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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24회>
씬 1 송악성
지난회의 연결이다. 변사부와 박술희가 공수의 자세를 취하며 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미 흰머리가 보이는 변사부이지만 그 자세에는 빈틈이 없다. 왕건과 유금필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 있다.
유금필 (왕건에게) 성주님, 보아하니 예사인물들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왕건 그리 보이는군요.
유금필 그저 떠도는 낭인들 같지는 않사옵니다. 검을 든 자세가 빈틈이 없사옵니다.
왕건이 고개를 끄덕일 때 기합소리와 함께 박술희가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삽시간에 치열한 접전으로 이어진다. 가히 용호상박이라 할 만하다. 왕건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여러합이 교환되고 이내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변사부가 점점 힘에 열세를 느끼는 모습이다. 전광석화처럼 이어지는 연이은 공격에 물러나기 급급하다. 왕건과 장수장들이 표정이 굳어진다.
장수장 아니되겠사옵니다. 소인이 나서겠사옵니다. 성주님.
왕건 ...........(대답이 없다)
그 사이에 접전은 더욱 치열해 진다. 허공으로 솟았다 땅을 뒹구는데 두 사람의 접전은 불꽃을 튀긴다. 가히 살수가 오가기 시작한다. 유금필이 고개를 갸웃한다.
유금필 (신숭겸에게) 이보시오, 임자. 보다시피 살수가 오가고 있소이다?
어허, 그러게 말이오.
유금필 그러지 말고 우리가 한번 붙어 보는 것이 어떻소이까? 저 두분은 보아하니 막상막하이시고...
능산 허허허, 그거 나쁠 것 없소이다. 이보게, 술희, 그만하게나.
박술희 아직 않끝났소이다, 능산이 형님.
능산 그만 하라고 하지 않나. 상대는 연로하신 분일세. 예의로 대해야지. 두 사람의 승부는 무승부일세.
변사부 아직 끝나지 않았네. 어서 오게나.
왕건 그만, 그만 하세요. 사부님. 이번에는 여기 두 분이 겨루겠다 합니다. 두 분은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하시지요.
박술희 하하하하... 거 연세께나 자신분이 검술이 대단하십니다. 이 젊은 놈이 절절 맺지 뭡니까? 그만하시지요?
박술희가 손을 털털 털고 시원스럽게 물러나자 변사부도 그제서야 체면을 차리며 검을 검집에 넣는다. 어느새 능산과 유금필이 자세를 조여가며 마주해 있다.
능산 소문대로 올시다. 우리가 송악에 온 것은 이 송악 땅에 인물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오. 참으로 오늘 재미있는 날이구려.
유금필 허허허, 보기는 바로 보았소이다. 그대들이 아직 세상구경을 아직 제대로 못한 모양인데 오늘 실컷 보시구려. 이얏--
유금필이 검을 날리며 능산에게 돌진해 간다. 재빠른 동작이다. 검이 수십 합 교차되며 불꽃을 일으킨다. 치열한 접전이다. 말로만 듣던 검의 진수를 이들이 보여주고 있다. 온갖 묘기들이 지나쳐간다. 왕건과 장수장, 변사부등이 표정이 굳어있다.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웃던 박술희도 어느새 표정이 굳어버린다. 유금필의 묘기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얼마를 그렇게 싸웠을까, 보고있던 왕건이 소리친다.
왕건 그만, 그만들 하시오.
그제서야 싸우던 두 사람이 왕건을 본다.
왕건 대단들 하십니다. 오늘 참으로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능산 .....?
왕건 두 분이 이 송악 땅에 오신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서로의 실력을 다 확인하였으니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어떻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술한상 내고 싶습니다.
박술희 예? 지금 술이라고 하였사옵니까? 헤헤헤헤..... 나는 그 술소리만 들으면 입이 군침이 도는 사람이옵니다. 능산형님, 술을 낸다고 하옵니다. 술 말이옵니다.
능산 성주님, 소인들이 오늘 결례를 드렸사옵니다. 실은 일찍부터 이 송악성의 사정을 알고 있었사옵니다. 이렇게 성주님과 천하의 장수들을 뵈오니 실로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왕건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자, 우리 통성명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는 이 성의 성주 왕건이라고 하오. 그리고 이쪽은 나의 무예 스승인 변사부님이시오.
변사부 변사부라 하오.
왕건 또 이분은 지금 송악의 일을 돕고 있으나 본래는 신천에서 오신 유금필이라는 장수 이시오.
유금필 허허허허, 유금필이라고 합니다. 정말 대인들을 만났소이다. 이거 아주 마음이 흡족하오이다.
능산 소인은 능산이라 하옵니다. 이쪽은 제 의형제인 박술희라고 하옵니다.
박술희 박술희이옵니다.
왕건 자자, 어서들 드십시다.
씬 2 왕건의 거소
조촐한 술상이 마련돼 있다. 왕건과 유금필, 능산, 박술희, 변사부 등이 모여 있다. 사내다운 사내들이 모여 있으니 웃음 소리도 자못 호쾌하다.
왕건 하하하... 자 한잔들 하시지요.
모두 잔을 든다.
왕건 대체 두분은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셨소이까? 고향은 어디시고... ?
능산 소인은 저 아랫녘 무진주 관내 곡성군 출신이옵고, 이 아우는 혜성군 출신이옵니다.
박술희 서로가 고향은 다르지만 이 난세를 떠돌다가 우연히 만나 결의형제를 맺었사옵니다. 여기 능산형님은 본래 언월도를 아주 잘 쓰시는 분이시옵니다. 소인은 무쇠철퇴를 애용합지요.
유금필 허허, 그렇소이까?
박술희 만약에 우리가 검을 쓰지 않고 언월도나 철퇴를 썼다면 두분께서는 아주 곤란한 일을 겪으셨을 것이옵니다, 허허허허....
유금필 만약에 나나 여기 변사부께서 사정을 두지 않았더라면 그대들 또한 아주 난처했을 것이외다. 하하하하.......
그러자 박술희가 기분이 안좋은 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면 능산이 이를 제지한다.
