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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02
#1. 고려시대 천혈 앞
// 제단 앞에 깔았던 비단 자리가 바람에 휘리리 말려 올라가더니 틈새로 빨려든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비단 천. 다른 몇 가지도 그 틈으로 빨려들고 있다.
일신 : 왕비마마를 살릴 수 있습니다. 전하. 하늘의 의원. 신의가 저기 있습니다요.
최영의 시선이 공민왕과 서로 마주친다.
공민왕이 간절해지는 마음으로 최영을 본다.
공민 : 저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최영 : 명을 내리십시오.
공민 : 알아보기는 해야겠지요.
최영 : 다녀오겠습니다. (돌아서 가려는데)
충석 : (놀라 막으며) 대장.
최영 : 어명이래잖아.
충석의 어깨를 짚어 옆으로 밀어내고 최영이 성큼성큼 걸어간다.
다른 무사들이 다 긴장해서 본다.
거세지는 바람. 그 속에 걸어가는 최영. 잠깐 멈추는가 싶다.
대만 : (못 참고 달려가며) 대장.
최영이 옆으로 손을 뻗어 대만을 멈추게 하고는 틈으로 들어간다.
공민왕과 모두가 숨을 죽여 보는데.
최영이 그 틈으로 빨려 들어간다.
바람이 휘몰아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한다. 사방이 점점 어두워진다.
대만 더 못 참고 틈으로 달려가려는데.
충석 : 대만아.
대만 : 따라 갈 겁니다. 대장 혼자 못 보냅니다.
충석 : 넌 대장 말을 뭘루 들은 거야. 따라오지 말래잖아. 우린 전하를 지킨다. 돌배.
돌배 : 예.
충석 : 대만이하고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을 정찰한다.
돌배 : 예 알겠습니다.
충석 : (공민에게) 이곳에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객잔으로 모시겠습니다.
공민 : 기다리겠다.
일신 : 전하 여긴 위험하대잖습니까. 그러니까 일단 돌아가셔서….
공민 : 어차피 삼일밤낮을 기도하러 온 거 아닌가요? 그 모양을 보여줘야지. 그러니 기다리겠다고.
하는데 비명처럼 대만이 소리 지른다.
대만 : 저거 왜 저래.
모두 돌아보면, 거기 틈새가 끓듯이 일렁이고 있다.
안에서 쏟아져 나오려는 기운 때문에 마구 부글거리던 틈새의 막 같은 기운.
충석이 다급하게 명을 내린다.
충석 : 뒤로. 일보. 일보….
공민왕을 이중으로 둥글게 싼 모양대로 일행이 한보씩 뒤로 물러난다.
일신은 거의 울상이 돼서 충석의 뒤에 붙고.
대만만 오히려 틈새로 다가서려 한다.
그러나 안에서부터 화악 돌개바람 같은 것이 터져 나오며 대만이 자세를 낮춰 간신이 버티는데.
순간. 틈의 안에서 튕겨져 나오는 그림자.
모두가 놀라서 보는 가운데.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자. 은수를 한 팔로 감싸 안은 최영이다. 다른 손에는 물론 경찰 방패.
대만 : 대장.
최영, 본인도 믿기지 않아서 주위를 둘러본다.
은수는 최영의 품에 안긴 채… 아직 어질어질 비틀거리고 있다.
공민왕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무사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선다.
공민 : 우달치.
최영 : (은수를 옆으로 떼어내며) 모시고 왔습니다. 하늘의 의원이십니다.
은수가 간신이 눈을 뜨고 돌아본다. 거기 우르르 서있는 이상한 복장의 사내들.
순간. 은수가 슬그머니 뒤돌아서 도로 포탈로 도망치려 한다.
최영이 그런 은수의 뒷덜미를 숙달된 솜씨로 잡으며 공민왕에게.
최영 : 왕비마마께서는 아직 괜찮으십니까?
#2. 객잔 노국공주 방
문이 열린다. 열린 문 앞에 쭈뼛거리며 서 있던 은수가 밀려들어온다.
안에 있던 장빈이 본다.
은수의 뒤에 들어서는 최영. 문을 닫고 머뭇거리는 은수를 슬쩍 밀어서 침대 옆으로 더 밀어낸다.
비틀거리며 침대 옆에 겨우 서는 은수.
장빈 : 이분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구요?
최영 : (등에 메고 온 보를 침대 옆에 풀러 놓으며) 똑같은 검상을 입은 자를 살려내는 걸 확인했습니다.
여기 이것들을 쓰던데.
최영이 풀어낸 보자기에 즐비하게 들어있는 시술 도구들.
장빈이 호기심에 들여다본다. (여기 현대에서 가져온 도구는 별첨 자료)
최영이 은수에게.
최영 : 뭐합니까?
은수 : (벙해서 최영을 보는)
최영 : (고갯짓으로 노국공주를 가리키며) 봐주셔야지요.
은수가 내려다본다.
거기 누워있는 노국. 목에는 장빈이 얹어놓은 흰 천. 배어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있다.
그 위로 들리는 장빈의 설명.
장빈 : 목에 검상을 입은 지 거의 두식경이 되어갑니다.
기혈을 잡아 출혈을 가까스로 줄여 놓았습니다만 이미 많은 피를 흘리셨어요.
노국의 옆에는 시녀인 초향이 은수를 곁눈질하며 목이 긴 작은 자기병에서 액을 조금씩 천 위에 흘려 내리고 있다.
장빈 : (아직은 믿지 못하는 얼굴로 은수를 살펴보며) 가장 좋은 방법은 상한 혈맥을 봉합하는 것일 텐데.
자칫 기의 교란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은수의 그제야 장빈을 돌아본다.
은수 : 뭐가… 뭐라구요?
장빈 : 혈맥이 끊긴 부분은 천유와 예풍 사이 지점입니다. 소부에 사법으로 침을 놓고. 천료에는….
은수 : (갑자기 끄덕인다) 알았다. 알았어. (손뼉을 딱 친다) 옷 입은 거 봐하니 여기 무슨 영화 촬영소죠?
촬영하다가 (노국공주를 손으로 가리키며) 뭔 사고가 난거고.
이거 경찰이 알까봐 쉬쉬하면서 의사 하나 납치해서 어찌해보자… 이거죠? 맞죠?
장빈 : (최영을 보며) 뭐라시는 겁니까?
최영은 팔짱을 낀 채. 나도 몰라.
은수 : (이제는 불쌍하고 간절한 모드로) 그냥 119 불러요. 예?
나… 이런 식으로 환자 보다가 의료사고 나면 바로 면허 취소에요.
의사가 면허 취소되면 인생 끝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저 환자하구 나. 두 사람 살리는 셈 치구 전화해요. 119. 내가 전화할까요?
하면서 모두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최영이 풀어놓은 보에서 자기의 가방을 집어 들려는데
그 앞을 막아서는 장빈.
장빈 : (차갑게) 이 분. 의원 맞습니까? 의원이 돼서 바로 옆에 환자가 있는데 어찌 쳐다보지도 않지요?
은수 : 저기요. 내가 병원이구 경찰이구 얘기 잘해줄게요. 진짜. 맹세해요. 나 그런 거 잘해요. 그러니까….
얘기하며 슬금슬금 문쪽으로 간다. 후딱 문을 열었는데.
그 문밖에 몰려서서 안의 소리를 엿듣던 일신과 무사 몇. 놀라 쳐다본다.
일신 : (저도 모르게) 아미타불..
어느새 다가와 그 문을 닫는 최영. 은수의 얼굴에 가까이.
은수가 뒤로 얼굴을 빼는데. 더 가까이 하며.
최영 : 몇 번을 더 말하면 이 순서를 기억하겠습니까?
우선 저분 살리십시오. 그 다음 내가 돌려 보내드립니다.
은수, 잠시 최영을 보다가 할 수 없이 노국의 옆으로 간다.
조심스레 노국의 목에서 천을 들춰본다. 정지한다.
은수 : 젠장.
갑자기 바빠진다. 최영이 풀어놓은 도구들을 살핀다.
은수 : 의식 없어진지 얼마나 됐어요?
장빈 : 처음부터.
은수 : 그럼 마취 없이 갑니다.
루뻬를 이마에 쓰고 램프에 불을 켠다.
어느새 문을 조금 열고 엿보던 문 밖의 이들이 오오 경탄하며 본다.
이마에서 빛을 내는 은수가 마스크 봉지를 죽 찢어 입에 가리며.
은수 : 후크.
장빈이 멀뚱히 은수를 본다.
은수는 소독약을 손에 부어 씻으며.
은수 : (버럭) 후크.
최영이 도구를 내려다본다.
갈고리 모양의 후크와 가위 모양의 클램프 사이에서 잠깐 갈등하다가 후크를 가리켜 보인다.
장빈이 최영을 돌아본다. 최영이 끄덕인다.
장빈이 후크를 집어 조심스레 건네준다. 맞았다.
은수가 받아들어 소독약을 후크에 부어 소독하고 상처 부위를 벌리는 작업을 하며.
은수 : 클램프.
최영이 자신만만, 클램프를 가리킨다.
장빈이 집어들어 건네주고 은수가 상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받아든다.
은수가 후크로 벌린 상처 부위의 혈관의 양쪽을 클램프로 조심스레 집는다.
그렇게 노국의 주변으로 모인 은수. 최영, 장빈.
그 옆에 초향이 조용히 뒤로 빠지고 있다.
점점 더 크게 열려지고 있는 문.
밖에 우글우글 모여 구경하는 자들은 그 옆으로 초향이 나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저마다 떠들고 있다. 이마에서 빛나는 거 봤지? 저거 봐라. 손에서두 빛나는데? 진짜?
#3. 객잔 노국공주 방 밖 복도
초향과 엇갈려 다가온 충석이 문 앞의 이들을 우루루 몰아낸다.
일신도 밀려나며 아미타불...
#4. 객잔 일층 홀
거기 고려 무사들이 몇몇이 모여서 경이롭게 보고 있는 것.
난간에 기대 세워져 있는 최영의 방패다. 경찰. POLICE.
그 중 덕만이 방패의 저쪽에서 플라스틱 투명 창을 통해 이쪽을 보며.
