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취묵당은 1662년(현종3년)에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이 만년에 세운 독서재(讀書齋)이다. 팔작지붕에 목조 기와집으로 내면은 통간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득신의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구석산인(龜石山人),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손자이다.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고 칭해진다. 5언ㆍ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것을 중요시했다.
김득신이 이곳에서 「史記(사기)」「伯夷傳(백이전)」을 1억 1만 3천번을 읽었다고 하여 일명 억만재(億萬齋)로도 불린다.』
--- [국가유산청]
사진은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블로그와 인터넷에서 옮겼습니다.
취묵당(醉默堂) 全景.
醉默堂重建記.
《취묵당팔영》은 널리 알려진 詩인데 傍八代孫 東湖 書란 방계(傍係) 팔대손 金東湖가 글씨를 썼다는 뜻이다. 아래 원문과 번역문을 실었다.
栢谷集에는《槐峽醉墨堂八詠》 으로 되어 있다.
독수기(讀數記)는 널리 알려져 있는데 김득신이 67세에 썼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栢谷集에는 실려 있지 않다.
부록에 실려 있다. 아래에 소개한다.
칠절 칠율(칠절은 한 수가 네 句로 이루어진 시, 칠율은 한 수가 여덟 句로 이루어진 시)도 金得臣이 쓴 것이다. 栢谷이라 낙관(落款)했다.
아래 원문과 번역문을 실었다.
《취묵당중건기》를 판독하여 아래에 실었다. 일부 한자는 판독이 어려웠다.
<원문>
백곡집(栢谷集)/ 栢谷先祖文集冊五/ 記
《醉默堂記》
昔辛丑歲。先君入槐州方下峴。留四年爲丘墓矣。其后幾五十年。余欲踵先君居。局於未釋褐。弗得副素願。壬寅春。釋褐志已攄矣。秋八月。自木州之栢谷莊。羾槐州之方下峴。觀廣灘 灘名 之上。小山麓。偃蹇大松若小松羅立。突怒大石若小石相累。命蒼童剷刈小松。存其大松。拔去小石。鑿其大石。闢朽壤燔穢艸。則異勢奇狀迭出。人皆曰是宜搆堂宇。請淸塘太守得都料。匠斫梓樹若干章。搆二間堂。由其中周覽。成佛山之崱屴。南郊東郊之延袤。梨灘廣灘之急流。汀樹之立。漁屋之列。雲之起鳥之飛。魚之游人之行。莫不咸現于眼界。則素願已成。弗趐快若倩麻姑爪爬痒處也。然則不可闕者堂號也。揭號何以哉。不必以目所及揭號也。凡世之人。醉不默醒不默。不知戒陷於禍機。可不憂哉。苟能醉而嘿默。醒而默嘿。守口如甁。習以爲常。必不觸禍機矣。不然。醉而不默。醒而不默。禍如發矣。豈不竦然。若醉裏不默。醒後不默。雖身處野外。與處城市中不愼言者同其秋矣。是故久堂朴仲久。壬寅夏。四寄書戒以不默。余信之。揭堂號爲醉默。蓋欲不忘醉默之意也。若能醉而默醒而嘿。不作妄言。身得以免禍。則是仲久之賜也。豈伊負戒余之之志虖。癸卯仲春終旬。堂之主翁。題于壁以自警。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문>
《취묵당기(醉默堂記)》
옛 신축년(1781년)에 선군(先君, 돌아가신 아버님,
金得臣(1640, 선조 37년 ~ 1684, 숙종 10년)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이며, 어머니는 사천 목씨(泗川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부인은 경주 김씨이다.)께서 괴주(槐州)의 방하현(方下峴)으로 들어가시어, 4년 동안 계시다가 언덕의 묘지에 안장되셨다. 그 뒤로 거의 50년 만에 내가 선군의 거처를 따르고자 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벼슬을 하지 못한) 제약 때문에 평소의 원을 이루지 못했었다.
임인년(1822년) 봄에 벼슬길에 올라 마침내 뜻을 펼치게 되었다. 그해 가을 8월, 목주(木州)의 백곡장(柏谷莊)으로부터 괴주의 방하현에 이르러, 광탄(廣灘, 여울 이름이다) 위의 작은 산기슭을 바라보았다. 굽어 늘어진 큰 소나무와 작은 소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고, 우뚝하게 솟아난 큰 돌과 작은 돌들이 서로 겹쳐 있었다. 어린 종에게 명하여 작은 소나무는 쳐내고 큰 소나무는 남겨 두었으며, 작은 돌은 뽑아내고 큰 돌은 뚫었다. 썩은 흙을 열어젖히고 더러운 풀을 태워버리니, 빼어난 기상과 기이한 모양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람들이 모두 “이곳은 당우(堂宇, 집)를 짓기에 적합합니다.”라고 하였다. 청당(淸塘) 태수에게 청하여 도편수를 얻고 가래나무 몇 그루를 베어 두 칸짜리 집을 지었다. 그 중앙으로부터 둘러 살펴보니, 성불산(成佛山)의 웅장하게 솟은 모습, 남쪽 들판과 동쪽 들판의 길게 늘어선 모양, 이탄(梨灘)과 광탄의 급한 물살, 물가의 나무들이 서 있는 모양, 고기잡이 집들이 줄지어 있는 모양, 구름이 일어나고 새가 날아가는 모양, 물고기가 헤엄치고 사람이 오가는 모양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곧 평소의 원을 이루었으니, 유쾌함이 마치 마고선녀(麻姑仙女)의 손톱으로 가려운 곳을 긁는 것보다 더할 뿐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집의 이름(堂號)이다. 이름을 무엇이라 내걸어야 할까?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편액을 내걸 필요는 없다. 무릇 세상 사람들은 취해서도 침묵하지 못하고 깨어서도 침묵하지 못하여, 경계할 줄을 몰라 화의 기틀(화의 원인)에 빠지고 마니, 어찌 근심스럽지 않겠는가! 진실로 취해서도 침묵하고 깨어서도 침묵하여, 입 다물기를 병(甁)처럼 하고 습관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화(禍)의 기틀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취해서도 침묵하지 못하고 깨어서도 침묵하지 못한다면 화가 터져 나오듯 이를 것이니, 어찌 섬뜩하지 않겠는가? 만약 취했을 때 침묵하지 못하고 깬 후에도 침묵하지 못한다면, 비록 몸은 들판(시골)에 있더라도 도시 가운데 있으면서 말을 삼가지 않는 자와 그 운명이 한가지일 것이다. 이 때문에 구당(久堂) 박중구(朴仲久)가 임인년 여름에 네 번이나 편지를 보내어 '침묵하지 못함'을 경계하였는데, 내가 그 말을 믿고 집의 이름을 '취묵(醉默)'이라 내걸었으니, 대개 '취해서도 침묵한다'는 뜻을 잊지 않고자 함이다. 만약 취해서도 능히 침묵하고 깨어서도 능히 침묵하여 허망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몸이 화를 면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곧 중구(仲久, 박중구)의 은혜일 것이니, 어찌 그가 나를 경계해 준 뜻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계묘년(1823년) 중춘(仲春, 음력 2월) 하순에,
당(堂)의 주인인 늙은이가 스스로 경계하고자 벽에 적는다.
