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방지법 / 박혜숙
요즘 뉴스 보기가 어느 때 보다 힘들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회생활을 하려면 필요한 것은 알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뉴스를 보는데, 대부분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변을 보면 평화롭게 굴러가는데 뉴스 속 세상은 늘 시끄럽다.
열 개의 사건 중 좋은 것이 아홉이고 안 좋은 게 한 가지가 있을 때 그 내용이 쇼킹하면 안 좋은걸 다룬다. 시청자의 알권리를 위해, 주목받기 위해 뉴스 전반이 부정적인 내용이 많고 긍정적인 내용이 적은 거지, 사회 자체가 그렇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우리나라가 금방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 같지만, 살아온 세상을 돌이켜보면 갖추어진 문화 속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삼만 불 시대를 누리며 산 적은 없었다. 물론 개인적인 환경 차가 있지만, 보편적 진리를 붙잡고 함께 고민하며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11년 전 『한국문인』에 특집으로 ‘가상유언장’을 냈는데, 당시에도 구상 작가가 돌아가시자 유언장 노릇을 했고, 얼마 전 자살을 한 전 국회의원의 유언장도 들어있어 MBC MBN 등 연일 뉴스에 나와 주목을 받았다. 나도 몇 년 전 특집으로 낸 가상유언장에 유언장을 실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이 얼마나 심각하면 이걸 법으로 만들어 시행하나 놀라워 노무사에게 물어보았다. 그것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들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노무사가 시청에서 근로자들의 고충을 듣다보면 이런 괴롭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그보다 못한 곳이라도 마음 편히 일하게 해달라고 상담한다.
설문 조사 결과를 봐도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 인간관계라고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은 반드시 같은 회사에서 상사가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 동일 직급이라도 직무에 따라 우위를 지니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인사팀, 감사팀 등 사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서나 오너 가족은 하급자라 하더라도 다른 부서 상급자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뉴스를 보고나니, 내가 교육공무원을 하는 동안 우울증에 빠질 만큼 괴로워하던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몇 십 명씩 아니면 부서별로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데, 기분 좋게 창의성도 발휘하며 일하면, 사용자는 믿고 인정해줘야 능률이 오르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직장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상사나 사용자가 부른다. 그러면 뒷머리를 긁적이며 제가 원래 사교성이 없어요. 학교 다닐 때도 왕따였다고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극적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만이, 이런 식으론 살 수 없다. 사표 낼 각오로 현실을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는데, 이상한 행동하지 말고 어울리라며 가장 인간관계에 영향력이 큰 그룹에 같이 어울리도록 권하고 지켜볼 것이라는 압력을 가한다. 그래서 죽 이어지는 원만한 관계도 가끔 있지만 인위적인 것은 얼마 못 간다.
사실 왕따가 되거나 괴롭힘을 받는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 모두의 시샘의 대상이 될 만큼 잘 나서 그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외모라든가 가정형편이 대중의 사교문화에 들어가기 힘들 때도 집단으로부터 소외된다. 그 외에도 사소한 사건이 적을 만들어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무능력하다고 상사나 사용자에게 밉게 보이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예도 있다.
이제 피해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던 직장 내 괴롭힘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당당히 살 수 있는 사회로 진화하는 것인가. 과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고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그런 사회는 얼마나 시끄러워질까.
직장에서 괴롭힘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학생 때부터 부적응 자가 많다. 그들 중 왕따 시키는 애들을 불러 같이 놀지 왜 따돌리느냐고 하면 보는 것만도 재수가 없다고 감정적으로 말한다. 말하는 게, 옷 입는 게, 냄새가 나고 구질구질해서 이유도 다양하다. 그럴 때 만약 네 동생이 그런 일을 당하다 자살을 했다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왕따 시켜서 자살하고 그렇게 되면 가해자가 바로 범법자로 구속된 사례를 뉴스에서 보았느냐 물으면 대개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워 왕따와 놀다 같이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인지도가 낮은 사람은 편들기 쉽지 않다. 누가 누구를 괴롭히는 것은 범죄라고 강력하게 말하면서 입장을 바꿔 네가 피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옳지 않은 일에 휩쓸리지 말라 말한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왔다. 자기를 왕따 일진 애들이 복도를 지나면 부딪치는 척 치고 꼬집는데 반응을 보이면 비웃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참거나, 쉬는 시간엔 제일 먼저 나갔다 종치면 들어와 선생님께 혼나도 그게 낫다고 운다.
또 다른 학생은 등에 점이 까맣다. 뒷자리에서 뾰족한 것으로 계속 찔러 아프다고 하면 옥상에서 보자고 하고, 패거리에 두들겨 맞아 참고 있다고 보여준다. 또 체육시간에 준비물 챙기러 창고에 가면 귀엽다고 뒤에서 끌어안는 선생이 있다고 하여 체육주임이 직접 손보도록 한 일도 떠오른다. 말 못하고 당하는 약자가 얼마나 많은지.
이런 학생들의 최대 피신처는 도서관이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거기에서 책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비슷한 처지의 애들이 독서하는 습관이 붙어 공부도 잘하게 되면서 어려움을 극복한 예도 있다. 천재들 중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내다 사색하는 습관이 붙어 성공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친구가 없다는 쓸쓸함은 지울 수 없는 상처다. ‘운동장 조회’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생활보호 대상자로 바지에 혁대도 없이, 헝겊 끈을 묶고 다니던 학생이 썼다. 운동장 가득 끼리끼리 떠드는데 혼자가 싫어 옆에 애를 툭 쳤다. 왕따 새끼가 감히 쳤어, 그가 쫓아와 도망치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다 붙잡혀 두들겨 맞았는데도 기분이 상쾌했다. 왠지 신나게 놀은 기분이다.
그렇게 부적응을 극복하지 못하면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트라우마가 강해 먼저 말하고 다가가는 게 어렵고 점점 더 소심해진다. 혼자 점심 먹고 퇴근하는 게 편하다. 그런 그를 단체 방에서 공격하고 상사는 협업으로 능률을 올려야 하는데 실적이 안나니 호출하여 야단치고 정신적으로 힘들다. 사용자의 괴롭힘은 결국 실직으로 연결되니까 법으로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모든 병리 현상을 막으려면 아이 때부터 어떻게 키워야 할까. 예의 바르고, 깔끔하게 관리하여 좋은 이미지를 갖는다.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제대로 표현하고 욕이나 상스러운 말투가 배지 않게 상대를 배려해 말한다. 잘난 척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인사 잘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싫은 사람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끌어않을 수 있는 포용력을 키워야 한다.
어릴 때부터 상처받지 않고 밝게 커갈 수 있도록 인성을 가꿔야 한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하는 손녀를 위해 엄마는 휴가를 아꼈다가 좋은 그룹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주말도 그 그룹들에서 아이와 엄마들이 어울려 지내느라 얼굴 보기 힘들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단체 생활이 원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