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ROTC8기총동기회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여행/등산 정보 스크랩 [유럽여행 5국 10일/ Paris]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Mona Lisa>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60 09.03.07 10: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유럽여행 5국 10일/ Paris]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Mona Lisa>

2007/09/15 SATUR

 

아내의 예언이 증명되었다.

유럽여행기를 꼬물꼬물 대며 쓰는 내 꼴을 보던 아내가 따끔하게 한 말이 있다.

" 그렇게 끌면서 쓰면 1년에 어디 끌나겠수. "

아내의 말 대로다.

1년이 되어간다.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 한 달 만에 쓰는 사람은 한 달에 여행을 끝낸 거다.

1년을 끈 사람은 1년 여행은 한 거다.

어느 쪽에 풍요한가는 자신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나의 여행은 아직 진행 중이며 행복하다.

날마다 이 기행문을 쓴다면 한 달 안에 끝냈겠지.

갔다 온 사진만 올린다면야 그렇다.

글을 쓰다가 다른 생각으로 다른 글을 쓸 때가 있으며 여행기를 쓰면서 지루할 때도 있다.

남이 다녀온 감상이 궁금해서 들어가서 비슷하게 꾸며 보기도 하고 그도 꾀가 나면 내 나름 내 고집으로 쓰기도 한다.

다시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꼭 거치는 모나리자 앞으로 가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딱 10분이다.

사람들 북새로 제대로 살펴 볼 겨를이 없다. 사실 살펴본다고 모나리자를 가방 속에 넣어 갈 수는 없다.

다른 멋지고 훌륭한 그림이 많건만 왜 이 그림에 사람이 몰리는 것일까.

다른 벽면에는 여럿의 그림을 전시하는데 이 그림은 벽 한 면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더구나 이 그림은 프랑스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요 이탈리아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건만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그림을 보고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기쁨인가 슬픔인가 차가운 웃음일까 어이없는 웃음일까.

아리송한 노릇이다.

남이 아끼는 만큼 존중은 하여야 하건만 모나리자와 대면은 사람 많구나 이 정도 그림에 사람이 왜 몰릴까 하는 의심이었다.

세상은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나리자 앞에서 기웃대는데 모나리자 역시 그들을 본다.

서로 하는 말은 왜 왜 왜 나를 보나.

이제라도 나는 모나리자를 찾느라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모나리자

 

유채, 포플러재,77cm×53cm

레오나르도·다·빈치(1503 - 1506년 "모나리자"(영: Mona Lisa(Monna Lisa),이: La Gioconda,불: La Joconde)가 그렸다. 유화. 내관적인 표현을 가져 심록의 의상을 입은 한 명의 여인으로 아리송한 미소의 반신의 초상이다. 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초상화이며, 이 정도로 칭찬되고 모사된 그림의 예는 볼 수 없다. 모나리자는 현재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역사

레오나르도는1503년에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3, 4년이 걸렸다. 완성 후도 레오나르도의 수중에 오래 있다가 프랑스의 프랑스와1세의 초대에 의해 레오나르도와 함께 안보워즈성 가까이 있는 쿠루 관으로 옮겨졌다. 그 후1510년 무렵에 프랑스와 1세가 사서 퐁텐느 블로우 궁전에 유치되었다고 여겨진다.

그 후 루이14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에 옮겨 프랑스 혁명 후에는 현재의 전시장소인 루브르 에 보관됐다. 그 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침실에 가지고 있기도 했고 보불전쟁이나 제1차 세계 대전,제이차 세계대전시에는 프랑스 국내의 안전한 장소에 옮겨 다녔다.

1956년 무렵에는 산의 침식으로 그림 아랫부분에 눈에 뜨이는 상처가 생겨서 모나리자는 현재와 같은 방탄유리 방범 케이스에서 보관하여 습도, 기온 이 관리되는 상태로 있다.

1962년에는 미국에 대출하여 뉴욕과 워싱턴D.C.에 전시되었다. 일본에서는 1974년에 도쿄의 우에노의도쿄 국립 박물관에서 전시됐고 그 후 모스크바에도 전시되었다.

 

도난

 

1910년 당시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품을 손상시키는 범죄가 잇따르던 풍조에 대비하여 보호 유리로 된 케이스에 전시를 했다. 그러던 다음 해인 1911년8월22일, 루브르 미술관으로부터 모나리자가 도난당해 행방불명이 되었다. 피의자로 시인기욤 아포리네이르하지와 그의 친구 파브로 비 과소가 체포되었다가 1주일 후에 풀려났다.