능산 아아... 왜 이러는가? 우리는 손님일세. 기분좋게 대접을 받는 자리가 아닌가? 아우가 성미가 급하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성주님.
왕건 하하하. 아닙니다. 이미 두 분의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록 이렇게 만났으나 모두가 일세를 풍미하는 대장부들이십니다. 오늘 마음놓고 한잔 하시지요.
능산 고맙사옵니다, 성주님.
변사부 자자, 한잔씩들 하시지요. 우리 성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자리올습니다. 마음껏들 드시구려.
박술희 예, 변사부님.
변사부 허허. 어느새 내 이름을 외웠구려. 이런, 허허허......
능산 본래 아우가 주변이 아주 좋사옵니다.
모두들 웃는다. 그리고 술잔을 들이킨다.
왕건 그래, 이제 어디로들 가실 참입니까?
능산 딱히 정한 곳은 없사옵니다. 험한 세상이다 보니 이 한 몸을 의지할 곳이 어디인가 찾고 있는 중이옵니다.
유금필 그렇다면 이 송악에 머무시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박술희 그것도 나쁠 것 없지요. 아직까지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소이다. 아니그렇습니까, 능산 형님?
능산 (끄덕인다) 소인들은 송악을 거쳐 철원으로 가던 참이었사옵니다. 궁예 대왕이 나라를 일으켜 백성들을 위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왕건 그렇소이다. 앞으로는 철원이 아니라 이 송악이 세상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능산 중심이라니요?
왕건 지금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은 궁예 대왕폐하께서 머무실 황성을 짓기위함 입니다. 성루와 대궐을 짓는 것이지요.
박술희 그렇사옵니까? 궁예 대왕은 어떤 분이시옵니까?
왕건 참으로 인자하고 덕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이 난세를 구할 영웅이시지요.
능산 하긴... 그러시니까 성주님 같은 분도 따르시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허허허..
왕건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예요. 자 마음껏들 드십시오. 술과 안주는 얼마든 있습니다.
박술희 고맙사옵니다. 성주님. 소인은 고기라고 생긴 것은 무엇이든 먹사옵니다. 참으로 오늘 포식한번 하게 생겼사옵니다. 허허허허......
박술희는 연거푸 닭다리를 찢어 입으로 가져간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와도 같다.
씬 3 철원성 외경
종간 (E) 폐하, 종간이옵니다.
씬 4 궁예의 처소
궁예가 불경을 읽고 있다가...
궁예 들어오시지요.
종간과 은부가 들어온다.
궁예 (불경을 덮으며) 어시 오세요..
종간 경을 읽고 계시는데 소신이 방해가 된 것 같사옵니다.
궁예 아닙니다.. 자 앉으시오..
종간 참으로 대단하시옵니다, 폐하.. 한시도 쉬시는 법이 없사옵니다.
궁예 아닙니다.. 요즘 이런 저런 핑계로 공부를 너무 게을리했어요.
종간 허허허.. 신의 게으름을 꾸짖으시는 것 같아 민망하옵니다.
궁예 아니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데 무슨 일이오?
종간 말씀올리시게....
은부 일전에 아뢰었던 송악의 일을 아뢰려 하옵니다, 폐하.
궁예 말해보오.
은부 왕륭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송악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 제국의 도읍지로서 선택을 받은 땅이옵니다.
궁예 .........?
은부 지금 성을 쌓는 공사와 더불어 폐하께서 계실 궁궐공사가 한창이옵니다. 무릇 한 나라의 황제께서 머무실 곳이옵니다. 송악의 힘만으로는 그 소임을 다 하기가 어려울 것이옵니다.
궁예 그렇겠지요. 그래서 여러 호족들에게 힘을 모아주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종간 아무래도 좀더 단단히 다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사옵니다. 재물과 인력을 크게 보강시켜야 할 것 같사옵니다.
궁예 그렇게 하십시다. 허허허.... 이보시오. 종간군사.
종간 예, 폐하.
궁예 내가 뭐라고 하였소이까? 그 왕건이라는 젊은 성주가 얼마나 큰 일을 해내고 있소이까?
종간 .......
궁예 허허허... 우리가 보았을 때는 작은 아이에 불과했었는데 지금은 송악의 성주예요.
종간 폐하께서 내리신 벼슬이옵니다.
궁예 그렇기는 하지만 그 젊은이가 지금 우리가 머물 대궐을 짖고 있어요. 또 그 아이 아비는 스스로 도선대사의 예언을 우리에게 알려주면서 우리를 그 곳으로 오도록 권해 왔소이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소이까? 바로 저들의 충성심이외다. 군사께서 걱정하시는 그 충섬심 말이오, 이제는 마음 놓으시구려, 허허허.......
종간은 대답이 없다.
궁예 이제 우리의 궁성을 짖는다 하니 진실로 한 나라의 창업을 실제로 보는 것 같소이다. 너도 나도 모두가 황제라 하고, 대왕이라 하는 세상이오. 마땅히 저들 도적들과는 다른 새로운 국가임을 알리는 나랏법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종간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궁예 이곳에 오면서 일부 관제를 정하긴 하였으나 그것으로는 부족하오. 나라를 꾸려갈 올바른 법과 제도를 확실하게 세우도록 하시오.
종간 예, 폐하.
궁예 또 있소이다. 우리는 미륵의 뜻으로 일어섰습니다. 나라의 관리들과 모든 백성들이 부처님의 법을 믿고 따라야 할 것이오. 더불어 중요한 기일에는 각 고을에 나가 있는 모든 태수와 호족들은 물론이고 문무 신료들도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부처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오.
종간 지당하시옵니다. 그 뜻을 신료들에게 전하겠사옵니다.
궁예 그렇게 해 주시구려. 그것이 바로 개혁이요. 신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소이다. 잘 조처하시구려
종간 예, 폐하.
은부 (눈치를 보다가) 하옵고 폐하..
궁예 말씀하시오.
은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궁예 말해보시오.
은부 지난날과는 달리 폐하께오서는 큰 제국의 주인자리에 오르셨사옵니다. 황제폐하께는 마땅히 그 안을 보좌해 올리는 황후마마가 계셔야 하옵니다.
