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지리산 여행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창세기 3장 19절 말이다. 이제 흙만 덮으면 끝나는 人生七十古來稀. 칠십 영감이 7월 염복에 집에 엎드리고 앉아서 사드 반대, 세월호 유족 보상법 같은 사람 열 올리는 뉴스 들으며 속만 부글부글 끓이고 살 수 없다.
계곡물이 얼음같이 차가워 그 속에 몸을 담그면 이빨이 덜덜 떨린다는 곳이 대원사 옆 가랑잎 초등학교 근처 계곡이다. 그래 집에 두고 오면 근심 덩어리, 같이 나오면 짐 덩어리, 혼자 내보내면 걱정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원수 덩어리라고 불리는 우리 영감 몇이 뭉쳤다. 2박 3일 지리산 여행을 떠난 것이다.
분당서 만나 한달음에 덕유산 돌아드니, '나는 뭐냐? 그러면 나는 집 지키는 스피츠냐'라고 공갈치던 내무반장 두고 떠나온 것이 참말로 시원하다. 삼식이 영감들이 중고생 시절로 돌아가 실없는 농담에 차가 떠나가도록 박수 쳐가며 웃었다. 근래에는 타계한 친구도 있다. 우린 잠시 누구누구 살아생전 에피소드 떠올려보았다. 이제 우리는 돈도 명예도 소용없다. 오직 건강하고, 친구끼리 서로 덮어주고 다정하게 살면 된다.
육십령터널 지나니 지리산 보인다. 지리산아! 너 본지 오랜만이다. 서울 근방 시시하게 생긴 것들만 보다가 모처럼 산답게 생긴 산을 보니, 늙어 쪼글쪼글한 얼굴에 검버섯 군데군데 피긴 하였지만, 반가운 감회가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른다. 우리는 지리산 밑에서 자란 진주 토종 문딩이들이다.
윈지서 6천 원짜리 추어탕 시키니, 갈치구이가 따라 나온다. 그거 반갑다. 그거 서울서는 세종대왕 초상화 한 장 뽑아야 한다.
남명 선생이 '지리산 양단수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겨세라' 하고 읊은 바로 그 물이다. 아이야 무릉이 어디냐. 우리는 軍에서 배운 영 점 오 초 빠른 동작으로 풍덩 무릎을 물에 담갔다.
반나절 물놀이하고 밤에는 진군이 들고 온 양주 비웠는데, 마침 펜션 여주인이 고려대 후배다. 밤늦도록 지리산 물소리 들으며 많은 이야기 나누었고, 아침엔 후배가 커피와 과일주스 서비스 해주었다.
그 후 진주 중앙시장 해장국 한 그릇 한 후 시장 둘러보았는데, 내 고장 7월은 풍개가 익어가는 시절. 저 때깔 저 빛깔이 어쩌면 저리 고울까?
좌판에서 갈치 여섯 마리 만원 한다는 놀라운 사실도 발견한 후, 벚꽃으로 유명한 사천 선진도 둘러보았다.
사진 좌측부터 필자, 최박사, 이장군, 진사장, 정교장
여기가 전에 KBS 피디 하다가 나중에 수원 재벌 딸한테 장가들어 돈벼락 맞고, 그 후 신발 수출로 떼돈 번 진동인이 고향이다. 그의 생가터 둘러보았다. 臥龍(들어 누운 용)이 남해에 入水 하기 전에 고개를 살포기 든 곳이 선진이다. 진군 집터는 와룡의 용머리 부분이다. 부친은 일본서 학위 받아 개업한 의사였고, 당숙은 선진에 학교를 세운 유지다.
'자네 집터 가서 향 하나 피우자'
거사가 제의하자 그가
'내가 죽었나?'
질겁을 한다. 원래 향과 꽃은 부처님 부모님처럼 존경하는 분 앞에 올리는 것인데, 모르는 모양이다.
멀리 전춘식 군이 시공한 사천대교가 보인다. 군은 일찍이 쿠웨이트에 나가서 천육백 명 거느린 현장의 소장이었다. 건설업으로 자수성가한 친구다.
'가만있자 일마가 오는가 안 오는가?'
