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운이 다가기 전에 마음껏!_ 서울광장스케이트장을 다녀오다.
230105. 송혜영
12월 들어 연일 최저 기온을 갱신하고 있다. 서울의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던 성탄절 전전날, 둘째 아이의 생일기념으로 나섰던 가평은 실제로 영하 20도를 찍었다. 오죽하면 풀빌라 샤워실에 수도가 얼어 온수가 안 나오는 해프닝까지 있었겠는가. 온난화로 북극 기온이 상승하자 극지방의 한기가 중위도까지 밀려 내려와 이른바 '북극 한파'로 인해 이렇게 춥다고 한다.
한파에 더하여 1년 전과 또 다른 점은 코로나 재감염과 독감환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감기는 말할 것도 없다. 작년 겨울에는 감기든 뭐든 아이들이 아파서 소아과를 간 적이 없어 신기할 정도였다. 이번 해에는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게 되면서 실내에서 마스크를 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마음가짐이나 활동성이 달라진 영향이 보인다. 어릴수록 아무래도 바이러스에 취약하여 유치원 다니는 둘째가 감기를 옮아 왔고, 이는 독감일 수도 있고 코로나일 수도 있었다. 이마에 열이 조금이라도 나거나 잠시 콜록거리기만 해도 일단 병원을 가게 되는데, 갈 때마다 약발이 안 받아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지면 독감 검사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다시 코로나19 초기처럼 아이들을 계속 살피며 사람들과 접촉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고 약을 먹으며 최대한 집에서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일이 몇 주째 이어졌다.
덕분에 청계천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자율주행 전동차를 타고 하이커 그라운드에 다녀오자, DDP의 장 줄리앙 전시회에 다녀오자는 등의 바깥 나들이 계획은 자꾸 미뤄지고 있다. 칼날 같은 찬바람을 쐬며 다닌다는게 감기를 키우는 무모한 일처럼 보이는 거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 하교 전 개인적인 모임도 기약이 없다. 강사님 가족분이 코로나에 걸려 그림책 토론 마지막 모임도 취소. 친구 딸이 코로나 재감염이 되어 재료 다 다듬어 놓고 기다렸는데 당일 아침에 식사 모임 취소. 우와, 계획대로 진행되던 일상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언제 누구의 사정으로 약속이 취소되는 것이 하나도 안 이상한 시기였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듯 아이들과 평일나들이도 모임도 모두 얼음.이다.
물론 이런 때 안락한 집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도 많다 하더라도 이 즈음 되자 겨울의 추위와 그로 인한 질병이 점점 나를 옥죄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팽이를 콕콕 찌르면 자꾸 집 안으로 잔뜩 움츠려 들어가는 것처럼 해가지고는, 뚜껑을 딱 덮고 스멀스멀 답답함과 우울감이 차오를 때 즈음 가은이는 유치원을 졸업했고 서은이는 종업식을 했다. 둘이 다니는 학교는 이번 방학 때 석면공사를 하는 차여서 평년보다 일찍인 12월 중순에 학사일정을 모두 마친 것이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성탄절 즈음 개인적으로 전환국면을 맞게 되었다. 여기에는 작은 이유 두 가지와 큰 이유 한 가지를 들 수가 있다.
작은 이유 중 하나는 확실히 기관에 다니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아플만큼 아파서 그런가 이 즈음 아이들의 감기가 깨끗이 다 나았다. 또 하나는 시간의 승리인데, 이 추운 겨울에도 내가 적응을 하더라는 것이다. 겨울에도 온난하여 롱패딩으로 무장 안해도 견딜만한 남쪽 나라에 살다가 이 곳 서울에 오니 확실히 춥긴 춥다. 해마다 더 추워지는 것 같아 새롭게 적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들 방학 전전날 간만에 대학로로 외출했을 때 참 포근해서 이 날 나오길 잘 했다 싶었더랬다. 그래서 기온이 몇 도인지 확인해 보았다. 그 날의 최고 기온은 영하 1도! 와우, 이 날씨가 포근하게 느껴지다니 그 때 나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큰 이유는 바로 바로! 내가 겨울 스포츠의 맛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겨울에 등 돌리고 어서 지나가라고 휘휘 손 휘젓는 태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즐기는 모양새가 된 것- 겨울과 관계에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나도 스케이트를 탔다!!! 이 사실은 나에게 반짝반짝 특종이라 좀 길게 써 보려 한다.
전시회를 보러 종로에 나섰던 날, 우리 셋은 즉흥적으로 서울광장스케이트장을 찾았다. 아이들은 엄마도 같이 타야 한다며 내 손을 끌었고, 나는 대여료까지 다 해서 1,000원밖에 안 하니까! 엄마가 타는 모습 잠시 보여주며 안쓰러움을 일으킨 뒤, 아이들의 양해를 구하고 링크 밖을 나오는 그림을 그리며 엉거주춤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스케이트장은 다행히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심호흡을 하고 어린이링크장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와우, 선다! 내가 생각보다 얼음판 위에 안정적으로 잘 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조금씩 걸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 다음 스텝을 위해 한 발을 얼음 위에서 살짝 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기억난 것은 내가 대학시절, 계절 수업으로 아이스스케이트 수업을 몇 시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때 참 자세 익힌다고 애쓰다가 재미도 못 보고 끝난 것 같은데 그걸 몸이 기억하는지 어째 꽤 기분좋은 시작이었다.