덕만 : 보인다. 다 보여. 니두 내가 보이지?
어디 어디. 돌배가 그를 밀어내고 자기도 본다.
다른 하나가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방패를 만져보려는데. 돌배가 그 손을 쳐내며.
돌배 : 하지 마 임마. 하늘 물건을 그렇게 아무나 만지는 게 아니지.
그렇게 관심 집중하고 있는 뒤를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는 초향. 걸어가며 주변에 있던 작은 물동이 하나를 집어 든다.
#5. 객잔 밖 일각
초향이 물동이를 들고 걸어온다. 거기 큰 물동이 두어 개가 놓여 있다.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안의 물을 떠서 작은 물동이에 넣는다.
사내 하나, 만티르가 자연스레 다가온다. 물을 청하는 듯하다.
초향이 물 한바가지를 내준다.
사내가 물을 마시며, 초향이 기다리며, 빠르게 말이 오간다.
원나라 말인데 자막도 없어서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초향이 빠르게 안의 상황을 설명하는 중이고.
만티르는 노국이 죽지 않았다는 말에 울분을 삭히다가. 하늘의원의 소식에 눈이 번쩍)
#6. 객잔 노국공주 방
창문 아래 쪽 벽에 허물어져 잠들어있는 최영.
입이 헤벌어져서 깊은 잠에 들어있다가 끄응 불편한 자세 때문에 잠이 깨려 한다.
그 위로 들리는 나직한 소리.
은수 : 타이. 컷. …타이. 컷.
최영이 간신이 잠에서 깨어난다. 으드드 쑤시는 삭신을 펴며 돌아보는 곳.
은수와 마주 앉은 장빈이 보인다. 마지막 봉합이 진행되고 있다.
낚싯바늘처럼 휘어진 바늘로 한 땀씩 봉합 중.
은수가 컷이라고 하면 장빈이 재빨리 가위로 끊는다.
은수 : 타이…. 컷.
마지막 봉합이 끝나고 은수가 바늘을 옆으로 던진다.
장빈이 떨어진 바늘을 조심스레 들어서 살펴본다.
은수가 멸균 거즈가 든 봉지를 뜯는다. 포셉으로 거즈를 집어내고 빈 봉지를 휙 던진다. (상처에 얹을 거즈)
던져진 빈 봉지 옆에 놓여 있는 수술 도구가 보인다. 클램프와 후크.
이제 한 병은 비고, 한 병만 남아있는 항생제.
세 개 중에 두 개를 써서 빈 봉지 두 개에 새것 한 봉지만 남은 멸균 거즈.
그리고 봉지에 들어있는 바늘세트 몇 개. 그 중의 하나는 이미 썼다.
장빈이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는 노국공주의 손목 맥을 짚고 있다.
그런데 맥을 짚으며 다른 손의 손목시계를 보고 있다. 맥박수를 체크하는 중이다.
은수가 고개를 든다. 은수의 손목시계를 신기해서 보던 장빈이 멈칫. 은수의 시선을 받는다.
은수 : 심박수가 100은 되야 하는데.
장빈 : (알아듣지 못해서 찡그린다)
최영 : (어슬렁거리며 오며) 살린 겁니까?
은수 : 살리고 싶으면 무조건 베드레스트 시키세요.
장빈 : (최영을 돌아본다. 뭐래는 거요?)
최영 : (으쓱. 모른대니까)
은수 : 무조건 침대에서 절대 안정을 시키라구요. 저혈량 쇼크까지 갔다 왔으니까 한동안 환자한테 눈 떼지 마시구요.
바이탈 사인 확실하게 체크하고. (하면서 이마의 루뻬 벗어 던지고. 슬그머니 자기 가방을 집어 들며)
이런 그지같은 데서 수술을 했으니까 감염이 있을지 몰라요. 그니까
(슬슬 문쪽으로 이동하며) 몸에 열이 안 나는지. 떨진 않는지 확인하고 수시로 소독하고….
문까지 다 왔다. 슬쩍 돌아보니 장빈이 노국의 진맥을 하고 있고, 최영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순간 은수가 자기 딴에는 최대한 빨리 문을 벌컥 열더니 튀어나간다.
#7. 객잔 이층
삼층 계단에서부터 구르듯이 달려 내려오는 은수. 엄마야. 놀라 선다.
거기 두어 명의 무사들이 지키고 있다.
무사들이 은수를 보더니 놀라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은수.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 쭈뼛거리며 그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다시 달린다.
#8. 객잔 일층 홀
임시로 걸쳐놓은 널빤지 위로 도망쳐 내려온 은수.
일층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저마다 후다닥 정자세를 하며 인사를 한다.
은수,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걸음이 점점 느려지며 눈치를 보며 입구를 찾는다. 문이 저쪽에 있다.
슬그머니 입구 쪽으로 가서 문을 열려는데. 잠겨있다.
마음이 조급해지며 문을 잡아당기고 발로 찬다. 그러다 간신히 빗장이 잠금장치라는 걸 알아내고 여느라고 낑낑댄다.
힘이 딸려서 잘 안 된다. 간신이 반쯤 벗겨냈는데.
손이 하나 스윽 들어오더니 다시 빗장을 밀어 넣어 잠근다. 돌아보니 최영이다.
은수 반사적으로 튕기듯 피한다. 은수가 보기에 최영은 살인자다.
은수 : 살려주세요. (징징) 수술… 했잖아요.
최영 : 아직 깨어나질 못하시잖습니까.
은수 : 기다려 봐야죠.
최영 : 그러니까. 기다리셔야지 어딜 가요.
은수 : 나보구 어쩌라구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거든요.
하는데 최영이 얼른 돌아서며 고개를 숙여 보인다. 거기 공민왕이 그들을 보고 있다.
은수가 보기에 그쪽이 높은 사람 같다. 얼른 최영을 피해 공민왕 쪽으로 가며.
은수 : 보호자 분 되세요? 환자분은요. 이제 경과만 잘 지켜보면 돼요.
하는데 충석과 몇 무사가 빠르게 공민왕 옆을 가로막으며 지킨다.
은수 움찔 놀라 멈추지만 열심히….
은수 : 지금 제일 급한 게 수분 보충이거든요. 그니까 환자 의식이 돌아오면 우선 물부터 먹이세요.
그렇다구 막 마시게 하면 안되구요. 에스피레이션 뉴모니아의 위험이 있어서요.
- 자막 Aspiration pneumonia(흡인성 폐렴)
공민 : 의식이 돌아오겠습니까?
은수 : 그거야 제가 대답할 수가 없죠. 그 환자는 내 책임이 아니잖아요. 그건 분명히 해주셨음 좋겠어요.
이 수술, 전 강제로, 시킨대로 한 거니까 내 의사 라이센스하곤 상관없다.. 이걸 분명히...
공민 : 하늘에서 오신 분.
은수 : …저요?
공민 : 그 여인의 목숨에 내 나라의 명이 달려있습니다.
은수 : (뭐래는 거야) 나라..요?
공민 : 하늘에서 그대를 보내주신 것을 보면 아직은 이 나라. 하늘의 보우하심을 입고 있다.. 그리 보아도 되겠습니까?
은수 : (울상이 된다.) 이 사람, 더 이상해..
공민 : (한걸음 다가서며) 그리 믿어도 되겠습니까?
은수,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다가 펄쩍 멈춘다. 바로 뒤에 최영이 막고 있다.
은수 비틀 옆으로 피하며 중얼중얼.
은수 : 이거 꿈이야. 그니까.. (자기 머리통을 때려본다) 깨라. 제발 깨자. 쪼옴. (한대 더 때려본다)
#9. 천혈
주석과 몇명의 고려 무사가 지켜보고 있는 앞에 천혈의 모습. 여전히 그 포탈을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바람.
순간. 포탈이 한 뼘만큼 줄어든다.
그와 동시에 돌개바람이 몰아쳐 무사 중 하나가 휘청하는 것을 다른 하나가 얼른 잡아준다.
풀잎과 나뭇가지 몇 개가 바람에 날리다가 천혈의 틈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석이 찡그려 보며 옆에 지시를 내린다.
주석 : 대장께 전해. 천혈에 하늘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이 속도면 오늘 해 지기 전에 완전히.. 닫힐 것이야.
#10. 객잔 공민왕 방
공민의 앞에 선 일신과 저만치 선 최영.
일신 : 아니 됩니다. 우리가 다 똑똑히 보았지 않습니까?
여기 우달치가 하늘문으로 들어가더니 하늘의 의원을 모셔 왔습니다.
그 분의 여기. 이마에서 신비로운 하늘의 빛이 나오면서 왕비마마를 치료해주는 것도 봤구요.
하늘이 (점점 더 웅변조가 되며) 우리 전하를 위해 내려주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왜 돌려보냅니까.
최영 : (이런 대화 자체가 짜증나지만 참고) 신이 언약을 했다지 않습니까. 왕비마마를 살려주면 돌려보내드리겠다.
일신 : (공민에게 더 바싹 다가서며) 전하. 지금 고려에는 고려 따위 개뼈다귀처럼 여기는 자들이 세도를 잡고 있사옵니다.
그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고려를 답싹 원에 갖다 바치고 굴러 떨어지는 관직 하나 얻어 가지고자
온갖 계략을 짜내고 있습니다.
공민 : (최영을 본다)
최영 : (말없이 공민을 보고 있다)
일신 : 이때에 하늘이 전하를 위해 내려주신 분을 모시고, 함께 고려로 돌아가시는 겁니다.
그럼 세상 것들이 감히 전하를 함부로 보지 못하게 될 것이옵니다.
전하는 하늘이 보우하는 왕이 되시는 겁니다.
공민 : 우달치.
일신이 공민왕과 최영의 사이로 끼어들어 공민왕의 시선을 제가 받으며.
일신 : 전하가 살고 나라가 살 수 있는 기회를 하늘이 주셨습니다.
공민왕 한숨을 쉬고는 일신을 말없이 본다.
일신의 뒤에 서있던 최영. 할수없이 걸어오더니 일신의 등덜미를 잡아 옆으로 치운다.
일신이 기함을 하는데. 최영이 공민에게 말한다.
최영 : 고려 무사의 이름으로 언약했습니다.
