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저주 사건
홍정현
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을 뱉고 보니, ‘모범’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모범의 기준이 다르지 않을까. ‘모범생은 아니었다’라는 단순한 문장이 내 속에서 여러 파장을 만들며 충돌한다. 열등감, 자책, 회의, 반문, 억울함까지. 그 문장은 정리되지 못한 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난 곳으로 날 이끈다. 일단 그 복잡한 감정은 이만 강제 로그아웃을 하고, 여하튼 나는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음을 자백한다.
중3 때, 사회 선생님 양복 주머니에는 늘 영문판 『뉴욕타임스』가 꽂혀 있었다. 지금은 영어 원서를 편하게 읽는 사람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다. 서울대 출신인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이 들고 다니는 몽둥이 대신 그 영문 잡지를 보란 듯이 들고 다녔다. 사회 시간은 지루했다. 수업은 재미와 무관하게 열심히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이과 성향이 강해 사회 과목을 싫어했고, 고압적인 시선으로 자기 자랑을 자주 하시는 선생님 때문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 하고 주로 딴짓을 했다.
그날도 그랬다. 갑자기 친구 정민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정민이는 당시 늘어난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나는 여드름에 관한 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여드름과 사춘기 그리고 정민이가 다니는 교회 오빠에 관한 시였다. 다 적은 후에는 종이를 쪽지 모양으로 잘 접었다. ‘이제 정민에게 전달만 하면 끝.’
오십 명이 넘는 학생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교실. 교실 가운데 부분은 통로의 기능을 하기 위해 다른 곳보다 넓게 공간을 비워두고 있었다. 그곳 건너에 정민이가 있었다. 올바른 사고를 하는 정상적인 열여섯 살이라면, 수업 중 그 무엇도 교실 중앙 영역을 은밀히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쪽지 전달의 충동을 억눌렀을 거다. 그때 주변 친구 모두 그렇게 참아가며 수업 시간을 버티고 있지 않았을까? 지루함을, 졸음을, 배고픔을, 배뇨의 욕구를, 가끔은 분노까지. 이런 것을 꾹 누르고 앉아 있었겠지.
그런데 왜 나는 버티지 못했을까? 그동안 눈치껏 장난치고 까불던 내가, 그날은 왜 그랬는지 이성적 판단 따위는 모르는 애처럼 그냥 쪽지를 휙 정민이가 있는 방향으로 던져 버렸다. 나의 쪽지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중앙 지역을 지나 건너편 책상 위로 떨어졌고, 책상의 주인은 놀라서 날 쳐다봤다. 나는 조용히 “정민이한테 줘”라고 소곤거렸다. 쪽지를 받은 친구가 정민에게 그것을 전달하려고 몸을 돌리려는…, 바로 그 순간, 선생님이 쪽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교실 칠판 앞에서 쪽지가 그리는 위풍당당 포물선 궤도를 못 봤을 리 없었다.
선생님은 쪽지를 가지고 나온 학생에게 적힌 것을 읽으라 했다. 본의 아니게 내 시가 낭독되었다. 정민이를 바라봤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정민이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내 시는, 추측하건대, 사춘기 시절의 짝사랑을 위트 넘치는 은유로 표현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믹 시였을 텐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선생님도, 학생들도.
‘낭독이 끝나면 불려 나가 엄청나게 혼나겠지.’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사회 선생님은 공포를 자아내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으나 체벌을 하는 분은 아니라, 다행히 맞지는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단호한 어조로 비판의 말을 퍼부었다. 그건 일종의 저주였다.
“이것을 쓴 사람은 절대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할 거다. 이따위로 행동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딱 이 정도 수준의 삶을 살 거다. 뻔하다.”
이런 내용이었다. 꽤 마음이 상할 상황인데도 나는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선생님이 들고 다니는 『뉴욕타임스』 때문일 거다. 우월감의 표상인 그 잡지가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 말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내게는 그랬다. 하지만 살아가며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어 버린 순간이라, 이 일이 기억 속에 견고하게 각인될 거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거의 35년 전 이야기다.
자, 현실로 돌아와 이제 저주받은 내 인생을 살펴보자.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저주대로 ‘딱 이 정도 수준’으로 살고 있는 건지, 아닌지. 여전히 성실하지 않고 집중을 못 해 산만하며 철없는 행동으로 후회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나는 ‘제대로 된 인생’에서 한참 떨어진 삶을 사는 것 같다. 거기에다 소름 끼치게도 최대 콤플렉스가 영어인 ‘영어낙오자’여서, 『뉴욕타임스』를 술술 읽지 못한다. 영문 잡지 정도는 편하게 읽는 인생이 ‘제대로 된 인생’이라면 저주대로 나는 ‘제대로’가 아닌 ‘딱 이 정도 수준의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살짝 비꼬는 듯한 장난스러운 해석도 해본다.
하지만, 내 나이 오십 대. 이 연식이 되면 좌절과 후회, 콤플렉스는 인생에서 당연히 따라오는 강제 옵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뭐 어쩌라고? 그냥 이렇게 살아가련다.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나 역시 위풍당당하련다.
그러다, 사회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이가 드니(이 말, 하루에도 수십 번 한다) 잠시라도 한 공간에 있던 사람들의 안녕을 빌게 된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두께가 그런 마음을 만든다. 그들도 자기 삶에서 위풍당당하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기를 기원한다. 선생님은 당시 오십 대로 짐작되니까, 지금은 연세가…, 아…. 건강히 지내시기를.
글을 쓰며 ‘저주 사건’을 무한 재생하다 보니, 그 교실 정경과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시공간이 필터를 낀 것처럼 서서히 변해간다. 그때 선생님의 처진 입꼬리, 그 끝이 슬슬 올라가 옅은 미소를 만들고, 장난이 심한 제자가 귀여워 역시 장난으로 ‘이따위’ 어쩌고저쩌고 말을 하는, 즐겨 보던 TV 시트콤의 웃기면서도 따듯한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 선생님의 저주가 억센 일직선에서 방향을 틀어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고개를 숙이며 내게 인사를 한다. 다정하게 ‘안녕하세요’라고. ‘반백’의 세월이 선물하는 필터링이다. 이럴 때는 늙어가는 게 꽤 괜찮아 보인다.
* 『수필과비평』 2024.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