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영어어원 : 郡(군)과 country
■ 모름지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쪽으로 움직인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역사서에는 자국의 국익 때문인지 몰라도 신화보다도 더 허구적이고 조작된 내용이 상당수 내포되어 있다. 동양에서 자국의 역사를 신화적이고 진취적으로 조작· 왜곡하여 성공을 거둔 나라, 다시 말해서 별 볼 것 없는 자국의 역사를 과대 포장하여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긍심과 용기를 불어넣고 일치단결하게 함으로써 일약 강대국으로 성장한 나라가 있으니, 바로 옆 나라 일본이다.
그러나 역사의 조작으로 인해 그들은 최대의 수혜를 입은 반면, 우리는 그들 때문에 최대의 피해를 입고 정신은 심하게 일그러지고 말았으니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상은 결코 약자의 편이 아니다. 철저하게 왜곡해놓은 역사로 인해 일본은 승리했고, 우리는 억울하게 당했다하더라도, 일본인과 제삼국의 국민들은 '일본은 정말 못됐다. 한국은 억울하다. 일본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당했으니 정말 안됐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는 맞고 들어온 자식보다 비록 잘못됐다 하더라도 때리고 들어온 자식이 은근히 마음속으로는 뭔가 통쾌하고 속이 덜 상한다. 라는 것이 세상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진리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비록 조작이긴 하지만 자국민에게 강한 자부심을 심어놓은 일본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그 조작이 조작인지도 모르고 당한 한국이 문제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성계가 명 황제로부터 조선이란 국호를 승인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뒤늦게나마 그것을 흉내내어 열도 역사상 최초로 1403년에 '일본'이란 국호를 명나라로부터 승인 받은 현 일본은 그 이전의 역사적 공백을 수치로 여기고 대대적으로 大사기극을 연출했다. 즉, 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서『삼국사기』및 중국대륙의 역사서『신당서』에 나오는, 670년에 倭왜에서 日本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한 중국대륙 양자강 이남의 倭왜를 마치 자신들의 전신인 것처럼 위조하여, 오늘날 동아시아의 역사를 극도의 혼란 속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 법이다. 그들의 조작행위는 한군데에 그치지 않고 수없이 계속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조작은 25사를 비롯한 중국대륙의 각종 사서에 나오는 '倭왜는 백제 밑에 접해 있었다1)'는 문구를 어이없게도, 자신들이 역사서 속에 나오는 倭 그 자체이며, 따라서 자기들은 과거에 중국대륙까지도 좌지우지하였던 천하무적의 울트라니뽄이라고 왜곡, 후세들에게 가공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조작을 사실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백제·신라를 오늘날의 한반도 남쪽 동서에 위치했던 나라로 왜곡하였으며, 고종을 협박·배후조종하여 이 땅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韓한이라는 나라를 자신들의 역사에 맞추기 위하여, 조선을 大韓帝國으로 개명케 하였을 뿐 아니라,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초대총독 테라우찌, 2대 사이토오 등을 통해 35년간 우리나라의 지명을 중국대륙에 있었던 지명으로 바꾸는 등 우리 역사를 조직적이고 전면적으로 왜곡·조작하였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수도명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국명 韓國은 과거 중국대륙에 존재했던 지명 내지 국명으로, 일본에 의해 이 땅으로 옮겨진 조작된 명칭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철저히 농락당하고 미개인들이라 비웃음 받고 있으니, 과연 우리가 이 시점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우리 일반 국민들이 경주에 있는 김유신 장군 묘나 김수로왕 묘, 또는 문무대왕릉과 같은 각종 유적을 당연히 신라·백제시대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한 인식은 일본인에 의해 우리의 머리 속에 강제 주입된 바이러스 프로그램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깨우쳐야 한다. 왕릉이라고 알려진 경주의 여러 묘에는 확실하게 어느 어느 왕의 묘라고 쓰여 있는 고대의 지석이 단 한 기도 없음을 이제라도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이처럼 역사학에 강자의 입김이 작용하여 왜곡이 존재하듯이, 언어학에도 강자의 논리가 적용되어 왜곡이 존재하니, 그것이 역사언어학의 가장 큰 맹점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비록 그것이 보람된 일일지라도 지극히 어렵고 고달플 수밖에 없다.
'국가'를 의미하는 영단어 country는 그 어원이 '반대'를 의미하는 라틴어 contra-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연구되어「맞은편에 놓여있는 땅(land lying opposite)인 그리운 고향이나 조국」과 같은 식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힘든, 객관성을 결여한 것이다. 이쪽 편에서 떨어진 저쪽 맞은 편, 즉 고국, 고향을 바라보며 항상 그리워하는 모습이 country 속에 담겨있다는 것인데, 이는 매우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역, 反, 반대' 등을 의미하는 접두어 contra-는 '抗(항)과 anti-, ante-, contra-' 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동방문자 '抗(막을 항)'에서 비롯된 것이다.