공민 : (일신이 뭐라 하려는 것을 손을 들어 저지한다)
최영 : 원에서 자라신 전하께서는 혹여 모르실지 모르지만. 고려 무사, 언약의 값은 목숨입니다.
공민 : 방금 못 들었나요. 그 하늘 의원을 고려에 데려가면 내 안위가 보장된다는데.
최영 : 그렇게까지 해야 보장되는 안위라면 좀..
공민 : 좀..
최영 : 구차하지 않겠습니까?
일신 : 이노옴..
공민 :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언약 따위보다는 더 중한 것이 있겠지요. 아닌가요?
일신 : 전하아..
일신이 또 뭐라 끼어들려는데.
최영이 휘릭 옆으로 뻗어낸 손가락이 일신의 이마를 찌르듯 멈추는 바람에 히익 멈춘다.
최영 : 나라를 위해서 이런 중신이란 자는 언약 따위 개나 주라고 하지요.
나라를 위해서 무사인 저는 사람을 벱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왕이시라면 적어도 그런 우리와는 다르셔야 되지 않나. 그리 생각됩니다만.
공민 : (굳은 얼굴)
최영 : 아닙니까?
#11. 개경
개경 도시의 전경.
자막 개경 (고려의 수도)
#12. 기철의 집 일각
하인 하나가 작은 함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들고 종종 걸어간다.
그 위로 누군가 연주하는 피리소리가 들린다.
#13. 기철의 치료방 (욕탕)
계속되는 피리 소리.
여러 가지 약초가 어우러져 있고, 사방에서 훈증기의 김이 오르고 있는 방.
그 양지 바른 창가에 기대앉은 천음자가 피리를 불고 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양사. 문을 열고는 하인이 건네주는 함을 받는다.
문을 닫고 다시 천음자의 앞을 지나서 온다.
이제 보이는 방의 가운데 커다란 약 항아리가 놓여 있다.
그 안에 벌거벗은 기철이 들어가 있다.
항아리에 들어있는 뜨거운 탕약물에서 수증기가 오르고 있고…
그 옆에는 약맷돌 등이 늘어져 있는 테이블.
그 앞에서 양사가 함을 연다. 함 안에는 꿈틀거리는 바퀴벌레들이 가득 들어있다.
양사가 바퀴벌레를 약맷돌에 넣으며 갈기 시작한다. 맷돌을 돌리고 빻은 즙이 옆으로 타고 흐른다.
양사 : 이것들은 인삼과 약쑥, 그리고 정갈한 굼벵이만 먹여서 소중하게 소중하게 키운 자충들입니다.
- 자막 자충(蟑螂) : 바퀴벌레
양사 : 너무 어려도 약효가 숙성하지 않고, 너무 오래 키워도 또 약효가 떨어집니다.
그믐에서 시작해서 다음 보름까지 딱 한 달 보름을 키우는 겁지요.
피리를 불던 천음자가 슬쩍 시선을 돌려 보는 곳. 거기 함에서 바퀴벌레 하나가 뚝 바닥에 떨어진다.
양사가 맷돌에서 나온 즙을 옆에 준비된 사발에 담아 섞는다. 사발에는 이미 준비된 미용액이 들어있다.
양사 : 여기에 토사자, 당귀, 행인에 송진, 감국. 도인에 황백. 녹두에 율피. 백급에 흑축. 백지. 백복령.
기타 스물두가지의 약재를 더합니다.
즙사발을 들고 기철의 옆으로 온다. 즙사발을 항아리에 넣고 액을 저으며.
양사 : 이것을 탕으로 만들어 먹으면 속이 보하여 젊은 장기를 되찾고
이것을 즙으로 만들어 바르면 피부가 청춘을 되찾는다… 하였습지요. 자충활음진이옵니다.
기철 : 자충이 활음을 한다...
기철이 재미있다고 웃는다.
그 때 피리 소리가 딱 끊긴다. 천음자가 피리를 입에 댄 채 보고 있는 곳. 바퀴벌레가 자기 쪽으로 기어오고 있다.
천음자가 가볍게 피리를 분다. 피리소리 대신 슷 하는 파공음이 들리더니 바퀴벌레가 팍 터져 죽는다.
천음자 기분이 나빠져서 피리를 거두는데.
방 밖에서 들리는 기철의 동생 기원의 목소리.
기원 : 형님. 원입니다.
기철 : 듣고 있다.
#14. 기철의 치료방 문 밖
문가에 선 기원.
기원 : 남대가부터 시작했습니다. 어찌할까요.
#15. 기철의 치료방
기철 : 몇 명이나 모일 거 같으냐.
양사 : 적어도 스무명은 넘지 싶습니다.
기철 : 가장 아까운 자를 들자면.
양사 : 그 중에 국자박사 대암은 일세기에 하나 나오기 힘든 현학자라 칭해지고 있습니다만..
기철 : 안다. 부부금슬이 좋다 들었어.
양사 : 혼인한지 오년만에 부인이 잉태를 했다 하지요.
기철 : 저런.. (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갸웃 느끼려 해보는) 또.
양사 : 어사대부 강희에겐 칠순 노모가 계신데 그 효도가 지극한 것이.
기철 : (찡그리고) 모자라.
양사 : 도목 안정수는 왜구토벌전에서 형제 둘을 잃은 자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가문의 종손이온데..
기철 : (손을 든다)
양사 : (기다린다)
기철 : (고개를 갸웃.. 느끼려 해보다가) 아무리 해도 아깝거나 안타까와지지 않는 자들이다. 원아.
원소리 : 예.
기철 : 시작한 것. 끝을 내야겠네.
원소리 : 그리하겠습니다.
기철이 가슴에 얹었던 손을 들어 손등을 본다. 거기 미처 갈리지 않았던 바퀴벌레의 다리가 붙어있다.
후우 불어 떨어뜨리는 그 얼굴에서..
자막 기철 (덕성부원군, 원나라 순제의 황후인 기황후의 오라비)
#16. 활터
고려 대신1이 활을 쏘고 있다. 옆에는 하인이 대기하고 있고.
대신이 막 당긴 활을 놓는다. 쐐액… 공기를 가르며 과녁에 맞는 화살.
대신이 활 통에서 다른 화살을 꺼내려 할 때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활 통에 박힌다.
놀란 대신과 하인이 경계하며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 다시 본 화살에 쪽지가 묶여있다.
대신이 수상해하며 그 쪽지를 풀어낸다.
#17. 궁궐 일각
긴 회랑. 걸어오는 대신2. 그 앞에 궁의 관리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마주 걸어온다.
대신2가 부딪히지 않게 옆으로 비켜주며 걸어가는데.
순간 관리가 재빠르게 대신2의 손에 뭔가를 쥐어준다. 놀라서 돌아본다. 거기 걸어가는 관리의 뒷모습.
손에 들린 것을 본다. 활터에서 봤던 것과 같은 모양새의 쪽지.
#18. 궁궐의 다른 일각
좀 더 으슥한 곳. 대신2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대신3이 역시 주위를 살피며 온다. 둘이 소곤거리며 밀담을 나눈다.
대신2의 질문에 (공도 받으셨습니까. 정도의)
대신3이 주위의 시선을 살피며 소맷자락 속에서 내보이는 것. 역시 비슷한 모양의 쪽지다.
대신2도 자신의 쪽지를 슬쩍 내보인다. 그 위로 들리는 대신1의 소리.
자운소리 : 조영 대감도 같은 밀지를 받았다 합니다. 모든 밀지에는 같은 내용이 적혀 있구요.
#19. 은밀한 장소
자운 대감을 비롯한 대신 다섯 정도가 모여 밀담을 나누고 있다. 누가 들을 새라 나직하게.
대신1 : (열혈. 쪽지를 읽으며) 귀국 중이신 전하가 습격을 받으셨다.
왕후마마이신 원의 공주께서 그 와중에 목숨을 잃으셨다…. 허어….
대신2 : (소심. 울상) 그럼 이게 어찌 되는 겁니까. 이게… 이게….
자운 : 수순이 뻔하지 않습니까. 원에서는 원의 공주가 살해를 당했으니 우리 고려에 그 죄를 물을 것이고.
덕성 부원군 기씨 일파는 옳다구나 떠들어대겠지요. 우리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어서 이 나라를 원에 복속시켜야 한다고 말이지요.
대신2 : 그럼… 우리나라는 없어지는 것입니까?
자운 : 없어지는 거지요. 고려는 원의 일개 성이 되는 거고. 덕성부원군의 일파는 그 성주쯤 되겠지요.
대신2 : (울상) 그럼 우리는요.
자운 : 그나저나… 이 밀지는 누가 보낸 것일까요.
그 말에 모두 서로를 마주본다. 아무도 모른다.
대신1 : 가보면 알게 아니요. (쪽지를 흔들며) 이날. 이 자리에 나가보면 누가 우리를 모이자 했는지 알 수 있겠지.
대신2 : 누가 모으는지도 모르고 나가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대신1 : (흥 해서) 기철이 일파가 제아무리 득세하고 있다 하나 그자들은 소수. 우리 중신들이 대다수입니다.
뭐가 위험하고 뭐가 무섭단 말이오.
그들이 떠드는 동안 보여지는 밀지의 내용. 기다랗게 적혀진 한문.
(뒤에서 보여질 가짜 밀서. 두줄 짜리 한시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20. 천혈
어른거리는 포탈. 바람이 불고 있는 천혈. 포탈이 또 한 뼘 줄어든다.
#21. 객잔 전경
바람이 불고 있다. 입구 주변에는 지키고 서있는 고려의 무사들.
이층의 열려진 창문을 닫고 있는 초향의 모습이 보인다.
#22. 객잔 은수 방
초향이 창문 단속을 하고 있다.
이쪽에는 은수가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신호를 잡으려 애쓰는 중이다.
핸드폰에 뜨는 신호를 잡을 수 없다는 표시.
은수, 초향을 본다. 슬쩍 다가선다.
은수 : (나직하게) 저기요. 나 좀… 여기서 나가게 도와줄래요?
초향은 못 들었다는 듯 다기들을 정리한다.
은수 :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다가서며) 지금 갖구 있는 게 이거뿐인데….
초향이 은수를 돌아본다. 표정 없는 얼굴.