궁예 황후.....? 황후라....황후라....
종간 일국의 제왕이 되셨사옵니다. 마땅히 안주인을 맞이하셔야 할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여인이 필요하다면 미향이라는 보살이 있지않소? 내 아이도 낳았소이다.
종간 아니되옵니다. 지금 계시는 마님은 불가하옵니다. 그 분이 뉘시옵니까? 양길의 따님이 아니옵니까?
궁예 ........
은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조속한 시일내에 다시 황후마마를 맞으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이는 나라의 기강을 근본부터 바로 세우시는 일이옵니다.
궁예 .... 내겐 여인이 필요 없소이다.
종간 폐하께서는 이제 승려의 신분이 아니시옵니다. 대왕이시옵니다. 천하를 호령하시는 대왕폐하시옵니다.
궁예 허허허.. 필요없다 하지 않았소?
두사람 (동시에) 폐하?
궁예 그만 두시오. 내 듣지 않은 걸로 하겠소이다. 여인이라니....? 다시는 그런말 하지 말구려. 자, 더 할 말이 없으면 나가들 보시구려. 경을 마저 읽어야 겠소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이 경을 읽고 있으면 그 무겁고 복잡한 것들이 다 눈 녹듯이 사라진단 말이오.. 허허허...그것 참.......나가들 보세요?
종간 ...예... 하지만 다시한번 깊이 생각하여 주시오소서, 폐하. 황후마마에 관한 일은 참으로 시급한 사안이옵니다.
궁예 관심없다고 하였소이다.
씬 5 미향의 처소
미향이 멍하니 앉아 있다. 입술이 말라 붙었고 쾡한 눈이다. 월이가 곁에서 미음 사발을 들고 있다.
월이 (울듯) 마님... 미음이라도 드시오소서.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사옵니다..
미향 .......(대답없고).....
월이 마님...?
미향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구나..
월이 이러다가는 마님마저 쓰러지시옵니다. 미음이라도 한술 드시어요.
미향 아이는... 우리 아이는... 잘 있을까....? (눈물)
월이 (눈물) 걱정마시오소서. 잘 계실 것이옵니다. 저들이 아무리 독하다고 해도 설마 폐하의 혈육을 해하겠사옵니까?
미향 아버님이 원망스럽구나... 어찌 나를 이리 만드셨을꼬....?
월이 마님...
미향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다.. 이제와서 아버님을 탓해 무엇하겠느냐? ....불경에 이르기를 이 모든 것이 다 업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전생에 내 업이 얼마나 무겁길래 이리 되었을꼬....
월이 ..... 마님....?
미향 지금쯤 욕심 많은 내 아버님은 어찌하고 계실꼬....? 내 사정을 알기나 아실까?
그런 미향의 표정에서... 디졸브 되면
씬 6 북원성 외경
양길 (E) 견훤왕이 정말 우리를 도와줄까?
씬 7 동 양길의 거소
양길과 명길 사위1, 2가 자리해 있다.
양길 지난 번에 견훤이가 보낸 그 지원군 이야기 말이야.
명길 (어이 없어) 예..? 그 일은 형님폐하께오서. 정면으로 거절하시지 않았사옵니까? .
양길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옹졸했던 것 같네..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었어... 궁예 그 놈을 치자면 아무래도 우리의 군사력 만으로는 어려움이 많아....
명길 궁예가 수천의 군사를 가졌다고 하지만 우리도 다 끌어모으면 저들의 절반은 넘사옵니다. 문제는 군사의 수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정신력의 문제이옵니다.
양길 아 그야 그렇겠지마는.....
명길 언젠가는 반드시 싸우든가 아니면 화해를 하던가 그도 아니면 궁예나 우리 중 누군가가 무릎을 꿇어야 할 사태가 이를 것이옵니다.
양길 화해..............? 그런 건 없어. 무릎을 꿇는 다면 궁예 저놈을 꿇게 할 것이야.
명길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치시오소서. 망설이지 마시고 군사를 일으키시오소서. 형님. 그리하여 진정한 대왕 폐하가 되시오소서.
양길 듣기싫다. 그놈의 대왕폐하 소리! 그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되었어.
명길 이미 삼십여 성의 성주들이 형님 폐하의 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군사를 일으키시오소서.
양길 우리가 움직이면 우리 뒤에 있는 명주의 김순식이가 달려들겠지?
명길 이것저것 다 생각하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사옵니다.
양길 (갈팡질팡하며) 철원에 내 딸 미향이가 있어. 그 아이를 어떻게 하나? 음? 그 아이는 말이야?
명길 죽고 사는 전쟁이옵니다. 조카 하나 때문에 군사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세상이 형님을 비웃을 것이옵니다.
양길 허지만.... 우리 군사들의 수가 너무 적어 아무래도 견훤이가 뒤에서 도와준다면 훨씬 안심이 되겠는데... 아니 그런가, 아우?
명길 문제는 형님폐하의 결단이시옵니다. 견훤의 지원군이 아니라 바로 형님이시옵니다.
명길은 답답하다. 한숨을 내쉬며 어쩔줄을 모른다. 아직도 고개를 갸웃 거리는 양길의 갈등하는 그 모습에서......
씬 8 어느 벌판
군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군사들이 곳곳에서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그 중 견훤의 군막을 잡는다.
견훤 (E) 허허, 우리가 벌써 여기까지 이르러 있는가?
씬 9 그 어느 군막 안
견훤과 능환, 최승우, 추허조 등이 모여 있다. 주변으로 여러 장자들이 함께 해 있다. 견훤이 지도를 보며 웃는다.
견훤 참으로 먼 길을 지나 왔네 그려.. 우리가 무진주를 떠나가지고 갑성과 무령, 금산, 무안을 지나서 영암과 분령군, 승평군, 하동군을 지났단 말이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서남해의 요지는 모두 거쳐서 지금 강주에 이르고 있사옵니다.
능환 (지도를 가리키며) 계속해 위로 천령군과 거창군을 지나 완산주 관내로 들어가시게 되옵니다.
