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송년파티
“우와 여기 실내놀이터도 있네. 오늘 아이들 대신 내가 놀아야 겠다. 예은아, 오늘 이모랑 같이 놀자.”
자한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떠있다. 어릴적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일까? 아니면 아이들 키우면서 경험한 재미일까? 평범한 한국 가정의 엄마들과는 사뭇다른 반응이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아이가 놀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을텐데, 이 반응은 다르다. 마치 자신이 오늘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기대에 찬 반응. 아이들보다 더 들떠 있는 자한이 엄마를 보며, 오늘 송년파티의 장소를 잘 정했다고 생각했다.
‘윗동네, 아랫동네 가족on’의 마지막 모임, 크리스마스 송년파티가 시작되었다. 한 해를 마감하며 그동안 같이 동고동락했던 또 하나의 가족들. 그들과 함께 2022년도의 마지막을 같이 할 수 있다니, 감사하다. 이 모임이 지속되기까지 여러 난관도 있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다름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얼마전 모임에서 한 아이가 놀이에 심취했는지, 노는 도중 오줌을 싸 버렸다. 아이의 엄마는 놀라지도 않은 표정이다. 한참을 아이에게 추궁을 하는데, 말이 기가차다. “니, 왜 말을 못하니, 선생님이 니 말을 안 듣니? 다른 아~들이 니를 괴롭혔니?”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선생님, 죄송해요. 우리 아이가 그만 실수를 했네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진다.
엄마는 모임에서 자신의 아이가 가장 어려서,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를 좀 더 챙겨주길 바랬다고 한다. 아이는 5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3번째 어린이집을 옮겼다. 옮기는 과정이 모두 비슷하다. 어떤 사건이 있었을때, 엄마는 자신이 탈북자여서 우리 아이를 홀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과하게 반응하고, 결국 이탈하고. 자신도 안다. 분명 우리안에 북한이탈주민들을 향한 차별이 있기에 이런 반응도 있을 것이다.
“아 배고픈데, 우리 먼저 먹으면 안돼?”식사는 차려졌는데, 와야할 윗동네 사람들이 늦어진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모두들 차를 끌고 나왔는지,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언니, 우리 먼저 먹읍시다.”당찬 혜숙이가 아이들을 먼저 먹여다 된다고 하며, 피자 한판을 뜯는다. ‘아니, 이 사람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자기들이 먼저 먹겠다고?’ 내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배고프지, 언제 올지 모르니, 일부만 개봉해서 아이들과 먹어!”
오늘만이 아니다. 아무래도 모임이 아랫동네 사람들이 기획하다 보니, 윗동네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랫동네 사람들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늦게 오게 되고, 빠지게 되고. 어쩌면 마을활동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기다림, 인내가 아닐까? 한 해를 기다리다 보니, 아랫동네 사람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이른게 어쩌면 당연하다.
윗동네 엄마들이 왔다. 아랫동네 엄마들은 언제나처럼 이들을 환대한다. ‘예은이 엄마, 어서와요. 예은이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제 남자친구예요!””자한이 엄마, 아이들은?””아이들은 아빠집에 갔어요. 오늘은 제 남친하고 왔습니다.”아이들은 전 남편에게 보내고, 아이들 없이 남자친구와 같이 왔다니. 내 생각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 생각해 본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남자친구와 함께 보내고 싶은 것이 자연스런 마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마 우리를 위해 만두를 정성스레 빚고,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우리 모임을 소개하고, 우리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신나하며.“예은아, 이모와 함께 방방이에서 뛰어보자!”
불편함. 어찌 편할수 있겠는가?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만나는데. 평생을 다른 문화, 체제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나는데. 살아온 만큼의 세월이 있으면 모를까. 2022년 그 불편함에도 같이 살아 온 윗동네, 아랫동네 사람들. 수고 많았습니다. 2023년에도 우리 더 알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