은수 : 이 근처에 혹시 현금인출기 있어요? 같이 가요.
은수가 내민 돈을 초향이 들여다본다. 돈에 흥미 있나보다.
은수 : 내가 대출 갚는 게 있는데 그게 이자가 좀 쎄요. 그래서 통장에는 얼마 없구요.
마이너스 현금 서비스라두 뽑아서 드릴게요. …얼마면 되겠어요?
초향이 돈을 받아들어 흥미 있게 들여다본다.
은수 : 오십만 원…. 백만 원?
초향이 은수를 본다.
은수 : 이백. …더 이상은 힘들 텐데…. 내가 신용이 좀 별루라서….
초향이 문 쪽을 본다. 은수도 희망이 생겨서 함께 문 쪽을 본다.
#23. 객잔 은수 방 문 밖
그 문 밖의 복도. 물구나무 비슷한 이상한 자세로 나름 쉬고 있는 대만.
방문이 열리며 초향이 나온다. 초향이 가는 쪽에서 다가오는 최영과 충석.
대만 얼른 일어선다.
대만 : 안에 조용히 계시는데요.
최영, 문을 열려다가 멈추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돌아선다.
최영 : 잘 지켜라.
대만 : 지키라 하심은 밖에서 오는 놈을요. 아니면 안에서 도망치려는 분을요.
충석 : (대만의 뒤통수를 패며) 촐싹대지 말고. 너 혼자 되겠냐. 몇 놈 더 붙여줘?
대만 : 에헤이…. (기분 나빠 보는)
최영, 대만의 어깨를 툭 쳐주고 돌아서 간다.
대만 : 언제까지 지킵니까?
최영 : 금방 어명이 떨어질 거니까 좀만 버텨.
충석 : 저놈만으로는 불안한데요.
하며 따라가고.
그런 충석을 뒤에서 으이그 해서 보내는 대만. 흥 해서 물구나무를 서다가 문득 멈춘다.
슬그머니 일어나 문으로 붙어서 안의 동정을 살핀다. 너무 조용하다. 두들겨본다. 조용하다.
문을 스윽 열어본다.
#24. 객잔 은수 방
열린 문으로 안을 보는 대만. 엇 아무도 없다.
순간. 몰아치는 바람. 창문 하나가 열려있다.
그 창문 밖에서부터 연결되어 보이는 흰 천. 옆 가구 다리에 묶여있다.
날렵하게 창문에 다가서 밖을 본다.
창문 아래 저 멀리 보이는 곳. 크로스로 가방을 맨 은수가 도망치고 있다.
놀라서 문으로 달려가려다 멈춘다. 다시 돌아본다.
은수가 코너를 돌아 모습이 사라진다. 놓칠 거 같다.
휘릭. 창문을 넘어 아래층으로 착지한다.
#25. 근처 길
바람이 부는 길을 달려오던 은수. 문득 멈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사방을 둘러보니 거기 몇 명의 이상한 옷(원나라 복식)을 입은 사람들이 자기를 구경하고 있다.
얼른 쫓아가서 말을 붙여본다.
은수 : 저기요. 제가 일루 올 때 잠깐 기절을 한 거 같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보더니 웃는다.
은수 : 길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데요. 택시 잡으려면 어디루 가믄 되요?
그 사람들 자기들끼리 얘기하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원나라 말을 하는 중이다.
저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용기를 내어 더 가까이 와서 은수를 보더니 은수의 신발을 가리켜보인다.
굽이 높은 구두. 딴 사람이 감탄하며 쭈그리고 앉아 구두를 만져본다.
은수 : (질색을 해서 피하며) 이보세요. 우리나라 사람들 아니세요? 요즘은 엑스트라두 수입하나.
저기요.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헬로? 니 하오? 씨에씨에?
그 사람들 은수의 말에 더 웃는다.
은수 아무래도 이상하다. 슬그머니 피해서 다른 길로 들어선다.
//은수의 모습이 막 사라진 거리에 달려들어서는 대만. 이쪽저쪽 길이 갈라져 있다.
그런데 거기 모여 있는 사내들. 한쪽을 손가락질하며 킬킬 웃으며 떠들고 있다.
대만 더 생각할 것 없이 그쪽으로 달린다.
그렇게 달려가는 대만을 보고 있는 시선. 이만치 담에 기대선 만티르다.
씹고 있던 풀을 뱉어내더니 몸을 바로 한다. 슬쩍 한쪽을 돌아본다.
거기 코너에 대기하고 있던 사내 하나가 만티르의 시선을 받더니 재빨리 대만이 왔던 길로 이동해간다.
#26. 저자거리
온갖 이국적인 물건들이 즐비한 장터다.
서울에서 최영이 그랬듯. 여기 사람들이 저마다 은수를 힐끗거리며 지나가거나 손가락질하며 뭐라 떠든다.
그만큼 은수의 옷차림이며 머리 모양이 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수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손을 뻗어보며 신호가 잡히는 곳을 찾고 있다.
은수 : 무슨 놈의 세트장에 전파가 왜 이래. 왜 이렇게 깜깜이야. 엄마야.
놀라 내려다보면 어떤 용감한 아이가 와서 은수의 옷을 만져보고 있다.
옷자락을 홱 쳐내며 화를 내려다가.
은수 : 얘. 여기 공중전화 어딨니? 전화. (전화 거는 흉내 내며) 텔레폰. 띠엔후아. 띠엔후아.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달려간다. 용감한 미션을 완수한 기분으로.
은수, 다시 휴대폰을 들어 신호를 잡아보려다가 멈칫. 휴대폰을 가까이 자세히 본다.
휴대폰에 비친 저 뒤. 대만이다.
// 은수의 뒤 이만치의 대만. 막 도착했다.
은수를 발견하고 은수에게 달려가려다가 멈춘다. 옆을 지나던 행인을 잡는다.
원나라 말로 뭐라 말하며 뒤 쪽(객잔 쪽)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연신 은수 쪽을 살핀다.
은수는 옷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27. 옷가게 내부
들어선 은수가 얼른 옷감들 뒤에 숨어 밖을 내다본다.
거기 대만이 행인에게 뭔가 돈 같은 것을 쥐어준다. 행인이 부지런히 간다.
대만이 이쪽을 본다.
얼른 숨고. 뒤를 보자. 옷가게 여주인이 입을 헤벌리고 은수를 보고 있다.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은수가 입고 있는 외투를 만져본다. 그 질감에 아주 감탄한다.
#28. 객잔 입구
보초를 서던 무사 둘이 보는 곳.
대만의 청을 받은 행인이 쭈뼛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무사들, 반사적으로 무기를 꼬나 잡으며 경계하는데.
행인이 빠르게 원나라 말로 떠든다.
무사1 : 뭐래는 거야.
무사2 : (좀 알아듣는다) 누가.. 도망을 가?
#29. 객잔 일층 홀
최영이 나란히 붙여놓은 의자들. 그 의자는 비어있는데.
돌배소리 : (다급해서) 대장. 대자앙.
의자들 옆 테이블 밑에 들어가 자고 있던 최영이 아아씨 할수 없이 기어나오다가 머리를 탁자에 부딪힌다.
최영 : (짜증나서) 뭐어.
// 시간경과. 객잔 홀 입구쪽.
최영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대충 당기며 입구로 이동한다.
입구에는 아까의 행인과 충석.
충석 : 혼자 가십니까? 몇 놈 데려가십시오.
최영. 걸어가며 행인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가며 충석에게 지시한다.
최영 : 여기 객잔에서 너무 지체했어. 놈들이 다시 올 때가 됐는데..
(문을 나서려다 할 수 없이 멈추더니 뒤를 돌아본다. 정말 어쩔 수 없어 지시하는 기분)
놈들은 이제 우리 전력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봐야할 거다.
어느새 충석의 옆으로 모여드는 무사들.
최영 :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 공격하진 않을 거야. 내가 놈들이라면 하나씩 은밀하게 처리해서 수를 줄이고.
한쪽을 쳐 관심을 끈 다음 뒤로 공격하겠지. 우린… 삼중수비로 간다.
모두 : 명 받습니다.
충석 : 그럼 전하를 중앙에 뫼시고….
최영 : 아니. 왕비마마가 중심이야.
충석 : (의외라서 보는) 그럼 전하는 어떻게..
최영 : 알아서 대충, 잘.. 지켜드려.
#30. 객잔 근처 길
또 다른 시선이 지켜보는 곳.
최영이 달려오고 있다. 행인을 거의 질질 끌듯이 잡고.
행인이 헥헥 끌려오듯 달리며 저 앞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최영의 등에는 이제 제법 자리를 잡고 매달려 있는 전경방패.
숨어보던 시선이 슬쩍 더 나무 가지 뒤쪽으로 숨는다.
그 앞을 지나쳐 달려가는 최영.
#31. 저자 거리 옷가게
이만치에서 초조하게 지키는 대만. 거기 들고 나는 사람들.
그 중에 한 여인이 머리를 감싼 채 나가고 있다. 원나라 복장의 바람막이를 하고 있다.
대만. 왜 이리 지원군이 안 오나 뒤를 돌아본다.
#32. 객잔 주변
외부를 지키는 무사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중에 한명. 이층의 난간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커다란 방패를 앞에 막고 활을 꺼내 위치를 잡는다.
그의 모습을 살피는 시선.
#33. 객잔 노국공주 방
누워있는 노국. 그 옆에는 장빈을 따라다니는 약원이 앉아서 향로 위에 얹힌 약탕기를 돌보고 있다.
약탕기에서는 수증기가 오르고 있고(훈증제를 쓰는 중).
창가 쪽에 서 있는 초향이 그런 약원을 보고 있다가 한걸음 움직이려는데.
방문이 열리며 충석이 부하들과 우르르 들어선다.
충석이 조용히 부하들에게 지시를 한다. 부하들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며 각각 창문 앞을 지키고 선다.
#34. 저자 거리
초조하게 있던 대만이 얼른 자세를 바로 한다.
거기 달려오는 최영.
대만 : 저 안에 계십니다.
최영, 그대로 옷가게로. 대만이 최영을 뒤따르며.
대만 :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요. 하늘 분인데 제가 잡아도 되는 건지
잡으면 끌구 가야 되는데. 내가 막 질질 끌구 갈 순 없잖습니까. 그래서….
