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파타
가끔 동기 신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놀리는 말을 하거나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별일 없이 지나가곤 하는데,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삐졌지!” 이 말을 듣고 “괜찮아.”라고 하면, 아니나 다를까 “삐졌지, 삐졌으면 삐졌다고 말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떤 말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삐졌냐!”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편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 말이 마음에 걸려 잘 떨어지지 않고, 계속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 그 사람의 말의 의도는 무엇인지,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했는지를 떠 올리느라 나의 입과 귀는 닫히고, 대화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상대의 말에, 내 마음 스스로 그 말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아파하고 결국 상대를 미워하기에 이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 주 복음에서 이방인의 지역을 돌아다니시며 치유를 보여주시고, 당신 말씀의 힘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돌아오십니다. 그곳 사람들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해 주십사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호숫가 주변에는 예수님께 치유를 바라고 오는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 의 모습을 시기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을 향한 무언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믿지 않으며, 입으로는 예수님을 찬양하는 이야기보다는 비아냥거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들을 치유해 주시고자, 한 사람을 치유하시며 모든 이를 향해 ‘에파타’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주님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치유 되기를 바라시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모여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작고 큰 모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상대의 말에 너무 깊이 생각하고, 상대의 행동에 너무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결국 나에게 상처를 준 상대의 믿음까지 의심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모습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찬양해야 할 입과 귀를 닫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를 통해 우리 의 닫힌 영적인 귀와 입을 치유해 주시려고 합니 다. 내 마음의 가시에 걸려 떨어지지 않는 말들을 떨어트려 주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 마음으로 찾아오십니다. 미사를 봉헌하며 우리 마음을 열어 놓읍시다. 남이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말에 상처받아 귀가 닫히고, 입이 막혀 있다면 그 말이 무엇인지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 그런 내 모습을 보여드리십시오. 그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나의 귀와 입에 손을 대어주시며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에파타!”(마르 7,34)
이용현 베드로 신부 인천교회사연구소, 교구 역사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