'온다 캤다.'
'갸가 딴 차 타고 온다고?'
'자랑하려고 벤츠 타고 오면 우리 5분간 말도 하지 말자.'
'눈길도 주지 말고.'
'지가 그릇이 몇 냥이나 되는지 꺔냥을 한번 달아보자.'
이렇게 도원결의를 했는데, 눈치 빠른 전군이 오자마자 미조에서 5킬로짜리 장정 허벅지보다 큰 민어를 사는 바람에 허탕되고 말았다.
'어이 춘식아! 니 없을 때 먼저 입에 침 튀기고 욕한 사람이 진동인이다. 결의 어기고 제일 먼저 배신 때린 자가 진동인이란 것만 알아두어라.'
'도원결의 좋아하네. 문둥이! 보나 마나 김 거사 네가 내 욕 젤 많이 했을 거다.'
'하모! 척하니 삼척이네. 니가 처음 왔을 때 나는 5분간 눈길도 한번 준 적 없다.'
좌우지간 이렇게 전사장 덕에 여름 보양식 최고라는 민어 맛 좀 보았다.
'가만있자 해수욕도 해야지'
남해 송정 해수욕장으로 가서 2차 물놀이도 하였다. 백사장에 새끼 대합조개가 많다. 우리가 청춘시절에는 데이트도 한 곳이다.
'가만있자 이종규 생가도 둘러보자.'
하동 양보면 이명산 아래 종규 집 터가 있다. 거기 다솔사와 전 재무장관 정영희 씨 출생 기념으로 부친이 심은 편백숲이 요즘 유명하다.
그 산 아래서 정영희 장관과 정구영 검찰총장을 위시하여 장군들 무더기로 나왔다. 엄기표, 이용순, 이종규, 정순진 장군, 그리고 해군참모총장 문정일이 나왔다. 이렇게 산 밑에서 별이 무더기로 나왔으니, 꼭 한번 가서 풍수를 볼만하다.
차를 적당한 위치에 세우고 둘러보니 산이 참 특이하다. 근처 산 봉우리들이 모두 둥글둥글하고 원만한데, 그 가운데 主山인 이명산은 자로 잰 듯이 반듯한 삼각형이다. 주변 산들 절도 있게 거느린 걸 보니 장군이 줄줄이 나올만하다. 이종규도 사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동네에서 장군된다고 예언했다고 한다. 人傑地靈이라고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면장도 해 먹는다. 이만하면 풍수로 상격이다.
여기서 쌍계사로 가서 최치원 선생이 쓴 진감국사 비를 꼭 보아야 했다. 내 집필 중인 원고에 최치원 선생에 대한 글이 있다. 그 앞에서 사진 하나 찍어 책에 담아야 한다. 그런데 앞 차에 탄 친구들 생각이 다르다. 쌍계사고뭐고 진주 한식집에 가서 회포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모처럼 맛깔난 고향 요리 맛보고 싶단다. 그래 고향 요리 즐기고 이튿날 새벽에 모교를 방문했다. 5십년만에 교정에 서 본 감회 새로웠다. 그동안 누구는 장군이고, 누구는 교장이고, 누구는 작가고, 누구는 사업가다. 인생 백 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지나갔다. 내가 즐겨하던 평행봉은 이젠 보이지 않았고. 조회 때마다 보던 비봉산도 왠지 낮설고 초라해보인다. 늙은이 일행이 교문을 나서자, 마침 떼 지어 등교하던 학생들이 선배인 줄 짐작한 모양이다. 착하게 인사를 올린다.
그 다음 상경 코스로, 산청 약초시장엘 가서 약초차 맛 음미하는데, 최상호 박사 부인 안숙선 씨가 근처에 있다가 신랑과 통화하고 휑하니 날아온다.
다음에 칠선계곡 들러, 산채비빔밥 먹은 후, 잠시 계곡에 내려가 탁족했다. 칠선계곡은 설악산 천불동 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이름난 곳이다. 골짜기 가득한 낙락장송 장관이고, 산은 한없이 높고 골은 한없이 깊다. 그 속에서 발 씻으며 신선 놀음 한번 제대로 한 후 상경했다. (2016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