최영은 이미 옷가게로 들어가고 있다.
#35. 옷가게 내부
들어서는 최영과 대만. 급히 둘러보는데 가게 안쪽에 은수의 외투를 입은 여인 뒷모습.
대만이 화색이 돌며 달려가려는데. 그 여인이 돌아선다. 은수의 외투를 입은 여주인이다.
#36. 근처 외진 길
은수가 달리고 있다. 긴 바람막이 옷과 하이힐 때문에 뛰는 것이 영 힘들어 넘어질 뻔 위태롭게 달리고 있다.
#37. 외진 언덕길
걸어오는 은수. 점점 기운이 빠져 헥헥거리면서 열심히 걷는다.
저 앞에 언덕의 끝이 보인다. 드디어 언덕의 맨 위에 도착한다.
그러다가 놀라 선다. 거기 보이는 바다. 그리고 그 바다에 떠있는 옛날 배 몇 척.
은수 : 말두 안돼.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만 역시 그 풍경) 이게 뭐야. 무슨 세트장이 이렇게 커.
(버럭) 이런 게 어딨어.
열 받다가 뭔가 이상하다. 뒤를 돌아본다.
거기 원나라 복장의 사내 둘이 다가오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시녀인 초향과 얘기하던 만티르.
둘 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은수를 보고 있다.
은수 : 저기 말 좀 묻겠는데요. 여기가 어디에요? 제가요. 좀 전까지 강남 코엑스에 있었는데 그게..
하는데. 만티르가 손에 들었던 자루를 타악 편다. 뭔가 이상하다.
만티르와 사내들이 시선을 마주치더니 빠르게 다가온다.
엄마야. 은수.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서 그 앞을 가로막는 또 다른 사내.
옆으로 도망치려는데. 그런 은수를 휘어잡는 사내.
은수가 이거 놔아… 몸부림치며 반항을 하며 힐로 사내 하나의 정강이를 찬다.
사내가 아아 아파서 손을 놓는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는 은수. 그 와중에 벗겨지는 신발.
그러나 이내 또 다른 사내, 만티르가 잡아챈다.
은수가 또 소리 지르려는 순간. 냅다 은수의 얼굴을 갈기는 만티르.
그 기세에 땅에 엎어졌던 은수가 상체를 든다. 입가도 터졌고 코피가 뚝뚝 떨어진다.
은수,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넋을 잃었다.
사내 둘이 은수의 양 팔을 잡아채 일으키고.
만티르는 무표정하게 은수의 머리 위에 자루를 씌워 버린다.
#38. 저자 거리
최영이 달리고 있다. 달리면서 날카롭게 사방을 살핀다.
휙휙 지나치는 행인들. 상점들 안의 사람들. 그러나 은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저 뒤에 보이는 대만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급히 말을 묻고 있다.
달리던 최영이 문득 선다. 돌아본다.
방금 지나친 아이들. 사내애 두 명이 까르르 웃어대며 쫓고 쫓기는 장난을 하고 있다.
그 중 한 아이는 손을 사마귀 권법처럼 웅크리고 앞의 아이를 쫓고 있다.
순식간에 아이를 따라 붙은 최영이 아이의 손목을 잡는다.
그 아이가 무기처럼 손에 잡고 있던 것은 부러진 하이힐 굽.
#39. 외진 언덕길
달려오는 최영과 대만. 땅바닥이며 사방의 가지들을 샅샅이 훑어보며 달리고 있다.
대만 : 여기요.
대만이 가리키는 곳. 땅에 어지러운 흔적.
최영이 덤불에 박혀 있는 것을 집어낸다. 은수의 굽이 부러진 하이힐이다.
그러다 문득 최영이 무릎을 굽혀 땅을 살핀다. 거기 땅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핏자국.
손가락으로 문질러 본다. 흘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굳지도 않은 피다.
최영, 초조함으로 짜증이 확 솟구친다. 바람이 휘익 불어 지나친다.
#40. 천혈
바람이 불고 있다. 천혈이 또 한 뼘 줄어든다.
#41. 언덕 위
대만이 애가 타서 보고 있는 곳.
최영이 우뚝 서서 땅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대만이 안절부절못하다가.
대만 : 제가 한 바퀴 더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니면 다음 마을로 가볼까요.
최영 대답도 움직임도 없다.
대만 : 땅에 어지러운 흔적이나, 하늘 의원, 신발 벗겨진 거. 아무래도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다. 그니까….
최영 : 세 놈이다.
대만 : 예?
최영 : 그 분을 습격한 놈은 셋. 여기 흘린 피는 아마… 그분의 것이고.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방금 전에 일이야.
대만 : 그러니까 빨리….
최영 : 같은 패로 봐야겠지. 좀 전에 우릴 습격한 놈들과 지금 이놈들.
(대만에게 말을 한다기보다 혼자 생각중이다) 포구에 배를 막아 우리의 발을 묶어놓고. 객잔을 습격한다.
거기까지는 누구라도 할 수 있어. 그런데… 하늘 의원의 정체는 어찌 알았을까.
대만 : 설마… 내부 첩자가 있다는….
최영 : 있구나.
대만 : 에이씨.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 놈을 잡아서…. (벌써 두어 걸음 달려 나가는데)
최영 : 가면 누군지 알고 잡을래.
대만 : (끙 멈추는)
최영 : 여기 포구에 배는 누가 갖고 있지.
대만 : 사공이 고려 사람이었는데요. 그게….
최영 : 가자.
최영 달린다. 그 뒤를 빠르게 쫓는 대만.
#42. 객잔 외부
아까 보이던 이층 난간의 무사. 방패 뒤에 숨어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고 있다.
그의 시선에서 보이는 앞부분, 객잔의 외부는 조용하다.
그런데. 그의 위에서부터 내려온 밧줄. 순간적으로 무사의 목을 감더니 홱 끌어올린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졸리는 무사.
지붕 위에 원나라 복장의 자객 두 명. 마을 사람인 듯한 옷차림들(만티르의 수하).
무사가 숨을 거두어 조용해지자 가만히 내려놓은 뒤. 이층에서 날렵하게 난간으로 내려선다.
품에서 연막탄통을 꺼낸다. 건물 안으로 통하는 창가에 박아 넣는다.
#43. 포구 사공 집
들어서는 최영과 대만. 둘러보는데. 먼저 눈에 띄는 커다란 술통. 중앙에 떠억 놓여있고.
저쪽 안의 평상에는 사공이 술에 취해 늘어져 있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는다.
사공 : 배 없소. 오늘 뜨는 배는 한 척도 없으니까 가보쇼.
다시 널브러지는데. 그대로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최영.
최영 : 저 술통. 누가 준 돈으로 샀나.
사공 : (취해서) 배가 없다니까.
사공, 취해서 두 손만 허우적대며 빠져나가려 비틀거린다.
최영,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더니 그대로 질질 끌고 가서 술통에 거꾸로 박아버린다.
머리부터 술통에 박혀 허우적대는 사공.
최영, 휘릭 등에서 방패를 꺼내 잡아 그의 뒷덜미를 눌러 못 나오게 한다. 조용히 기다린다.
대만 저런… 하는 얼굴로 구경하고 있다.
잠시 후, 최영이 방패를 치우고 사공을 끄집어낸다. 캑캑대며 술을 게워내는 사공.
그 귀에 대고 다시 냉정하게.
최영 : 있잖아. 돈 주면서 배 묶어놓으라 한 놈. 누구야.
사공, 숨이 넘어가서 꺽꺽댄다.
최영이 다시 물통에 박아버린다.
죽을 것처럼 허우적대며 사공이 한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44. 대장간 외부
만티르가 전서구를 들고 나온다. 발목에 묶인 전통을 다시 확인하고 날려 보낸다.
하늘로 날아가는 전서구.
만티르가 문득 저 멀리를 본다.
저 멀리 빠르게 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최영과 대만이다.
#45. 대장간 내부
화덕과 풀무 등. 대장간 내부의 스케치.
화덕에 불이 타오르고 있다.
이만치에 아까 은수를 습격했던 사내 중의 하나, 사내1이 칼을 숫돌에 갈고 있다가 돌아본다.
만티르가 빠르게 들어와서 밀실 쪽으로 움직인다.
// 밀실.
만티르가 가리개를 치우고 들어서는 곳.
좁은 밀실에 자루를 뒤집어쓰고 손발이 묶인 채 웅크리고 있는 은수.
사내2가 옆에서 지키고 있다.
만티르의 신호에 사내2가 자루를 벗긴다.
겁에 질린 은수가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조심스레 뜬다.
바로 코 앞의 사내2가 은수를 보고 헤벌레 웃자 은수가 순간 비명을 지른다.
비명을 질러대며 은수가 기어서 도망치려는데 그 앞을 막아서는 만티르. 천을 사내2에게 던져준다.
사내2가 은수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기를 쓰고 반항하던 은수가 조용해진다.
만티르가 눈 앞에 단도를 들이밀고 있다. 그리고는 은수를 향해 쉬잇..
단도가 조용히 내려오더니 은수의 목에 닿아 멈춘다.
// 대장간 내부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최영과 대만.
사내1이 칼에 물을 뿌리며 힐끔거리고 최영을 본다.
대만은 이미 대장간 내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은수를 찾는다.
밀실로 통하는 입구 앞으로 가지만 교묘히 감춰진 입구를 모르고 지나친다.
최영은 우뚝 선 채 사내를 살펴본다.
사내 외면하고 다시 칼을 손질하는데 그 외면하는 꼴이 심상치 않다.
최영이 사내에게 다가선다. 사내. 긴장한다.
최영이 더 다가선다. 순간 사내가 칼자루를 움켜쥔다.
그의 손을 놓치지 않고 보는 최영. 사내가 덤비길 기다리는 중.
사내는 망설이고 있다.
최영이 슬쩍 허리 뒤에 돌려 매여 있는 검집을 앞으로 돌린다.
순간 사내가 최영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기다렸다는 듯 받아치고 두합에 벌써 사내의 검을 날려버린다.
연이어 사내의 무릎 뒤를 차서 꺾고. 뒷덜미를 잡고 무조건 화덕 앞으로 끌고 간다.
