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린 2,1-5; 루카 4,16-30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2020.8.31.; 이기우 신부
어제 주일의 강론을 준비하기 위해서 저는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정체성의 심리학」이라는 책이었고,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습니다.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인 박선웅이 지은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극복한 이야기와 대학에서 정체성 심리 연구 과정에서 만났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암환자뽀삐’라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조윤주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8년차 암환자인 그는 24세에 암에 걸렸고, 29세에 암이 재발했지만 암 환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 32세에 ‘암밍아웃’했답니다. ‘암밍아웃’이 무슨 뜻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암환자임을 커밍아웃했다는 뜻으로 새기고 읽어 내려갔습니다. 조윤주는 암이 자신에게 준 선물도 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진짜로 내가 죽음에 가까워졌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그러면서 생각을 했던 게 세상의 중심에 나만 두자! 정말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됨과 동시에 제 감정에 솔직해졌고 울고 싶을 때 좀 울 수 있게 됐고 웃고 싶을 때 더 크게 웃을 수 있게 됐고 거절하는 법을 배웠어요. ‘이 재밌는 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이 정도는 거절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삶의 질이 수직상승한 것 같아요. 그게 진짜 크게 저한테 와닿았고, 그래서 좀 더 행복해진 것 같아요. 암이 저한테 준 선물이 있다면, 강제로 제 몸을 돌이켜 볼 수 있고, 두 번째로는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죠. ‘너는 뭐가 즐겁니?’, ‘너는 뭐가 행복하니?’에 대해서 계속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됐죠. 그 두 개가 굳이 꼽자면 암이 저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이 책의 저자 박선웅은 심리학자로서 조윤주라는 암 환자의 정체성을 이렇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조윤주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즉 자신의 삶이 유한함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천명하고 삶에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생각하며 우선순위를 따지게 되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에 따른 삶을 살면서 행복해졌다. 24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암에 걸렸음에도 암이 자신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인생 이야기는 단순히 삶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자신 안에 품는지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저는 사제로서 심리학자 박선웅의 해석을 한 겹 더 해석을 해서 이렇게 알아들었습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깨닫게 해 주었으므로 암이 준 선물이라는 말은 옳습니다. 하지만 암에 걸렸기 때문에 그가 삶의 주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원래 삶의 주인이었는데 암이 그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눈을 뜨게 해 주었을 따름입니다. 또 사실 조윤주라는 암환자에게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인생의 주인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중심이 하나뿐이라는 가설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다 세상의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연못에 조약돌을 던지면 돌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동심원이 연못 전체에 수도 없이 많이 생겨나서 퍼져나가듯이, 우리 모두는 각자 중심으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절반이라는 말을 제가 한 적이 있는데, 세상 전체가 나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들의 세계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야 나는 70억 인구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 없어도 세상은 얼마든지 잘 돌아갑니다. 바오로도 사도직을 처음 맡았을 때 이 객관적 자아 정체성의 덫에 빠져서 극도로 마음이 위축되어있었고, 두려웠으며, 무척 떨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직제자 출신도 아니고, 박해자 이력이 있는데다가, 배신자로 낙인찍은 바리사이들이 도처에서 지켜보고 있는 판에, 오라는 데도 없고 자신을 내세우고 증명해 줄 그 아무것도 없던 처지였습니다. 그때 사도 바오로가 생각한 것은 모든 인간적 지혜와 노력을 포기하고 오직 성령의 힘에 의지하자는 선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보다 더 한 십자가 죽음도 받아들이셨음을 생각하고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오로의 이야기입니다. 사실과 진실이 바탕이 된, 그러면서 진정성과 한계와 성공 개방성도 열려 있는 이야기말입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 사도 바오로의 정체성이 잔뜩 묻어납니다. 모든 선교사들이 지녀야 할 몸가짐, 마음가짐이 아닌가 합니다. 과연 그는 가톨릭교회 선교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존경을 받고 있어서 이를 기념했던 해가 2008년 바오로의 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고향 어른들 앞에서 다소 거창하게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이사야 예언을 선택한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사실 메시아란 어느 특정한 슈퍼맨이 아니라 메시아 신앙을 간직하고 그 메시아의 부르심에 언제든지 응답할 각오가 되어 있는 모든 하느님 백성입니다. 그런 뜻에서, 메시아적 백성은 주님의 영이 내린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중심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
첫댓글 아멘.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세상의 중심이 될 자격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고통의 끝에서 절망만하다보니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잊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누구일까...나에게 있어서 신앙은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 가야하나,,,,,,,
결국 나라는 존재가 귀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며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메시아적 백성. 응답할 줄 알아야 겠지요. 지난주 내내 마음이 산란했는데 이제서야 진정이 되었습니다. 다시 또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