모나리자가 행방불명이 된 2년 후 1913년12월12일에 보호 유리를 설치한 직공이었던 비첸트 페루지아가 피렌체의 화상에게 팔려다가 잡혔다.

페루지아는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에게 빼앗겼던 이탈리아의 문화유산을 되찾는 목적으로 훔쳤다"라고 증언했지만 실제로는 그는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말케스 바르피에르가 고용한 자로서 말케스는 위조품을 만들어서 미국의 부호들에게 강매하고 있었던 것으로 페르샤의 죽은 뒤 일 년 후에 공표된 그의 증언에서 밝혀지고 있다. 되찾은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에서 전시된 후 프랑스에 반환되었다.

 

미학적 견해

인물을 버스트 업의 앵글에서 파악해 원경을 배경으로 배치해, 머리를 정점으로 해 피라밋드장에 인물을 둔 모나리자의 구도는 훗날의 초상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초상화로서 처음으로 공간의 앞에 인물을 그렸다. 얼굴, 손, 어깨는 부드러운 빛을 받고 있으며 이 광채가 숨은 구면과 원형의 구도를 분명히 하여 화면이 살아났다. 배경은 원근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이것으로 레오나르도는 모델과 풍경을 통합적으로 그리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 모델의 미소를 포함하고 이러한 모두가 조화를 이룬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점은 레오나르도가 가지고 있던 인간과 자연의 우주적인 연결의 구상이 반영되고 있어 그의 재능과 선견을 영원히 기록하고 있다.

모나리자부분도 모나리자스마일이라고 불리는 그 독특한 웃음은 예부터 많은 연구자를 포로로 잡았다. 순수하게 매력적인 사람을 그렸다고 하는 말도 있고, 잔웃음이라고도 하고, 슬픔을 숨긴 웃음이라는 이도 있다. 지쿰트·Freud는 레오나르도가 모친에게 느낀 성적인 매력이라는 해석도 남긴다. 그러나 레오나르도의 시대에는 이러한 이상한 미소도 초상화에 잘 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였다. 이 표정을 감정 인식 프로그램으로 분석하니 83%의 행복,9%의 혐오,6%의 공포,2%의 분노라고 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또 표정이 좌우로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일도 자주 지적된다. 왼쪽은 슬픔, 오른쪽은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의견도 있고 레오나르도가 동성애자라는 설과 관련짓고, 왼쪽이 남성, 오른쪽이 여성으로 하는 의견도 있다.

모나리자의 배경만을 꺼내보면 하나의 풍경이 나타난다. 이 배경에는 굽은 길과 멀리 보이는 다리 이외는 인간의 흔적이 없다. 광대한 경관이나 빙산이나 알프스의 풍경을 그렸다는 말도 있으나 아무래도 레오나르도의 이상의 세계가 그려져 있는 것 같다. 또, 라화에로 산티에 의한 모나리자의 모사에는 인물의 좌우에 기둥이 그려져 있는 것부터, 모나리자의 양단은 잘라졌다는 설도 있다. 희미한 윤곽, 우아한 조형, 명암의 극적인 변화, 전체가 침착한 분위기를 포함해 레오나르도의 형태이며 이러한 특징은 그대로 그 후의 초상화의 한 타입이나 되었다. 또 우측의 경치에 대해서 좌측의 경치는 분명하게 낮은 것으로부터 배경은 후에 추가된 것이라고도 생각되고 있다.

 

모델

조르죠 바자리라고 하지만, 133인 예술가의 작품과 생애를 소개한 미술가 열전에서는 퐁텐느 블로우 궁전에 있는 모나리자에 접해 모델을 프란체스코 델 죠콘드라고 했다. 모나는 부인, 리자는 에리자벳타의 애칭을 의미하고 있다. 덧붙여서 이탈리아어의 명칭 La Gioconda는 죠콘드 부인이라는 의미이다.(덧붙여 퐁텐느 블로우 궁전의 재산목록에는 "사의 베일을 휘감는 궁정 부인"이라고 있었다고 한다.)

프란체스코는 실재한 유복한 인물이며, 당시 피렌체 안에서 정치적으로도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내 델죠콘드(리자 게라르디니)에 대해서는1479년10월16일에 태어나 1495년에 프란체스코와 결혼한 것만 알려지고 그 밖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또 당시 초상화의 복장, 배경, 머리 모양에는 모델을 암시하는 모티프가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에는 복장이나 머리 모양으로부터 명확한 특징을 얻지 못하고, 배경은 한 풍경이 그려져 있을 뿐으로 특정의 개인을 나타내는 암시를 거의 얻을 수 없다.

