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53편
한편, 왕인은 달아나다가 이운과 마주쳐 싸움이 벌어졌다. 이운은 말을 타지 않고 보행으로 왕인과 싸우다가, 왕인의 말에 밟혀 죽었다. 석용이 이운을 구하려 하다가 왕인의 신출귀몰한 솜씨를 당해내지 못하고 몇 합만에 왕인의 쟁에 찔려 죽고 말았다.
그때 성중에서 손립·황신·추연·추윤이 달려 나와 왕인을 가로막고 싸웠다. 왕인은 네 장수와 싸우면서도 용력을 발휘하여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 임충이 나타나서 또 싸움에 끼어들었다. 왕인이 설혹 머리가 세 개고 팔이 여섯 개라 할지라도 다섯 장수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다섯 장수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마구 공격하자, 가련하게도 남국의 상서는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끝장이 나고 말았다. 다섯 장수는 왕인의 수급을 취하여 노선봉에게 가서 바쳤다.
노준의는 흡주성 안의 행궁에 머물면서, 백성들을 안정시켰다. 군마를 성중에 주둔시키고 한편으로 문서를 장초토에게 보내 보고하고, 다른 한편으로 송선봉에게 문서를 보내 어디서 회합할 것인지를 물었다.
한편, 송강은 목주에 주둔하면서 모든 군사들이 모이면 함께 역적의 소굴을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준의로부터 흡주를 수복하고 성중에 주둔하면서 함께 역적의 소굴을 공격하기 위해 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또 사진·석수·진달·양춘·이충·설영·구붕·장청·정득손·단정규·위정국·이운·석용 등 장수 13명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송강은 통곡하여 마지않았다. 군사 오용이 위로하여 말했다.
“생사는 사람마다 다 정해진 바가 있습니다. 주장께서는 옥체를 상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국가 대사를 처리하셔야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초 돌비석에 천문으로108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실로 내 수족이 잘려나가는 것 같네.”
오용은 송강의 슬픔을 위로하는 한편, 노선봉에게 청계현을 공격할 날짜를 정한 문서를 보냈다.
한편, 방랍은 청계현 방원동의 대궐에서 조회를 열고 문무백관과 송강의 군마를 물리칠 일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서주의 패잔병들이 돌아와 흡주가 함락되고 황숙·상서·시랑이 모두 전사했으며 지금 송강은 두 길로 병력을 나누어 청계현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방랍은 보고를 받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경들은 모두 관작을 받고 고을과 성을 차지하여 부귀를 누려 왔는데, 어찌하여 송강의 군마가 땅을 말듯이 쳐들어와 성들이 모두 함락되고 이제 청계현 대궐만 남게 만들었단 말인가? 지금 송군이 두 길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
좌승상 누민중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지금 송강의 인마가 이미 신주에 접근하였으니, 대궐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병력이 적고 장수도 부족하니, 폐하께서 친히 싸움터에 나가지 않으시면 장병들이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방랍이 말했다.
“경의 말이 옳소!”
방랍은 즉시 명을 내렸다.
“삼성육부(三省六部), 어사대관(御史台官), 추밀원, 도독부호가(都督府護駕), 금오영(金吾營), 용호영(龍虎營) 등 대소 관료들은 모두 과인을 따라 전쟁터로 나가 일전(一戰)으로 결판을 내자.”
누승상이 도 아뢰었다.
“어떤 장수를 선봉으로 내보내시겠습니까?”
방랍이 말했다.
“금오상장군(金吾上將軍)인 나의 조카 방걸을 정선봉으로 삼고, 표기상장군(驃騎上將軍) 두미를 부선봉으로 삼는다. 방원동 대궐을 지키는 어림군 1만3천과 아장 3천여 명을 거느리고 전진하라.”
원래 방걸은 방랍의 친조카로서, 흡주의 황숙 방후의 장손이었다. 방걸은 송군의 노선봉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듣고 원수를 갚기 위해 선봉을 자원했던 것이다. 방걸은 평생 무예를 익혀 한 자루의 방천화극을 잘 썼으며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지니고 있었다.
두미는 원래 흡주 저자거리의 대장장이로서 무기를 만들었는데, 역시 방랍의 심복으로서 여섯 자루의 비도(飛刀)를 잘 썼으며 보행으로 싸웠다. 방랍은 또 따로 명을 내려, 어림군의 도교사(都教師)인 하종룡에게 어림군 1만을 주어 흡주에서 오는 노준의의 군마를 대적하게 하였다.
