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샹티이 성 Château de Chantilly
성 안은 평온이 담겨 있었다
성 안은 바람소리 맑았다
성 안은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무는 날
묵어갈 집을 바삐 찾다가
느닷없이 눈앞에 마주친 드넓은 안식처 같은
더러는 외롭고
더러는 적막하고
혹은 멀리 떠밀려난
한없는 평화로움으로 가득 찬
너무도 크나큰 오두막 같은 곳
울창한 숲 사이로 난 호수를 따라
정원과 정원 사이를 누비는 물길을 따라
날이 저물 때까지
오솔길 하나씩 자꾸 만들며
혼자 걸어보고 싶은 곳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홀로 남은
쓸쓸한 벤치에 앉아
내 생애의 별이 몇 개인지
조용히 헤아려보고 싶은 곳
평온이 거기 있었고
평화가 거기 있었고
풍요가 거기 있었고
세속으로부터 멀리 달아난
크고 아름다운 적막 하나
거대한 숲 속에 잠들어 있었다
성은 장엄하고 우아한 풍경을
거대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았다 할까
성 안에 몇 개의 전원을 송두리째 옮겨 놓았다 할까
어디가 성채의 끝이고
어디쯤이 성채의 안쪽인지 얼른 분간할 수도 없다
나는 방금 숲의 일부였고
숲은 나의 일부였다
일화는 이렇게 전한다
1671년 루이 14세가 이곳에 초대된 날
저 이름 높은 궁정요리사 프랑수아 바텔François Vatel은
파산 직전인 콩데Condé 공작의 성실한 집사
콩데 공작은 왕의 신임을 얻으려고
사흘간의 성대한 축제를 열기로 하고
자신의 집사 바텔에게 축제 준비를 맡긴다
바텔은 모든 하인들을 직접 지휘해
왕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준비하지만
주문한 생선재료가 늦어져 연회의 차질을 빚자
바텔은 모든 책임을 지고 자살하고 만다
실제로 일어난 이 일은
후세에 동명의 ‘바텔’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거니와
이 일화는 엄혹한 궁정의 현실과
귀족의 체면과 자부심
권력의 위엄과 무상이 엿보여
고소苦笑를 금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없다
한 끼니의 식사시중에 목숨을 걸다니!
왕의 총애와 신임이
한 끼니의 풍요로운 식탁의 무게와
산해진미의 입맛에 달려 있다니!
샹티이 성
파리 북쪽 사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노네트Nonette 강 유역에 있는 성채
일드프랑스Ile de France를 가까스로 벗어난 자리
7800헥타르에 이르는 넓은 면적
세 개의 숲인
샹띠이Chantilly · 아라트Halatte · 에흐므농빌Ermenonville에 인접한
거대 숲에 에워싸인 성은 얼른 보아 외롭고
다시 보면 기품이 넘친다
대처도 아니고
오지도 아닌 곳
16세기에는 최고의 권력자였던
몽모랑시Montmorency 원수의 명으로
피에르 샹비지Pierre Chambiges에 의해 설계된 이래
한동안 왕가의 소유지였다가
17세기에는 콩데Conde 공公의 소유가 되고
18세기에 프랑스대혁명으로 파괴되고
19세기에는 콩데 가의 마지막 계승자인
오를레앙 가의 오말 공Duc d’Aumale 때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된 성
작은 성채는 장 뷜랑Jean Bullant에 의해
마굿간은 장 오베르Jean Aubert에 의해
대정원은 조경전문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에 의해 설계된
거대 파빌리언pavilion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해도
거대한 호사가 아니라 해도
왕족과 귀족의 호기 드센 곳이 아니라 해도
이곳은 살 만한 공간
물길 조용하고
풍경은 아늑하고
세속의 소리 저만치 멀고
휘황한 영광이 지금은 사라졌다 해도
숲 속으로 나 있는 오솔길들 한없이 사랑스러운 곳
한 육신이 천지와 조화를 이루며 살 만한 곳
이 숲을 만나보았으니
이제 내 여행의 목마름도 잦아들었다
인간이 살 만한 좋은 둥지를 찾았으니
잠 못 드는 밤은 이제 돌려보내야겠다
그렇다 해도 나는 작은 집을 찾고
소박한 안식처를 찾아 떠도는 나그네
조그마한 오두막집 창밖으로
끝없는 초원 하나 펼쳐놓고
시냇물 한 줄기 흘려두면 됐으니
나의 목마름도 이제 끝이 났다
포도주 잔을 조금 더 작게 만들고
지붕을 좀 더 낮추고
몸치장을 더욱 줄이고
축제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대신
들판에 야생화들이 더 많이 피기를 기다리리라
식탁은 줄이고
음식은 간소하게 하고
새들은 더 많이 늘이고
창문은 모두 활짝 열어서
더 많은 푸른 하늘이 날마다 달려오게 하리라
노동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빛을 따라 조용한 발걸음으로 혼자서 걷고
일용할 양식을 내 손으로 구하리라
타인의 잔치를 기웃거리지 않겠으며
더 많은 보수를 찾아 길을 떠나지 않겠으며
명예와 풍요를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나지 않겠으며
나날이 오솔길을 늘여서
가보지 않은 대지로 가는 길을 늘이리라
오래 살기를 꿈꾸는 대신
단 하루를 힘껏 살겠으며
곳간을 채울 양식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지 않으리라
도토리와 떡갈나무 열매와 아람들을 구할 때는
다람쥐와 청설모와 야생의 들쥐에게 먼저 물어보리라
낙엽 아래 숨은 옹달샘을 찾되
샘물을 길어 마실 적마다
밤하늘에 돋아나는 별들에게
내 시를 보여주리라
큰 소리로 부는 바람을 보면
두려워할 줄 알고
천둥이 치면
우레 옆에 깨어나는 여름풀을 보리라
대자연은 사방에 은밀한 평화를 숨겨두었다
이제는 시가 태어나야 하리라
이 물길
저 물길 따라
시인의 노래가 시냇물 따라 사방으로 흘러가야 하리라
방랑자가 장차 어느 땅에 머물지라도
내 육신이 머무는 그곳에 앉아
나의 시를
풀잎한테 보여주고
별들에게 읽어주며
마음 놓고 한 생을 늙을 수 있으리라
(이어짐)
첫댓글 생티이성이 주는 인간적인 고놰, 중세의 부산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