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절규
문익환 목사의 비서였던 하태경(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종북맹동분자’에서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하게 만든 계기는 다름 아닌 문 목사의 죽음 때문이었다. 하태경은 문 목사가 범민련을 해체하려다 북한당국과 남한의 NL운동권으로부터 ‘안기부 프락치’로 몰려 그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사망한 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자신을 프락치로 매도하는 편에 서 있는 사람을 만나 “내가 스파이냐, 스파이야?”라고 큰 노여움을 표출하고 쓰러진 뒤 그날 저녁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와 같은 하태경의 주장에 반박기고문(한겨레21)을 올린 김창수(통일맞이 정책실장)의 주장에 대해 하태경은 “김창수 씨는 나와 통일운동을 함께했고 당시 통일운동의 내부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김창수 씨의 글로 인해 다시 한 번 확인된 사실은 문익환 목사가 당시 자신을 프락치로 매도하는 팩스에 큰 충격을 받아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사실”이라며 “김창수 씨와 나와의 ‘(팩스)명의’에 대한 기억차이는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지 모르는 당시의 팩스원본이 공개되면 깔끔하게 밝혀질 일”이라고 말했다.
뼛속까지 빨갱이였던 박헌영을 美帝간첩으로 몰아서 굶주린 사냥개들의 먹이로 참살시킨 인간들이 문익환을 안기부 프락치로 몰아서 죽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닐 것이다. 임수경은 술에 취해 “아, 하태경 그 변절자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릴거야. 하태경 그 개새끼!”라고 속에 가득 찼던 적개심을 표출했었다. 사실은 임수경의 그 적나라한 표현이 하태경에 대한 남한 종북세력의 본심을 대변한 것일 터다. 정권이 바뀌면 저들의 적개심은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잔혹한 보복의지로 분출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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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가 오랜만에 대선정국을 바라보는 자신의 본심을 털어놨다. 김지하는 안철수 대하여 “정작 대선후보가 돼서 하는 걸 보니 깡통이다. 기대에 못 미친다”고 혹평한 반면 박근혜에 대해서는 “이 시절이 여성의 시대다. 여성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보다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닮은 부드럽고 따뜻한 정치를 해야 하며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워야 한다”고 조언함으로서 사실상 박근혜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 김지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도움을 줄까도 생각했으나 아내가 말려서 접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지하의 아내는 왜 남편을 말렸을까? 잘 알다시피 김지하의 아내 김영주(토지문학관 관장)는 故박경리 여사의 외동딸이다. 그녀가 정신병원을 12번이나 들락거리며 주야장천 술에 찌들어 사는 남편 때문에 자신과 두 아들이 겪은 아픔을 한 언론에 털어놓았을 때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김지하와 그 가족에 대한 깊은 연민, 그리고 그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인간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
김영주 씨는 ‘동지’라는 사람들이 김지하를 죽이려 했다며 “그들은 남편에게 박정희 체제에 더 극렬하게 저항하는 문건을 옥중에서 계속 쓰도록 요구했어요. 박정희로 하여금 남편을 죽이도록 해 남편을 ‘투사’나 ‘영웅’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지요. 그 동력으로 박정희 체제를 엎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박경리)가 ‘동지들이 김지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했어요. 이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모녀도 죽이려고 했어요. 누가 동지고 적인지 모르겠더라고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영주 씨는 그 당시 첫 번째 오는 택시는 안탔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납치될 뻔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란다. 증거는 없지만 이건 피해의식에 근거한 망상이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당시 남편이 폐인에 가까운 상태였고 사람 사는 게 아니었다며 “이런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지나간 일은 덮고 가려고 했어요. 선과 악, 모두가 당시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정치권 진출을 허락하겠나?
그 후 90년대 초, 시위 때마다 ‘민주화’ 명목으로 분신자살이 유행하자 김지하는 한 언론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고, 그 글은 세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 사건 이후 운동권에서는 김지하를 ‘변절자’로 단정지었고 운동권 동지들과 후배들로부터 욕설과 비난, 협박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김영주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조직적으로 매도하고 따돌렸어요. 그 모욕감에 남편은 술 마시고 들어오면 대성통곡을 했어요”라고 말한다. 김지하는 스트레스를 못 견뎌 또 다시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했다.
어떤가? 이쯤되면 김영주 씨가 남편(김지하)의 정치권 진출에 넌덜머리를 내는 이유를 알만하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는 김지하 부부가 남은 여생이라도 맘 편하게 살기를 바라야 한다. 우리 좋자고 그들을 또 다시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건 옳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김지하가 박근혜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보면서 나는 그 발언 속에 그가 겪은 비원의 한이 서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칭 ‘민주화세력’이란 것들, 그리고 그 세력과 야합하려는 족속들이 얼마나 속빈 깡통인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