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장공(忠壯公) 한백록(韓百祿,1555-1592) 장군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다.
임진왜란 발발전에 진잠현감을 거쳐서 지세포만호로 임명되었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우수영군의 일원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군과 협력하여 옥포해전과 한산도 해전등에 참전하였고 전공이 뛰어났다.
충장공 한백록에 대해서 아래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dldml2xhd/15918958


경남 거제시 지세포리(선창마을)에 있는 지세포성 안내문
올해초 겨울철에 이배사에서는 지세포성을 비롯한 거제도 일원을 답사하였는데 필자는 참여못했다.이날 지세포성을 답사를 에 참여하여 소원을 풀었다.ㅎ

이끼낀 성돌들....이끼낀 것을 보면 몇십년을 ...몇백년을 그대로 현상태였던 것 같은데...성돌을 빼어서 민가의 담장으로 썼다고 보여진다.나중에 만난 마을 이장님의 말씀이 "참 다행인 것은 성돌이 외부로 반출된 흔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거제시와 경남도,문화재청에서 치성이 있는 지세포성을 복원하면 좋을 것 같다.










위와 아래 사진 두장은 이배사 행주산성님이 지세포성 답사때 올린 사진을 훔쳐왔다.
아래사진을 보면 치성의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아...이런 성을 복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거제시와 춘천시가 자매결연을 하여 교류도 하고 서로 관광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활동을 하면 많은 교류가 이루어 진다고 본다.거제시는 경북 문경시의 고모성복원을 참고삼아 문화재청과 경남도,해군사관학교와 협의하여 지세포성을 복원하는 것을 시정의 제일목표로 하면 좋겠다.
맨아래에 해군사관학교 제장명 교수가 지세포성에 관해 쓴 글이 있기에 옮겨놨습니다.한번 읽어보시길...


위 사진까지는 이배사에서 훔쳐왔습니다.




선창마을 이장님께서 밑에 있는 돌이 성돌의 원형이라고 한다.

우는 한백록기념사업회 이사이신 명량대첩님이고 중간은 지세포성이 있는 선창마을 이장님이시다.



















선창마을 앞에는 천주교성지 순례길이있다.안내판을 참고하시라.
거제시는 지세포성을 정비해서 임진왜란 전적지로서 다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편에서 본 선창마을과 지세포성.성의 윤곽이 드러난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와 마산과 부산쪽을 이어주던 견내량.당시 견내량엔 수군 선봉대가 감시하고 있었고 철저하게 봉쇄작전을 폈다.
이배사회원인 유성룡님이 운영하는 천지골수산
055-645-3369
010-7339-3369
이날 춘천에서 오신 분들은 미역과 멸치를 사셨다.


통영을 떠나 춘천으로 가면서 늦은 저녁을 남안동 ic근처에서 안동간고등어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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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포성 현황>
해군사관학교 제장명 교수
http://cafe.daum.net/jjmkssm1545-1598/dVOF/411
지세포항은 아늑한 항구다. 항구 입구에 지심도가 막고 있어서 외항에서 볼 때 항구가 있는 줄 모른다. 그리고 파도를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계절을 막론하고 바람과 파도가 없으므로 피항지로 알려진 양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32권 거제현 관방조에 의하면 지세포진영은 거제현의 동쪽 29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1605척, 성안에 개울이 2개 있으며, 수군만호가 다스린다고 되어 있다. 조선인이 일본 갈 때는 이곳에서 반드시 바람을 피했다가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로 간다고 되어 있다.
장승포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돌출부에 석성으로 된 이 성은 동쪽과 남쪽의 일부분만 잔존하고 있을 뿐, 그 외의 부분은 전답의 축대 및 가옥의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곽의 구조나 형태는 역시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두고 그 사이사이에 망루를 둔 것 같으며, 동쪽 입구에는 성곽을 세웠던 주춧돌이 여섯 개나 나란히 일렬로 남아 있다. 현재 성내의 북쪽 바닷가에는 마을이 들어섰고 그 외는 전답이다. 성외 역시 전답과 임야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내의 면적이 3.6정보라고 하였다. 조선 인조조에 남방 침입을 우려하여 영남 6부의 2만 5천명을 동원하여 선창에 성을 쌓고 그 성 아래 진을 두고 수군만호를 두어 방어케 하였다. 이 성은 지세포 앞 선창마을 뒷산 능선에 있는데 포곡식(包谷式) 석축성이다. 이곳은 지세포의 동쪽 끝에 있는 선창부락 뒷산 계곡으로 바다에 돌출한 지형이지만 서쪽 방향으로 체성을 배치하여 바다 쪽인 바깥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현재 성 내외는 대부분 경작지와 산지로 되어 있으나 서쪽 해안선 가까운 부분에는 민가가 있다. 많이 훼손되어 전체적인 실체는 파악하기 어려워도 동쪽은 잘 남아 있다. 동서남북에 문지를 배치하였고, 문지 사이에는 치를 설치하였던 것 같다. 이 성의 정문 역할을 한 서문은 훼손되어 없어졌다. 이 마을 안길이 성문이었던 것 같다.
남문도 암문처럼 체성을 개구(開口)한 형태로 옹성 흔적은 어려우나 동문이 반원상의 편문으로 옹성을 두른 형태다. 그 좌우에는 방대상의 적대를 배치하고 있다.
이 성에는 산쪽으로 방대상의 치성이 촘촘하게 배치되고 그 바깥에 마른 호처럼 생긴 외황이 보인다. 외벽은 지대석 위에 자연석 큰 돌을 세워 겉쌓기 하고 내벽은 막돌로 쌓고 그 속에는 대소석을 채워 적심으로 삼았다. 동쪽 산지 부분에는 생토면을 파서 기단부를 내탁하게 축조하다가 일정 높이에서 다시 협축하고 있다. 체성에 치성과 옹성문, 외황을 갖추고 협축된 평지 읍성이나 관방성 축조법과 동일하다. 현존 둘레 1096미터, 높이 3미터, 폭 4.5미터 정도다.
지세포성은 1490년(성종 21) 10월에 수군진성으로 축조되어 활용되었다. 1603년(선조 37) 옥포진 북쪽으로 옮겼다가 1651년(효종 2) 다시 지세포로 환원되었다. 1711년(숙종 37)에는 다시 만호를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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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경북지부장
<백두대간 의병전쟁 답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