견훤 (끄덕이며 보다가) 완산주 관내에는 군이 몇 개나 되는가?
능환 모두 열 개의 군이 있사옵니다.
견훤 지금은 완산주를 전주라고 한다지?
능환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완산주라 부르옵니다. 우리가 와 있는 이곳 강주도 민간에서는 여전히 청주라 하지 않사옵니까?
견훤 이제 그렇다면 우리가 완산주로 가고 있는 것이로구먼...?
최승우 그렇게 보아야 하옵니다.
추허조 내치신 김에 아예 완산주 성내로 드시오소서. 볼만할 것이옵니다.
견훤 무엇이 그리 볼만하단 말이냐?
추허조 아, 폐하께오서 무주를 떠나시어 강주를 거쳐 전주로 가신다면 신라 아홉 개의 주중에서 세 곳의 주를 순행하시는 것이 되옵니다. 얼마나 폐하의 위엄이 드러나는 일이 되겠사옵니까? 허허허.....
견훤 그 일은 내가 서두르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최승우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폐하. 이제 추장군의 말에 귀를 기울이실 떄가 된 것 같사옵니다.
견훤 어째서?
최승우 지금 송악이 한참 분주하다고 하옵니다. 궁예가 그곳에 궁궐과 성을 짖고 있다고 하옵니다. 아주 큰 공사를 벌린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궁예가 송악에 성을 쌓고 있다? 송악에....? 하필이면 왜 송악인가? 철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최승우 송악은 예성강이 끼어있어 옛날부터 무역하는 배가 자유로이 드나드는 곳이옵니다. 궁예가 송악에 도읍을 정하는 것은 바로 바다 때문이옵니다.
견훤 바다....?
능환 그러하옵니다. 궁예도 바다를 얻은 것이옵니다. 그야말로 범이 날개를 단 격이 되었사옵니다. 허허허..
견훤 그렇겠지......그럴게야...(곤혹스럽다) 그렇게 된게야....
모두들 그런 견훤을 본다. 표정들이 어둡다. 그런 견훤의 얼굴에서
씬 10 동 군막 밖
박씨가 시녀 옥이와 함께 궁녀들을 거느리고 멀리 떨어지는 노을을 보고 있다.
박씨 노을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옥이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박씨 그동안 쉬임없이 폐하를 모시고 달려왔다. 참으로 먼 길을 왔는데 너도 많이 힘이 들겠구나.
옥이 아니옵니다, 마마. 무진주 성에만 있다가 폐하의 순행길에 따라나서니 아주 날아갈 듯 싶사옵니다.
박씨 호호호... 그것이 여인들의 운명이니라. 옛날에는 우리가 그저 상주땅에서 농사나 지으며 한세상 그렇게 보낼 줄 알았지.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더냐?
옥이 지금은 황후마마시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박씨 나는 황후도 달갑지 않구나. 구중궁궐에 갇혀있는 것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니라.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너나 나나 앞으로도 이렇게 바깥 구경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옥이 알고 있사옵니다, 마마.
박씨 안의 회의가 길어질 모양이로구나.
옥이 그런 모양이옵니다.
씬 11 다시 동 군막 안
견훤이 지도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견훤 궁예라는 자가 바다를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을까?
능환 궁예는 본시 승려출신이옵니다. 그자는 바다를 모르겠지만 전쟁은 궁예가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해전은 송악사람들이 맡아서 하게 되겠지요.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바로 그것이옵니다. 궁예가 송악으로 가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옵니다. 장차 크게 천하를 노려보자는 것이옵니다. 결국은 폐하와 자웅을 겨루게 된다는 말씀과도 같사옵니다.
견훤 그렇겠지. 궁예와 겨루게 된다.......?
최승우 우리도 수군을 강화해야 하옵니다. 송악 사람들은 바다에서는 당할 자들이 없을 만큼 강병이라 들었사옵니다.
능환 허허허.... 너무 그렇게 걱정일랑 마시게.. 우리에겐 바다의 귀신인 수달이 있지 않은가? 아니 그런가?
수달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이 수달만 믿으시오소서. 바다는 이 수달이 맡겠사옵니다.
최승우 나는 지금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것이오. 물론 수달 장군께서 서남해 일대를 장악하고 계셨겠지만 송악 사람들과는 성격이 다를 것이오. 저들의 무대는 이 삼한 땅이 아니라 바다 밖의 여러 나라들을 백여 년 동안이나 상대해온 노련한 뱃사람들이외다.
수달 허 이거야.. 이 사람을 못 믿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견훤 그만 하게.. 최학사 말이 맞네.. 궁예가 송악을 얻었다면 우리도 수군을 강화해야 할 것이야..
수달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아무튼 대단한 자야.. 이렇게 빨리 커 올라올 줄은 몰랐네 그려... 그렇다면 우리도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 되겠지. 우리가 머물러 있는 저 무진주 보다는 완산주가 도읍으로 낫다고 하였던가?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는 스스로 고려의 후예를 표방하고 있사옵니다. 또한 우리는 백제를 복원한다 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무진주보다는 옛 백제의 중심인 완산주가 우리의 도읍으로는 더 적합할 것이옵니다.
견훤 (끄덕인다) 일리가 있네, 일리가 있어.... 그렇다면 허조야,
추허조 예, 폐하.
견훤 일단의 군사를 내어줄 것이니 완산주로 가거라. 가서 성안을 깨끗이 청소해 놓거라. 그리고 다음 영을 기다리거라.
추허조 (신이났다) 예, 폐하. 신에게 맡기시오소서. 폐하께서 오시기 전에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해 놓게 사옵니다.
견훤 궁예라... 어느새 궁예가 우리의 근심거리가 되기 시작하는구먼....
씬 12 철원성
문무 신료들과 금대, 장일, 염상 들이 호위 군사들을 이끌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지윤 부자 등도 계속해 들어가고.. 이윽고 강장자와 연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힘겨운 왕륭 부부의 모습도 마사부와 더불어 다른 쪽에서 다가온다.
강장자 아이고, 왕성주님이 아니시오이까?
왕륭 강장자님이시구려. 오랜만이외다.. 연화도 오랜만이로구나..
