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명”이라는 말은 어떤 한자를 쓰느냐에 따라 뜻이 상당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존명(尊名)’은 남의 이름을 높여 이르는 말. ‘존명(尊命)’은 남이 내린 명령을 높여 이르는 말. ‘존명(存命)’은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저는 주로 많이 듣는 말이 무협지에 나오는 ‘존명(尊命)’이었습니다. 위에서 내리는 ‘명령을 받들어 모시겠다.’는 것인데 하급 무협지에서 자주 나옵니다.
존명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 있음을 뜻한다는 것은 사실 오늘 알았습니다. 어떻게든 명을 보존하는 것, 그거야말로 존재의 이유일 겁니다. 그래야 뒷날을 기약할 수 있고, 또 복수도 할 수 있으니 아무리 비참한 삶일지라도 살아야 뒷날을 기약할 수 있을 겁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게 살아있다는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다른 생명체보다 더 생존에 대한 본능이 강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일은 역사에서 허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내가 살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법으로도 이를 막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 유지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삶이 단지 먹고 사는 것 만이라면 사회가 복잡할 일이 없을 겁니다. 정치는 늘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1월 초 흉기 습격을 당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복귀 일성은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검찰과 언론을 살인미수 혐의자와 같은 선상으로 취급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 대표 의식 저변에 깔린 “죽지 않는다”는 강한 생존 의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존명(存命)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 목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여러 소설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숱한 개인들의 존명 스토리가 등장한다. 사선(死線)을 넘고 고난을 딛고 살아남아 가족, 또 사회를 일으켜 세운 이들의 삶은 감동적이다. 존명에는 자기희생도 따른다.
그러나 이웃이나 조직, 사회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존명은 대의나 명분이 결여된 생존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정치인들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 이 대표의 정치 행보나 스타일을 하나의 단어로 꿸 수 있다면 그런 의미의 ‘존명’, 즉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까 한다. 여기엔 언제든 내쳐질 수도 있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만의 설움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대장동 의혹 등에 대해 이 대표가 “검찰 주장대로라면 징역 50년을 받을 것”이라고 했던 게 단적인 예다. 수십 년 감방 살 일을 왜 했겠느냐는 항변이었겠지만, “검찰 주장이 법원에서 먹히면…” 하는 불안감도 잠복해 있다고 본다. 그러니 어떻게든 정치적 방어벽을 쌓아야 하는데, 성곽 안에 반란 세력이 도사리고 있으니 우환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며 더 뼈저리게 절감했을 듯하다.
대선 패배 직후 당 일각에서 이재명 축출 움직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 대표 도전으로 정면 돌파했지만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비명 반명 쳐내기는 이 대표로선 ‘합리적’ 선택이다.
면전에서 “피칠갑” 비난을 퍼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천 탈락 중진들의 반발과 탈당에도 “입당도 탈당도 자유”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한 태도다. 사활적 이익(利)이 걸려 있는데, 아무리 포용과 통합 등 명분(理)을 외쳐본들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친문 등 비명 진영은 속절없이 당하고 있지만 억울할 것도 없다. 자업자득이다. 대부분 수십 년간 86 운동권 엘리트로서 기득권을 누려왔다. 중도 진보의 울타리를 굳건히 세우고 전문가 그룹을 당의 중심 세력으로 키우기는커녕 각자 계파에 안주하고 친노 친문 등으로 말을 갈아타며 국회의원 배지 달기에 급급해 왔던 것 아닌가. 반면 이 대표는 더 절박하고 집요했다.
2월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아가 포옹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명문 정당’ 운운한 것은 친문 진영의 집단행동과 원심력을 적시에 차단시킨, 돌이켜보면 탁월한 기만전술이었다. 그 결과는 지금껏 본 대로다. 용광로 공천을 기대했던 임종석을 비롯한 친문 핵심들의 처지만 서글프게 됐다.
이 대표는 내심 1996년 DJ의 모델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당시 야당인 통합민주당 내에서 DJ의 정계 복귀, 대권 4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DJ는 야권 분열 비난에도 아예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79석밖에 얻지 못했지만 확실한 자기 당을 만들고 이듬해 DJP 연대로 대권까지 거머쥔다.
이 대표는 DJ가 아니고 그때와 지금은 정치 상황도 다르지만, 1당이든 2당이든 뚜렷한 적수 없이 사실상 대선 후보 자리가 보장된 정당을 갖는다는 것은 이 대표로선 절체절명의 과제일 수 있다.
문제는 당장 이재명의 민주당에 총선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공천 내전은 곧 일단락될 것이고 본선(本選)의 시간이 오면 정권심판론이 다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지지율 하락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야당 지지층도 느끼고 있다.
이 대표는 의미 있는 총선 성과를 내고, 방탄의 성곽을 더 튼튼히 하고, 대권까지 갈 수 있을까. 과반이나 1당은커녕 참패 성적표를 받아들면 어찌 될까. 차기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2년 전과 같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을까. 손가락혁명군에 이은 개딸, ‘종북’ 통진당 후신의 진보당…. 이들이 이 대표를 끝까지 호위할 방탄 세력일 수는 있겠다.
문제는 극성 팬덤의 정치 놀이터, 우리 사회 맨 왼쪽 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려는 민주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이다. 이재명의 존명의 길이 민주당의 존망(存亡)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이번 총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동아일보. 정용관 논설실장
출처 : 동아일보. 오피니언 [정용관 칼럼], 이재명의 ‘존명(存命) 정치’, 그 끝은
더불어민주당이 현역 의원을 컷오프(공천 배제)하고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 김혜경 여사를 보좌한 인물을 전략 공천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친명(친이재명) 최고위원들도 반대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데, 당 일각에서는 “김 여사와의 인연까지 고려해 사천을 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나 봅니다.
4일 민주당에 따르면 당 최고위는 1일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을 ‘여성 전략 특구’로 지정하고 권향엽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56)을 공천하는 전략공천관리위원회의 원안을 의결했습니다. 해당 지역구 현역 의원인 서동용 의원(초선)은 컷오프됐다는데, 민주당이 여성 전략 특구로 지정한 곳은 이 지역구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권 전 비서관은 2022년 대선 때 이재명 캠프에서 대통령 후보 직속 기구인 배우자실 부실장으로 김 여사의 일정과 수행을 담당한 사람입니다. 이를 두고 심야 최고위 회의에서도 반대 의견이 다수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 대표의 의중대로 공천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칼을 쥔 사람이 이깁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었다고 막 휘두르다가 그 칼에 자신의 몸이 베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될 일일 겁니다.
칼을 쥐고 마음대로 휘두르다가 그 칼을 빼앗기면 어떤 결과가 올지 칼을 쥔 사람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