문제의식이자 동시대 현실의 핵심적인 이슈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슈는 당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문제이다. 작가는 그런 인식과 생각의 여러 갈래를 이미지와 회화적 장치로 물질화시켰다. 그 이미지는 마치 독립된 단어로 기능한다. 보는 이들은 그 단어/이미지를 매개로 해서 모종의 상황을 연상하도록 유인된다. 단색의 바탕위에 단독으로 설정된 이미지는 작가가 지닌 관심과 인식의 폭, 그 반경을 반영하는 동시에 이미지를 통해 사유하는 문화를 은연중 반추케 한다. 그만큼 이미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부정 할 수 없다. 작가는 이미지를 통해 삶에서 연유하는 다양한 문제와 관심사를 접하고 생각하고 이를 다시 이미지 작업을 통해 확인하면서 말을 건넨다. 그것이 작업이다.

黑.色-2011나비1,2,3

黑.色-인형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