抗항 ; 한국음 hang, kang 중국음 kang 일본음 kou
contra-를 분석하면 cont까지가 그 어근에 해당하고, 그 뒷부분에 붙은 ra는 다음에 올 다른 말과의 원활한 연결을 위해 첨가된 윤활음이다.
접두어 contra-는 본 편의 주제어인 country와 그 철자 및 음이 매우 유사하여 연구자들로 하여금 혼동을 유발시킨다. 이러한 혼동은 그 본 어원인 동방문자를 서양인들이 다시 습득함으로써 종식될 수 있다.
country는 어근 count와 접미어 -ry로 구분될 수 있다. 접미어 -ry는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어 -ery의 생략형이다. -ery의 e는 d, t, l, n, sh로 끝나는 음절 뒤에 붙을 때 흔히 생략된다.
country의 어근 count는「모음끼리는 서로 자유롭게 치환가능하다」「영어 초성 c(ch, sc, x, s), k(ck, sk, kh), q, g는 동계자음으로, 상호 치환가능하다」「영어 종성 -ng(nk, nc, ns, nd, nt), -n, -m(mt, mp, mb)은 상호 치환가능하다」라는 영어 자체 내의 음운변형법칙에 근거하여 kun 또는 gun으로 재구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재구된 kun, gun은 동방문자 '郡(고을 군)'과 그 음 및 의미면에서 일치를 보인다.
郡군 ; 동철음 gun, kun 漢音 jun 일본음 gun, kun, kuni
동방문자 '郡'은 king을 의미하는 '君'과 '마을·고을·지역'을 뜻하는 '邑(읍)'으로 구성되어 있다. 郡군을 직역하면 'king[君]이 다스리는 지역[邑]', 즉 '국가'가 되는데, 이것이 서양의 country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國'자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어쩌면 '國'에 밀려났는지도 모른다) '郡'은 '국가'의 뜻보다는 주로 그보다는 작은 행정구역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여 왔다. 이 때의 '君', 즉 郡자 속에 들어있는 君은 한 나라의 왕보다는 행정수반[해당지역의 통치자]을 의미한다. 고대의 국가개념이 씨족, 부족단위였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본래 국가를 의미하던 동방문자 '郡'은 오늘날 그 글자의 원산지인 동양에서조차도 그 본의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조사결과 그 원뜻인 '국가'는 완전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영어 country와 일본어 kuni(くに=國)에 아직도 존속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고래로 kuni를 '國'의 의미로 써오고 있는데, 이 kuni는 '郡'의 자음 kun을 2음절로 늘린 것이다. 즉, 郡의 음kun을 '國'의 훈독으로 사용한 것인데, 동방문자만 주로 사용하던 고대에는, 같은 뜻을 나타내는 글자의 음을 가지고 해당 글자의 훈으로 삼았던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물론 國 뿐만 아니라 고을을 뜻하는 동방문자 鄕향이나 州주도 일본어에서는 kuni로 훈독되며, 지역·지방을 의미하는 동방문자 地도 kuni로 훈독된다.
韓鄕(karakuni). 韓地(karakuni). 堅州(katakuni)
이와 같이 '郡군'의 일본음 kuni가 '國·鄕·州·地'의 훈독으로 쓰이고 있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씨족·부족중심의 고대사회에서는 이들 단어들이 거의 동일하게 쓰였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들 문자들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개념과 고대인들이 느꼈던 개념 사이에는 다소 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國국이란 말은 고대에는 마을[鄕향]이나 지역과 같은 작은 단위를 나타내었으며, 君군은 郡군을 다스리는 수장인 지역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고서를 읽을 때는 이런 점을 알고 고서를 대해야지 그렇지 않고 오늘날의 개념으로 고서를 읽었다간 의미파악에 오류가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君(임금 군)이 사실은 수천만 정도를 거느리는 오늘날의 대통령과 동격의 인물이 아니라 완도군·해남군할 때의 郡과 비슷한 정도의 추종자들을 거느린 인물임을 알면, 우리 모두 마음가짐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즉 누구나 자기만의 왕국을 꿈꿀 수 있게 된다.
온조는 이른바 백가제해(百家濟海)라 하여, 최초 100집을 거느리고 황하[漢水]를 건너 백제라는 왕국을 세웠다. 100집의 인구를 어림잡아 환산하면, 당시는 대가족제도였기 때문에 백제국 초기 백성의 인구는 한 집당 10명 정도로 추산했을 때 100×10하여 총 일천명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한 수치는 3천명에 달하는 거지들을 거느리고 거지왕으로 군림(!)했던 김춘삼씨를 떠올리게 한다. 천명 단위가 왕이라면, 오늘날 빌게이츠는 능히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왕이 아닌 황제로 불리울만 하다. 이처럼 동방문자 郡군이 주는 교훈에 의하면, 누구든지 어떤 분야에서 인정받아 자기를 따르는 자가 1천명 이상이면, 온조왕처럼 자기만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郡군'자의 의미변천과정을 동서양으로 구분하여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