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볼펜이 있으면
세 살, 네 살 된 손주들이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다. 종이 한 장과 연필, 그리고 색연필이다.
아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동그라미를 그리고, 이름도 모를 상상의 세계를 종이 위에 펼쳐 놓는다.
아직은 서툰 선과 엉성한 색칠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가끔은 내 서재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호랑이와 사자, 코끼리와 공룡을 보여주면 눈을
반짝이며 연신 "할아버지, 이거!"를 외친다. 그러다가 어느새 키보드는 아이들에게 피아노가 된다. 두 손으로 신나게
두드리다 보면 모니터에는 정체 모를 창이 뜨고, 어디선가 게임이 실행되어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을 지우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고 있으면 그 수고마저 즐거운 추억이 된다.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들은 글자와 숫자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흉내 내고, 숫자를 적으며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나 또한 어린 시절이 그랬다. 학교에서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자 동네 골목길 흙바닥이나 담벼락에 친구 이름을 삐뚤
삐뚤 써 보기도 하고, 숫자를 적으며 괜히 뿌듯해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서툰 낙서였지만, 그때는 세상과
처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나만의 캘리그래피였는지도 모른다.
손주들은 그림을 완성하면 문에 붙여 달라고 조른다. 하나둘 붙이다 보면 우리 집은 어느새 작은 추상화 전람회장이
된다. 비뚤어진 선도, 알록달록한 색도 모두 작품이 된다.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훨씬 값진 그림들이다. 그 그림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있고, 상상력이 있고,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 책상 위 풍경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 키보드가 놓여 있지만 그 아래에는 지난달 달력 조각, 전단지
이면지, 다 쓴 종이의 빈 공간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남들이 보면 버려야 할 종이들이지만 나에게는 모두 귀한 메모장
이다.
문득 생각이 떠오르면 가까이에 있는 종이를 집어 들고 적는다. 글 한 줄, 제목 하나, 좋은 문장 하나, 떠오른 생각 하나
를 적어 놓는다. 적어 두지 않으면 조금 전까지 또렷했던 생각도 안개처럼 금세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믿음직하지 못하지만, 종이는 언제나 묵묵히 기억을 대신해 준다.
뉴스를 보다가 마음에 남는 기사가 있으면 복사하여 스크랩해 둔다. 언젠가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자료가 되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기도 한다. 그렇게 종이 위에는 하루가 쌓이고, 세월이 쌓이며, 나의 삶이 차곡차곡 기록
된다.
요즘은 모든 것이 디지털 세상이다. 휴대전화 메모장도 있고, 컴퓨터 문서도 있으며, 인공지능이 글을 대신 써 주는 시대
가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으로 직접 종이에 적어 내려갈 때의 느낌만은 대신할 수 없다. 볼펜 끝에서 전해지는 촉감,
종이를 스치는 사각거림,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가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는 그 시간은 여전히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이다.
돌이켜 보면 손주들은 그림으로 하루를 기록하고, 나는 글로 하루를 기록한다. 아이들의 그림도 표현이고, 나의 메모도
표현이다.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 모양이다. 세 살 아이도 그리고 싶어 하고, 일흔을 넘긴 노인도 쓰고
싶어 한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사람은 평생 무엇인가를 남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책상 위 종이 한 장을 집어 든다. 떠오른 생각을 적고, 세상을 기록하고, 삶을 정리한다. 종이와 볼펜은
내게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기억을 붙잡아 두는 그릇이며, 삶을 이어 주는 동반자이다.
누군가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금 다른 말이 더 어울린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종이와 볼펜이 있는 한, 나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