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케 라고 글 제목을 써놓고 생각하니 조금 어이가 없다. 부케라고 하면 대개는 결혼하는 신부가 결혼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한 다음이던가, 아무튼 친구들 모인 자리에서 자기가 받은 꽃다발을 다음 결혼할 사람에게 전달하는, 그런 용도로 쓰이는 꽃, 의미있고 상서로운 꽃다발을 이른다.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를 축하해주는 꽃다발이니 평소의 흔한 꽃다발하고는 그 모양과 꽃의 선택에서부터 확연히 다를 것 아닌가.
그 장소에는 신부 친구 뿐 아니라 신랑의 친구들, 개중에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신랑후보자도 다수 있을 것이므로, 혹 누가 아는가. 그 중에 참한 도련님 한 사람 결혼 상대자로 점 찍을 확률도 무시 못 할 것. 와아! 하고 신부의 부케를 받은 처녀는 기쁨반 설렘 반으로 순식간에 얼굴이 5월의 모란처럼 피어난다.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랑감을 오래 고르느라 허비했을 시간이 아깝지 않게 큰 기대를 품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케가 함의히는 뜻이 열 가지라면 열 가지 다 그것은 한 마디로 좋은 것, 유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결혼식 부케와는 그 류가 다르긴 하지만 참으로 우아하고 탐스럽고 아름다운, 제2회 직지문학상 수상자로부터 멋진 꽃다발을 받았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었고, 새벽에 눈보라가 휘날릴 때 실로 잠시잠깐이었지만 날씨 탓을 하며 그냥 먼 길 가지 말고 집에 있을까 생각했다.
오래 전 얼음판에 미끄러져 안동병원 정형외과에서 고생한 100일을 결코 잊은 것은 아니므로 가능한 한 눈이 내리거나 날씨가 험상한 날은 외출을 자제했다. 나는 중무장을 하고 우리 아파트 단지의 위험스런 빙판을 기다시피하면서 집을 나섰다. 압구정역 공영주차장에는 이미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대기중이었다. 온다고 미리 신청한 사람들이 여러 명 약속을 어겼고 출발시간은 지연되었다. 오늘의 수상자도 지각이었다.
청주는 가까운 곳이고 다행히 주말이 아니어서 차는 막히지 않고 잘 달려갔다. 옆에 앉은 문우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이 내린다며 수다스러울 정도로 주변의 산야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즐거운 여행인 것이다 그와 나에게. 글쓰는 모든 동지들에게 눈보라는 신명을 부추기는 매개체였지 하등 두렵거나 기분이 저조할 일은 아니었다.
옥산 휴게소에서 충청도식 국밥 한 그릇 사먹고 달려간 곳은 청주시청 대회의실이다. 시상식은 엄숙하게 진행되었고 청주시의 L시장님 인사말에 이어 내빈 축사, 상을 수여하고 상을 받은 분의 수상소감 후에 기념촬영을 했다. 상금 2천 여 만 원, 직지문학상 시상식은 여법하게 끝이 났다.
직지박물관을 돌아 나와 버스에 올랐을 때 꽃다발이 내게로 온 사연! 그것은 감격이었다. 상을 못 타 애석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나는 직지에 대해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 상을 받겠다는 노력을 한 바 없으니 동료들이 상장과 상금을 타는 모습에 덩달아 환희하며 힘껏 박수치는 게 오늘의 내 임무였다.
그런데 수상자가 받은 가장 화사한, 희한하게 어여쁜 꽃다발이 결국은 내 가슴에 안길 줄 누가 알았을까. "다음엔 청주가 고향이신 선생님 차롑니다." 모르면 몰라도 그런 이유로 해석할 수 있었다.
만원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어린애처럼 들뜨고 즐거웠다. 그렇다! 청주라면 이야기 거리가 많고 많다. 열아홉에 떠난 고향이지만 골목이 대로가 되고 우물이 묻혀 우물가 옆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며 소나무가 베어졌지만 그러나 내 영혼이 기억하는 고향이야기는 여전히 무궁무진하지 않은가.
결혼식날 부케를 받은 신부친구처럼 나는 가슴이 뛰었다. 나는 꽃다발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2015년을 꿈 꾼다. 찬란한 나만의 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