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 / 윤후명
지나온 한 해가 거울 속에 묻혀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내 얼굴,
사랑을 기대한다
있는 그대로 없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보여주는 힘인 사랑을 기대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내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그때마다 더 깊게 파이고
새로운 날 숨가쁘게 기다리게 했으니
이제 기쁨과 슬픔 함께 버무려
거울 속 침묵의 창고에 간직하련다
가거라, 모든 망령이여
먼 뒷날 비록 다시 모습을 드러내
거울 속에서 절규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없는 그대로
곧이곧대로의 사랑의 힘으로
이 땅에 옳음과 그름을 살피기 위하여
곧이곧대로의 사랑의 힘님께
길을 비켜라
헌날을 데리고 서산을 넘어가
멀리멀리 사라져가거라.
있는 것을 있게 하고 없는 것을 없게 하는
사랑을 위하여
- <2023년 달력> (샌드파인 골프클럽)
* 윤후명 시인(소설가, 대학교수)
1946년 강원도 강릉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명궁》 《쇠물닭의 책》,
소설집 《가장 멀리 있는 나》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삼국유사 읽는 호텔》 《새의 말을 듣다》 등
산문집 《꽃》 《나에게 꽃을 다오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 등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제62회 3·1문화상 예술상 수상
현재 계간 『문학나무』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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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출판사로 우편물이 하나 왔습니다.
발신인이 윤후명 선생님이었습니다.
당연히 책인 줄로 알았습니다.
아, 새로 책을 내셨구나.
소설일까? 시집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습니다.
앗, 탁상용 달력이었습니다.
2023년 달력 말입니다.
어?
근데 시집입니다.
달력이면서 시집입니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매달마다 시 한 편씩 실려 있습니다.
2023년 새해에는
매달 선생의 시 한 편씩 읽지 않을 수 없게 생겼습니다.
그러고보니 귀한 달력이고 귀한 시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력은 2022년 12월로 시작해서 2023년 12월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시는 바로 2022년 12월에 실린 시편입니다.
-사랑의 힘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도 사랑의 힘으로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사랑의 힘으로 또 새해를 맞이하라는 뜻으로다가 말입니다.
"있는 것을 있게 하고 없는 것을 없게 하는"
그게 사랑이고
그게 또 사랑의 힘이랍니다.
어쩌면 나는,
'있는 것을 없애라 하고 없는 것을 있으라' 우겨대던 게 내 사랑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당신(의 사랑)은 물론 아닐 겁니다.
올 한 해도 시편지를 읽어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니 아무튼 해피뉴이어!
2022. 12. 26.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