연화 ......(허리를 굽힌다)....
강장자 금성태수로 가셨다는 소식 들었사옵니다.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경황중에 인사도 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
왕륭 그렇게 되었습니다. 폐하의 지엄하신 명이니 어찌하겠소이까? 이몸 역시 간다는 말씀조차 제대로 못드리고 떠났소이다.
백씨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한씨 고생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어디든 사는 건 다 똑같지요.
백씨 하긴 그렇습니다만... 성주님께서 많이 편찮아 보이시옵니다.
한씨 예, 금성으로 가신 이후 부쩍 약해지시는 것 같사옵니다.
왕륭 나이가 먹으면 다 그런것입니다. 허허허. 이제 갈 때도 되었지요.
그 때 왕건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가온다.
왕건 아버님...
왕륭 어서 오너라..
왕건 (강장자에게) 안녕하시옵니까? (그리고 연화와 눈을 마주치고 어색해 한다)
강장자 오랜만일세.. 성곽과 궁궐을 짖느라 고생이 많다 들었네..
왕건 예, 폐하께서 많이 도와주시어 고생은 없사옵니다.
강장자 하긴.... 그럴테지만....우리 신천에서도 유금필이 그리 갔는데....
왕건 예. 참으로 훌륭한 장사이옵니다.
강장자 암. 대단한 사람이지. 큰 도움이 될걸세.
왕륭 자자...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서 들어가십시다. 폐하께서 설법을 하실 시간입니다. 우리가 제일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강장자 아, 예 예..
왕륭과 강장자가 성으로 들어간다. 연화가 왕건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왕건이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간다. 뭔가 이상한 듯한 연화의 그 표정에서...
씬 12 동 대법당
사방에 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고, 재단 앞에는 수십명의 승려가 자리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외고 있다. 많은 장자와 문무 신료들이 부부동반하여 법당을 메우고 있다. 승려들의 염불소리가 장내를 꽉 메우고 있고 아직 궁예가 앉을 법석은 비어있다.
씬 13 미향의 처소
미향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합장을 하고 있다.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 밖에서 월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월이 (E) 마님.. 월이옵니다.
미향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고 월이가 들어선다.
월이 마님.. 모두들 대법당으로 갔사옵니다. 우리도 가야 하옵니다. 어서 차비를 차리시오소서.
미향 대법당은 왜...?
월이 중요한 기일을 정해서 법회를 연다 하옵니다. 대소 신료는 물론이거니와 지방의 태수들도 모두 법회에 참가하라는 폐하의 영이 내려졌다 하옵니다.
미향 ..............?
월이 마님과 쇤네도 가야 하옵니다. 어서 서두르시오소서.
미향 (허탈한 미소) 이제 폐하께서 부처님이 되신 모양이로구나. 어거지로 사람들을 모아 설법을 하다니....
월이 누가 듣사옵니다 마님. 어서요, 어서 일어나시오소서.
미향 .....폐하의 영이라니 어쩌겠느냐, 가자꾸나.
그 위로 들려오는 은부의 소리
은부 (E) 대왕폐하 납시오!
씬 13 대법당
궁예가 여전히 낡고 헤어진 가사장삼을 걸친 채 법석으로 걸어들어오고 있다. 모든 문무 신료들이 일어나 살아있는 부처를 대하듯 합장을 하며 그를 맞고 있다. 궁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들 사이를 지나 중앙의 법석에 가 앉는다. 잠시 묘한 침묵이 장내를 휘감고 있다. 종간이 입을 연다.
종간 폐하께오서 법회를 주관하러 오셨소이다. 모두들 부처님을 대하듯 절하여 맞도록 하시오. 삼배를 올려야 할 것이외다. 자 일배,
모두들 일어나 부처님께 하듯 이마를 바닥에 대고 두손을 들어 절을 한다.
종간 일배....(사이) 일배....
드디어 삼배가 끝나고 사람들은 자리에 앉는다. 궁예의 표정은 정말로 살아있는 부처처럼 보인다. 수백의 촛불들이 단위에 소리없이 타고 있고 향 연기가 가득히 피어오른다. 궁예가 침묵 끝에 주장자를 내려친다. 한번, 두 번, 세 번......
궁예 그대들은 들으시오.
일제히 예.
궁예 내가 오늘의 법회를 마련한 것은 우리 모두다 오탁한 번진과 마음을 씻어내고 부처님의 세계를 함께 보고자 함이었소이다.
모두들 ....... (카메라는 이들의 면면을 스쳐 지나가고)
궁예 굳이 먼 곳에 나가있는 이들까지 이리로 오라 한 것은 진정으로 미륵의 세계를 본 이 사람이 그대들을 직접 깨우치고자 함이오. 그대들은 내가 누구일 것 같소?..........(사이) 나는 미륵의 현신을 받은 사람이오.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온 미륵이오.
모두들 그런 궁예를 본다. 궁예는 신들린 듯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의 어조는 강하고 호소력이 있다. 장내는 물결처럼 감동이 일고 있다. 그들은 미륵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궁예 나는 미륵 부처의 힘으로 오늘날 나라를 세웠소이다. 미륵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욕심이 없는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만민이 평등한 세계를 일컫는 것이오. 그대들은 스스로 눈을 감고 겸허이 반성하시오. 과연 백성을 위해 살았는가? 자신은 배불리 먹고 남들이 굶주리는 것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왕건과 그 가신들 그리고 강장자들, 환선길들의 면면이 계속해 스쳐간다. 은부와 종간의 표정은 감동, 감동 그것이다. 궁예는 마치 부처처럼 계속 강한 어조로 설법을 더해가고 있다.
궁예 작은 권력이 있다하여 불의한 힘으로 가엾은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억누르지 않았는가? 과연 내것을 남에게 줘 본적이 있는가? 남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 일이 있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그것을 깨달아 지켜야 할 것이오. 아시겠소이까? 이것이 미륵의 도리외다.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폐하.
