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다 큰 물고기, 염치
팔십을 바라보는 친구들이 매주 주말이면 산으로 향한다. 산행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야산을 천천히 걷는 트래킹에
깝다. 우리 가운데는 젊은이 못지않게 산을 잘 타는 산대장도 있고, 왕년에 백두대간을 종주했던 친구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더 빨리 정상에 오르느냐가 중요한 나이가 아니다. 함께 걷고, 함께 웃고, 한 주 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 시간이 더 귀하다.
화제는 늘 다양하다. 손주 자랑도 하고, 건강 이야기도 하고, 아내에게 혼난 이야기에 모두가 박장대소한다. 빠질 수 없는
것이 주식 이야기다. 시장이 오르면 환호성이 터지고, 떨어지면 탄식이 이어진다. 어떤 친구는 하루 종일 주식 이야기만
할 기세이고, 어떤 친구는 겁이 나서 소액으로만 맛보기 투자를 한다.
그러다 누군가 "눈치 없는 게 인간이가?" 하고 한마디 던지면 모두 웃으며 입을 다문다.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것이 눈치
다. 그 순간 닉네임이 '놀부'인 친구가 한마디 보탠다.
"신성한 산에까지 와서 주식 이야기냐? 그러려면 산엔 왜 왔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산은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몸과 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 찾는 곳이라
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상대의 표정과 분위기를 읽어야
관계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종종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살아보니 눈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염치였다.
눈치는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능력이라면, 염치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눈치는 밖을 향한
감각이고, 염치는 안을 향한 양심이다.
나는 종종 눈치를 작은 물고기에 비유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재빨리 읽어내는 민첩한 물고기다. 그러나 염치는 훨씬 큰
물고기다. 작은 물고기만 쫓다 보면 배를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큰 물고기를 놓치면 삶의 품격은 사라진다.
요즘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눈치는 넘쳐나는데 염치는 점점 희귀해지는 것 같다. 잘못된 결과가 나타나도 책임지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실패는 남의 탓이 되고, 공은 자신의 것이 된다. 변명은 길어지고 사과는 짧아진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손해
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퍼질수록 사회의 신뢰는 조금씩 허물어진다.
최근 주식시장 급락을 둘러싼 여러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책을 만들고 추진한 사람이라면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시장에는 늘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결과가 좋을 때는 자신의 공이라 말하고, 나쁠 때는 시장이나 투자자
의 탓으로 돌린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겠는가.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전망이 아니라 결과 앞에서 책임을 인정하는
염치다.
염치는 단지 사과를 잘하는 기술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가 높을수록 더 크게 가져야 할 덕목이다. 권한이 클수록 책임도 커지는
법이다. 염치가 있는 사람은 잘못을 숨기기보다 먼저 인정하고, 변명보다 해결책을 찾는다. 그래서 염치는 신뢰를 낳는다.
친구들과 산을 걷다 보면 자연은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땀을 흘린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고, 천천히 오른 만큼 넓은
풍경이 펼쳐진다. 자연에는 눈치도 없고 변명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우리도 산을 닮았으면 좋겠다. 눈치는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하지만, 염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눈치가 관계를 지켜준다면, 염치는 인격을 지켜준다.
다음 주말에도 우리는 산으로 갈 것이다. 또 누군가는 주식 이야기를 꺼낼 것이고, 누군가는 "눈치 없는 게 인간이가?" 하며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리고 놀부는 어김없이 한마디 할 것이다.
"산에 왔으면 마음부터 씻고 가자."
그 말속에는 단순한 농담 이상의 삶의 철학이 숨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눈치만이 아니다. 결국 사람을 사람
답게 만드는 것은 염치다. 눈치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이라면, 염치는 세상을 바로 세우는 양심이다. 그 양심이 살아 있는
사회일수록 사람은 서로를 믿고, 나라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