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는 손님이 아니라 상전
나이가 들면 자식들이 찾아오는 것이 반갑다. 그런데 막상 며칠 함께 지내다 보면,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마음속으로는 "이제 집이 다시 우리 집이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도 슬며시 생긴다.
자식 사랑과 현실은 언제나 따로 노는 법이다.
작년 여름이었다. 서울에 사는 둘째 딸이 네 살 된 외손자를 데리고 부산에 내려왔다. 학술대회에 참석해야
하는데 서울에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하루 동안 외갓집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아침 일찍 SRT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한 딸은 외손자를 집에 데려다 놓자마자 학술대회장으로 향했다. 외손자
는 엄마와 떨어졌다고 울거나 보채지도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린이집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어른보다 훨씬
의젓하다.
혼자 책도 보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던 외손자가 심심할까 봐 외할머니는 산책을 제안했다.
"준우야, 할머니랑 밖에 나가 산보할까?"
그런데 아이는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베란다까지 살펴보더니 뜻밖의 한마디를 던졌다.
"집이 오래되어 이사를 해야겠어."
순간 외할머니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네 살짜리의 눈에도 세월의 흔적은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곧이어 베란다에 화분이 가득한 것을 보더니 "꽃이 많아서 밖에 안 나가도 돼."라며 산책 제안
을 단칼에 거절했다.
요즘 아이들의 최고 친구는 역시 스마트폰이다. 한참 만화영화에 빠져 있는 외손자에게 외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준우는 멋진 사람이니까 스마트폰 좀 끄면 좋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안 멋져도 좋아. 혼자 있을 거야."
네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자신의 우선순위를 이렇게 분명히 밝힐 줄이야. 외할머니는 결국 협상에서 완패했고, 스마트폰
은 계속 재생되었다.
며칠 전에는 친구 박 사장 이야기를 들었다.
큰딸은 서울에 살고, 둘째 딸은 외국인과 결혼해 홍콩에서 산다. 방학을 맞아 큰딸 가족이 부산 외갓집에 일주일 동안
다녀갔다고 한다.
딸네 식구가 오면 안방은 자연스럽게 손님방이 된다. 에어컨이 가장 시원한 안방을 내주고 부부는 바깥방으로 밀려난다.
낮에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무렵 집에 들어오면서도 전화 한 통을 잊지 않는단다.
"아빠, 에어컨 미리 빵빵하게 틀어 놔!"
명령은 간단하고 단호하다.
외손자는 또 어떤가. TV 리모컨은 이미 그의 손에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시청권을 박탈당한다. 손님은 며칠 머무는데, 집주인은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그래도 손주 웃음소리가 집안에 가득하면 귀찮음도 잠시다. 다만 친구는 솔직하게 말했다.
"올 때는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
듣고 보니 그 말에도 깊은 인생의 진리가 숨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박 사장이 큰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남의 집 딸들은 부모한테 용돈도 보내준다던데, 너희는 그런 거 없냐?"
주변 친구들이 자식 자랑, 손주 자랑에 이어 용돈 자랑까지 늘어놓으니 괜히 한번 던져 본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아빠! 난 안 미안해할 거야."
순간 식탁에는 웃음이 번졌다.
서울에서 아이 키우며 살아가는 팍팍한 현실을 아버지가 모를 리 없다. 부모도 괜히 한마디 해본 것이고, 딸도 괜히
미안한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솔직함이 가족다운 정을 느끼게 했다.
생각해 보면 세월은 참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식을 훈계했고, 자식은 군말 없이 따랐다. 이제는 네 살 손주가 집을 둘러보며 "이사해야겠어."라고
평가하고,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TV를 양보하며, 딸에게는 용돈 이야기를 꺼냈다가 "안 미안해할 거야."라는 당찬 대답을
듣는다.
그래도 명절이면 내려오고, 방학이면 찾아오고, 안방을 차지하고, 리모컨을 독점하고, 에어컨을 미리 틀어 놓으라고 명령
하는 사람들이 있어 집안은 시끌벅적해진다.
떠나고 나면 집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 조용함이 편하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면 괜히 허전해진다. 그래서 부모와 조부모의
마음은 늘 모순이다.
"올 때는 힘들고, 갈 때는 시원한데…."
그러면서도 다음 방학이 되면 또 손주가 오기만을 은근히 기다린다.
그것이 자식과 손주를 향한 부모 마음의 묘한 행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