------------------------
다음은 현판의 《醉默堂重建記》를 옮긴 것이다.
<원문>
《醉默堂重建記》
恭惟我 先祖栢谷先生生于宣廟甲辰 享春秋於世八十 有一而顓意韜晦耶 好讀書 所戒勢利迨顯宗壬寅釋褐之初勇退還山 除拜不就以翌年癸卯搆亭于槐江之上而老焉 堂曰醉默 齋曰億萬 億萬取讀書之數也 醉默用愼言之義也 藏修於斯遊衍於斯二十二年而棄世後六十六年而堂毁 卽英宗二十七年庚午也 距今壬子强一百六十有三年 而爲墳墓耶野封 草莽所蕪子後孫所嘆恨者久矣
何幸玆者宗議僉同載謀重建㳙(涓)
日蕫(董자의 誤字)役遷厝 而恢拓之剷刈而增築之建三間亭 揭遺板于上登覽之際愴感者滋倍奇哉
異㢤(哉)兹丘之勝恍若改觀於?(현판에 흐리게 보인다)
今日來勢之繚繞折旋如君子之步趨
閑舒前靣(面)之平衍寬敞如君子之胸抱坦夷 石壁之捍水特起儼然若砥柱江流之滾滾
不舍有本者若是亭址之突兀
中處有如相時高蹈中立不倚諸山之羅列 參差有如道義諸公陞降揖譲(讓)真大藏而地秘 以界 我先祖晩年棲息之所也 爲後昆者 敢不愛且敬耶
始役於中春 甲寅訖功於維夏壬申坐於財絀
未能增其式廓然頋(顧)今吾輩之不肖無狀莫此 甚若而此亭之有成者 豈非有數歟以余之不文
蔑識匪敢爲記其年條事實不可無傳故畧敍
如右 嗚呼 使吾宗後進幸不委之扵(於)成毁之有數而知所敬愛則豈徒斯堂之不朽 庶乎 思醉默 億萬之義而勉勉乎 無忝也夫
江山文藻地醉默舊亭新俯仰雲仍感廢興
二百春風煙長不改魚鳥自相親懿訓垂堂額
攀躋却省身
歲壬子夏四月下澣 不肖八世孫學浩 謹題
日門従(從)弟有復杦?
予曰今此堂之成宴吾門曠世未遑之擧 則後昆不肖輩之興感咨嗟有不能自己 然其所謂曰 記曰 詩曾未若蛙吠蚓
吟 而率爾?刻揭者極知僭踰又豈無人之譏笑哉 予應曰不然是何傷哉昔孝子之弄
雛跌啼猶足爲悅親而爲之況乎 文字耶工 拙奚論凡子孫之於祖先膝下不問才不才 遊戲笑啼 孰有不可者乎
且夫奉先之道誠爲之本其耶感慕述作之意 有不下於弄雛跌啼之彂(發) 於實情則若其文辭之濫拙 譏笑之外 至夫何足恤乎 噫 既(旣)興之言遂續題于下
<표점>
醉默堂重建記 (취묵당중건기)
恭惟我 先祖栢谷先生, 生于宣廟甲辰, 享春秋於世八十有一, 而顓意韜晦耶, 好讀書, 所戒勢利. 迨顯宗壬寅, 釋褐之初, 勇退還山, 除拜不就, 以翌年癸卯, 搆亭于槐江之上而老焉. 堂曰醉默, 齋曰億萬. 億萬, 取讀書之數也, 醉默, 用愼言之義也. 藏修於斯, 遊衍於斯二十二年而棄世.
後六十六年而堂毁, 卽英宗二十七年庚午也. 距今壬子, 强一百六十有三年, 而爲墳墓耶? 野封草莽所蕪, 子後孫所嘆恨者久矣. 何幸玆者宗議僉同, 載謀重建, 涓日董役, 遷厝而恢拓之, 剷刈而增築之, 建三間亭, 揭遺板于上. 登覽之際, 愴感者滋倍. 奇哉! 異哉! 兹丘之勝, 恍若改觀於?
今日來勢之繚繞折旋, 如君子之步趨; 閑舒前面之平衍寬敞, 如君子之胸抱坦夷. 石壁之捍水特起, 儼然若砥柱; 江流之滾滾不舍, 有本者若是. 亭址之突兀中處, 有如相時高蹈, 中立不倚; 諸山之羅列參差, 有如道義諸公, 陞降揖讓. 眞大藏而地秘, 以界我先祖晩年棲息之所也. 爲後昆者, 敢不愛且敬耶?
始役於中春甲寅, 訖功於維夏壬申. 坐於財絀, 未能增其式廓, 然顧今吾輩之不肖無狀莫此甚若, 而此亭之有成者, 豈非有數歟? 以余之不文蔑識, 匪敢爲記, 其年條事實, 不可無傳, 故略敍如右.
嗚呼! 使吾宗後進, 幸不委之於成毁之有數, 而知所敬愛, 則豈徒斯堂之不朽, 庶乎思醉默億萬之義, 而勉勉乎無忝也夫!
江山文藻地, 醉默舊亭新.
俯仰雲仍感, 廢興二百春.
風煙長不改, 魚鳥自相親.
懿訓垂堂額, 攀躋却省身.
歲壬子夏四月下澣, 不肖八世孫學浩, 謹題.
日門從弟有復杦? 予曰: "今此堂之成, 宴吾門曠世未遑之擧, 則後昆不肖輩之興感咨嗟, 有不能自己. 然其所謂曰記曰詩, 曾未若蛙吠蚓吟, 而率爾刻揭者, 極知僭踰, 又豈無人之譏笑哉?"
予應曰: "不然, 是何傷哉! 昔孝子之弄雛跌啼, 猶足爲悅親而爲之, 況乎文字耶? 工拙奚論! 凡子孫之於祖先, 膝下不問才不才, 遊戲笑啼, 孰有不可者乎? 且夫奉先之道, 誠爲之本, 其耶感慕述作之意, 有不下於弄雛跌啼之發於實情. 則若其文辭之濫拙, 譏笑之外, 至夫何足恤乎!"
噫! 既興之言, 遂續題于下.