한편, 송강의 대군은 수륙으로 병진하여 목주를 떠나 청계현을 향해 진격하였다. 수군두령 이준 등은 수군의 배를 거느리고 물길을 따라 나아갔다.
말을 타고 송강과 함께 가던 오용이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청계현 방원동을 취하러 가는데, 역적의 수괴 방랍이 미리 알고 도망칠까 걱정입니다. 깊은 산속이나 넓은 들판으로 숨어 버리면 사로잡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방랍을 사로잡아 경성으로 압송하여 천자께 바치려면, 반드시 안팎으로 호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방랍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방랍이 어디로 도망칠지를 알아야만 그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거짓으로 항복하여 적의 계책을 역이용해야만 안팎으로 호응할 수 있을 것이네. 지난번에 시진과 연청이 첩자로 갔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 이번에는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을까? 거짓 투항이 그럴듯해 보여야 할 텐데?”
“제 생각으로는, 수군두령 이준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배에 양식을 싣고 가서 바치면서 투항하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방랍은 산골의 소인배라, 많은 양식을 실은 배를 보고서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군사의 고견이 참으로 좋네.”
송강은 즉시 대종을 불러, 수로를 따라 이준에게 가서 여차여차 계책을 시행하라고 명을 전하게 하였다. 이준은 완소오와 완소칠을 뱃사공으로 분장시키고 동위와 동맹을 일꾼으로 분장시켜, 양식을 실은 60척의 배에 양식을 바친다는 깃발을 꽂고서 강을 따라 나아갔다.
청계현에 접근하자, 적군의 배들이 나타나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이준이 배 위에서 소리쳤다.
“활을 쏘지 마시오! 할 말이 있소! 우리는 대국에 양식을 바치고 투항하러 온 사람들이니 받아들여 주시오!”
적군 배 위의 두목은 이준 등의 배에 무기가 없는 것을 보고, 활 쏘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자세한 것을 묻고 배 안의 양식도 확인하게 한 다음, 누승상에게 가서 보고하였다. 누민중은 보고를 받고, 투항하러 온 자를 강안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이준이 강안으로 올라가 누승상을 뵙고 절을 하자, 누민중이 물었다.
“너는 송강 수하의 어떤 자이며, 무슨 직책에 있느냐? 이번에는 무엇 때문에 양식을 바치고 투항하러 왔느냐?”
이준이 대답했다.
“소인의 이름은 이준이며, 원래 심양강의 호걸이었는데 강주에서 형장을 기습하여 송강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송강은 조정의 초안을 받고 선봉이 된 후에 저희들의 은덕을 잊고 누차 저를 모욕하였습니다. 지금 송강이 비록 대국의 고을들을 점령하긴 했지만, 수하의 형제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스스로 진퇴를 알지 못하고, 저희 수군만 진격하라고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없어, 양식을 실은 배들을 끌고 와 대국에 바치고 투항하려는 것입니다.”
누승상은 이준의 말을 믿고, 이준을 대궐로 인도하여 방랍을 알현하고 양식을 바치러 온 일을 얘기했다. 이준은 방랍에게 재배하고 앞서 누승상에게 했던 얘기를 다시 했다. 방랍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이준·완소오·완소칠·동위·동맹으로 하여금 청계현의 수채에 머물면서 배를 지키게 하고 송강의 군마를 물리치고 돌아와서 따로 상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이준은 감사의 절을 올리고 대궐을 나와 양식을 강안의 창고로 옮겼다.
한편, 송강은 오용과 상의하여 관승·화영·진명·주동을 선봉으로 삼아 내보냈는데, 청계현 경계에서 방걸과 마주쳤다. 양군이 각각 진세를 벌리자, 남군 진에서 방걸이 화극을 비껴들고 진 앞으로 나섰다. 그 뒤에는 두미가 보행으로 따라 나왔는데, 등에는 비도 다섯 자루를 메고 손에는 칠성보검을 들고 있었다.
송군 진영에서는 진명이 나와서 낭아곤을 휘두르며 곧장 방걸에게 달려들었다. 방걸은 나이가 젊어 혈기왕성한데다 화극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진명과 30여 합을 싸웠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방걸은 진명의 수단이 고강한 것을 보고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