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명절인 설을 하루 앞둔 날, 전남 완도군 보길도 백도리 마을회관에는 마을사람로 북적인다. 회관 한쪽에 이장이 준비한 차례상이 차려지자 마을사람들은 공동으로 차례를 지내기 시작한다. 여느 지역과 조금은 다른 풍습을 가지고 있는 백도리의 설날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 보길도 선착장에서 벌어진 '백도리 도제'
마을회관에서 공동차례를 마친 백도리는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했다. 짙은 어둠이 깔렸지만 한쪽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정겹다. 밤 12시가 넘자 한 가정의 아녀자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나와 선착장 근처에 간단하게 상을 차리고 정성을 올린다.
"우리집 식구들 건강하고 백도리 마을 전체가 풍요로웠으면 좋겠다고 빌고 있어요. 새벽같이 목욕재개하고 음식 준비하는게 힘들긴 하지만, 이래서 지금까지 우리집에 아무 일도 없다고 믿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야죠" 라며 한 잔 술과 음식을 바다에 던져두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린다.
▲ 완도군 보길도 백도리의 전경
음력 새해를 맞은 백도리는 유난히 햇살이 따스했다. 정오부터 마을회관에는 청년들이 모여 풍물을 울릴 준비로 바쁘다. 각 가정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대로 아낙들이 상을 들고 선착장으로 모였다.
오후 2시가 되자 풍물패의 행진과 함께 도제가 시작되었다. 마을회관부터 선착장 부두 끝까지 한 바퀴 돌아 나온 풍물패들이 선착장에 도착하자 마을 이장이 대표로 제를 올리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절을 하는가 하면 풍물패에 끼어서 춤사위를 한바탕 벌이기도 한다.
▲ 완도 특산물 '김'을 받침삼아 제물을 올리는 마을 아낙들
제를 다하면 음식을 바다에 올린다. 마침 물이 빠진 터라 가장 먼 곳까지 나가 그 곳에 김(완도의 특산물)을 깔고 음식들을 올린다. 그 모습이 마치 김밥을 말기 전에 모습과 흡사해 재미가 있다.
마을의 공동제가 마무리 되자 풍물패들은 상가 집부터 새로 지은 집들을 빠짐없이 들리며 풍물을 올렸다. 마을 꼬마에서부터 나이든 노인들까지 나와 덩달아 어깨춤이다. 풍물이 멈춰 서면 집집마다 준비한 음식들로 음복을 한다. 백도리의 특산물인 전복과 해산물로 조리한 음식들이 주로 나온다.
인천에서 명절을 맞아 백도리에 들린 임정숙씨는 "명절에 자주 찾아오진 못하지만 올때마다 신명나는 풍물을 즐길 수 있어 좋아요"라며 "이런 전통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 백도리의 명절에는 신명나는 풍물이 있다
풍물패들의 신명나는 놀이는 해가 한참 진 다음까지 계속 이어졌다. 선착장 가운데 피어놓은 불집을 따라 덩실덩실 춤사위는 그칠 줄 몰랐다. 몇몇 청년들은 가면을 쓰고 나와 무도회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렇게 백도리의 설날을 저물어 갔다.
백도리의 도제는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풍어제의 의미로 연행되는 마을 제의이다. 과거에는 주로 고기잡이를 많이 했기 때문에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였고, 현재는 전복양식을 주로 하기 때문에 전복의 풍요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 가면무도회가 벌어진 백도리 설날의 밤
한편 문화관광부 조사결과 매년 전국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 약 1,00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지역 축제 대부분이 전통 원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관(시,군)에서 주관하는 흥미유발, 특산물 판매 형식의 축제여서 전통성과 차별성의 부재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백도리 도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축제 본연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