<번역문>
《취묵당중건기 (醉默堂重建記)》
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조 백곡(栢谷) 선생께서는 선조(宣廟) 갑진년(1604)에 태어나시어 세상에서 81세의 연세를 누리셨느니라. 오직 뜻을 그늘진 곳에 숨겨 자취를 감추고 글 읽기를 좋아하셨으며, 권세와 이익을 경계하셨도다. 현종 임인년(1662)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길에 들었으나, 곧 용감히 물러나 산으로 돌아가시고 벼슬을 내림에도 나아가지 아니하셨느니라. 그 이듬해 계묘년(1663)에 괴강(槐江) 위에 정자를 지으시고 거기서 노년을 보내시니, 당(堂)을 '취묵(醉默)'이라 하고 재(齋)를 '억만(億萬)'이라 하셨도다. 억만은 읽은 책의 수효를 취함이요, 취묵은 말을 삼가는 뜻을 쓰신 것이라. 여기서 학문을 닦으시고 여기서 유유자적 노니시기를 22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느니라.
돌아가신 지 66년 만에 당이 훼철되니, 곧 영조 27년 경오년(1751)이라. 지금 임자년(1852년 추정)에 이르기까지 16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무덤과 들판의 거친 풀숲에 묻혀 잡초만 무성하였으니, 후손들이 탄식하고 한탄함이 오래되었도다.
어찌 다행히 이번에 문중의 의논이 서로 합치되어 다시 중건을 도모하게 되었도다. 날을 가리어 공사를 감독하고, 자리를 옮겨 넓히며, 잡목을 베어내고 둔덕을 돋우어 세 칸의 정자를 세우고 그 위에 선조의 옛 현판을 내걸었도다. 올라서 둘러볼 즈음에 슬프고 감격스러운 마음이 더욱 배가 되니, 기이하도다! 상이하도다! 이 언덕의 빼어난 풍광이 황홀히 눈앞을 바꾼 듯하구나.
오늘날 산천의 내방하는 기세가 굽이치고 돌며 감싸 안음은 마치 군자의 걸음걸이와 같고, 정자 앞의 평평하고 넓게 확 트인 전경은 마치 군자의 넓고 호탕한 가슴과 같도다. 솟구친 깎아지른 석벽이 물길을 막아섬은 엄연히 강물 한가운데 도도히 선 지주(砥柱)와 같고, 강물이 쉼 없이 도도히 흐름은 근원이 있는 근본의 모습이 이와 같도다.
정자 터가 가운데에 우뚝하게 자리함은 마치 때를 만나 세상에 높이 거닐며 중립하여 기울어지지 않는 듯하고, 여러 산이 들쭉날쭉 늘어선 모습은 마치 도의(道義)를 갖춘 선비들이 오르내리며 읍하고 양보하는 듯하도다. 참으로 진귀한 보물을 간직한 숨겨진 땅으로, 우리 선조께서 만년에 만년을 보내시던 처소를 그어주신 것이니, 후손 된 자로서 어찌 감히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겠는가?
봄날 갑인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여름 임신(壬申)에 마쳤으나, 재물이 넉넉지 못하여 그 규모를 더 넓히지는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돌아보건대 오늘날 우리들의 불민함과 보잘것없음이 이보다 심함이 없거늘, 이 정자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 어찌 운수가 있음이 아니겠는가? 나의 보잘것없는 문장과 얕은 식견으로 감히 기문(記文)을 지을 수 없으나, 그해의 사실을 전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대략 그 연유를 위와 같이 적노라.
아아! 우리 문중의 후진들로 하여금 다행히 이를 흥하고 쇠하는 운수에만 맡겨두지 말고, 삼가 공경하고 사랑할 바를 알게 한다면, 어찌 단지 이 정자만 썩지 않고 영원할 뿐이겠는가. 바라건대 '취묵'과 '억만'의 깊은 뜻을 생각하여 힘쓰고 힘써 선조에게 욕됨이 없기를 바랄 뿐이로다.
시(詩):
江山文藻地 강산은 문채롭고 빼어난 땅이요
醉默舊亭新 취묵당 옛 정자는 새롭게 되었도다.
俯仰雲仍感 구름 바람 굽어보며 느끼노니
廢興二百春 흥하고 망함이 그 언젠가 이백 년이라.
風煙長不改 바람과 안개는 오래도록 변함없고
魚鳥自相親 물고기와 새들도 스스로 친하여라.
懿訓垂堂額 아름다운 선조 가훈 당액에 있으니
攀躋却省身 이곳에 올라 내 몸을 삼가 반성하노라.
임자년 여름 4월 하한에, 불초 8세손 학호(學浩)는 삼가 쓰노라.
하루는 문중 종제(從弟) 복구(復杦)가 찾아왔거늘, 내가 이르기를, "이제 이 당의 완성은 실로 우리 문중이 수세 동안 이루지 못했던 큰 거사이니, 후손된 불초한 무리들의 느꺼운 감회와 탄식이 스스로 마지않음이 있도다. 그러나 이른바 시문(詩文)이라 한 것이 일찍이 개구리 울음이나 지렁이 읊조림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솔직하게 깎아 내걸었으니, 외람됨을 극히 아는지라 어찌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하니, 족제가 응답하여 이르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슨 허물이 되겠습니까! 옛날 효자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재롱을 떨다가 넘어져 울어도 오히려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기에 족하여 그렇게 하였거늘, 하물며 글귀에 있어서겠습니까? 잘 쓰고 못쓴 것을 어찌 논하겠습니까! 무릇 자손이 조상에 대해서는 무릎 아래에서 재주가 있건 없건 능하고 못함을 묻지 않고, 노닐고 웃고 울고 다투어도 무엇인들 불가함이 있겠습니까?
또한 조상을 봉양하고 모시는 길은 정성이 본이 되는 것이니, 그 선조를 추모하여 글을 짓는 뜻이, 어린아이 재롱을 떨다 넘어져 우는 순수한 참된 정에서 나온 것에 못지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문채와 글귀가 거칠고 졸렬하여 남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 따위가 어찌 족히 근심할 바가 되겠습니까!"하였다.
아아! 이미 촉발된 말이 있기에, 마침내 아래에 글을 이어 적노라.
------------------------
柏谷先祖詩集冊三/五律
《槐峽醉墨堂八詠》
<원문>
瓮巖花似錦。欲賞泊扁舟。剩得堯夫興。聊爲衛玠遊。縱耽聞晩馤。且恐泛淸流。看盡催歸去。斜陽下遠洲。右瓮巖看花
嵯峨成佛岳。大雪白皚皚。柳絮章臺散。梅花庾嶺開。冷侵詩客袂。光入酒人杯。賞翫歐公竝。吾今興未裁。右佛嶽賞雪
吾家江上在。門外繫商船。下碇平沙月。落帆古峽煙。乘風漢水口。扣枻琴臺邊。明日魚鹽販。村氓集百千。右江口商船
古渡漁人火。明從暮夜初。灘頭驚宿鷺。波底竄跳魚。螢訝流沙際。星疑隕玉虛。吾將歸得雋。結網不須疏。右渡頭漁火
峽水流今古。長橋迥若浮。行人常冉冉。去路劇悠悠。晨聽野鷄發。暮尋山店投。只緣營產業。能得幾時休。右野橋行人
門外平沙闊。秋來雁序橫。隨陽霜雪避。渡海羽毛輕。月下千行密。風前一陣成。虞人忽驚殺。雲際失群鳴。右浦沙驚雁
憑欄開雙目。浮嵐峽口圍。初從蒼壁起。更向碧峯飛。細細籠喬木。輕輕掩啓暉。可憐濃淡色。沾濕嶽僧衣。右牛峽朝嵐
百丈靈湫濬。何年蟄老龍。淸宵怪氣出。白日祥雲濃。天外獰雷殷。江中暮雨重。鉤簾看不霽。更覺失山容。右龍湫暮雨
---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문>
《괴협취묵당팔영(槐峽醉墨堂八詠)》
1. 옹암간화 (甕巖看花: 옹암에서 꽃을 보다)
독 항아리 닮은 바위에 꽃이 비단처럼 피어,
꽃 구경 즐기려고 조그만 배를 매어두네.
