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10시 서울의대 동창회관인 함춘회관 3층 가전홀에서 제 28회 바둑대회가 열렸다.
이런 동창회행사에는 빠지지 않은지라 집에서 걸어 나오면 5분거리에서 버스를 탄다.
내가 즐겨타는 144번, 서초동에서 우이동까지 시내를 가로질러가는 노선,
다시 말씀드리면 이 버스 한번타면 우이동 등산기점이다.
아래의 363노선은 여의도까지 가고.
앞에 보이는 건물에는 제가 한번씩 가는 황금온천이 있고
김 두순 정형외과는 나의 입학동기가 한다.
덕지덕지 붙은 스티커들은 붙이는 쪽쪽 전화를 불통시켜버리면 되지 않을까?
나는 버스타는 걸 즐긴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으니까 거리구경, 간판구경 하는것도 재미가 있다.
새로 생긴 치과 간판이 서울이 좋은 치과(서울대 마크가 들어간게 서울대 출신),
"얼음과 눈을 밀고 올라오는 꽃, 그꽃이 당신이어라"
교보생명의 바깥에 붙은 시의 한구절.
약수동에서 한동안 그대로 간판이 붙어있던 돌아가신 고 영우산부인과가
새로운 빌딩으로 들어서 있다.
장충동 족발가게들을 지나 광희동에서 내리면 바로 지하철 4호선과 연결되어 동대문을 거쳐 혜화.
서울처럼 대중교통수단이 발달된 도시를 도시를 본 적이 없는데.
지하철을 나오면 만나는 표지판.
정문은 휴일이라 막아 두어.
일층 홀의 벽면에 붙어있는 동창회기금을 내신 분들.
등록을 하고 행운권을 받고 들어가니까 막 묘수풀이가 끝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보이시던 조 강희선배님이 보이질 않네.
항상 부드러운 표정의 별 말씀도 없이 빙그레 웃곤하였었는데.
바둑대회가 열린 가천홀, 가천은 아마 이 길녀선생의 호?
준비된 상품들.
저 가운데 나의 것은 하나 있을까?
이 날 저의 대국성적은 B조에서 박 희백선배와 첫판에서 불계패.
두번째 대국은 주 흥재선배와 잘 두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와서 자꾸 말을 시키는 대선배덕에 또 불계패.
"에라, 본전이나 찾자."하며 2층 중식당인 "함춘원"에서 두가지 메뉴 중 하나인 잡탕밥에
카버네 쇼비뇽 레드와인을 바둑은 두지 않고 참석한 이사들과 느긋하게, 기분 좋게 마셨지요.
안 제환군의 군대 1년차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해군대위로 진해병원에 근무할 때 회진을 도는 중에 간호장교와 사복차림이 떠들고 있어
"너 군인이야, 네. 계급이 뭐냐 중사입니다."
장교가 회진을 도는데 떠들다니 하고 냅다 뺨을 한대 올려 부쳤는데
알고보니 보안사 파견 근무 중사라!
너무나 정확하고 열심히 근무하는 친구라 잡아 넣으려고 일주일간 조사를 하여도 깨끗하여
나중 보안사 중사한테 전화가 와서 "그래, 내가 때린것은 잘못했다."하고 끝내었다 한다.
다음 근무지인 중앙정보부에서는 아무리 직급이 자기보다 높다하여도 반말하는 총무과장하고
또 한판 붙었다는 이야기.
저도 5군단 야전병원에 근무할 때 새파란 야전 보병소령하나가 엉겨 붙어서
점잖하게 말해 주었지요. "너 눈에는 내가 대위로 밖에 안보이느냐?"
자, 군단장이 3성장군, 3개사단장이 2성장군, 공수여단장과 공병여단장이 별 하나,
헌병대장과 보안대장이 대령, 이 사람들 모두 나를 주치의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때 운천에서 서울의대 출신 5군단 군의관들을 모두 소집하여 하룻밤 근사하게 먹고 마셨는데
우리 후배 김 용천 중위가 검문소에서 검문하는 헌병하사를 건방지다고 쥐어박고는
군단헌병대까지 보고가 되어 "어떡하지요"하는걸.
헌병대 운영과장인 소령에게 전화를 해서 해결해주었다.
그런데 남의 어려움을 못보는 이 친구는 군을 마치고 서울대 인턴으로 휴가 때.
