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햇병아리를 보면 천국을 보는 것 같다.
동그란 달걀에서 갓 태어난 햇병아리, 노란 장미꽃 같은 보송보송한 털에서 은은한 향기가 솟아난다. 빛나는 새까만 눈동자, 어여쁜 부리, 가냘픈 다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귀엽고 예쁜지! 천국에서 이 속된 세상을 정화시키려고 내려 보낸 꼬마 천사인가!
아미닭을 따라 졸졸졸 나들이 나가는 노랑 병아리로 어느덧 시골 앞마당에는 기쁨과 웃음이 넘쳐흐른다. 높푸른 하늘, 맑은 햇살에 한 줄기 바람이 인다. 아장아장 걸으며 삐악삐악 하는 울음소리가 조그마한 율동과 함께 깨끗한 화음이 되어 파아란 하늘로 퍼져 나간다.
암탉의 따뜻한 모성애로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
보드라운 심성이 맑고 깨끗한 옹달샘처럼 솟아난다. 햇병아리는 사랑과 믿음에 부응하는 따뜻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본다. 천국이 그토록 그리워서일까. 노랗고 뽀얀 얼굴 모습이 참으로 산뜻하고 상큼하다. 나도 모르게 생명체에서 솟아나는 아름다운 신비를 느낀다.
새끼를 돌보는 헌신적인 어미 닭을 닮아서일까!
어릴 적,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암탉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하여 '암탉과 병아리'라는 시를 읊었다.
곤두선 목털은 고슴도치 닮아
제 새끼 건드리면 꼬꼬댁 쪼아대지
낟알을 얻으면 살짝 쪼는 체 하고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참아내지.
한적한 농촌, 지붕 위로 갑자기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들면 어미 닭은 날갯죽지 속으로 어린 병아리들을 재빠르게 숨긴다. 어둠이 깔리면 햇병아리들은 닭장 속으로 잠을 청하면서 마당에서 자취를 감춘다. 밤하늘의 달과 별을 마음껏 감상하라고 사람들에게 시간과 장소를 내어주는 것일까!
노랑 햇병아리를 보노라면 정겹던 시골 풍경이 눈앞에 다가선다. 문득 어릴 적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학교 다닐 때가 그립고, 친구들과 철없이 놀던 때가 그립다.
가난하게 살았어도 이웃과의 애정은 두터웠고, 나눔과 베품으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넘쳐흘렀다. 소통과 협력 속에 이웃 간에는 훈훈한 온정의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어려움 속에 풍성한 여유는 찾지 못하였어도 스스로 개미와 꿀벌의 삶을 누리려고 정 성을 기울였다. 사치와 낭비, 허영과 과시는 잠시 그림자 뒤에 숨겨두고, 근검과 절약을 자기 얼굴 앞에 거울로 내놓았다.
친구들 사이에도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주고받지 않았고 따뜻한 우정으로 굳게 맺어졌다. 집집마다 몇 포기의 양귀비를 가꾸고 재배한 적은 있었지만, 아편 중독이나 마약 밀매로 인한 범죄는 찾아보지 못했다.
빈번한 돈의 거래가 있었어도 뇌물과 청탁, 야합과 비리에 의한 어두운 돈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서 전통술을 양조하여 먹었어도 술주정으로 마을 모퉁이에서 난동을 부리는 폭력배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진 생횔고에 시달렸어도 고독감이나 우울증으로 헛되이 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건전하고 따뜻한 남녀 간의 교제는 물방앗간이나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꽃피워졌다.
권력을 찾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세속에서, 허세와 위선이 난무하는 물결과 급격한 산업화의 회오리 속에 사회 질서가 허물어진 때문인가? 곳곳에 퍼져 있는 분열과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서일까? 점차 미풍양속이 사라져가고 인명경시의 사악한 범죄가 돋아나고 있다.
캄캄한 어둠이 찾아들면 인적이 드문 한적하고 으슥한 곳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도시의 유흥업소에서 흘러나오는 음향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청소년들을 유혹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게임중독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무시무시한 소굴로 깊이 빠져든다.
돈을 가지고 유혹하는 곳도 많고 돈 때문에 유혹당하는 것도 많다. 여기저기서 윤리와 도덕이 산사태처럼 휩쓸려가고, 부정부패가 이곳저곳에서 가시밭처럼 무섭게 솟아나고 있다.
어느 날, 순진한 노랑 햇병아리가 혼탁한 인간 세상을 잠시 엿보았는가 보다.
며칠째 어두운 흙담 밑에서, 명랑하고 순결한 노랑 햇병아리가 어미 닭 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그마한 얼굴에는 근심과 울분이 온통 묻어나 있다. 슬픔의 눈물을 넘어 애통과 분노의 통곡인 것 같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어미 닭을 저셰상으로 떠나보낸 슬픔보다 더한가 보다.
노랑 햇병아리의 여린 가슴에 얼마나 비통한 상처를 입혔을까? 며칠째 모이를 마다하고 굶주리고 있는 햇병아리가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어느 누가 애정 어린 손수건으로 통곡의 눈물을 닦으며 위로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