소강절(堯夫, 소옹)의 흥취를 넉넉히 얻어,
위개(衛玠)처럼 유유히 유람을 즐겨보네.
늦게 풍겨오는 향기에 듬뿍 취하고 싶지만,
맑은 물결에 떠내려갈까 저문 강물이 저어되네.
꽃을 다 보고 나니 돌아가길 재촉하는데,
석양이 먼 모래톱 뒤로 넘어가네.
2. 불악상설 (佛嶽賞雪: 불악산에서 눈을 구경하다)
높고 험준한 불악산,
큰눈이 내려 하얗게 빛나네.
장대(章臺) 길가에 버들가지 날리듯,
유령(庾嶺)에 매화가 피어나듯 눈이 내리네.
차거운 기운은 시인의 소매에 스며들고,
빛나는 눈빛은 술꾼의 잔으로 들어오네.
구양수처럼 아울러 즐기니,
나의 지금 이 흥취는 끝이 없구나.
3. 강구상선 (江口商船: 강어귀의 장사배)
우리 집은 강가에 자리하고 있어,
문밖에는 장사배들이 묶여 있네.
평평한 모래톱 달빛 아래 닻을 내리고,
옛 연기 자욱한 골짜기에 돛을 내리네.
바람 타고 한수(한강) 입구로 들어서서,
금대(琴臺) 가에서 배를 저어가네.
내일이면 물고기와 소금을 파는,
시골 백성들이 수백 수천 명 모여 들겠지.
4. 도두어화 (渡頭漁火: 나루터의 어화)
고요한 옛 나루터에 어부의 뱃불,
날이 어두워지는 밤부터 밝게 비추네.
여울목의 자던 해오라기는 놀라 날아가고,
물결 아래의 물고기들은 숨으려 뛰어오르네.
흐르는 모래톱 사이엔 반딧불인가 싶고,
허공에 떨어진 별인가 의심케 하네.
나도 장차 좋은 고기를 잡아 돌아갈 터이니,
그물 맺는 일을 굳이 꼼꼼히 할 필요는 없으리.
5. 야교행인 (野橋行人: 들판 다리의 나그네)
골짜기 물은 예나 지금이나 흐르고,
긴 다리는 멀리 떠 있는 듯하네.
길 가는 나그네는 늘 천천히 걷고,
떠나야 할 길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네.
아침에는 들꿩 울음소리를 들으며 길을 나서고,
저녁에는 산속 주막을 찾아 여숙(旅宿)을 정하네.
다만 생업을 이끌어가기 위함이니,
언제쯤에나 편히 쉴 수 있을까.
6. 포사경안 (浦沙驚雁: 포구 모래톱의 놀란 기러기)
문밖의 평평한 모래톱 넓게 펼쳐져 있는데,
가을이 오니 기러기 무리가 줄지어 날아가네.
따뜻한 곳을 따라 서리와 눈을 피하고,
바다를 건너느라 깃털도 가벼워졌네.
달빛 아래 일렬로 줄지어 빼곡하고,
바람 앞에 한 무리를 이루며 날아가네.
사냥꾼이 갑자기 쏘아 놀라게 하니,
구름 사이로 무리를 잃고 슬피 울며 날아가네.
7. 우협조람 (牛峽朝嵐: 우협의 아침 안개)
난간에 기대어 두 눈을 크게 뜨니,
피어오르는 안개가 협곡 입구를 둘러싸네.
처음엔 푸른 절벽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푸른 봉우리를 향해 날아가네.
가늘게 피어나 큰 나무들을 감싸고,
가볍게 퍼져 아침 햇살을 살짝 가리네.
그 짙고 옅은 빛깔이 너무나 고와,
산사 스님의 옷자락마저 흠뻑 적시네.
8. 용추무우 (龍湫暮雨: 용추의 저녁 비)
백 장 깊이의 신령스러운 소(沼)는 깊기도 하여라,
어느 해부터 늙은 용이 숨어 살았던가.
맑은 밤이면 괴이한 기운이 피어나고,
밝은 낮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짙게 가려지네.
하늘 밖에서는 사나운 벼락 소리 울리고,
강물 위엔 저녁 비가 쏟아지네.
주렴을 거두어도 날이 개지 않으니,
산의 모습마저 아득히 보이지 않음을 새삼 느끼네.
-------------------
<원문>
《독수기(讀數記)》
伯夷傳讀一億一萬三千番 老子傳分王霹靂琴周策 凌虛臺記衣錦章補亡章讀二萬八千番 送薛存義序 假山記祭歐陽文中庸序讀一萬五千番 送韓鮮師說送高 元秀才序百里奚文章讀一萬五千番 獲麟解師說送高 閑二人序藍田縣丞廳壁記送窮文燕喜亭記至鄭州 寄上襄陽于相公書應科目時與人書送區冊序馬說杵 臼篇送鄭尙書序送董邵南序後十九日復上書上 兵部李侍郎書送廖道士序諱辯張君墓誌銘讀一萬三 千番 龍說讀二萬番 祭鱷魚文讀一萬四千番 合三十六篇
讀伯夷傳老子傳分王者爲其博大變化也 讀柳文者爲其 精密也 讀齊策周策者爲其奇崛也 讀凌虛臺記祭歐陽 文者爲其意思汨汨也 讀鬼神衣錦章中庸序及補亡章 者爲其理明宖也 讀木假山記者的爲其雄渾也 讀百里奚章 者爲其語約而意深也 讀韓文者爲其浩漫而濃郁也 凡此 讀諸篇各各體惡可已乎 自甲戌至庚戌 成其間 莊子馬史 班史庸學非不多讀 而不至於萬 則不載于記爾 若後之 子孫觀余讀數記 則知余之不惰 寤于讀 庚戌李夏柏谷 老叟題槐州醉默堂
<표점>
《독수기(讀數記)》
伯夷傳讀一億一萬三千番, 老子傳·分王·霹靂琴·周策·凌虛臺記·衣錦章·補亡章讀二萬八千番, 送薛存義序·假山記·祭歐陽文·中庸序讀一萬五千番, 送韓鮮師·師說·送高元秀才序·百里奚文章讀一萬五千番, 獲麟解·師說·送高閑二人序·藍田縣丞廳壁記·送窮文·燕喜亭記·至鄭州寄上襄陽于相公書·應科目時與人書·送區冊序·馬說·杵臼篇·送鄭尙書序·送董邵南序·後十九日復上書·上兵部李侍郎書·送廖道士序·諱辯·張君墓誌銘讀一萬三千番, 龍說讀二萬番, 祭鱷魚文讀一萬四千番, 合三十六篇.