그래도 잘 타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링크장은 원래 어린이들과, 어린이를 챙기기 위한 보호자가 들어가는 곳이다. 아니아니, 초보 어른과 초보를 챙기는 어린이 보호자가 들어갈 수도 있는 곳이다. 가은이가 내 손을 슬며시 잡아 준다. 그리고 천천히 같이 돌아 준다. 아직 스케이트가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난간을 잡고 가는 등 고군분투 하고 있는 통에 나는 아이들 생각 1도 않고 내가 디딜 한 걸음 앞 얼음판만 보면 되는 호사를 누린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내마음쏙; 모두의 그림책전' 에서 이수지 작가의 [선]이란 그림책을 만난 적이 있다. 한 소녀가 얼음판 위를 김연아처럼 달린다. 소녀가 지나간 길마다 연필선이 자유자재로 남아있는데 선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유로운 기운과 행복감을! 원화 액자들이 한 공간의 벽면을 채우고, 그 가운데는 가짜 아이스링크장- 실제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미끄러지듯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두 공주님이 마치 그림책 속의 소녀가 되어 어찌나 자유롭게 날았었는지
그런데 왜 [선]이 지금 생각날까. 이제 걸음마하는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말이다. 한 발로 스케이트를 타며 다른 발과 양 팔을 주욱 뻗는, 백조같기도 하고 비행기같기도 한 그 동작을 스파이럴이라 하나, 나도 그렇게 자유롭고 우아하게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싶다. 마음은 이미 관중석의 환호를 받으며 스파이럴로 링크장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나. 쌩쌩 속도 내며 달리던 서은이가- 1년 전에, 강북청소년센터에서 인라인 수업 받은게 얼마나 잘 한 일인가- 배고프다며 두 번이나 찾아오는데 환상 속에 재미가 좋은 엄마는 조금만 더 타자 아이를 달래어 보내고 마저 얼음 위 걸음을 즐긴다.
한 타임은 한 시간으로 이후 30분은 정빙 및 휴식시간이 있다. 스케이트화를 벗고 환상 속에서 내린 나는 비로소 엄마 모드가 되었다. 링크장 한 켠에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사진을 인화해 준대서 기념 사진을 받아들고 아이들 양 손 바짝 잡아들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 6시 반. 플랫폼에서 퇴근하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서너대를 그냥 보내고 그나마 여유가 있는 칸에 아이들 치일 새라 양껏 손 뻗어 안아가며 집에 오니 몸이 용 쓴 티를 낸다. 기분은 좋다.
그래서, 새해가 되어 아이들과 방학 계획을 세우며 겨울이라고 움츠러들지 말고 1일 1운동하기로 하자. 스케이트를 타든(강조) 산책을 하든 운동을 한 날은 스티커를 붙이자. 하고는 1월 5일 현재까지 스케이트장을 두 번 더 갔다. 그리고 내일도 갈 예정이다^^ 노원구도 이런 사업을 잘 하는데, 이번 해에는 중랑천에 눈썰매장과 스케이트장을 개장했다. 여기 얼음이 서울광장보다 약간 덜 미끄럽고 상대적으로 사람이 덜 붐벼 초보인 나는 타기에 좋았다. 서울광장스케이트장은 오후 5시 반 다음 타임인 7시에는 어린이 링크에 확실히 사람이 없어서 널널하게 타기 좋다고 한다. 가족 이용객은 한 번쯤은 아이를 조금 늦게 재울 생각을 한다면 7시 이후 것을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첫 날 스케이트를 탈 때에는 손발이 시려워서 다음에는 핫팩을 꼭 가져오리라 했는데 이상하게 두번째 부터는 몸에 열이 나서 가져간 핫팩도 그대로 들고 왔다. 얼음 위에서 추위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얼음 위를 올라갔다 내려온 이후로 12월 초중순의 그 움츠러듦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영하 20도까지는 아니라도 계속 최고기온이 0도 언저리인 날이 계속되고 있어 추운 날들인데 말이다.
아플 때는 몸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쉬어줘야 한다. 아이가 아플 때는 부모가 줄 수 있는 사랑의 기운으로 곁을 지켜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여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또 회복하여 에너지가 있을 때는 감사함으로 주어진 것을 즐길 일이다. 내가 뭔가 의지를 발동하거나 노력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겨울'을 떠올릴 때 마냥 싫다, 어서 지나갔음 좋겠다. 가 아니라 겨울도 즐거운 게 있구나,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마음껏 즐기자'는 마음으로의 변화가 신기하고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