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보살좌상은 오랜 세월 야외에서 비바람과 눈을 맞으며 풍화가 진행되었다. 보살상이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을 세운 형태(우슬착지)의 독특한 공양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니, 하중이 한쪽으로 쏠리기 쉽고 보살상 아래 대좌(연화대좌)의 균형이 미세하게 틀어지거나 기우는 문제가 있었다.
머리에는 정교하고 높은 화관(통형관)을 쓰고 있으며, 입가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가슴 앞에는 두 손을 모아 공양물을 올리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불상의 정형화된 미의식에서 벗어나 고려 시대 특유의 독창적이고 온화한 지방적 미감이 잘 드러난다.
스승 부처님의 은혜와 진리의 위대함에 보답하기 위해 희견보살은 신통력으로 온갖 향유(향기로운 기름)와 향약을 몸에 바르고, 비단 옷을 입은 뒤 향유를 흠뻑 적셨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직접 불을 붙여 1,200년 동안 온몸을 태워 부처님과 법화경에 바치는 최고의 공양을 올렸다.
《법화경》에서 약왕보살은 소신공양 후 부처님이 입멸하자 8만 4천 개의 사리탑을 세우고 다시 자신의 팔을 태워 공양을 올린다. 월정사의 배치는 '석탑(부처님의 진신사리 및 진리)'과 그 진리를 향해 공양을 올리는 '약왕보살(구도자/수행자)'의 구도를 완성하여, 탑과 보살이 하나의 거대한 종교적 서사를 형성하게 만든다.
첫댓글 야외 8각 9층 석탑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던 그 보살상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약왕보살(藥王菩薩)'로 해석되며,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지극한 헌신과 공양의 아이콘이다.
현재 석탑 앞에는 복제품이 앉아 있고 진품은 박물관 안에 보존되어 있다. 미소를 살짝 머금은 입가와 입체적인 부드러운 화관, 수줍은 듯하면서도 기품 있는 얼굴 표정에서 고려 시대 석조 조각의 압도적인 단아함과 온도감이 느껴진다.
오래된 사진이나 야외 석탑 앞에 있던 당시의 보살상에 있던 받침돌 형태의 부속물은 보존·안전용 보강재(보강 대좌)였으며, 박물관에 진품이 전시되면서 원래 모습대로 해체 정돈된 것이다.
석조보살좌상은 오랜 세월 야외에서 비바람과 눈을 맞으며 풍화가 진행되었다.
보살상이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을 세운 형태(우슬착지)의 독특한 공양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니, 하중이 한쪽으로 쏠리기 쉽고 보살상 아래 대좌(연화대좌)의 균형이 미세하게 틀어지거나 기우는 문제가 있었다.
과거 야외(팔각구층석탑 앞)에 보살상을 안치했을 당시, 기울어짐이나 하중 붕괴를 막고 석상을 안정적으로 받치기 위해 오른쪽 엉덩이/다리 하단부 아래에 괴어 놓았던 별도의 보조 받침돌(보강석)이나 가공된 돌이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야외 풍화로부터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진품 보살상을 월정사 성보박물관 실내로 이운하여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거쳤다.
박물관 실내로 들어오면서 완벽하게 수평이 맞추어진 전시대 위에 본래의 연화대좌와 보살상 본체만을 정확하게 결합·복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야외 안치를 위해 임시로 고쳐 괴어 놓았던 외부 받침돌이나 비정형 보강용 부속재들이 제거되어, 고려 시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순수한 조형미와 원래 형태만 남게 된 것이다.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을 세워 올린 우슬착지(右膝着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법화경》 등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이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과 탑에 온몸으로 헌신 공양을 올렸던 설화를 조형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정교하고 높은 화관(통형관)을 쓰고 있으며, 입가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가슴 앞에는 두 손을 모아 공양물을 올리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불상의 정형화된 미의식에서 벗어나 고려 시대 특유의 독창적이고 온화한 지방적 미감이 잘 드러난다.
석탑과 공양보살상이 하나의 세트로 구성된 배치는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등 강원도 영동·오대산 지역 고려 불교미술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희귀하고 독창적인 구조이다.
약왕보살상은 "지극한 헌신과 공양의 마음"을 돌에 새겨 넣은 고려 불교조각의 정수로, 오대산 신앙의 깊이와 월정사 천년 역사를 대변하는 핵심 문화유산이다.
《법화경(묘법연화경)》 제23장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 기록된 소신공양(燒身供養) 설화는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헌신과 공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약왕보살은 과거 전생에 '일체중생喜見(희견)보살'이라는 이름의 수행자였다. 그는 스승인 일월정명덕유여래(日月淨明德如來) 부처님과 《법화경》의 진리를 듣고 깊은 삼매(삼매)에 들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스승 부처님의 은혜와 진리의 위대함에 보답하기 위해 희견보살은 신통력으로 온갖 향유(향기로운 기름)와 향약을 몸에 바르고, 비단 옷을 입은 뒤 향유를 흠뻑 적셨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직접 불을 붙여 1,200년 동안 온몸을 태워 부처님과 법화경에 바치는 최고의 공양을 올렸다.
자신의 가장 귀중한 육체마저 아낌없이 바쳐 진리를 수호하고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아집(我執)의 완벽한 해체이자 극진한 헌신을 상징한다.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을 세운 독특한 자세는 부처님이나 사리탑 앞에서 최대의 존경과 공경을 표할 때 취하는 자세이다.
이는 약왕보살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 직전 올리는 극진한 경의를 형상화한 것이다.
《법화경》에서 약왕보살은 소신공양 후 부처님이 입멸하자 8만 4천 개의 사리탑을 세우고 다시 자신의 팔을 태워 공양을 올린다.
월정사의 배치는 '석탑(부처님의 진신사리 및 진리)'과 그 진리를 향해 공양을 올리는 '약왕보살(구도자/수행자)'의 구도를 완성하여, 탑과 보살이 하나의 거대한 종교적 서사를 형성하게 만든다.
몸을 바치는 절박한 순간임에도 보살상의 표정은 온화하고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는 육체적 고통을 초월하여 진리와 일치된 지복(至福)의 상태이자 무조건적인 자비심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고려 석조 조각의 정수이다.
잘 읽어 습니다 고맙습니다ㆍ