讀伯夷傳·老子傳·分王者, 爲其博大變化也; 讀柳文者, 爲其精密也; 讀齊策·周策者, 爲其奇崛也; 讀凌虛臺記·祭歐陽文者, 爲其意思汨汨也; 讀鬼神·衣錦章·中庸序及補亡章者, 爲其理明宖也; 讀木假山記者, 爲其雄渾也; 讀百里奚章者, 爲其語約而意深也; 讀韓文者, 爲其浩漫而濃郁也. 凡此讀諸篇, 各各體, 惡可已乎?
自甲戌至庚戌成, 其間莊子·馬史·班史·庸·學, 非不多讀, 而不至於萬, 則不載于記爾. 若後之子孫觀余讀數記, 則知余之不惰, 寤于讀.
庚戌季夏, 柏谷老叟題于槐州醉默堂.
<번역문>
《독수기(讀數記)》
《백이전(伯夷傳)》은 1억 1만 3천 번을 읽었고, 《장자(莊子)》의 〈분왕(分王)〉·〈피력(霹靂)〉·〈금(琴)〉 및 《주책(周策)》, 그리고 〈능허대기(凌虛臺記)〉·〈의금장(衣錦章)〉·〈보망장(補亡章)〉은 2만 8천 번을 읽었다.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 〈목가산기(木假山記)〉, 〈제구양문(祭歐陽文)〉, 〈중용서(中庸序)〉는 1만 5천 번을 읽었고, 〈송고원수재서(送高元秀才序)〉, 〈백리해장(百里奚文章)〉은 1만 5천 번을 읽었다. 〈획린해(獲麟解)〉, 〈사설(師說)〉, 〈송고한이인서(送高閑二人序)〉, 〈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廳壁記)〉, 〈송궁문(送窮文)〉, 〈연희정기(燕喜亭記)〉부터 정주에 이르러 양주 유상공에게 올린 글(寄上襄陽于相公書), 응과목시여인서(應科目時與人書), 〈송구책서(送區冊序)〉, 〈마설(馬說)〉, 〈치구편(杵臼篇)〉, 〈송정상서서(送鄭尙書序)〉, 〈송동소남서(送董邵南序)〉 후 19일에 다시 올린 글, 〈상병부이시랑서(上兵部李侍郞書)〉, 〈송요도사서(送廖道士序)〉, 〈휘변(諱辯)〉, 〈장군묘지명(張君墓誌銘)〉은 1만 3천 번을 읽었다. 〈용설(龍說)〉은 2만 번을 읽었고, 〈제악어문(祭鱷魚文)〉은 1만 4천 번을 읽었으니, 모두 합쳐 36편이다.
내가 《백이전》과 《장자》의 〈분왕〉편을 읽은 것은 그 넓고 크며 변화무쌍함을 얻고자 함이요, 유종원(柳宗元)의 글을 읽은 것은 그 정밀하고 치밀함을 얻고자 함이라. 《제책(齊策)》과 《주책(周策)》을 읽은 것은 그 우뚝하고 기이함을 얻고자 함이요, 〈능허대기〉와 〈제구양문〉을 읽은 것은 그 뜻과 생각이 샘솟듯 졸졸 흐름을 얻고자 함이며, 〈귀신장〉·〈의금장〉·〈중용서〉 및 〈보망장〉을 읽은 것은 그 이치가 밝고 광대함을 얻고자 함이라. 〈목가산기〉를 읽은 것은 그 글이 웅혼하고 장대하기 때문이요, 〈백리해장〉을 읽은 것은 그 말이 간약하면서도 뜻이 깊기 때문이다. 한유(韓愈)의 글을 읽은 것은 그 넓고 광대하면서도 농밀하고 그윽하기 때문이니, 무릇 이 여러 편을 읽음에 각기 다른 체재의 미묘함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갑술년(1634)부터 경술년(1670)에 이르기까지 그사이에 이루어 낸 것이니, 《장자》·《사기》·《한서》·《중용》·《대학》 역시 많이 읽지 않은 바가 아니나, 1만 번에 이르지 못한 것은 이 기록에 올려놓지 않았을 뿐이다.
만약 후대의 자손들이 나의 이 독수기(讀數記)를 본다면, 내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독서에 깨어 있었음을 알리라.
경술년(1670년) 늦은 여름(季夏, 음력 6월) 백곡(栢谷)의 늙은이가 괴주(槐州: 괴산) 취묵당(醉默堂)에서 쓰노라.
<원문>
《(칠절 칠율 병)七絶 七律 并》
奇哉馬史伯夷傳
厓老山翁讀萬番
吾亦讀之充億數
曾中疑辭豈伊存
凸爲崇岳澹爲江
對此吟詩筆若杠
知己何須求世路
沙頭亦有白鷗磯
此翁流落阻京關
北闕靑雲不可攀
薄暮人情雖已識
紛紛世故豈能刪
天晴崔灝詩中樹
雨細王維畫裏山
摠爲耽看憑檻久
夕陽林外宿禽選
悄然無語倚庭柯
孤鬢馮陵望裏過
繞郭灘聲添夜雨
插天峯色帶朝嵐
歸田計就雜饒興
臨海心違詎免慚
酒熟重陽黃菊綻
倍思諸友各東南
<번역문>
칠절 (七絶)
기이하도다, 사마천의 《사기》 백이전이여
이 늙은이(厓老山翁, 김득신)가 일만 번을 넘게 읽었도다.
내가 읽고 또 읽어 억만 번(億數)을 채웠으니
가슴속에 무슨 의심이 남아 있겠는가.
칠율 (七律)
볼록한 것은 솟은 뫼요 맑은 물은 강을 이루니
이를 대하고 시를 읊으매 붓끝이 들보 같아라.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를 어찌 세속의 길에서 찾으리오 모래사장 머리에도 하얀 맹세 나누는 갈매기 여울이 있거늘.
이 늙은이 한양 문 막혀 시골에 흘러 드니
북궐의 푸른 구름은 감히 오르지 못할 곳이라.
해 질 녘 인간사의 야속함은 진작에 알았거니
분분한 세상사라 한들 어찌 능히 지워내리오.