만삭의 부인을 두고 여름철 동해안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다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 아니고 로비에 걸려있는 사진입니다.
초조한지 앉지도 못하고 서서 바둑을 두는 우리동기생.
건너편이 김 노경선생님.
왼쪽부터 사업이사이자 제 동기인 안 제환, 박 희백선배, 동아제약의 강 신호선배, 후배 이 수동, 그리고 동창회 사무국장.
심 영보선배의 심각한 모습.
동창회관 3층에서 내려다 본 의과대학구내.
동창회관의 안내판.
그래도 동창회관이 있기 때문에 동문들이 모이기 쉽고.
우리동기들도 송년회를 이곳에서 한 적이 있지요.
또 고정적인 세수입으로 동창회 수입원이 확보되고
동문들이 세를 얻기도 편합니다.
일층의 사랑방에는 바둑판도 있고 차도 대접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바둑의 승패는 났으니 슬슬 학교구경에 나섰다.
그 사이에 어린이 병원과 본관과 연결통로가 설치되었습니다.
도서실 앞 정원.
전에 여기에는 "우리는 감사한다"라는 표지석이 있은 걸로 기억하는데 안 보이네요.
이 장소가 함춘원 자리이고 좌측편에 문화재를 축구골대로 사용하던 문이 있었지요.
미군들이 지은 바라크건물이 교수회관으로 사용되었고.
이 장소는 해부학실습실.
민족이란 말이 상당히 거슬리지요.
전에는 넓어 보이더니 건물들이 자꾸만 들어서서 좁아 보이지요.
이 맨홀은 그대로 있네.
1968년 본과 일학년때 우리동기가 강의 시작시간 전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우리도 아는 생리학교실의 사무여직원이 학생들이 주시하고 있으니까 앞만보고 걸어오다가
갑자기 "으악"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맨홀 뚜껑이 열려있었던 것.
다행히 아래는 깨끗한 물이 있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다리만 조금 긁혔다.
강의실자리가 아니었던가요?
길너머 문리대 건물들은 철거되고 새로이 들어선 빌딩들.
그뒤로는 흉물스러웠던 낙산 아파트가 철거되고 나무를 심어 놓았다.
연탄때는 낙산아파트에서 연탄개스중독환자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 이야기를 듣고 후배 이 수동선생이 자기도 집이 상도동이라 아는 사람이 이 동네에 살아 여기서
여기서 공부하다 연탄개스 중독에 걸렸다고 한다.
예과 1학년 이화동에서 하숙을 할 때 적산가옥이라 안방을 통하여야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집.
새벽에 집에서 나와 의과대학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탁 친다.
"뭐야!, 예과학생인데요." 수위가 내가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온 것.
고 재희 사범의 A조 대국해설.
박 용현회장님은 일 때문에 부산에 내려가시고
강 신호 고문님이 축사 및 오늘 나온 "나랑드"란 사이다를 소개하며 당신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강 고문님 작명 작품이 많이 있지요. 와인 이름을 "위하여" 발기부전치료제를 "자이데나" 등등.
총무가 이 대회말고도 강회장님이 후원하는 바둑대회가 여럿있다고 소개한다.
고 재희사범에게 감사의 표시로.
C조 우승자인 대선배님.
B조 우승은 한국기원발행 아마 3단증과 함께.
A조 우승자인 후배.
수상자들과 함께.
이런 자리는 앞에 서야 잘 나오는데.
끝나고 그 자리에서 조촐한 회식.
김 종화선배가 "이게 무슨 와인"하며 라벨을 살펴보고
박 희백선배가 바둑대회의 앞날에 대하여 몇가지 제안을 한다.
술은 와인, 맥주, 나중에는 양주까지.
동아제약에서 스폰서한 바둑판들.
미몽 막걸리 369ml 네병에 월간 바둑잡지 한권이 참가 기념품이다.
나는 이런 자리가 정말 좋다.
승패가 무슨 문제랴!
바둑도 두고, 선후배도 같이 만나고, 점심, 그리고 회식에 술까지.
우리 동기 안 제환의 차를 얻어타고 청계천을 지나며 한 커트.
첫댓글 모교 구경도 잘 하고, 군대 생활 때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안제환이 그런 모습이 있는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