끌려가는 도중 사내가 두어 번 반격하려 하지만 번번이 바로 꺾이고 막힌다.
그대로 사내의 머리통을 불이 활활 타고 있는 화덕에 집어넣으려는 최영.
사내가 비명을 질러대며 원나라말로 소리 지른다.
대만 : (익숙한 듯 구경만 하다가) 다 말하겠다는데요.
최영 : (잠시 멈추더니 사내를 들여다보는) 뭘 말해줄라고.
// 밀실
사내가 떠들어대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최영소리 : 뭐래는 거야.
은수가 최영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번쩍 고개를 들려다가 멈춘다.
만티르가 목에 대고 있는 칼에 슬쩍 상처가 난다. 가느다란 상처에서 피가 주룩 흐른다.
만티르가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움직이지 말라. 조용하라고.
사내2는 칼을 꼬나 쥔 채 입구를 지키고 있다.
대만소리 : 자기는 아무 상관이 없댑니다.
// 대장간 내부
대만 : 자기는 모르는 일이래요.
최영 : 그건 내가 알고 싶은 게 아니고. (다시 사내의 머리통을 화덕에 집어넣으려는)
사내 : (기겁을 해서 버티며 떠든다)
대만 : (듣다가 긴장한다) 화공?
최영 : (멈춰서 돌아보는)
대만 : 화공. 불로 공격할 계획이랍니다. 객잔이요.
사내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킨다.
대만이 후딱 튀어가서 가리켜진 통을 발로 차 엎는다. 그 안에서 굴러 나오는 연막탄 통들.
대만이 그 중에 하나를 주워든다.
최영이 사내를 밀어버리고 다가와서 받아든다.
최영 : 연무탄이다.
사내가 또 떠든다. 그러는 동안 최영의 시선이 초조하게 대장간 내부를 둘러본다.
그 시선에 밀실로 가는 입구가 잡히지만 잠깐 머뭇거리다가 지나간다.
대만 : 벌써 시작했을 거래요. 아 씨. 전하가 위험하십니다.
최영, 잠깐 갈등한다.
대만 : 대장.
최영. 결정하고 입구로 움직인다. 가는 길에 팔꿈치로 사내의 머리통을 가격한다. 기절해 쓰러지는 사내.
최영, 달려 나간다. 대만은 이미 입구를 빠져나가고 있다.
// 밀실
밖에서 입구의 문이 타악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만티르가 은수를 향해 비식 웃는다. 눈물이 그렁해진 은수.
#46. 객잔 외부
또 하나의 보초 서던 무사가 목숨을 잃고 조용히 눕혀지고 있다.
자객이 그 옆의 창가에도 연막탄통을 설치한다. 바람이 불어서 자객사내의 머리칼이 흩날린다.
#47. 객잔 마을 길
최영과 대만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대만이 최영을 돌아본다.
최영이 끄덕여 허락해주자 대만이 아예 늑대소년처럼 네발을 이용, 앞서 죽 달려 나간다.
#48. 객잔 이층
초향이 걸어온다. 복도를 지키는 무사들을 지나쳐서 노국공주가 있는 삼층으로 올라간다.
그러면서 슬쩍 보는 곳. 충석이 걸어가고 있다.
#49. 객잔 일층 홀
계단 위에 도착한 충석이 우렁찬 소리로.
충석 : 갑조오.
그러자 어디선가 대답하는 소리.
소리 : 갑조오 하나.
#50. 객잔 외부
이곳저곳 자리를 지키는 무사들이 하나씩 대답하여 자신들이 무사함을 알리고 있다.
무사 : 갑조오 두울.
무사 : 갑조오 서이.
// 객잔 외부 일각.
숨어서 동태를 살피던 자객이 초조해진다. 들리는 소리.
소리 : 갑조오 너이.
자객의 뒤에는 박혀져 있는 무사의 시체.
소리 : 갑조오 다서엇.
그리고… 조용하다.
#51. 객잔 일층 홀
충석이 귀를 기울인다. 답이 없다. 주변의 다른 무사들도 긴장한다.
충석 : 갑조오 다서엇.
그러나 여전히 이어지는 소리가 없다.
충석과 옆의 무사들이 우르르 검을 빼어든다. 충석의 옆에 한 무사가 나무호각을 꺼내더니 입에 댄다.
#52. 객잔 노국공주 방
빼애액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
노국의 옆에 있던 장빈이 고개를 든다. 창문에 붙어있던 무사들이 와라락 검들을 빼든다.
방 가운데를 거닐던 공민이 그들을 본다.
무사 중의 하나가 얼른 공민을 노국공주의 침대 쪽으로 안내하며.
무사 : 전하 이쪽으로.
무사들이 날렵하게 움직이며 노국의 침대 옆을 에워싸며 방어한다.
초향이 슬쩍 그 방어선 안으로 들어선다.
일신이 미처 못 들어오고 우왕좌왕.
#53. 객잔 외부 이층
난간에 붙어 숨어있던 자객의 하나가 목에 걸었던 복면을 입으로 당겨 올려 입을 막는다. 마스크 대용.
창문에 설치한 연막탄에 나와 있는 줄을 힘껏 당긴다.
길게 줄이 빠져나오면서 마찰이 일어남과 동시에 펑.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54. 객잔 외부
다른 곳. 역시 입을 천으로 막은 다른 자객이 다른 연막탄의 줄을 당긴다. 연기가 터져 나온다.
#55. 객잔 일층 홀
무사 중의 하나가 소리친다.
무사 : 불입니다.
웅성거리는 수비 무사들. 계단 위에 우뚝 선 충석도 보고 있다.
각 창문이나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연기.
충석 : 출구를 확보해.
소리치며 노국공주의 방 쪽으로 달린다.
그런데 이미 이층의 창문에서도 새어 들어오고 있는 짙은 연기.
#56. 객잔 노국공주 방
벌컥 문이 열리며 충석.
충석 : 전하 밖으로 뫼시겠습니다. 화공을 당한 거 같습니다.
장빈이 더 물어볼 거 없이 노국 공주를 안아든다.
삼층의 창문에서도 짙은 연기가 새어들고 있다.
충석이 앞서고 공민과 노국을 안아든 장빈이 그 뒤를 따라 나간다.
#57. 객잔 일층 홀
방패를 앞세워 입구의 문을 여는 무사 몇 명.
문이 열리자마자 불화살이 여러 대 날아든다.
그중의 몇 대는 막아선 방패를 맞히는데. 나무방패가 불이 붙는다. (불화살에는 기름주머니 같은 것이 달려있다는 설정)
재빨리 입구의 문을 다시 닫는 무사들.
불화살에 불이 붙은 방패를 땅에 엎고 밟아 불을 끄려 애쓰는 무사들.
이층에서 내려오는 충석의 일파. 점점 짙어지는 연기.
여기저기서 연기 때문에 기침을 하며 괴로워하는 무사들.
주석 : (충석에게) 그냥 불화살이 아닙니다. 기름주머니를 달아 쏩니다.
돌배 : 앞문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순간. 창문들이 깨지는 소리. 그리고 날아드는 연막탄들이 내부에 떨어져 구른다.
시야가 순식간에 연기로 막힌다.
잘 안 보이는 와중에 충석이 우렁차게 명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충석 : 밀집대형. 흩어지지 마라. 을조 후문을 뚫는다. 전하 어디 계십니까.
// 충석이 짙은 연기 속에서 공민을 찾아 모신다.
공민이 역시 기침을 하며 눈물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며 노국을 찾는다.
충석이 공민을 뒤로 모시려는데. 공민이 충석을 당기며.
공민 : 그 사람이 안 보이네.
충석 : 예?
공민 : 방금 옆에 있었는데. 안 보여.
// 객잔의 일층 다른 곳. 초향이 장빈을 이끌고 있다.
노국을 안은 장빈이 뒤를 돌아보지만 짙은 연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없다.
무사 중에 한명이 연기 때문에 기침을 하며 따르고 있다.
초향이 장빈의 소매를 당기며 한쪽을 가리킨다. 장빈이 보기에 그 쪽은 연기가 없다.
초향이 앞장서 쪽문을 연다. 빨리 나오라 한다.
#58. 쪽문 밖
초향을 따라 나오는 장빈. 초향이 빠르게 앞서고 있다.
장빈의 뒤를 따라 나오던 무사. 눈물을 닦으며 안을 향해 소리친다.
무사 : 을조 백산. 후문 발견했습니다. 이동합니….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쓰러진다. 기다리던 자객이 무사를 베었다.
장빈에게도 날아오는 검을 장빈이 허리를 뒤로 꺾어 간신히 피한다.
노국을 안고 있어서 반격을 못하고 계속 뒷걸음질을 하며 피한다.
먼저 자객의 또 다른 자객이 나타난다. 그가 쪽문을 밖에서 빗장을 건다.
장빈이 다급하게 주위를 살핀다. 옆에 나무 땔감이 쌓여져 있다.
장빈이 재빨리 땅에 떨어져 있는 땔감 하나를 발로 차서 상대하던 자객을 잠시 물리치고
그 사이 노국을 땔감 옆에 기대 눕힌다.
부채를 빼어들어 공격해오는 자객을 간신히 막는다. 두 번째 자객도 막는다.
두 자객에게 협공을 당하며 노국에게서 멀어지는 장빈.
힐끗 보면 초향이 노국의 옆에서 칼을 빼들며 자기를 보고 있다.
장빈 : 올 거 없다. 거기서 마마를 지켜.
하며 또 한 번 방어한다.
초향이 무표정한 얼굴로 노국을 내려다본다. 손에 들었던 칼을 휘릭 돌려 안쪽으로 잡는다.
#59. 객잔 앞
자객 두 명이 객잔 입구가 보이는 이만치에 자리를 잡고 불화살을 재고 있다.
(객잔 정문에 불화살을 쏘아 안에 사람들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화살 하나를 당겨 한 번 더 쏘아댈 자세인데.
뒤에서부터 짐승처럼 달려드는 그림자. 그 중의 하나에게 그대로 날아 떨어져 내리며 엉겨 붙는다.
뒹구는 두 사람. 하나는 대만이다.