날 개니 최호의 시 속에 나오던 나무가 보이고
가랑비 내리니 왕유의 그림 속 산이 되는구나.
모두가 산수를 탐하느라 난간에 오래 기대인 덕이니
석양 비치는 숲 너머엔 묵어갈 새들이 보금자리를 찾네.
소리 없이 말도 없이 뜰 안의 나뭇가지에 기대어
외로운 빈(鬢, 하얗게 샌 관자놀이 귀밑털)을 쓸어내리며 저 멀리를 바라보노라.
성곽을 감싸 안은 여울 소리 밤비 소리를 더하고
하늘을 지르는 봉우리 빛깔은 아침 안개를 띠었네.
시골로 돌아갈 계책을 세우니 흥취가 어우러지나니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 절개에 어긋났으니 어찌 부끄러움을 면하리오.
중양절이라 술은 익고 노란 국화 꽃망울 터뜨리는데
동서남북 각지에 흩틀어진 여러 벗들 그립기만 하구나.
--------------------
백곡집(柏谷集) / 柏谷先祖集附錄/ 附錄
《讀數記》---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옮김
讀數記
此在集中。不須書。而故錄之。使惰業後孫。隨處目之。以知先祖勤學。以繼其萬一之志云耳。 [이 글은 문집 중에 반드시 써야 할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기록했다. 게으른 후손에게 처하는 곳에 따라 보여줘 선조가 부지런히 배운 것을 알게 하여 만일의 뜻을 계승하도록 했을 뿐이다.] 이 부분만 다를뿐 현판 내용과 다룰바 없다. 워내 원문은 필사본이다. 아래 잘못된 글자를 표시했다.
伯夷傳讀一億一萬三千番。老子傳,分王,霹靂琴,周策,凌虛臺記,衣錦章,補亡章讀二萬番。齊策,鬼神章,木假山記,祭歐陽文,中庸序讀一萬八千番。送薛存義序,送元秀才序,百里奚章讀一萬五千番。獲麟(원문엔 獜)解,師說,送高閑上人序,藍田縣承廳壁記,送窮文,燕喜亭記,至鄧州北寄上襄陽子(원문엔 于자다. 잘못 쓴 글자다.)相公書,應科目時與人書,送區冊序,馬說,朽者王承福傳,送鄭尙書序,送董邵南序,後十九日復上書,上兵部李侍郞書,送廖道士序,諱辨,張君墓碣銘讀一萬三千番。龍說讀二萬番。祭鰐魚文讀一萬四千番。合三十六篇。讀伯夷傳,老子傳,分王者。爲其博大變化也。讀柳文者。爲其精密也。讀齊策,周策者。爲其奇崛也。讀凌虛臺記,祭歐陽文者。爲其意思汩汩也。讀鬼神,衣錦章,中庸序及補亡章者。爲其理明鬯也。讀木假山記者。爲其雄渾也。讀百里奚章者。爲其語約而意深也。讀韓文者。爲其浩漫而醲郁也。凡此讀諸篇之各體。惡可已乎。自甲戌至庚戌。而其間莊子,馬史,班史,庸學。非不多讀。而不至於萬。則不載讀數記爾。若後之子孫觀余讀數記。則知余之不惰窳于讀。
庚戌季夏。柏谷老叟。題槐州醉默堂。
---------------
谷先祖詩集冊一 / 五言絶句
<원문>
《龍湖》
古木寒雲裏。
秋山白雨邊。
暮江風浪起。
漁子急回船。
<번역문>
谷先祖詩集冊一 / 五言絶句
《용호(龍湖)》
옛 나무는 차가운 구름 속에 있고 /
추산(秋山)엔 하얀 소나기 내리네.
날 저문 강에 바람과 물결 일자 /
노젓는 사공 급히 배를 돌리네.
--------------------------
栢谷先祖詩集冊一/ 五言絶句
<원문>
《醉默堂偶吟》
水光晴后艶。
山色雨中奇。
騭核誠非易。
吾寧廢賦詩。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一/ 五言絶句
醉默堂偶吟 (취묵당우음 - 취묵당에서 즉흥으로 읊다)
물빛은 날 갠 뒤 아름답고 /
산색은 빗속에 기이하구나.
어느 편이 나은지 평가하기 참으로 어려우니 /
나는 차라리 시 짓기를 그만두리라.
------------------------------
원문
栢谷先祖詩集冊一 / 五言絶句
《伏次先君枕流亭十詠詩韻》
嵯峨採薇
薇蕨春山生。
味甘眞可茹。
草堂方有賓。
女隷携籃去。
鍾潭釣魚
亭下澄潭畔。
漁磯隱翠柳。
莫言人已亡。
復有持竿手。
子峯迎月
亭上坐幽人。
峯頭生朗月。
老蟾如有情。
來照此蓬蓽。
禪巖落花
霞影照禪岩。
恰似翦細綺。
風吹何太狂。
片片落秋水。
華陽隱訪
隱者華陽居。
雲深不識處。
行尋倘逢着。
可共茯苓煮。
花洞尋春
洞裏尋春去。
紅光似紫霞。
潺顏流水在。
恐泛落來花。
長林暮雨
雨脚垂平郊。
重雲凝似墨。
色侵翠峽林。
聲入蒼山竹。
列岫朝雲
朝朝萬朶雲。
靉靆靑山嶂。
朱夏應爲霖。
不虛野老望。
平郊牧馬
平郊放群馬。
萋萋芳草肥。
前溪風雨急。
沾濕牧童衣。
斷橋歸僧
前川橋上僧。
飛錫何山適。
想彼弄玄機。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一 / 五言絶句
《伏次先君枕流亭十詠詩韻》
(복차선군침류정십영시운 - 선친의 침류정 십영(十詠) 시운을 엎드려 차운함)
嵯峨採薇 (차아채미 - 험준한 산에서 고사리를 꺾다)
봄 산에 고사리 자라나니 / 맛이 달아 참으로 먹을 만하네. 초당에 마침 손님이 있어 / 계집종이 바구니 들고 나가네.
鍾潭釣魚 (종담조어 - 종담에서 고기를 낚다)
정자 아래 맑은 소못 가 / 낚시터는 푸른 버들에 가려 있네. 사람 이미 떠났다고 말하지 마라 / 다시 낚싯대 잡은 손이 있도다.
子峯迎月 (자봉영월 - 자봉에서 달을 맞다)
정자 위에 그윽한 선비 앉아 있으니 / 봉우리 끝에 밝은 달이 뜨네. 늙은 두꺼비(달)도 정이 있는지 / 와서 이 오두막집을 비추어 주네.
禪巖落花 (선암낙화 - 선암의 낙화)
노을 빛 선암을 비추니 / 마치 고운 비단을 잘라 놓은 듯. 바람은 어찌 그리 사납게 부는지 / 조각조각 가을 물에 떨어지네.