궁예 그대들의 허물을 잘 살펴보고 잘난 척 날뛰지 말라. 대 우주의 눈으로 내려다보면 그대들의 삶은 한잔 찻잔 속에 물이 출렁거리는 거와 같은 것이니라. 이것이 부처님의 말씀이오. 삼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오.
모두들 예.
궁예 불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올시다. 내 작은 욕심하나 버리면 다 끝나는 것이오. 이제부터 모두들 하루에 세 번씩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대들이 미륵나라의 백성임을 잊지않도록 하시오.
모두들 예.
궁예 이제 이 나라의 도읍이 송악 땅에 세워지고 있소이다. 그대들이 갖고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으시오. 그 모든 것을 기쁘게 미륵의 왕국에 내어놓으시오. 그만큼 무한한 복을 받을 것이오. 다시 이르거니와 나는 미륵으로서 이 세상에 왔소이다. 나를 말과 뜻을 따르는 자는 영원한 피안의 세계에 이르게 될 것이오.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나는 계속해 법회를 주관할 작정이오. 모두 나의 이러한 뜻을 알았으면 나무아미타불로서 대답을 해 보시구려.
모두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계속)
카리스마, 궁예의 카리스마가 그 위력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의 대부분이 감동에 찬 표정을 짖고 있다. 그러나 왕륭은 이미 기력이 다해 몸을 떨며 흔들거리고 있다. 한씨가 걱정스레 보고 있다. 저만큼에서 왕건도 그런 왕륭을 보고 있다. 나무아미타불로 장내는 계속해 번져오고 있다. 디졸브....
씬 14 동 대법당 밖
장자들과 문무 신료들이 이미 신이 되어버린 궁예를 에워싸며 그가 지나치는 곳에 절을 하고 있다. 궁예가 그 절을 수없이 받으며 염주를 굴리면서 그곳을 빠져나간다.
궁예 (일일히 인사 받으며) 반갑소이다. (사이) 먼곳에서 오셨구려. (사이) 허어... 강장자님도 오셨구려.. 허어, 옆에 이분은......
강장자 예, 폐하. 소신의 여식이옵니다.
궁예 허어... 참으로 귀상이로다. 천상의 보살상이로고.... 허허허....
연화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가 그렇게 한마디 던지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강장자와 연화와의 그 대화를 종간이 의미 깊게 보고 있었다. 궁예는 다시 왕건과 왕륭부자의 근처를 지나가고 있다.
궁예 왕성주가 아니십니까?
왕륭 예, 대왕폐하.
궁예 금성의 일은 잘 되어가시는지요?
왕륭 (병색이 완연하여) 예, 폐하.
궁예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이십니다마는....
왕륭 아니옵니다. 몇일 피곤하다보니...
궁예 건강하셔야지요, 허허....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왕건에게) 허허, 왕성주
왕건 예, 폐하.
궁예 송악의 일은 내 계속해 보고를 듣고 있네. 일의 진척이 빠르다지?
왕건 혼신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래야지. 미륵의 황도를 세우는 일일세. 자네의 어깨에 달렸어. 허허허.... 또 보세.
사람들의 합장속에 궁예는 은부와 내군의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렇게 그곳을 빠져 나간다.
씬 15 다시 그곳 일각.
왕륭 부부와 왕건이 걸어나오고 있다. 마사부와 변사부, 장수장들이 따르고 있다.
왕건 아버님, 많이 편찮으시옵니까?
왕륭 괜찮다. 나이탓이야.
왕건 하지만 너무 힘들어 보이시옵니다.
왕륭 이제 갈떄가 된 것이니라. 송악 일은 폐하께서 만족하신 것 같더구나. 그래야 한다. 그곳에 왕궁이 서는 일이야. 최선을 다하도록 하여라.
왕건 예, 아버님
왕륭 자 우리는 다시 금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래도.... 다시 보지 못할 지도 모르겠구나.
왕건 (놀라서) 아버님?
왕륭 기왕이면 송악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마는....... 그것조차 마음대로 아니 되는구나. 모쪼록 잘해보거라.
왕건 아버님. 소자가 폐하께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송악으로 함께 가시오소서.
한씨 아무리 그렇게 하자고 말씀을 드려도 막무가내시로구나.
왕륭 부질없는 짓이다. 남에게 측은하게 보일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 어서 가 보거라.
왕건 아버님....... 어머님.
한씨 괜찮다. 자 어서들 가 보거라.
마사부 소인이 주군을 뫼시겠사옵니다. 어서 가시오소서. 성주님.
왕건 하오면....
왕륭 갑시다 부인.
왕륭이 힘없이 돌아선다. 마사부와 군사들이 왕륭부부를 모시고 간다. 왕륭의 눈에 눈물이 보인다. 변사부와 장수장들도 숙연하게 보고 있다.
씬 16 철원성 외경(밤)
종간 (E) 모두 돌아들 갔는가?
씬 17 어느 거소(밤)
종간과 은부가 마주해 있다.
은부 예.. 그러하옵니다.
종간 오늘의 법회는 참으로 대단하였네. 역시 폐하께오선 도인이실세. 아니 부처님이시지.
은부 많은 문무 신료들과 지방호족들이 하나같이 법문에 감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종간 신앙의 힘은 대단한 것일세. 어떤 어려운 일들도 신앙을 앞세우면 아니되는 것이 없지.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빠르게 제국을 창업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미륵신앙의 힘이었네.
은부 알고 있사옵니다.
종간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힘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일세. 특히나 자네의 임무는 막중하이. 내군장군이 아닌가? 폐하를 모시고 또한 나라안의 모든 정보를 관장하는 자리일세.
은부 그러하옵니다.
종간 자네와 나는 뜻이 아주 잘 맞는 사이일세. 측근에서 폐하를 잘 보좌해야 하고 이 나라의 개혁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임무일세. 은부 예. 종간군사님.
종간 나는 앞으로도 벼슬을 하지 않을 걸세.
은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종간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는 데는 정신적인 통일이 필요한 것일세.. 나는 내원으로 물러나 앉아 미륵 왕국의 사상적 뒷받침을 마련할 것일세.. 폐하를 더욱 더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만드는 일이지.
은부 .....알 것 같사옵니다. 중요한 일이지요.