자객 나머지가 놀라 화살을 그 쪽으로 겨누는데. 이미 손칼로 앞의 자객을 처리한 대만이 일어선다.
나머지 자객이 대만을 향해 당긴 화살을 쏜다.
그러나 서있던 대만이 그림자처럼 엎어지며 화살을 피하더니 아래에서부터 튕겨 올라 달려든다.
두 번째 자객을 끌어안고 뒹구는 대만. 그 손에는 이미 앞의 자객의 피가 묻어있는 손칼.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사용하고 있다.
#60. 쪽문 밖
노국의 옆에 앉는 초향. 그 뒤 저쪽에서는 장빈이 힘겹게 둘을 상대하고 있다.
초향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나간다. 이제 되었다. 노국을 향해 칼을 치켜든다.
순간. 노국의 눈이 번쩍 떠진다. 놀라서 멈춘 초향.
노국이 시선이 잠시 흔들리다 초향을 똑바로 본다.
초향. 입을 앙다물고 칼을 높이 치켜든다. 마악 꼽으려는 순간. 이상한 소리.
휙 돌아보았더니 거기 전경방패가 홱홱홱 회전하며 날아오고 있다.
초향의 목에 정통으로 맞으며 초향이 나가 넘어진다.
저만치서 방패를 던진 최영이 달려오고 있다. 달려오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자객 하나를 해치운다.
거의 동시에 쪽문이 안에서부터 박살이 나듯 부서져 열리며 충석이 달려 나온다.
충석 : 뭐야 이것들은.
충석은 경첩이 빠져 너덜거리는 문짝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장빈을 공격하던 자객을 하나 박살을 낸다.
그 뒤로 우르르 충석의 부하들이 나오고.
달려온 최영은 노국의 옆에 한 무릎을 꿇어앉는다.
노국이 눈을 뜨고 자신을 보고 있다.
최영 : 정신이 드셨습니까?
노국. 대답 대신 도도하게 한쪽을 돌아본다. 거기 공민이 다가오고 있다.
공민이 노국을 내려다본다.
최영 : 깨어나셨습니다.
공민 : …그래 보이는군요. (괜히 냉랭한 듯 노국에게 묻는) 살아나신 겁니까?
노국 : (공민을 보더니 마주 냉냉하게, 힘없는 목소리지만) 여기.. 왜 이리… 시끄럽습니까.
최영이 일어선다. 충석과 부하들이 자객들을 완전 제압하고 있다.
최영 : 전하.
공민 : (돌아본다)
최영 : 하늘의 의원분이 살리셨습니다. 그분을 찾게 되면.. 언약을 지켜도 되겠습니까?
공민 말없이 본다. 바람이 분다.
#61. 천혈
바람이 분다. 이제는 거의 일 미터 정도로 줄어든 틈.
#62. 개경 정자
휘몰아치는 바람. 외따로 떨어져 있는 정자.
정자로 중신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다. 주위를 살펴가며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말을 타고 모여든다.
자막 개경 (고려의 수도)
#63. 개경 정자 내부
대신들이 대신 1.2.3을 중심으로 모여들며 자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자운 : 만약에 밀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일 이외다.
우리의 전하와 함께 오시던 원의 공주, 우리 고려의 왕비마마께서 시해를 당하셨다. 이것은….
대신3 : (수염이 허연 노익장) 대체 누가 감히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 렀단 말이오.
그 말에 다들 수런수런. 떠들썩.
대신1 : (버럭) 아 좀 조용히들 해보세요. 누가 그랬는지 몰라서 물어요?
자운 : 왕비마마를 시해한 자는 우리 전하께서 도착하시자마자 원나라를 등에 업고 핍박을 가할 것입니다.
대신1 : 기철이 그 놈이 현재 쌍성총관부 놈들하고 같이 있다 합니다. 무엇을 의논하는지는 불 보듯 뻔 한 일.
자운 : 이번 일을 꼬투리 삼아 또 한 번 입성책동을 들먹이겠지요.
그래서 종내 우리 고려를 원의 일개 성으로 귀속시키자 할 것이구요.
자막 입성책동(立省策動)고려 땅에 원나라의 행성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
대신4가 분에 못 이겨 허리 위의 검집을 앞으로 빼내며.
대신3 : 내 이놈 기철의 목을 당장 따버릴 것이야. 수천 년 조상이 이루고 지켜온 이 땅을 누구에게 내줘.
내 눈이 퍼렇게 살아있는데 이런 얘기를 들어야하다니. 어이구우….
대신1 : 더 길게 끌 거 없소이다. 이 자리에서 결정합시다.
전하께서 오시기 전에 기철이 이 놈 패거리를 몰살시키는 겁니다. 그것만이 이 나라. 우리 고려가 살 길이외다.
대신3 : 결정하고 말 것이 무어가 있어. 고려 땅에서 나고 자란 종자라면 더 생각할 것이 뭐가 있냐고.
사람들이 저마다 옳소. 갑시다. 소리를 질러대며 흥분한다.
그러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자운. 조용히 그들 뒤로 문을 나서고 있다.
#64. 개경 정자 밖
밖으로 나오는 자운. 서두르지 않고 뒷짐을 진 채 바람 속을 걸어간다.
그 뒤에서 어디선가 나타난 기철의 사병들이 문의 밖에서 빗장을 건다. 그 옆의 창문들도 빗장이 걸린다.
그래놓고는 부지런히 달려서 정자에서 멀어진다.
급히 달리는 사병들의 와중에 자운이 계속 걸어간다.
거기 기다리고 서있는 기철의 아우 기원과 양사.
자운이 그들 옆에 나란히 서서 정자 쪽을 본다.
이제 문이 다 닫긴 정자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양사가 기원을 돌아보고 끄덕인다. 기원이 들고 있던 활의 시위를 주욱 당긴다.
정자를 향하는 화살. 화살을 놓는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정자 정문 위에 나와있던 매듭을 뚫는다.
매듭이 타악 끊어지며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풀리며 문 안으로 당겨져 들어간다.
#65. 정자 내부 정문
위쪽에서 시작해서 천정을 타고 이어진 줄이 빠르게 당겨지며 줄줄이 매달려 있던 통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진 통들이 열리며 녹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정자 내부에 있던 대신들이 놀라 보는데.
이미 독연기가 내부에 가득 퍼지고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여기저기서 기침을 하고 누군가는 벌써 피를 토한다.
괴로워하며 문이며 창문으로 달려들어 열려고 하는 대신들. 잠겨져 있는 문들. 아비규환.
#66. 정자 밖
창문마다 문마다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지 마구 들썩이고 있다.
그러다가 이내 잦아든다. 조용해진다.
#67. 대장간 내부
문이 열리며 최영이 들어선다. 그 뒤를 따라 들어서는 대만.
대만이 후다닥 대장간 내부를 달려 둘러보며.
대만 : 아무도 없는데요. 아까 그놈도 없어졌습니다.
최영이 천천히 걸어 둘러본다.
대만 : 만약 여기 잡혀계셨더라도 벌써 놈들이 빼돌렸을 겁니다.
우리 무사들 열 명만 풀지요. 인근 동네. 산속. 포구 다 뒤져보구요. 그리고….
하다가 말을 멈춘다.
우뚝 서있는 최영의 주먹 쥔 손에 자기도 모르게 내공이 모이고 있다.
진기의 기운이 파르라니 손을 감싸고 팔목까지 돈다. 이윽고 진기가 사그라진다.
최영이 문 쪽으로 돌아선다. 걸어가며.
최영 : 난 좀 더 돌아보겠다. 넌 가서 부장에게 전해. 애들을….
하다가 멈춘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소리 : 밥 주세요.
둘이 서로 마주본다. 다시 들리는 소리.
소리 : 밥 주세요.
둘이 일제히 한쪽을 본다. 거기 밀실로 가는 입구.
#68. 대장간 밀실 내부
한쪽에 던져져 있는 은수의 가방. 그 옆에 떨어져 있는 은수의 휴대폰.
소리 : 밥 주세요.
#69. 대장간 내부
대만이 입구 쪽으로 달려가려는 것을 최영이 손을 들어 멈추게 한다.
입구를 향해 몇 걸음 진중하게 다가선다.
소리 : 밥 주세요.
다음 순간. 밀실의 입구가 벌컥 열리는데.
그 안에 보이는 모습. 사내2가 은수를 앞으로 해서 끌어 잡아 목에 단도를 대고 서있다.
눈물이 그렁해져 있는 은수. 손발이 묶이고 입도 재갈이 물려져 있는 모습.
대만이 울컥해서 최영을 보는데.
최영은 말없이 그들을 보며 스릉 검을 뽑는다.
소리 : 밥 주세요.
사내1이 울컥 발로 휴대폰을 밟아 부숴버린다. 원나라 말로 뭐라 떠든다.
대만 : (분하지만 통역한다) 길을 비키랩니다. 안 그러면… 죽인다구요.
칼을 든 채 말없이 보고만 있는 최영.
사내1이 단도를 더욱 은수의 목에 깊이 댄다. 주욱 핏줄기.
은수가 겁에 질리며 눈물이 주룩 떨어진다.
사내가 또 뭐라 떠든다.
대만 : 둘 다 보내주든지. 아니면 같이 죽겠답니다.
최영이 오른 손에 들었던 검을 왼손으로 바꿔 잡는다.
사내가 긴장해서 본다.
순간 사내를 지켜보며 거리를 잰 최영이 검을 공중으로 휘익 던진다. 검이 공중에서 크게 회전을 한다.
사내가 그 검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잠깐 시선이 팔리는데.
그 순간. 최영의 오른 손이 허리춤의 단도를 빼어 단숨에 던진다.
먼저 던진 큰 검이 땅바닥에 꽂히는 것과 거의 동시에 두 번째 던진 단도가 사내의 이마에 박힌다.
사내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은수는 덜덜 떨며 완전 굳은 채로 그저 서있다.
앞으로 걸어가는 최영. 먼저 땅에 꼽혔던 검을 뽑아 허리에 찬다.
그리고 은수 앞에 선다. 입도 막히고 두 손이 묶인 채 덜덜 떨며 서있는 은수.
그러나 최영은 먼저 허리를 굽혀 사내에게 꼽혔던 단도를 빼내더니 사내의 옷에 피를 닦는다. 별로 급할 게 없다.