華陽隱訪 (화양은방 - 화양에서 은자를 찾다)
은자가 화양동에 사는데 / 구름 깊어 있는 곳을 알 수 없네. 길 찾아 가다가 혹시 만나면 / 함께 복령(藥材)이나 삶아 먹으리.
花洞尋春 (화동심춘 - 화동으로 봄을 찾아가다)
골짜기 속으로 봄을 찾아가니 / 붉은 빛이 붉은 노을 같구나. 험준한 바위 사이 흐르는 물 있어 / 떨어진 꽃을 띄워 내려보낼까 두렵네.
長林暮雨 (장림모우 - 긴 숲의 저녁 비)
빗줄기 평평한 들판에 내려앉고 / 짙은 구름 묵 빛처럼 엉기었네. 그늘은 푸른 골짜기 숲을 침범하고 / 소리는 푸른 산 대숲으로 들어서네.
列岫朝雲 (열수조운 - 늘어선 봉우리의 아침 구름)
아침마다 만 갈래 구름 피어나 / 청산 봉우리에 자욱하게 감기도다. 한여름에 응당 장마비가 되리니 / 시골 노인의 바램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
平郊牧馬 (평교목마 - 평평한 들판에서 말을 먹이다)
평평한 들에 여러 말 방목하니 / 울창한 풀들이 무성하게 살쪘네. 앞 시내에 비바람 갑자기 불어 / 목동의 옷을 적시네.
斷橋歸僧 (단교귀승 - 끊어진 다리로 돌아가는 승려)
앞 시냇물 다리 위의 승려 / 석장을 날려 어느 산으로 가시는가. 생각건대 오묘한 진리를 즐기시니 / 신통력으로 화현한 몸이 백 가지뿐이 아닐지니.
---------------
栢谷先祖詩集冊一 / 五言絶句
원문
《龜亭》
落日下平沙。
宿禽投遠樹。
歸人欲騎驢。
更怯前山雨。
夕照轉江沙。
秋聲生野樹。
牧童叱犢歸。
衣濕前山雨。
淸鍾殷佛舍。
綠霧沈江樹。
漁客濕蓑衣。
應知前夜雨。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一 / 五言絶句
《구정(龜亭) - 구정 정자)》
낙일은 평평한 모래에 내리고 / 자려던 새 멀리 나무로 날아가네. 나그네 나귀 타고 가려다 / 앞산에 내리는 비가 다시 두려워지네.
석양 빛 강가 모래로 구르고 / 가을 소리 들판 나무에서 피어나네. 목동은 송아지 몰아 돌아가는데 / 옷은 앞산 비에 젖었구나.
맑은 종소리 사찰에 아련하고 / 푸른 안개 강가 나무에 잠기네. 나그네 어부 도롱이 옷 적시니 / 단연 지난밤에 비 내린 줄 알겠구나.
-------------------
栢谷先祖詩集冊三 / 五律
《到彈琴臺》
원문
京關今敻邈。倚棹更回頭。露草蟲鳴夕。江沙雁落秋。孤村煙勃勃。束峽路悠悠。戰伐曾經地。灘凝咽不流。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三 / 五律
《도탄금대(到彈琴臺) - 탄금대에 이르러)》
서울 문은 이제 아득히 멀어졌으니 / 노를 저어 가다
다시 머리를 돌리네. 이슬 맺힌 풀엔 벌레 슬
피 울고 / 강가 모래엔 기러기 내리는 가을. 외로운 마을엔 연기 모락모락 / 골짜기 끼고 걸어가는 길은 아득하네. 전쟁을 치렀던 이 땅에는 / 여울물도 엉켜 소리 내어 울며 흐르지 못하네.
---------------
栢谷先祖詩集冊三 / 五律
원문
《醉默堂》
斂蹤槐峽久。誰肯慰寥寥。好夢通秦地。芳醪勝蜀燒。長江圍巨野。群峯聳層霄。窓外松聲聒。令儂聽苦潮。 弔影槐州僻。何能送寂寥。漁翁江市集。春火石田燒。急雨垂蒼野。層雲亘碧霄。今朝衰謝面。酒後帶紅潮。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三 / 五律
醉默堂 (취묵당)
괴협(괴산)에 자취 숨긴 지 오래되었으니 / 그 누구가 이 외로움을 달래 주랴.
좋은 꿈은 진나라 땅 통하고 / 맛 좋은 술은 촉나라 소주보다 낫다네.
긴 강은 큰 들판을 둘렀고 / 여러 봉우리는 높은 하늘에 솟았네.
창밖의 소나무 소리 시끄러워 / 나로 하여금 서글픈 밀물 소리를 듣게 하네.
괴주 우거진 곳에서 내 그림자 머무니 / 어찌 외로움을 보낼 수 있으랴.
어부들은 강가 시장에 모여들고 / 봄 불은 돌밭에서 타오르네.
소나기는 푸른 들판에 내리고 / 층층 구름 푸른 하늘에 이어졌네.
오늘 아침 늙고 쇠약해진 얼굴 / 술 마신 뒤라 붉은 빛을 띠는구나.
----------------
柏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원문
《連原驛次韻》
高樓聳出曲池隈。駐馬登臨意快哉。巨嶽東馳圍古郡。長江西走蹴仙臺。風雲繞筆詩頻就。歲月跳丸鬢已催。 酒盡樽空人欲散。暝煙籠樹鳥飛來。
<번역문>
柏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연원역차운(連原驛次韻)-- 연원역에서 운을 따서 지음)》
높은 누각 굽이진 연못 모퉁이에 솟아 있으니 / 말 멈추고 올라서니 마음이 매우 유쾌하구나. 큰 산은 동쪽으로 달려 옛 고을을 둘렀고 / 긴 강은 서쪽으로 흘러 신선대를 지지도다. 풍운이 붓끝을 감싸 시를 자주 지어내고 / 세월은 빠르게 흘러 늙음을 촉구하네. 술 다하고 술병 비어 사람 떠나려 하는데 / 저녁 연기 나무 감싸고 새들 날아오네.
----------------
柏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登醉默堂>
此翁流渰阻京關。北闕靑雲不可攀。薄薄人情雖已識。紛紛世故豈能刪。天晴崔灝詩中樹。雨細王維畫裏山。摠爲耽看憑檻久。夕陽林外宿禽還。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등취묵당(登醉默堂)- 취묵당에 올라)》
이 늙은이 한양 길 막혀 장벽에 막혔으니 / 대궐 푸른 구름 다다를 수 없구나.
야박한 인정 이미 알았거니와 / 번잡한 세상일 어찌 다 떨쳐낼 수 있으랴.
날 가물 땐 최호(崔顥) 시 속의 나무 같고 / 비 세세히 내릴 땐 왕유(王維) 그림 속 산이로다.
모두가 풍경 감상하느라 난간에 오래 의지하니 / 석양 빛 숲 밖에 묵을 새 돌아오네.