종간 특히 자네는 송악을 눈여겨 보게. 나는 자꾸 송악이 마음에 걸려.
은부 그토록 염려를 하시니 소인이 어찌 게을리 하겠사옵니까, 일일이 정탐하여 보고토록 하겠사옵니다.
종간 그래주게나. 나는 송악 생각만 하면 자꾸만 가슴이 시려온다네. 왠지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드는게야. 그것참.....아무래도...내가 역학 공부를 잘못한 것 같으니.....
은부 소인이 그 염려를 덜어드릴 것이옵니다. 믿으시오소서.
종간 ......(끄덕이며)
은부 하옵고, 일전에 논의 되었던 황후마마를 모시는 일 말이옵니다.
종간 ....?
은부 아까 우리가 본 그 강장자의 딸 말이옵니다. 적어도 황후라면 그만은 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폐하께오서도 처음보시면서 큰 칭찬을 하셨사옵니다.
종간 ......(끄덕이며) 나도 보았네. 참으로 귀상이었어. 하기사 패서 제일의 미인이라고 하였던가?
은부 그렇다 들었사옵니다. 허허허... 허면 내당의 마님은 어찌되는 것이옵니까?
종간 어찌하긴... 그 분은 이미 불심이 깊은 분이라네..
은부 ......(끄덕이며) 무슨 뜻인지 알겠사옵니다.
종간 이만 일어나야겠네.. 폐하게 가봐야겠어. 자네도 수시로 송악에 내려가 현황을 파악해 주게나.
은부 알겠사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곧 가보려던 참이었사옵니다.
씬 17 미향의 거소
미향과 월이가 마주해 있다.
월이 마님.. 참으로 성대한 법회였사옵니다요? 폐하께선 참으로 살아있는 부처님같지 않사옵니까?
미향 나는 믿지 않느니라. 감언이설이다.
월이 .......?
미향 우리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알아봤느냐?
월이 오대산인지 설악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절에 계신 것은 분명한 것 같사옵니다.
미향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폐하 자신이 어릴 적에 버림을 받았다면서 그 업을 자식에게 전하시려 하다니....
월이 ......(눈치를 보다가) 듣자하니 ..... 대전에서 은밀히 새로운 황후를 모시는 일이 논의되고 있다 하옵니다. 이렇게 되면 어찌되는 것이옵니까?
미향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폐하께서 내 아버지와 칼을 맞대고 계시는데 나를 황후자리에 올리시겠느냐? 다 모르는 척 하거라.
월이 하지만 마님....
미향 ...... 눈을 감고 귀를 다 막자꾸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자꾸나.
씬 18 강장자의 집 외경
씬 19 동 집 안
강장자와 백씨가 마주해 있다.
백씨 이제 우리 연화는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강장자 .......
백씨 왕성주, 그 분은 이미 옛날 분이 아니십디다. 에휴, 송악이 그 지경이 되다니요. 이렇게 되면 우리도 어떤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강장자 대책이랄게 무엇이 있겠소, 부인. 그보다도 허허허... 오늘 부인도 보셨지요? 글쎄 폐하께서 우리 연화를 칭찬하셨소이다.
백씨 ....예?
강장자 우리 연화를 어여삐 보신 것이에요.
백씨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저는 지금 송악의 일을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왕성주 그분이 병색이 깊어보였어요. 이렇게 되면 우리의 혼사는.....
강장자 허허, 이런 참... 부인 딱도 하시오. 송악은 인연이 아니예요.
백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인연이 아니라니요?
강장자 어차피 우리가 혼약을 파기한 것이 아니예요. 그 쪽에서 마다하는 혼사를 우리가 계속해 졸라왔소이다. 험....
씬 20 그 밖 마당
숱한 장정들이 짐바리를 밖으로 내가고 있다. 진서방이 그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 한켠에서 연화가 보다가 한숨을 짓는다.
진서방 나와 계셨습니까, 아씨?
연화 송악으로 가는 짐들인가, 진서방?
진서방 예. 패서의 모든 고을들이 모두 송악에 계속해 물자와 인력을 보내고 있습죠.
연화 그곳에 궁궐을 짓는다고 했는가?
진서방 예, 아씨. 이제 송악은 작은 읍성이 아니라 큰 나라의 도읍지가 되는 것이옵니다.
연화 그렇게 되면 송악은 이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진서방 그렇게 되는 것이겠습죠? 저 그럼 소인은 이만......송악으로 빨리 가 보아야 하니까요.
연화 ....나도 함께 가겠네.
진서방 예?
연화 그곳에 가서 새로운 성주가 되셨다는 건이공자를 만나볼 것일세.
진서방 공사가 한창 바쁠 때이옵니다. 다음으로 미루시는 것이..
연화 아닐세. 함께 가세나. 슬이야?
슬이 예, 아씨
연화 마굿간에 가서 말을 내오너라. 송악으로 갈것이야.
슬이 예, 아씨.
씬 21 송악 공사현장 일각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인부들이 돌을 나르고 기둥을 세우고 있다. 그 한 쪽에서 왕건이 궁궐 배치도를 보고 있다.
평달 이보게 조카, 이제 성안의 재정이 바닥나가고 있네.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네.
왕식렴 건이 형님. 이렇게 무작정 있는대로 우리 재산을 퍼 넣을 것이 아니라 어떤 요령을 세우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왕건 아닐세, 아우.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야. 어차피 이 송악의 왕궁을 세우고 있네. 그 책임을 우리가 맡았어. 결국 우리가 해 내야 하는 것이야. 참고 해 보세.
왕평달 참고 할 일이 아니라 재정이 없다는 것일세. 조카.
왕건 걱정마십시오, 숙부님.. 우리가 하다 안되면 결국은 폐하께서 지원을 해주실 것이옵니다. 지금 철원의 황실에서 내려온 은부라는 내군장군이 우리들의 공사과정을 일일이 살펴보고 있사옵니다. 우리의 사정을 다 보았으니 그대로 전해주겠지요.
평달 그렇긴 하지만 이 송악은 이제 껍데기 뿐이야.
