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5: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아멘!!♥
20231208 날마다기막힌 새벽 #1401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하는 것"
요한복음 4장 46절 ~ 49절
"예수님은 이땅에 계시면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 물위를 걸으신것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것.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교회안다니는 친구들에게 전도를 하면
저를 놀렸어요 야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며...
오른발 빠지기 전에 왼발 놓고 왼발 빠지기 전에 오른발 놓고...
이런식으로 빈정거리는 거지요....
그때 저는 우리 친구들에게 이렇게 얘기 했었어요...
네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 내가 얘기하는 것은 하나님이라고...
사람이 물위를 걸었다 그것은 뻥이지...
그런데 하나님이 물에 빠졌다 그거 말이되냐?
내가 얘기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야...
하나님이 물위를 걸은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고...
저는 정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이모든것은 충분히 가능한것이야...
그런데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보여주기 위해 가시적으로 보여주신것이 아니에요..
그냥 불쌍하니까 안타까워서 그러신거야...
예수님은 대게 이런 이적을 베푸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무에게도 가서 말을 하지 말라고,,,,
겸손해서가 아니라 그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해를 할까봐...
이런 표적과 기사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닐까봐...
오늘 그 걱정이 오늘 본문에 나와있잖아요....
저는 아직도 암환자 이지 않습니까?
재발 가능성이 있어서 불안하고 우울하기도 하지요...
그럴때 기도하기도 하지요...하나님 재발되지 않게 해 주세요...
암 다 낫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해요...
하나님은 완치 다 낫게 해주실수 있지요...
하지만 제가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양심적으로 생각을 해봤어요...
김목사 너는 왜 나를 믿냐고 예수님이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예수님은 길이시니까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유언처럼 남기고 싶은 말이에요.....
평생 살다가 보니 예수님을 따라 사는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 예수님을 믿는 중요한 목적은 바로 "속죄"에요....
살아오면서 어찌할수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아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살면서 지은 죄들을
어떻게 할수가 없어요.....
죄는 한번 지으면 끝이에요...
내 힘으로 그 죄를 없이 할수가 없어요....
지울수가 없어요 그게 그렇게 나를 부끄럽게 해요...
나를 속상하게 해요..그런데 불가능해요...
그 죄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 그 죄를 지우는 일이 불가능해요..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내 죄를 도말하여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를 흰눈같이 양털같이 깨끗하게 되리라...
정말 그렇게 되었잖아요....
저는 그것때문에 예수를 믿어요....
예수를 믿어서 죄사함을 받고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깨끗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가장 귀한 일에 쓰임을 받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그 길을 가게 되었더니...
이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지
말로 할수가 없습니다....
저는 신유의 은사를 믿어요 만약에 이런 은사를 받았다면
정말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으로 불쌍하니까 아파하니까
해서 동참해야지 그것을 광고하고 과시하고 드러내고
그것을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tv카메라앞에서 저거하고
하나님얘기는 하지만 은근히 자기를 자랑하고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 다니고 하는것을 예수님이 볼때
예수님이 이런얘기를 하실것 같아요....
너희는 표적과 기사가 아니면 도무지 나를 믿을려고 하지 않는구나라고..
다니엘의 세친구 이야기 도무지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풀무불에 던져져서 죽되 되었을때 누가 너희를 거기에서 건져내겠냐?
할때 그들이 우리 하나님이 능히 건져 내시겠고라고 고백하잖아요...
능히 건져주시지만 만약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상에 절을 하지 않겠다는 그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할줄을 믿습니다....
표적과 기사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신 구원자 이시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날마다 얘쓰는 우리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하니하실지라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길이시기 때문에.....
진리 생명 내 죄를 속죄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우리들 되어요....
날기새....
애쓰셨습니다..
"평안할찌어다 "
"내가 변해야
직장이 교회가
세상이 변한다...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기회를 누릴 믿음이 부족할뿐..."
주님의 마음으로
기대하며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태복음2:2).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일들이 성경에는 많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별도 그렇습니다. 과연 이 "별"은 어떻게 동방박사들을 안내했을까요?
성경을 보면, 그 별이 동방박사들을 이끌었다거나 그들보다 앞서서 갔다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부터 그 별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말씀할 뿐입니다(2절). 그렇다면 9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부터 베들레헴으로 가는 5마일 남짓 되는 거리를 그 별은 어떻게 박사들보다 앞서서 갔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별은 어떻게 "아기가 있던 곳 위에" 멈추어 있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답으로는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성, 혜성, 초신성 또는 기적적인 빛 등으로 이를 설명하려는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권면하는데, 결국에는 확실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사로잡힘으로써 영적 의미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너무 일반화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러분께 경고합니다: 별이 어떻게 움직였고 홍해가 어떻게 갈라졌고 만나가 하늘에서 어떻게 떨어졌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살아났는지 달이 어떻게 붉게 변했는지 등의 일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제가 미미한 것을 찾는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복음의 위대한 중요한 것들—하나님의 거룩하심, 죄의 추함, 인간의 무능함, 그리스도의 죽음,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 성령의 성화시키는 사역,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과 최후의 심판 등—을 참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글이나 새로운 책을 제시하면서 당신을 곁 길로 새나가게 유혹합니다. 그곳에는 무엇인가에 중심을 잡고 기뻐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과 관련하여 명백한 점은 바로 그것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동방박사들을 하나님의 아들께로 인도하여 그분을 경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해 볼 때 그 별들이 그렇게 하는 것 뒤에는 오직 한 인격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이 사실이 가져다 주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은 외국인들이 그리스도께 경배하도록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범세계적인—어쩌면 우주적인—영향력과 능력을 행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한 처녀가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곳에서 아기를 낳음으로써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게끔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때에 로마 제국 전체를 움직이셔서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들을 움직이셔서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와서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게 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행하셨으며, 지금도 그렇게 행하고 계십니다. 그의 목적은 열방—모든 열방(마태복음 24:14)—이 그의 아들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직장에 있는, 당신의 이웃에 있는, 당신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4:23에서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라고 말씀하는 것처럼요.
마태복음의 시작 부분에서 우리는 여전히 "와서 보라"의 패턴을 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와서 보았습니다. 우리는 가서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그의 아들을 경배하도록 열방을 모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모든 열방의 열렬한 예배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고 확대되는 것이 이 세상의 존재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