--------------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원문
《登彈琴臺》
百尺荒臺試一登。令人可破客愁凝。東南水若獰龍鬪。西北山如健馬騰。牛勒琴聲從古遠。金生筆法至今稱。我來澤老分符地。爲想文章更服膺。 崔嵬臺上與君登。哀壑愁雲日暮凝。老樹立如龍踊躍。長江噴作雪崩騰。訥齋儒化當時洽。強首詞源異代稱。怊悵沙場軍敗沒。儂今爲弔恨塡膺。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등탄금대(登彈琴臺) - 탄금대에 올라)》
백 척 황량한 대에 한번 오르니 / 나그네의 맺힌 시름 다 깨뜨려 버리게 하네. 동남쪽 물길은 사나운 용이 싸우는 듯 / 서북쪽 산세는 건장한 말이 뛰어오르는 듯. 우륵의 가야금 소리 예로부터 멀리 전해지고 / 김생의 글씨체는 지금까지 칭송받네. 나도 이 자리에 이르러 시대를 사유하니 / 문장에 대해 더욱 감복하게 되는구나.
웅장하고 높은 대 위에 그대와 함께 오르니 / 슬픈 골짜기 시름 구름 저녁에 엉기었네. 고목은 용이 꿈틀거리듯 서 있고 / 긴 강은 눈사태 쏟아지듯 물결치네. 눌재(박상)의 유교 교화 그 당시에 흡족했고 / 강수(强首)의 문장은 다른 시대에도 일컬어지네. 슬프다, 모래사장 싸움터에서 군대 패망했으니 / 나 이제 슬퍼하며 한탄이 가슴에 가득하네.
--------------------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次中原板上韻》
원문
仙娘逢着此名州。裊裊纖歌咽玉喉。萬逕皆通平陸闊。諸溪爭走大江流。新詩詠處窮愁遣。美酒斟時逸興稠。 欲望西方雲五色。斜陽獨上古官樓。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律
《차중원판상운(次中原板上韻 - 중원 현판의 시운을 따라 지음)》
신선 같은 여인을 이 유명한 고을에서 만나니 /
간드러진 고운 노래 玉목구멍을 적시네.
만 갈래 길 모두 통해 넓은 들판 아득하고 /
모든 시냇물 다투어 큰 강으로 흘러드네.
새 시를 읊는 곳에서 시름을 달래고 /
맛있는 술 따를 때 흥취가 깊어지네.
서쪽 하늘 오색 구름 바라보고자 /
석양에 홀로 옛 관아 누각에 오르도다.
----------------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言古詩
원문
《忠州歌》
甲辰九月十九日。我與李生竝馬出。劫劫揚鞭涉獺水。共涉高臺最蕭瑟。于仙昔日彈琴曲。羽聲散落滄江淥。仙蹤一去幾千年。惟有松風滿山谷。江邊乃有古戰場。積骨莽沙成如霜。往者將軍背水陣。誤學淮陰籌策良。緬思羅代任強首。文章合在何劉右。江河不廢萬古流。人骨雖朽名不朽。曰唯金生何許者。字體縱橫走渴馬。中國之人共稱曰。不居晉時三王下。盤桓不制感古心。我淚欲灑江之潯。此地乃知忠州府。城郭閭閻雄古今。共辦淸遊興緖盡。暮向驛亭爭棲禽。翌日歸時劍巖路。回首琴臺臺雲正陰。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言古詩
《충주가(忠州歌)》
갑진년(1664년) 9월 19일,
나와 이생은 말을 타고 함께 길을 나섰네.
채찍을 바쁘게 휘둘러 달천(獺水)을 건너 / 높은 탄금대에 함께 오르니 가장 쓸쓸하구나. 우륵 신선 옛날에 가야금 타던 곡조 / 우성(羽聲) 소리 맑은 강물에 산산이 부서지네. 신선의 자취 한 번 떠난 뒤 몇 천 년인가 / 오직 솔바람만 산골짜기에 가득하구나. 강가 쪽은 옛 전쟁터이니 / 쌓인 뼈 묵은 모래 속 서리처럼 백골이 되었네. 지난날 신립 장군 배수진을 쳤으나 / 한신(淮陰)의 병법 계책을 잘못 배웠음이로다. 아득히 신라 시대 강수(强首)를 생각하니 / 문장은 하수(何遜)나 유신(庾信)보다 우위에 있었지. 강물은 끊이지 않고 만고에 흐르니 / 사람 뼈 스러져도 이름은 불후하리. 김생은 또 어떠한 사람이었던가 / 글씨체 거침없어 타는 목마 달려가듯 하여라. 중국 사람들 모두 일컬어 말하길 / 진나라 때 삼왕(三王) 아래가 아니라고 하였지. 서성이며 옛 마음 감회에 젖어 / 내 눈물 강가 물가에 흘리려 하네. 이곳이 바로 충주부라는 곳임을 비로소 알겠으니 / 성곽과 집들 예나 지금이나 웅장하구나. 함께 맑은 유람 즐겨 흥취 다하니 / 저녁에 역정에 이르니 숲엔 새들 모여드네. 다음 날 돌아올 때 검암(劍巖) 길에서 / 머리 돌려 탄금대 바라보니 대 위의 구름 정히 어둡구나.
--------------------------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言古詩
원문
<野市歌>
忠州之市野中開。人若波濤趨大江。負者騎者去三三。老者壯者行雙雙。爭將何物互賣之。其藿其鯼又鰣魚。 其中何物極懋遷。堆積繭栗千斤餘。家鷄山鷄幾百首。論價言語何喧喧。俄頃市罷若雲散。況又劇雨垂江門。千人爭道如轟霆。江店山村各有適。獨據亭角拭目觀。不覺殘日橫蒼壁。
<번역문>
栢谷先祖詩集冊四 / 七言古詩
《야시가(野市歌 --- 들판 장터의 노래)》
충주의 장터는 들판 가운데 열리니 / 사람들 파도처럼 큰 강으로 몰려드네.
짐 진 자, 말 탄 자 셋셋이 지나가고 / 늙은이, 젊은이 쌍쌍이 걸어가네.
다투어 무슨 물건 서로 사고파는가 / 미역이며 어름치, 또 위어(鰣魚)라네.
그중 무슨 물건 가장 많이 거래되는가 / 밤 따위가 천 근 넘게 쌓여 있네.
집닭, 산닭 수백 마리 머리 내밀고 / 값 논하는 소리 어찌 그리 시끄러운가.
잠시 후 장이 끝나 구름처럼 흩어지니 / 하물며 소나기 강 어귀에 쏟아지네.
천 명 사람이 길 다투니 벼락 치는 듯 / 강가 주막, 산골 마을 각기 갈 길 찾아가네.
홀로 정자 모퉁이에 앉아 눈을 씻고 바라보니 / 어느덧 기우는 해 푸른 벽에 비스듬히 걸렸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