왕건 (미소 지으며) 숙부님, 기왕에 없어질 것이옵니다. 하루빨리 다 털어내 버리는 것이 편한 것이옵니다. 아니그렇사옵니까?
왕평달 이보게, 조카?
왕건 다 털어 버리고 빈 주머니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옵니다. 숙부님. 이 조카의 뜻을 아시겠사옵니까?
왕평달 ............?
씬 22 그 공사현장
은부가 금대, 장일, 염상들을 이끌고 현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 그 옆을 유금필이 안내하고 있다.
은부 자네가 이곳 송악의 일을 거들고 있으니 참으로 든든하네 그려.
유금필 허허허.... 소인이 뭐 하는 것이 있어야지요.
은부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마음으로 버티는 것도 다 힘이 되는 것일세. 나는 자네가 우리 환선길 장군과 한판 겨루는 것을 보았다네. 그때 참으로 볼만했네 그려.
유금필 칭찬해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은부 아닐세. 이 축성작업이 끝나면 자네는 중하게 쓰여질 것일세. 기다려보게나.
유금필 감사하옵니다, 장군.
은부 (주변 돌아보며) 엄청난 역사일세 그려. 젊은 성주가 이 큰 역사를 맡아 해 내다니, 대단해....
유금필 이곳의 성주님은 보통분이 아니시옵니다. 제가 곁에서 오래 지켜보았는데 매사 확실하고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시옵니다.
은부 흠.. 그런가?
이들은 그 현장을 지나 어느만큼 간다. 그 한쪽에서 능산과 박술희가 인부들을 부리고 있다.
능산 서두르지 말게.. 절대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라는 성주님의 지엄하신 영이 내리셨네.
박술희 (목재를 들고 가는 인부들을 참견하며) 허.. 이걸 이렇게 들면 쓰나? 이렇게 들어야지.. 어떤가? 한결 수월하지 않는가?
그들 그렇게 분주히 작업을 독려하고 있는데 그 한쪽으로 오고있던 은부와 유금필들이 저만큼 지나치고 있는 진서방과 연화들을 본다. 유금필이 고개를 갸웃한다.
유금필 연화아씨가 이곳에 오시다니....(은부에게) 잠시 실례하겠사옵니다. (사이: 다가가며) 여보게, 자네 진서방 아닌가?
진서방 (그제서야) 아이구, 예. 유장사님. 여기계셨구먼요.
유금필 (다가오며) 아씨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옵니까?
은부 .........(저만큼에서 보고있다)
연화 성주님께선 어디에 계십니까?
유금필 조금 전에 저 쪽에 계신 것 같았사온데.....?
연화 알겠습니다. 그리 가보지요.
연화는 슬이를 데리고 유금필이 가르친 쪽으로 간다. 은부가 고개를 갸웃하며 유금필 쪽으로 다가온다.
은부 (유심히 본다) 어디서 본 것 같소이다마는.....
유금필 예, 신천 강장자댁의 따님이십니다.
은부 허.... 맞아요. 지난번 법회에서 보았소이다. 패서 제일의 미인이라구요?
유금필 그렇다고들 합니다마는....
은부 헌데 이 송악에는 어떻게...?
유금필 아직 소문을 못들으셨사옵니까?
은부 무슨 소문....?
유금필 이곳 송악성주이신 건이공자와 저 연화아씨는 어릴 때부터 혼인을 약속한 사이이옵니다.
은부 뭐라...? 혼인을.......?
유금필 패서일대가 다 아는 일이옵니다. 하하하... 아주 어울리는 한쌍이 아니옵니까? 아니 그렇사옵니까?
은부 이럴수가..... 이럴수가..... ?
유금필 왜 그러시옵니까?
은부 아니오..... 아니오...
씬 23 그 일각
연화가 왕건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왕건은 한참 공사 설계도면을 보며 무언가를 변사부, 왕평달 부자와 의논하고 있다가 저만큼 들어서고 있는 연화들을 본다. 왕건이 놀라서 한참이나 보다가 묻는다.
왕건 아니, 낭자....? 여기는 어떻게....?
연화 제가 못올 곳을 왔사옵니까?
왕건 그런 것이 아니라...너무나 뜻밖이라서 하는 말이오. 이리 앉으시오 낭자.
연화 공자님께서는 어찌하여 우리 신천과 소녀를 피하시는 것이옵니까?
왕건 피하다니요, 낭자?
연화 더는 망설일 여유조차 없어졌사옵니다. 묻고 싶습니다. 아니 이제는 알아야겠사옵니다. 이리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왕건이 잠시 민망하여 어쩔줄을 모른다. 왕평달과 식렴들도 눈치를 채고 헛기침을 하며 그곳을 물러난다. 이윽고 두 사람만 남았다.
연화 짧은 세월동안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사옵니다. 이 송악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왕건 그렇습니다. 이미 송악은 사라졌고 이곳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셨소이다.
연화 그런데 왜 저희에게 일별도 주시지 않았사옵니까?
왕건 나는 이미 모든 능력을 잃었소이다.
연화 그게 아닐 것입니다. 공자의 아버님께서 금성으로 쫓겨가신 것으로 아옵니다. 공자께서는 송악의 그 많은 재산과 터전을 이곳의 성과 궁성을 짖는데 다 쓰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것이옵니까? 우리들의 중요한 문제는 왜 언급을 않해 주시옵니까?
왕건 낭자, 이미 그 일은 나의 소관을 떠났소이다. 아버님께서도 모든 것을 말씀하실 형편이 아니십니다.
연화 그렇다면 우리들의 일은 어떻게 되는 것이옵니까?
왕건 낭자, 그건...... 그건....나도 대답하기가 어렵게 되었구려.
연화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옵니까? 우리들의 옛 약속을 잊으셨사옵니까? 이렇게 버리려 하시옵니까?
왕건 낭자. 이미 송악은 예전의 송악이 아니라오.
연화 그런 것이 중요한게 아니옵니다. 소녀는 우리들의 옛 약속을 묻고 있사옵니다. 그걸 버리려 하시옵니까? 아니, 버리셨사옵니까? 대답해주시오소서.....
2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