이 때문에 20세기에 들어가고, 바자리의 기술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그림의 모델은 죠콘드는 아니라는 이설이 나왔다. 이것은 아래서 말한 의문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통상 그리는 그림에 대해 대량의 스케치나 메모를 남기고 있지만, 이 초상화에 대해서는 만년까지 떼어 놓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었음에도 관련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그 3분의2가 없어졌기 때문에 기록이 없다는 확증도 없다).

그림을 그렸던 1503년 당시에 리자는 24세였으나 그림 속 인물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프란체스코의 아내가 기록한 바자리는 1511년의 태생이며, 레오나르도에도 리자에도 만났던 적이 없었다. 또 모나리자를 실제로 보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레오나르도 생존중의 1517년에 크루의 관을 방문한 인물(루이지 다라고나추 추기경의 비서 안토니오 데 베아티스)이 쥬리아노 데 메디치의 의뢰에 의해서 그렸던 피렌체의 부인의 초상을 본 것을 기술하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의 귀부인의 역할은 "위대한 쥬리아노 데 메디치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설왕설래에서 20세기에 들어서 모델에 관한 여러 가지 이설이 주창되게 되어 아래 인물이 모델로서 추정되었다.

 

코스탄트 다바로스 … 당시 쥬리아노 데 메디치의 애인이었다. 나폴리공왕비 .다만1503년 당시45세로 연령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것은 레오나르도가 거짓말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사베라 다라고나 … 밀라노공 왕비. 연령이 그림과 가까워서 같은 구도의 유화 "아라곤의 이자베라의 초상"이 있다. "아라곤의 이자베라의 초상"은 스위스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서 자세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자베라·데스테 … 만트바 후작 부인. 레오나르도의 데생에 "이자베라 데스테의 초상"이 있다. 이 뎃셍은 옆얼굴이지만 의상, 얼굴, 체형이 모나리자에 쓰여 있는 여성과 아주 비슷하다(레오나르도의 손에 의한 데생일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다).

 

그 후도 모델에 관한 억측은 멈추는 지 않고서 "이 초상화는 프란체스코 델 죠콘드, 즉 남성의 초상화이다"라고 하는 극단적인 설까지 나타났다.

 

또 벨 연구소의리리안 슈바르츠 박사는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고 하는 그림과 모나리자의 얼굴의 특징을 디지털 해석한 결과를 따라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는 견해를 냈다. 그녀의 이 이론은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는 그림과 모나리자의 얼굴의 특징을 디지털 해석한 결과에 근거한다. 양자를 컴퓨터를 이용해 합성하면, 얼굴의 특징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면 버릇이나 기호 등에서 특징이 닮은 그림이 되는 것도 많아, 레오나르도 자신의 "모든 초상화는 화가 자신의 자화상에 통한다"라고 하는 말을 증명했다고도 볼 수도 있어 반드시 레오나르도가 모나리자의 모델인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은 2008년1월14일 모나리자의 모델이 피렌체의 상인의 아내 리자인 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발견된 것을 밝혔다.1477년에 인쇄된 소장 고서의 난외에 피렌체의 공무원에 의한 "레오나르도는 지금 리자 델 죠콘드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라고 하는 기입이 있었다. 이 기입은 1503년10월에 되어 레오나르도가 모나리자를 그리고 있었던 시기와 겹쳐, 모델에 관련되는 논쟁에는 일단 종지부가 맞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면 왜 빨리 의뢰주에게 그림이 인도되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그 외

몇 번이나 X선 해석을 한 결과로 현재의 그림 아래에는 적어도 3종류의 모나리자가 숨어 있는 것이 알려졌다.

이 그림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다다이스트이나 슈르레아리스트들은 이 그림을 변경하거나 이 그림을 재료로 한 풍자화 등을 많이 제작했다 .예를 들면,마르셀·듀살은 여성의 얼굴에 수염을 덧붙인 "L.H.O.O.Q."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을 만들고, 앤디·워홀는 콜라쥐 한 포스터를 작성했다. 듀살은 게다가 자신의 개인전의 초대장에 모나리자의 복제화를 실어 "L.H.O.O.Q. 면도질 후"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

모나리자에 그려져 있는 여성에게는 눈썹이 없는 것이 자주 지적되며 이것을 근거로 그림이 미완성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마침내 2007년에 고해상도 카메라의 분석에 의해서 눈썹의 자취가 확인되었다.

 

인용한 출처

일어판 百科事典『'E'B'L'y'f'B'A(Wikipedia)』

http://ja.wikipedia.org/wiki/%E3%83%A2%E3%83%8A%E3%83%BB%E3%83%AA%E3%82%B6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