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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주일설교 시편138:1-8
본문: 시편138:1-8
제목: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오늘은 시편138:1-8의 말씀을 가지고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어느 날 밤, 물라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낯선 부자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
금화 아홉 개를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속에서 물라는 부자에게 말했습니다.
“왜 아홉 개만 주시는 겁니까?
기왕이면 하나를 더 주세요.
그러면 열 개를 채울 수 있잖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사정도 해 보고 빌어도 보았지만
물라는 금화 한 개를 끝내 얻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빈손으로 깨어난 물라는
금화 한 개에 집착한 나머지
아홉 개마저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다시 눈을 감고 조금 전에 꾸던 꿈을
계속하려고 애쓰던 물라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며 사정했습니다.
“좋아요, 좋아. 제가 양보하지요.
그냥 아홉 개라도 주세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삶에는 늘 부족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부족한 한 가지를 채우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채우지 못한 그 한 가지로 인해 마음에 걸려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아홉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부족한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나에게 부족한 것은 한 가지가 아닌데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또 그것도 있고--- 맞습니다.
부족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그것들은 한 가지 일 뿐입니다.
우리 삶에서 채우기를 원하는 그 한 가지는 아무리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구하면 요구할수록 후회와 한숨과
우울증만 더할 뿐 그 한 가지는 얻을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홉입니다.
문제는 가지지 못한 한 가지 때문에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열 개를 다 가지려고 집착하다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홉 개의 금화조차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모든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불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누구도 완벽한 만족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 욕구는 점점 더 커져서 끝내 무한으로 치닫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 자는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언제나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 손에 쥔 아홉 개의 금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의 삶은 빈손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손에 쥔 아홉 개의 금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감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지금 하는 것이고,
감사는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감사의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추수 감사 주일로 드렸습니다.
왜 추수 감사 주일을 지켜야 할까요?
절기는 기념하는 날입니다.
절기는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냥 지나치기 쉽기에 날을 정해서 기억하려고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물질에 대해서 1년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감사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감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감사절을 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1.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감사하라!(2절)
감사하려면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받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년 초에 여러분들은 무슨 기도를 하였습니까?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무엇을 기대하였습니까?
지금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간 한 해 동안 해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종종 어떤 이들의 말을 들으면 실망감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안 해주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감사한다.”
그의 마음에 전체에서 나오는
감사가 있었고 찬양하였습니다.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찌해서 이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고,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경배하고자 하는 의지가 발동되었습니까?
감사와 찬양과 경배 이 세 가지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며 최대의 것입니다.
이 시인이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하게 된 것은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이 지나간 과거를 생각할 때 기억나는 것은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돌보아 주셨구나”
이 고백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자신이 죄인이고, 자신이 부족함을 알기에
그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많이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몰라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모르니 불평을 하고 원명을 합니다.
하지만 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돌보아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본문의 시인의 고백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해야 합니다.
지나간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으로 돌봐 주셨습니까?
얼마나 많이 보호해 주셨습니까?
많은 환란에서 건져 주셨고,
아침마다 말씀으로 권고하셨고,
여러 가지 사건과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까?
그렇게 악했는데 불구하고 다 벌하지 않고 참으셨고,
사랑으로 받아 주셨습니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철면피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보호하시며,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자가 당연하게 해야 할 고백은
내가 지금 살아있고, 지금 내가 하나하나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바로 하나님께 인자와 긍휼과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2.응답하신 기도에 감사하라!(3절)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 기도에 대해서 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난 응답을 못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응답을 못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이들은 응답을 받았다고 좋아서
자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무엇이 응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도했다면
응답해 주실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지난해 동안 무슨 기도를 드렸습니까?
누구를 위해 기도했으며,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기도가 응답 되지 않아 원망한 시간은 없었습니까?
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면 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응답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했으면
응답하신 것에 감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짧은 소견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것은 미천하고 어리석은 우리가
하나님을 판단한 행동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것, 찬양을 하는 것,
경배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말씀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4절)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침묵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것도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느껴질까요?
그것은 우리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시면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들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길은 참 많습니다.
먼저 공적인 예배를 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일주일이면 한번에서 7-8번 가량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드리러 와서 듣지 않습니다.
딴 생각을 하고, 졸고, 내 말씀으로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판단만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펼쳐 보지도 않고,
들은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시간이 나는 대로
말씀을 많이 보고 듣기는 합니다.
공적인 예배를 통해서 듣는 말씀도 부족하여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테이프를 통해서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들었지만 마음으로 뿌려지지 않습니다.
씨앗은 땅에 뿌려져야 생명이 싹이 트게 됩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지만 마음에 뿌려지지 않으면
그 말씀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아니 듣지 않는 것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강단이나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시지만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인생의 사건을 통해서나
세상의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한다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며,
그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우리는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행동 없는 감사는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감사를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내 손에 쥐고 있는 아홉 개의 금화를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 주간 동안 올 한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살펴기 바랍니다.
2.살펴보았으면 감사를 실제로 표현해야 합니다.
신명기 26:1-5을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가서
곡식을 추수하고서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
성전으로 가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받은 것에서 감사를 표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사지은 것의 첫 열매를 강단에---)
지난 주 강단에 올려져 있는 헌물에 실망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강단에 올려진 헌물을
어려운 분들에게 가져다 줍니다.
누구를 가져다 주기가 부끄러웠습니다.
하신 분은 정성스럽게 하셨지만
안 하신 분도 많습니다.
내년 강단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최소한 한 가정에 한 가지 씩은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과일이라도 사서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께 감사를 했으면 그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표현하는 방법은 나누면 됩니다.
나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다고
사람들에게 드러내어서 고백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내 물질을 가난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나누는 삶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성도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제게 주신 수없이 많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나누는 삶을 살겠습니다.
오랜만에 백로둥지의 댓글이 달렸네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