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영리하지 못하고 어벙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나는 군복무 시절에 약삭빠르지 못하고 어벙하지만 언제나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고, 동료 전우들이 그런 나를 도와주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있을 때 어느 날 모자를 화장실에서 빼앗겼는데 누군가 갑자기 모자를 벗겨간 것입니다. 사람들이 화장실에서는 모자를 벗으라고 했는데 그것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다른 사람이 모자 하나를 구해주었는데 이제 물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틀림없이 같은 내무반원의 짓인데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관물점검이 있고 모두 정리정돈을 잘하라는 내무반장의 특별한 예고가 있었으니 나는 정말 큰 사고를 친 것입니다. 마음이 다급해서 신부님께 달려갔는데 신부님은 정말 대수롭지 않게 하나 슬쩍 가져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물통이 네 것이냐? 나라 것이다. 돌고 도는 것일 뿐이다.” 다급히 전우들이 하나를 조달해 주어서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나는 정말 시키는 것을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영리하지는 못한 어벙한 못난 놈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벙한 군인 생활이었지만 우수한 훈련병으로 사단장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의 채권을 조작하는 이 집사는 참으로 엄청나게 약은 사람이면서 절도죄, 횡령죄, 배임죄, 공문서 위조죄, 계약법 위반 등 지금의 법으로 판정한다면 엄청난 형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그를 아주 꾀가 약은 사람이라고 오히려 칭찬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절대로 칭찬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군인일 때 그런 일도 결국 잘한 일은 아닙니다. 또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그런 집사처럼 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그런 배은망덕한 집사를 칭찬하실까요? 바로 관점의 차이입니다. 엄연히 개인의 재산으로 인정된 우리 사회에서는 사유 재산권을 그대로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모든 것은 당신의 것으로 당신으로부터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주고 집사는 끈끈한 정을 맺어서 우애를 돈독히 하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인간관계를 아주 잘 맺도록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집사가 기름이나 밀을 깎아 준만큼 자신이 착복하였다면 그 주인은 형리에 넘기고, 죽을 만큼 매를 맞고 감옥에 처넣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었습니다.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영리한 처신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착복하지 않고 인정을 베풀면 그 사람들이 자신을 잘 돌봐 줄 것이고 주인이 그런 것을 오히려 좋아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행동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사후(死後)를 위해서 인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범사유인정 후래호상견'(凡事留人情 後來好相見)이라는 말이 명심보감에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대하면 나중에 좋은 얼굴로 대하게 된다.>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이 말을 아주 좋아해서 언제나 좌우명처럼 가지고 다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하고 작은 인정이라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그렇게 먹고 있으면서도 인간관계가 정말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문제가 많은데 처세술은 타고 나야 하는 것처럼 어렵기만 합니다.
우리 속담에 <정승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정승이 죽은 때보다 많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얄팍한 심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만 인간의 처세술을 절대로 무시하지 말고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라고 항상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그들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5,14-21
14 나의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 자신도 선의로 가득하고
온갖 지식으로 충만할 뿐만 아니라 서로 타이를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15 그러나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에 힘입어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대담하게 썼습니다.
16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민족들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18 사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외에는,
내가 감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19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20 이와 같이 나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21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에 관하여 전해 들은 적 없는 자들이 보고 그의 소문을 들어 본 적 없는 자들이 깨달으리라.”
축일11월 10일 성 레오 1세(대) (Leo I the Great)
신분 : 교황, 교회학자
활동 연도 : +461년
성 대 레오 1세는 아마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사람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로마(Roma)에서 살았고,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7월 27일)와 성 식스투스 3세(Sixtus III, 8월 19일) 밑에서 부제로 봉사하는 한편, 440년에는 황제의 요청을 받아 에지오 장군과 알비누스 집정관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고자 갈리아에 파견되어 노력하던 중 교황 성 식스투스 3세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어 9월 29일 주교품을 받고 착좌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황제와 교회 간의 알력을 비롯하여 마니교도, 펠라기우스주의, 프리실리아누스주의 그리고 네스토리우스주의에 강력히 대처하는 등 수많은 난관을 무난히 극복하였다. 448년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대수도원장인 에우티케스(Eutyches) 일파와 격돌하게 되었다.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플라비아누스(Flavianus)가 내정한 원장이었다. 동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지원을 받던 에우티케스는 더욱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였다. 451년 성 레오 교황은 보스포루스(Bosphorus) 해협 연안의 도시 칼케돈(Chalcedon)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천주강생의 교리를 분명히 하는 교의 서간을 반포하였다.
성 대 레오 교황은 외교 문제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451년 훈족의 아틸라(Attila)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쳐들어 와서 로마를 위협하자 발렌티누스 3세 황제는 교황에게 강화 중재를 요청했고, 레오 교황은 용감히 나아가 화평을 얻어내고 아틸라 왕을 돌려보냈다. 455년 반달족의 가이세리쿠스(Gaisericus,또는 Genseric)가 이탈리아에 상륙해 로마로 진격해왔을 때도 레오 교황의 중재를 통해 로마를 방화와 살육에서 보호할 수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에도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교황으로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또한 교황권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는데, 성좌의 권위는 하느님과 성경에서 유래하는 명령이기 때문에 속권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굳게 확립한 위대한 교황이다. 한마디로 그의 재임 기간은 교황권 확립의 시기였다. 역사적으로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과 함께 '대'(大)라는 존칭을 받는 교황인 성 레오 1세는 461년 11월 10일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당 회랑에 안치되었다가, 688년 교황 성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 9월 8일)에 의해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 지하묘지로 옮겨 안장되었다. 그는 1754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레오 1세(대) (Leo I the Great)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