그리고 은수의 발을 본다. 신발이 하나는 없이 흙이 묻고 스타킹은 펑크가 나있다.
발목을 묶은 끈을 끊는다. 일어서서 손을 묶은 끈도 끊어 내준다.
단도를 허리춤에 꼽더니 마지막으로 은수의 머리를 안아 감싸는 자세로 입을 막은 재갈을 풀어준다.
점점 더 떨고 있는 은수. 그런 은수의 턱을 잡아 돌려 본다. 터진 입술. 아직 남아있는 핏자국.
최영이 찡그리더니.
최영 : 참 사람 성가시게 하는 분이네. 기다리라고 했잖습니까?
여기가 어딘지 알구 뛰쳐 나가요? 그래서 꼴이 이게 뭡니까. 이거 봐요.
하며 은수의 얼굴을 다시 잡아 보려는데. 은수가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친다.
최영, 으이그..
최영 : 따라 오십시오. 말을 가져 왔으니까..
하며 돌아서 가려는데.
뒤에서 은수가 손에 잡히는대로 농기구들을 집어들더니 최영에게 던진다.
최영이 반사적으로 피하며 돌아본다.
은수는 위험하게도 망치도 집어들어 던진다.
최영이 어이없어 간신히 피한다. 대만도 어이없어 헤..해서 보고만 있다.
은수가 또 뭔가 무거운 것을 비틀거리며 집어들어 최영에게 던지더니 제딴에는 무지 빨리 입구로 도망쳐나간다.
신발을 한쪽만 신고 있어서 절뚝거리며 죽자고 도망친다.
최영이 어이가 없어서 본다.
#70. 대장간 밖
은수가 미친 듯이 도망쳐 나왔다. 절뚝거리며 이쪽으로 도망치다가 여기가 아닌 거 같다.
달리며 신발 하나를 마저 벗어 던져버리고 다른 쪽으로 달린다.
그러다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는데 최영의 손이 뻗어져 나와 허리를 감아 잡아 세운다.
은수가 소리 지르며 최영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찬다. 최영이 어이없어 놓아준다.
그 바람에 넘어질 뻔해서 겨우 서는 은수.
헉헉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직도 어느 쪽으로 도망칠까 이리저리 살핀다.
최영 : 왕비마마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은수 : (그제야 최영을 본다)
최영 : 그래서 돌려보내 드린다구요. 오셨던 곳으로 다시.
은수 거칠게 눈물을 닦으며 못 미더워서 노려본다.
최영이 가자고 턱짓을 한다.
은수가 반신반의, 한걸음 떼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비틀한다.
최영이 할 수 없이 한 손을 내민다. 은수가 비틀거리면서도 뒤로 물러난다.
최영 : 모셔 가겠습니다.
은수 : 다시 한 번만… 그 드러운 어깨에 날 둘러메기만 해봐. 날 무슨 짐짝처럼.
또 한 번만 그러기만 해. 내가 아주..
하는데 그냥 성큼 다가선 최영이 은수를 답싹 안아 든다.
은수가 반항하다가 최영이 떨어뜨리는 척 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다시 매달린다.
그런데 최영은 은수를 어깨에 메는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예쁘게 안아들었다.
그 자세에 은수가 저도 모르게 좀 민망해진다.
그렇게 은수를 안고 걸어가는 최영.
저 앞에 대만이 준비하고 기다리는 말. 그 말까지 걸어가는데.
최영의 품에 안긴 채 은수가 뭐라 궁시렁댄다.
최영 : 뭐요?
은수 : 사이코.
최영 : 뭐?
은수 : 연쇄… 살인범. 사이코패스.
최영 그냥 웃고 은수를 말에 태운다. 대만에게.
최영 : 가서 전해. 하늘분 모셔드리고 가겠다고.
대만 : 예.
대만이 다른 쪽으로 달려간다.
최영은 비틀거리는 은수의 뒤에 올라타 은수를 단단히 두 팔 안에 가둔다.
은수가 불편해서 몸을 비틀자.
최영 : 떨어지면 부러집니다.
은수가 조용해진다.
만족해진 최영이 이랴. 말을 출발시킨다. 점점 속도를 낸다.
그들이 가는 모습을 이쪽에 숨어서 보던 만티르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71. 천혈
이제 천혈은 거의 사람 키의 반 이하로 줄어들어있다. 여전히 부는 바람.
그곳으로 달려오는 최영의 말. 멈추고 내린다. 은수를 내려준다.
은수가 바람에 눈을 가리며 사방을 둘러본다.
은수 : 여기 알아요. 아까 거기잖아요. 그러니까 여긴 아는데 여기서 강남까지…
아니지, 강남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내가 그걸 모르겠다구요. 그래서….
떠들다가 보면 최영이 이미 포탈의 입구 쪽으로 가고 있다.
은수 : 같이 가요.
부지런히 쫓아간다.
최영이 포탈에서 좀 떨어진 곳에 멈추더니 은수에게 포탈을 가리켜보인다.
최영 : 보입니까? 저 문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저게 닫히면 저도 보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가십쇼.
은수가 불안해서 조심스레 한걸음 내딛다가 멈춰서 다시 돌아본다.
은수 : 그냥 절루 가면 되요? 그럼 뭐가. 문 같은 게 열려요? 그 담에는요?
최영 : 들어가시면 됩니다.
은수 : 그니까 저리루 들어간다는 게 뭐냐구요. 이거 테스트 제대로 해본 거 맞아요? 부작용 같은 거 없나.
최영 : (잠시 은수를 보다가) 고생시켜 드렸습니다.
하더니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은수가 저도 모르게 어정쩡 고개를 숙인다.
최영이 은수를 본다. 은수가 돌아서서 포탈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일신소리 : 멈추라.
은수가 서서 돌아본다.
거기 일신이 말에 매달려 달려오고 있다. 일신을 호위하는 무사들 열 명 정도.
대만과 충석도 함께. 말을 달려온다.
우르르 내리는 무사들. 일신이 고꾸라지듯 말에서 내리며.
일신 : 하늘에 의원님은 못 돌아가시오.
최영이 일신과 은수 사이를 막아서며 칼을 뽑아든다.
최영 : 나 고려 무사 최영의 이름으로 보내 드리는 거요. 내 이름을 무시하는 자. 누구야. 막아봐.
일신이 멈칫 선다. 최영의 뒤에서 은수가 이게 뭔가 해서 보고 있다.
일신 : 전하의 말씀이시오. 우달치. 하늘의 여인을 막으라 하셨소.
최영 : 헛소리. 믿지 못하겠다.
일신 : (자세를 바로 서더니) 뭣들 하는가. 저 여인을 잡으라.
그 말에 옆의 무사들이 머뭇거리며 최영과 일신을 본다.
일신 : 어명이다.
그 말에 무사들이 저마다 칼을 빼들어 최영을 겨눈다.
최영이 충석을 본다. 충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고.
일신 : 우달치. 최영. 어명이라고 했다. 거역하겠는가.
말없이 일신을 노려보던 최영. 뒤를 돌아본다.
거기 은수가 눈치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천혈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최영, 울컥… 하지만 달린다. 마악 천혈로 들어서려는 은수를 잡는다.
은수가 마구 뿌리치지만 최영의 힘을 당할 수가 없다.
은수 : 놔… 놔요. 이거 좀. 나 좀… 놓으라구우….
은수가 하도 난리를 쳐서 혹여 다칠까봐 최영이 한손에 들었던 검을 땅에 꼽고.
두 손으로 뒤에서 은수의 허리를 잡아 막는다.
천혈을 향해 몸부림치는 은수. 그러는 순간.
마구 바람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그나마 남았던 천혈이 기이한 소리와 함께 끓는다.
최영을 뿌리치려 애쓰던 은수도. 최영도 천혈을 본다.
순간. 휘익. 천혈이 한꺼번에 닫혀버린다.
최영이 은수를 잡았던 손이 스윽 풀린다.
은수가 허겁지겁 천혈이 있던 자리로 달려간다.
사방을 손을 휘두르며 찾아보지만 그 자리에는 허공 뿐. 아무 것도 없다.
최영이 돌아서 일신을 향해 몇 걸음 걸어온다. 멈춘다.
마구 휘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해진다. 사방이 오랜만에 말짱해진다. 저녁노을이 붉다.
최영이 일신을 향해 말한다.
최영 : 신 최영. 어명을 받자와 하늘에 의원을 잡아놓았습니다.
순간 뒤에서 들리는 소리.
은수소리 : 야, 이 나쁜 자식아.
최영이 돌아선다. 거기 은수가 분노하여.
은수 : 약속했잖아.
하며 옆에 땅에 꼽혀있던 칼을 뽑아든다. 무거워서 두 손으로 들고서도 휘청하며.
은수 : 돌려보내 준다구 했잖아. 이 사이코. 살인마. 죽여 버릴 거야.
하더니 두 손으로 검을 겨누어든 채 달려온다.
최영. 그런 은수를 향해 오히려 양발을 벌려 똑바로 선다. 가슴을 내민다.
일신이 놀라서 본다. 충석을 비롯한 무사들이 놀라서 본다.
대만이 놀라 달려들려고 한다.
그런데 똑바로 달려온 은수의 검이 그대로 최영의 가슴을 뚫는다.
거의 동시에 최영의 두 손이 검을 잡은 은수의 손을 덥쳐 잡는다. 아마도 찌르는 힘을 보태준 듯.
잠시 모든 것이 정지했다가.
은수가 믿기지 않아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검이 분명 최영의 배에 박혀있다. (간이 있는 부위입니다)
최영을 올려다본다. 우뚝 선채 은수를 내려다보는 최영.
은수 : 왜…. 어째서….
최영 울컥 하더니 입에서 피가 한 모금 뱉어진다.
은수 : (환장하겠다) 피할 수 있었으면서 왜.
최영 :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온다. 미소 짓는 듯한 얼굴. 은수의 귓가에 낮게) 이러면.. 다.. 된거지?
그리고… 최영이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런 최영을 받아 안아 같이 무너져 앉는 은수.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넋을 잃는데.
그렇게… 노을이 지는 오후.
첫댓글 다운해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